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근 건축가는 1974년 현재의 미대와 음대에 해당하는 서울대학교 예술관을 설계했다. 이 설계도에 따라 1975년 50동~55동 건물이 준공됐다. 2014년 현재에 이르기까지 약 40년에 가까운 시간이 흘렀지만 1975년에 지어진 건물은 개보수를 한 것 이외에 특별한 개선 사항이 없다. 그 사이 1970년대 1만 4천여 명 수준이던 학생 수는 2014년 현재 2만 5천여 명으로 늘어났다. 학생 수가 늘어남에 따라 학생 1인당 사용가능한 공간은 점점 줄어들었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건물도 노후화됐다. 1999년에 49동 예술관연구동이 준공됐지만 디자인학부(디자인전공)에 배정돼 기존의 공간 부족 문제를 해소하지는 못했다.

미대 공간 부족 잔혹사
미대는 전공의 특성상 실기 위주의 작업이 이뤄지기 때문에 개인적인 작업 공간을 필요로 한다. 때문에 다른 단대에 비해 학생 1인당 사용할 수 있는 공간에 대한 요구가 큰 편이다. 이 때문에 미대 각 과에는 특색에 따라 실습을 위한 실기실이 배정돼 있다. 학내에서 작업하는 경우가 많은 미대의 특성상 실기실은 미대 학생들의 실습 공간인 동시에 생활공간이다. 하지만 동양화과와 서양화과의 경우 1학년 실기실이 따로 마련돼 있지 않다. 2007년 미대 학생회장으로 출마한 ‘3C’ 선본의 김세왕(조소 02) 씨는 미대 실기실 문제 해결을 주요 공약으로 내세워 당선됐다. 하지만 상황은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 김 씨가 미대 학생회장으로 활동한 2007년에는 미대 측이 공간 확보의 어려움을 이유로 수시 입시의 실기 시험을 학생들의 실습 공간인 실기실에서 치르는 일도 있었다. 이 시기는 특히 과제전 및 졸업전 준비 기간이었던 탓에 학생들은 큰 불편을 겪었다.
2012년~2013년에 활동한 29대 미대 학생회 역시 교육환경개선에 역점을 두고 활동했다. 29대 미대 학생회에서는 미대 학생들의 의견을 반영한 요구안을 만들고 2013년 3월 미술대학 학생대표자 회의(미학대회)를 열었다. 미대 학생회는 미학대회에서 수렴한 내용을 바탕으로 2013년 4월 미대 교육환경개선협의회(교개협)에 참여해 학장단에 미대 환경 개선을 요구했다. 교개협에서는 1학년생의 실습 공간 및 휴게 공간 부족 등이 안건으로 제시됐다. 학장단은 이에 대해 ‘예술복합연구동이 준공되면 부족한 실습 공간을 배정하겠다’고 밝혔으며, 휴게 공간으로는 ‘간이 정자 설치를 검토하겠다’고 답했다. 예술복합연구동이 준공될 때까지 동양화과와 서양화과의 1학년 실기실 배정이 미뤄진 것이다. 간이 정자 설치는 실현되지 않았다.

공예 전공의 경우 전공 특성상 실습 과정에서 실기실이 먼지와 소음에 노출되기 쉽다. 그러나 다른 전공과 마찬가지로 실기실 외에 별도의 휴게공간은 마련돼있지 않은 상태다. ⓒ최서현 촬영기자
그나마 현재 사용되고 있는 실기실마저 온전히 미대 학생들을 위한 공간이 아니다. 강의 공간이 부족해 실기실이 강의실로 쓰이기 때문이다. 전공 강의가 해당 학과의 실기실에서 이뤄지는 것은 물론이고, 미대생의 수강이 금지된 예술 실기 교양 과목도 실기실에서 이뤄진다. 수채화의 기초와 소묘의 기초 강의는 서양화과의 기초소묘 실기실에서 열리고, 도예전공 실기실에서는 도예의 기초 강의가 열린다. 이 때문에 월요일에는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수요일과 목요일에는 오후 1시부터 오후 5시까지 기초소묘 실기실을 비워야 한다. 화요일에는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도예전공 실기실을 비워야 한다. 이 시간에는 실기실을 사용할 수 없을뿐더러 다른 공간에서 실습을 하더라도 작업을 위해 작품, 도구, 재료 등을 옮겨야 한다. 실기실이 실습 공간인 동시에 휴게 공간인 미대 학생들로서는 자신들이 온전히 사용할 수 있는 공간이 없는 셈이다.
올해 미대 예산 660,353,000원은 어디에 쓰이나
2013년 4월에 열린 미대 교개협에서는 공간 부족 문제에 더해 건물 노후화로 인한 환경 문제도 제기됐다. 특히 난방이 잘 되지 않아 학교에서 오랜 시간 작업해야 하는 미대 학생들이 어려움을 겪는다는 지적이 있었다. 냉난방 문제는 이미 여러 차례 제기된 바 있다. 학생들이 작업하는 실기실의 경우 공간이 넓고 천장이 높을 뿐만 아니라 건물의 단열이 잘 이뤄지지 않아 냉난방 효율이 떨어진다. 이런 현실을 감안해 냉난방시설을 보완하거나 냉난방기 가동 시간을 늘릴 필요가 있지만 냉난방은 른 건물들과 동일하게 이뤄진다. 올해 4월에 열린 미학대회에서는 냉난방 문제를 비롯해 누수, 하수 악취, 습기, 온수 문제 등이 제기됐다. 그밖에도 벌레와 쥐가 나타나는 문제도 지적됐다.
이러한 문제들은 오래전부터 지속적으로 제기됐지만 미대는 건물의 노후화를 근거로 문제 해결을 미뤄왔다. 건물이 오래돼 발생한 문제이므로 리모델링 같은 방법을 통해 근본적으로 접근하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다는 논리다. 그러나 미대 측은 리모델링을 하지 않고 해결할 수 있는 문제에 있어서도 미온적인 태도를 보여왔다. 2013년 4월 열린 교개협에서는 49동에 위치한 전산실의 관리가 미흡해 고장 난 컴퓨터가 많다는 것이 지적됐다. 이에 대해 학장단은 관리자를 선정하고 전산실을 관리하겠다며 개선의 의지를 밝혔지만 1년이 지난 지금도 전산실의 컴퓨터 고장 문제는 해결되지 않은 채 남아있다. 현재 전산실에 구비된 컴퓨터 31대 중 14대에 고장 표시가 돼있는 상태다. 나머지 컴퓨터 중에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것이 있어 실제로 작동하는 컴퓨터는 10대 남짓이다. 이미 지적된 바 있고 충분히 해결할 수 있는 문제임에도 미대의 대처가 부실하게 이뤄진 것이다.
미대 측의 대응에 불만이 생기면서 올해 열린 미학대회에서는 미대 학생들의 등록금이 어떻게 사용되는지 알고 싶다는 의견까지 제시됐다. 올해 미대의 한 학기 등록금은 3,690,000원이다. 이는 인문대와 사회대 등록금 2,467,000원이나 공대 등록금 3,029,000원 등 대다수 단과대학에 비해 높은 수준이다. 등록금 수입은 각 단대에서 전용되지 않고 법인 서울대학교의 예산으로 수합된다. 각 단과대의 예산은 수합된 예산에서 학생 수에 비례하게 배정된다. 올해 미대에 배정된 예산은 660,353,000원이다. 이 예산으로 미대 건물의 관리가 이뤄지고 각 학과에 예산이 다시 배정된다.
미대 측은 높은 등록금 수준에 비해 미대 학생 개인에게 체감되는 교육 환경이 좋지 않다는 점을 인정한다. 그러면서도 미대의 특성상 어쩔 수 없는 부분도 있다는 입장이다. 문주 부학장은 미대의 높은 등록금에 대해 “미대의 인원이 적은데 공간을 많이 사용하고 있으니 돈을 그만큼 더 내야 한다는 것이 본부의 논리”라며 미대생의 등록금 부담이 큰 구조를 지적했다. 또 “미대는 특성상 기본적으로 작품 실습에 소요되는 비용이 높고 기자재 관리에도 적지 않은 예산이 든다”며 “전공의 특성상 인문대, 사회대 등에 비해 등록금이 높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등록금은 본부로 수합되는 만큼 미대 학생들의 등록금이 미대에서 관리되지 않는다. 따라서 등록금 전체가 어떻게 사용되는지는 미대 측에서 밝힐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미대 측은 “미대에 배정되는 예산의 사용에 대해서는 학생들의 예산 공개 요구가 타당하다고 판단되면 공개 여부를 학과장 회의에서 논의해볼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예술복합연구동과 리모델링이 문제 해결의 실마리가 될 수 있을까
신축되는 예술복합연구동은 지하 1층, 지상 4층 규모로 연면적이 9,289㎡에 달한다. 연면적으로 보면 1975년에 준공된 미대 건물인 50동(2,515㎡), 51동(3,838㎡), 52동(4,384㎡)의 합계인 10,737㎡에 맞먹는 수준이다. 예술복합연구동의 공간은 교수연구실, 대학원 실기실, 도서자료열람실, 전시실, 다목적 강의실, 스튜디오, 학생식당 등에 배분된다. 49동 예술관연구동이 디자인학부에 배정됐기 때문에 예술복합연구동에는 동양화과, 서양화과, 조소과 등 순수미술 전공에서 필요로 하는 공간이 중점적으로 배정된다.

2015년 3월 준공 예정인 예술복합연구동의 조감도.
예술복합연구동의 공간 배분과 리모델링 계획은 공간조정위원회 회의에서 결정된다. 공간조정위원회는 2011년 예술복합연구동의 신축이 결정되면서 부지 선정과 공간 배정을 논의하기 위해 조직됐다. 공간조정위원회에는 미대 학장, 부학장, 각 학과의 학과장과 전공별 교수 한 명씩이 참여한다. 공간조정위원회에서는 각 공간의 효율적 배분을 위한 논의 외에도 예술복합연구동에 대한 각 학과의 요구사항을 반영한다.
위원회 논의 결과 대학원 실기실이 예술복합연구동 3, 4층에 배정되면서 50~52동에 있던 기존의 대학원 실기실이 유휴 공간으로 활용 가능해졌다. 미대 측은 그간 실기실이 없었던 1학년 학생들에게 이 공간을 실기실로 배정할 계획이다. 예술복합연구동으로 이전하는 공간에 강의실이 마련돼 앞으로 실기실이 강의 공간으로 사용되는 일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문주 부학장은 “학생들의 실습 공간을 개선하는 것을 1차적인 목표로 하고 있다”며 “공간조정위원회에서 1학년 실기실 확보 외에 기존의 실기실 환경 개선에도 힘쓰고 있다”고 밝혔다.
내년에 50동을 시작으로 진행되는 미대 건물의 리모델링은 김수근 건축가가 설계한 건물의 건축학적 가치를 떨어뜨리지 않는 선에서 이뤄질 예정이다. 노후화된 시설물이 교체되는 것 외에도 복잡한 동선이 정리돼 공간 활용도를 높이게 된다. 타일로 된 외벽은 단열 문제와 맞물려 냉난방 효율을 떨어뜨리는 원인으로 지적됐다. 리모델링 계획에는 이 점을 고려해 건물 외벽을 교체하는 내용이 포함돼있다. 벽돌 모양의 타일에 단열재를 넣음으로써 냉난방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것이다.
그밖에도 건물 노후화로 인해 제기된 문제들은 리모델링을 통해 해결될 수 있다. 하지만 미대 건물의 리모델링이 마무리되는 시점은 빨라야 2017년이다. 때문에 리모델링이 완료되기까지 그간 지적된 문제들은 해결되지 않은 채 남게될 것으로 보인다.

미대 문주 부학장은 6월중으로 학생들의 의견을 수렴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최서현 촬영기자
공간 배정에 미대 학생들의 의견이 얼마나 반영될지는 미지수
미대 교수들로만 이뤄진 공간조정위원회에 학생들의 의견이 어느 정도로 반영될 지는 미지수다. 문주 부학장은 “공간 배분이 구체적으로 결정되는 6월이 되면 학생들의 의견을 수용해서 적극적으로 반영할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학생들의 의견을 수용하는 6월에는 공간조정위원회 회의를 통해 공간 배분에 대한 논의가 마무리된 상태다. 공간 배분이 사실상 결정된 상태인 셈이다. 이 때문에 학생들의 의견과 공간조정위원회의 공간 활용 계획에 이견이 있을 경우 공간조정위원회에서 얼마나 유연성을 발휘해 학생들의 의견을 반영할 것인지는 의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