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대 총학생회와 단과대학생회장 연석회의가 지난해 하반기와 올해 초 2번에 걸쳐 광고대행사로부터 계약한 금액을 받지 못한 것으로 드러났다. 55대 총학생회는 광고대행사 HS커뮤니케이션으로부터 광고대금으로 총 6000만원을 지급받기로 계약했으나 HS기획은 4100만원만 지급하고 나머지 대금을 주지 않은 채 잠적했다. 또 올해 초 단과대학생회장 연석회의는 광고대행사 으뜸기획으로부터 새내기배움터 자료집 광고비로 1500만원을 받기로 했으나 이번에도 광고대행사의 잠적으로 1500만원 전부 받지 못했다. 총 3400만원을 받지 못한 것이다.
사건의 개요
작년에 광고대금을 지급하지 않은 HS기획의 경우 지난 53대, 54대 총학생회와도 광고계약을 맺었던 업체로 그동안 계약을 정상적으로 이행했다. 계약 내용은 새내기배움터 자료집, 총학생회 소식지 등 총학생회에서 1년 동안 발행하는 5개 유인물에 광고를 싣고 이에 따른 광고비를 매번 지급하는 방식이었다. 계약 시기는 보통 새내기배움터 이전인 1~2월로, 작년의 경우 당시 연석회의가 유인물 1건당 1200만원을 지급받는 것으로 계약을 체결했다.
처음 3건에 대한 3600만원은 정상적으로 입금이 됐다. 그러나 8월 지급분인 1200만원부터 제때 입금이 이뤄지지 않았고, 당시 총학생회의 독촉 끝에 9월이 돼서야 일부분인 500만원을 받아냈다. 그러나 나머지 700만원과 10월 지급분 1200만원은 결국 받지 못했다. 전 총학생회장 김형래(산림환경 08)씨에 따르면 대행사 측이 ‘회사 사정이 어려워 나머지 금액을 도저히 줄 수 없다’고 전화로 통보했다고 한다. 이에 총학 측은 다시 전화를 해 나머지 금액을 달라고 독촉했지만 대행사 측은 ‘2년간 서울대 총학생회와 일을 해 왔는데 이런 모멸감 드는 말을 들어야겠냐’며 잠적했다.
56대 총학생회 선거가 무산되며 들어선 연석회의는 HS기획의 잠적으로 광고대행사 으뜸기획과 새로 계약을 맺었다. 으뜸기획은 카이스트 총학생회 및 동아리연합회와 계약하던 업체로 그동안 정상적으로 광고대금을 지급해 왔다. 연석회의는 으뜸기획으로부터 1년간 4건의 유인물에 대해 건당 1500만원, 총 6000만원을 받기로 했고, 새내기배움터 자료집에 광고를 실었다.
그러나 연석회의는 으뜸기획으로부터 광고비를 받지 못했다. 으뜸기획은 새터 광고비 1500만원에 대해 “일단 반액을 주고 나머지 반액은 봄 축제 때 합산해서 주겠다”며 지급을 미뤄왔다. 으뜸기획은 카이스트 총학생회 및 동아리연합회에도 1600만원의 대금을 지급하지 않은 상태였다. 지급이 계속 미뤄지자 당시 연석회의 집행국장이었던 김형래 씨는 카이스트 총학생회 관계자와 함께 으뜸기획 사무실을 급습했다. 여차하면 경찰도 대동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사무실은 텅 비어있었다. 애초에 으뜸기획은 계약을 제대로 이행할 생각이 없었고 연석회의가 수상한 징후를 감지했을 때는 이미 늦은 상태였다.
사건의 경과
55대 총학생회는 HS기획의 미지급분 1900만원을 받아내기 위해 법무법인 혜안에 사건을 의뢰했다. 총학생회 예산 중 150만원을 착수금으로 지불했고, HS기획으로부터 대행비를 받을 시 성공보수 10%를 추가로 지불하기로 했다. 법무법인 혜안 권유림 실장은 “HS기획이 대행비를 지급하지 않고 잠적한 행위는 민사상 채무불이행 책임에 해당하며, 형사상 사기죄의 죄책에도 해당할 수 있는 사안”이라고 말했다. 혜안은 민사소송에 착수해 ‘지급명령신청’을 통해 잔금 이행을 독촉하는 절차를 진행 중이다.
그러나 대행비를 받을 수 있을 지는 아직 불명확하다. 법원의 지급명령결정은 소장 접수 후 금방 내려졌지만 HS기획의 ‘이사불명’으로 결정문이 송달되지 않았다. 혜안은 HS기획 대표의 주소를 추적해 결정문을 다시 송달할 것을 신청한 상태다. 혜안 측은 “채무자가 작정해서 잠적하고 주소지를 옮겨 버리는 등 채무 면탈의 행태를 보이는 경우 판결이 확정돼도 이를 강제집행해서 받아내기 곤란할 수 있다”며 “송달이 정상적으로 이뤄지지 않고 있는 현재로서는 채무 변제가 이뤄질 가능성은 60% 정도”라고 점쳤다.
으뜸기획이 지불해야 할 1500만원에 대해서는 별다른 조치가 이뤄지지 않았다. 김예나 부총학생회장은 “대행비를 받을 수 있을지 불확실하기 때문에 수임료로 학생들을 위해 써야 할 총학생회 예산을 낭비하는 격이 될 수 있다”며 법무법인 등에 사건을 접수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앞서 카이스트 총학생회는 <카이스트신문> 3월 11일자 보도에서 으뜸기획의 계약불이행에 대해 법원에 지급 명령을 신청하는 등 법적 대응을 준비 중이라 밝혔다. 카이스트 총학생회는 이와 관련한 인터뷰를 거부했다.
총학생회 및 연석회의의 미숙함 드러나
두 건의 계약불이행 사건 모두 광고대행사가 일방적으로 계약을 이행하지 않고 잠적한 사건이지만 계약 당시 총학생회 및 연석회의 관계자들의 대응 미숙도 일부 원인이 됐다. 김형래 씨는 HS기획이 잠적했을 당시 “사업자등록번호나 회사 주소, 회사 대표의 주민등록번호 등 기본적인 사항도 모르고 있었다”며 당시 학생회 관계자들이 미숙했다고 털어놨다. 지난 두 총학생회와 문제없이 계약을 해 오던 업체였던 만큼 의심 없이 관행대로 계약을 맺다가 피해를 입은 것이다. HS기획은 사업자 등록도 하지 않은 업체였으며 계약서에 찍힌 도장은 법인 도장이 아니라 회사 도장처럼 만든 가짜 도장이었다는 것이 뒤늦게 드러났다.
연석회의는 이를 교훈삼아 으뜸기획과의 계약에는 신중을 기하려 했으나 공교롭게도 또다시 같은 일을 당했다. 후에 으뜸기획의 실질적 대표로 밝혀진 김 모 실장에게 주민등록번호 등 인적사항을 요구했으나 김 모 실장은 이를 차일피일 미뤘고 결국 잠적하고 말았다. 김형래 씨는 “카이스트와 오랫동안 계약을 해 온 업체라기에 연석회의에 으뜸기획을 소개했다”며 “이에 책임을 느낀다” 라고 말했다.
법무법인 혜안의 권유림 실장은 “최근 2,3년 간 각종 에이전시, 대행사를 사칭하는 업체나 개인에게 사기를 당해 피해를 입은 사례가 급증하고 있는 상황이며, 계약 체결 당시 아무런 안전책을 마련해 두지 않아 구제받지 못하고 있는 사례가 많다”고 말했다. 권 실장은 “계약 체결 당시 상대방이 법인인지 개인사업자인지 개인인지 명확히 확인하고, 대표자는 맞는지, 개인사업자라면 사업자등록증 사본과 사업장 주소를 명확히 확인하여 추후 ‘전화를 받지 않으면 채무자가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는’ 상황이 발생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며 “채무를 불이행할 경우 이를 담보할 수 있는 안전장치를 강구해 둬야 한다”고 계약 당시 유의해야 할 점들을 설명했다.
광고대행사와의 계약, 재고할 필요가 있어
계약 이행 여부와는 별도로 총학생회와 광고대행사와의 계약 자체도 재고해 볼 필요가 있다. HS기획과 으뜸기획의 사례에서 드러났듯 학생사회와 거래하는 광고대행사 중 상당수가 영세한 업체이며 영업방식도 음성적인 면이 많다. 익명을 요구한 광고대행업계 종사자 A 씨는 “대학과의 광고대행업 자체가 사실 명의를 도용하는 일”이라고 말했다. A 씨는 “기업으로부터 광고를 따올 때 각 기업 홍보부서 관계자 중 중 계약한 학교 동문 출신에게 해당 학교 학생인 것처럼 연락해 계약을 맺곤 한다”며 “기업에서 홍보효과보다는 해당 학교나 후배들에게 지원을 하는 의미로 광고를 주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A 씨는 또 “중간에 대행사가 마진을 떼 간다는 것을 알면 광고를 주지 않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광고계약과 별도로 악의적으로 명의를 도용한 사례도 있었다. 지난 2011년에는 광고대행사에서 총학생회 집행부를 사칭해 서울대에 존재하지 않는 과와 학생 이름으로 한국타이어 임원에게 돈을 보내달라는 메일을 보낸 적이 있었다. 총학생회는 이를 한국타이어를 통해 뒤늦게 알게 됐다.
이처럼 총학생회-광고대행사-기업 간의 광고계약에서 광고대행사는 공식적으로는 존재하지 않는다. 표면적으로는 총학생회와 기업 사이의 계약일 뿐이다. 그러나 총학생회에서는 기업에서 처음에 광고비로 얼마를 제공하기로 했는지도 모르는 채 광고대행사와 당초 계약한 금액만을 받는 구조다. 총학생회에서도 이 같은 광고계약 방식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광고를 위해 매번 기업과 접촉하는 것은 개인에게 맡기기에는 벅찬 일이고, 일정 금액을 꾸준히 지급받는 광고대행사와의 계약이 금액 수급의 안정성이 보장돼 광고대행사와 계약을 해 온 것이다.
이에 대해 이경환 총학생회장은 “지난 55대 총학생회와 연석회의가 광고대행사와의 문제가 있었기 때문에, 앞으로 광고대행사를 통하지 않고 자체적인 방법으로 직접 광고를 따 오겠다”고 밝혔다. 구체적인 방안에 대해 김예나 부총학생회장은 “총학생회 소식지를 광고대행사에 의존하지 않고 직접 발행해 광고를 싣는 방식으로 자체적으로 필요한 광고수입을 얻을 수 있을지 시험해 보겠다”고 말했다.

광고대행사를 통하지 않고 기업으로부터 직접 광고를 받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총학생회 예산의 재정자립도도 늘어야
이번 계약불이행 사건을 통해 광고비 등 외부로부터 얻는 수입에 의존하는 총학의 예산 구조도 돌아볼 필요가 있다. 매년 총학생회 수입 중 학생회비로 인한 수입은 학기당 7000만원씩 총 1억 4000만원, 광고대행사를 통해 받는 금액은 6~8000만원 정도다. 총학생회 운영과 축제 개최에 드는 비용 중 광고대행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큰 실정이다. 총학생회 관계자들은 “축제 개최를 위해서는 광고대행비가 꼭 필요하다”고 입을 모아 이야기했다.

▲2011년 하반기 전학대회에 제출된 총학생회 하반기 예산안.’자료집 스폰’ 항목이 광고대행사로부터 받는 대행비에 해당한다.
두 차례의 연이은 계약 불이행 사건으로 대행비 3400만원을 받지 못했으나 불행 중 다행으로 작년에는 큰 어려움을 피할 수 있었다. 국정원 선거개입 사태로 인한 시국선언, 시흥캠퍼스 투쟁 등으로 다른 큰 사업들이 진행되지 않았고, 올해에는 세월호 사고로 봄 축제를 취소하면서 총학생회 예산을 아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향후 이 같은 사건이 다시 발생하거나 기업으로부터 광고를 받지 못하게 될 경우 총학생회 운영에 차질이 생길 수 있다.
학생들의 자치기구인 총학생회가 기업의 지원에 의존해서는 안 된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이경환 총학생회장은 “총학생회는 기본적으로 총학생회비로 운영돼야 하며 광고대행비로부터 도움을 받을 수는 있겠지만 이는 부가적인 것이 돼야 한다”며 “광고대행비를 마땅히 받아야 하는 돈으로 생각해서도 안 되고, 예산안을 짤 때도 학생회비를 기준으로 짜야 한다”고 말했다.
매년 총학생회비 납부율은 45% 내외로, 학기당 3000만원 가량의 광고대행비를 대체하려면 납부율이 70% 수준이 돼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학생회비 납부율 제고 방안에 대해 이경환 총학생회장은 “총학생회 회칙에 회원의 의무로 학생회비 납부가 있다. 학생회비 납부 확인서를 출력해 납부 확인자들에 한해 총학생회가 진행하는 행사에서 혜택을 주는 방식으로 세칙들을 개정해 나갈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매 학기 학생회비 납부율은 50% 미만으로, 작년 1학기에는 7800만원, 2학기에는 6800만원 가량이 걷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