‘최종봉인.’어느 겨울날 기자가 찾은 사회대 학생회실에는 봉인된 투표함들이 쌓여 있었습니다. 50%의 투표율을 넘지 못해 개표하지 못한 투표함들이었습니다. 작년 한 해 동안 인문대와 사회대를 비롯해 수많은 단과대 선거가 무산됐고 총학생회 선거는 27.78%라는 역대 최저 투표율을 기록했습니다. 결국 저 투표함 속에 어떤 이야기가 담겨있는지 확인할 길이 없어졌습니다. 학생사회에 대한 일말의 애정을 지니고 있었을, 기표용지 주인들의 외침은‘알 수 없는 것’으로 남겨졌습니다.
종로 어딘가에도 봉인된 공간이 있습니다. 경복궁 후문 앞에 위치한 파란 기와집입니다. 25일 취임식에서는 물론, 새 정부가 출범한 지 일주일이 지난 지금 이 시각까지도 청와대 비서관 명단은 발표되지 않았습니다. 전 정부를 통틀어 유례없는 사태입니다. 대통령을 최측근에서 보좌하며 대통령 권력의 연장선이라고 할 수 있는 수십의 비서관들이 파란 기와집 속에 꽁꽁 밀봉됐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비난했던 이명박 정부가‘소통이 안 되는 정부’였다면, 새 정부는‘소통이 되지 않는다’는 말조차 가볍게 무시하는 듯합니다.
당신의 머릿속에도 봉인된 기억이 있습니다. 뉴스에서, 신문에서 혹은 게시판을 메우는 자보 속에서‘노동조합’이라든지‘사내하청’이라든지 하는 단어들이 은연중에 머릿속을 메웠을 것입니다. 10년간의 투쟁에도 변치 않는 부조리 앞에서 현대중공업 사내하청 노동자들은‘죽음’으로써 그 기억들을 끄집어내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세간의 관심은‘노동자 자살’이라는 자극적인 소재에 그칠 뿐이었습니다. 그들이 죽음으로 알리고자 했던, 그리고 바꾸고자 했던 현실은 10년째 우리들의 기억 속에 갇혀 있습니다.
밀봉된 투표함은 개봉할 수 없으나, 그 투표함이 던지는 메시지에 대해서는 말할 수 있습니다. 청와대에 잠입해 비서관들의 정보를 캐내올 수는 없지만, 베일에 싸인 인선에 대해 비판할 수는 있습니다. 사람들의 머릿속에 들어갈 수는 없어도, 그들이 잊고 있었던 비정한 현실을 다시금 환기시킬 수는 있습니다. 언론의 역할은 눈앞에 펼쳐진 자명한 현실을 논하는 것이 아닙니다. 진짜 중요한 것은 봉인된 것들에 감춰진 진실입니다. <서울대저널>은 보이지 않고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 누군가 침묵하는 바로 그 문제들에 대해서 말하고자 합니다.
다가오는 봄, 세상 만물이 외피를 벗겨내듯 <서울대저널> 3월호가 봉인된 모든 것들의 외피를 한 꺼풀 벗겨낼 수 있길 바라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