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3400만원을 찾아서
슬픔과 충격의 공명 속에 사라진 피해자의 목소리
데 자 뷔

슬픔과 충격의 공명 속에 사라진 피해자의 목소리

©문학동네 2003년 2월 18일, 대구 지하철 1079호 열차에서 화재가 발생했다.한 사람의 방화로 시작된 불길은 192명의 무고한 생명을 앗아갔다.대구 지하철 참사는 국내에서 역대 네 번째로 많은 희생자를 남긴 대참사로 기록돼있다.참사가 일어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당시 지하철 안에 있던 사람들의 문자메시지가 공개됐다.지하철 안 피해자들은 부모와 자식 혹은 연인과 문자를 나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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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동네

  2003년 2월 18일, 대구 지하철 1079호 열차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한 사람의 방화로 시작된 불길은 192명의 무고한 생명을 앗아갔다. 대구 지하철 참사는 국내에서 역대 네 번째로 많은 희생자를 남긴 대참사로 기록돼있다.

  참사가 일어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당시 지하철 안에 있던 사람들의 문자메시지가 공개됐다. 지하철 안 피해자들은 부모와 자식 혹은 연인과 문자를 나눴다. 어떤 이는 미안하다고 했고, 어떤 이는 사랑한다고 했다. 어떤 이는 잘 살라는 당부를 했다. 문자메시지가 공개되면서 참사의 피해자에 대한 사람들의 안타까움과 슬픔은 더욱 커졌다.

  피해자의 문자메시지를 보고 슬퍼하는 것을 나쁘다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 모습을 돌이켜보니 문득 궁금해졌다. 우린 문자메시지를 나눈 부모, 아들, 딸, 연인의 말에 귀 기울인 적이 있는가. 참사가 있은 지 11년이 지난 지금까지 우린 피해자의 이야기를 얼마나 들을 수 있었나. 

  1995년 3월 20일, 일본 지하철에서 또 다른 참사가 일어났다. 생화학무기로 사용되던 사린가스가 다섯 개 지하철에 살포됐다. 일본의 종교집단 옴진리교의 주도 아래 살포된 사린은 사망자 12명을 포함해 5천 여 명의 사상자를 낳았다. 이날의 참사는 많은 일본인들에게 큰 충격과 슬픔을 안겨준 사건으로 남아있다.

  대참사는 그 충격과 슬픔의 깊이만큼 커다란 반향과 관심을 일으킨다. 그만큼 많은 말들도 나온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언더그라운드>는 그 많은 말들 중 하나다. 하지만 이 이야기는 조금 특별하다. 

  이 책은 피해자의 말을 피해자의 입을 통해 전한다. 일본 문학의 거장 무라카미 하루키는 사린 테러사건 9개월 후부터 약 1년간 피해자들과 인터뷰를 했다. <언더그라운드>는 이 인터뷰 내용을 다루고 있다. 저자는 유려한 필력으로 피해자의 이야기를 꾸미지 않는다. 하루키의 담담한 서술은 피해자가 우리에게 당시의 경험을 말해주는 듯한 인상을 준다. 참사 피해자들의 가공되지 않은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 이 책은 가치가 있다. 

대형 참사와 도식화된 피해자, 우리는 피해자의 ‘증언’을 들은 적이 없다

  대형 참사가 일어나면 그곳에 이목이 집중되고 보도가 쏟아져 나온다. 피해자는 그런 말들을 생산하는 한 축이다. 미디어는 그들을 둘러싼 수많은 보도를 양산한다. 그러나 피해자들의 이야기는 대개 비슷하게 수렴된다. ‘성실해서 안타깝고 공부를 잘해서 안타깝고 헌신적이어서 안타깝고 어려서 안타깝다. 슬퍼하자.’  

  무고한 죽음을 슬퍼하고 안타까워하는 건 당연하다. 그러나 피해자에 대한 언론의 보도들은 왠지 보기에 불편하다. 마치 ‘안타까운 희생자’라는 정해진 도식에 피해자의 사연이 이용되는 모습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언론을 비롯한 미디어의 보도는 일종의 극화된 형태로 나타난다. 피해자의 이야기는 드라마가 된다. 피해자에 대한 언론의 많은 보도, 특히 사건 직후 봇물 터지듯 쏟아지는 보도를 보면 가끔 이들이 정보 전달이나 의제 설정을 목표로 보도를 하는 것인지 의심이 든다. 그것은 오히려 피해자의 사연을 극화함으로써 우리로 하여금 더 큰 슬픔과 안타까움을 느끼게 하는 효과를 주려는 듯하다. 우리가 듣는 피해자의 이야기 대부분은 피해자들의 말 그 자체가 아닌, 다른 이가 가공한 사연이다. 

  미디어에서 사라지는 것은 피해자의 입에서 전달되는 피해자들의 이야기다. 언론 보도 속 피해자의 사연에서 피해자는 사라지고 도식화된 희생자가 자리 잡는다. 우린 그들을 더 ‘안타까운 대상’ 그 이상으로는 바라보지 못한다. 그와 동시에 그 날의 일들도 사라진다. 11년이 지난 대구지하철참사도 마찬가지다. 오래전부터 지금까지 참사에서 피해자들의 사연은 극화돼 안타까운 희생자의 사연으로만 들려올 뿐이다. 극화된 이야기의 포화 속에서 그들의 증언을 듣기란 매우 어렵다. 

  <언더그라운드>의 가치는 ‘증언’을 들려주는 데 있다. 이 책은 저자가 1년간 인터뷰한 피해자의 말들을 그대로 전한다. 저자 자신도 책에서 사실관계가 다른 것을 제외하고는 가능한 한 피해자의 말을 있는 그대로 실으려 했다고 말한다. 실제로 저자는 인터뷰이의 기본적인 이력만을 설명한다. 그 이력마저도 피해자의 입으로 다시 전달된다. 말 그대로 그들은 그 사건에 대해 증언을 하는 것이다.

  이런 피해자의 말을 들음으로써 우린 도식화된 피해자가 아닌, 사린 사건을 경험한 한 명의 사람과 대면할 수 있다. 이 책에서 피해자는 고유의 과거와 경험을 가진 개인이다. 그들은 사건 당시의 경험뿐만 아니라 그들이 어디에 살고 어떤 일을 하며 어떻게 자라왔는지를 말하고 그들의 삶에 대해 말한다. 그들은 모두 각기 다른 경험을 가진 개인이다. 우린 그들의 삶의 이야기를 들으며 개개인의 피해자와 직접 만난다.

  우리는 증언으로부터 사건 당시의 경험을 얻는다. 어떤 이는 사람이 쓰러져도 아무렇지 않아 하는 주변인들에 놀라기도 했다. 자신도 중독되어가는 상황에서도 다른 피해자들을 부축해 데리고 나오는 사람도 있었다. 가해자에 대한 분노의 정도도, 사건 당시 보았던 풍경과 겪었던 증상도, 사건 이후의 모습도 다르다. 

  그러나 사건 당시 일본 미디어에서도 전형적인 보도가 이어졌다고 한다. 아비규환의 현장만을 보여주며, 피해자는 안타까운 희생자로 집단화하는 일종의 도식화된 참사의 모습으로 말이다. 그로 인해 많은 일본인에게 남은 당시 참사의 정경은 사린에 중독된 사람이 기절한 채 플랫폼에서 쓰러져 있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언더그라운드>에서 피해자가 겪은 고통과 경험은 단순히 사건 현장에 푹 쓰러져 있던 피해자의 모습만으로 설명될 수 없다. 오직 그들의 증언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이처럼 <언더그라운드>의 저자는 무라카미 하루키라기보다는 사건의 피해자들이다. 이 책은 사건 현장에 ‘쓰러져있던 사람’으로 인식됐던 사건 피해자의 경험을 그대로 들려준다. 이렇다 할 가공 없이 담담하게 쓰인 증언들은 오히려 우리의 가슴을 더 크게 울린다. 극화되지 않은 증언이 만들어내는 역설이다.

관음과 관심, 

한 끗 차이의 경계를 넘어

  피해자에 대한 언론의 관심은 그것이 진정한 관심에서 비롯된 것인지를 의심하게 한다. 커다란 재난을 겪고 무력해진 피해자들에게 카메라를 들이대고 펜을 꺼내는 행동이 진정 피해자를 위한 일인지 의문이 들 때가 많다. 피해자 혹은 가족의 동의를 구하지도 않은 채 그들의 사연을 대중에게 전달한다. 그런 행동들은 피해자에 대한 일종의 관음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이 책을 쓰면서 보인 태도에서 우리는 피해자에 대한 진정한 관심이 무엇인지를 느낄 수 있다. 저자는 상처가 다소 아물었지만 아직 사건에 대한 기억이 잊히지는 않은 사건 발생 9개월 후를 인터뷰 시작시점으로 잡았다. 이후 하루키는 1년간 피해자의 동의를 구해가며 그들을 직접 만났다. 저자는 자신의 견해를 밝히는 얼마 안 되는 공간을 ‘자신이 피해자에게 상처를 주는 것을 우려한다’는 말로 채웠다. 저자는 피해자의 말을 왜곡하지 않고 그대로 전달하려 노력했다고 밝히고 있다.

  그렇기에 <언더그라운드>는 피해자에 대한 무라카미 하루키의 생각을 담은 책이 아니라, 피해자가 사린사건에 대해 직접 이야기 하는 책이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자신의 이름을 저자로 내건 책을 피해자들이 말하는 공간으로 내어준다. 그들을 직접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 그리고 그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직접 하도록 하는 것. 하루키의 <언더그라운드>는 이렇게 ‘관음’을 넘어 ‘진정한 관심’의 표현이 된다. 

지나치는 사회와 

반성하는 사회

  이 책은 피해자에 더해 사건 당시 치료법을 각 병원에 전달한 의사 등 사건관계자들의 말도 다룬다. 피해자와 관계자의 증언에서 재난에 직면한 당시의 일본사회와 세월호 사고를 맞닥뜨린 우리사회의 모습이 크게 다르지 않음을 엿볼 수 있다. 

  사린은 아침 8시경에 살포됐다. 그러나 책 속의 증언에 따르면 경찰은 한 시간이 지난 후에야 본격적으로 출동했다. 지하철 사린 사건이 발생하기 1년 전인 94년 6월 27일, 마쓰모토 시에서 사린이 살포됐다. 수사 결과 이 사건 역시 옴진리교가 자행한 것으로 밝혀졌다. 하지만 마쓰모토에서의 사건 이후 당국은 마땅한 대응책을 마련하지 못했고, 이는 결국 지하철 사린 사건으로 이어졌다. 피해자들은 이러한 경찰의 무능함에 불만을 표했다. 지하철 사린 사건 당시 대처법을 각 병원에 전한 신슈 대학 의학부장 야나기사와 노부오 씨는 ‘심각한 재앙이 일어났을 때 조직적으로 신속하고 효율성 있게 대응하는 시스템이 일본에는 없다’고 지적한다. 지하철 사린 사건으로 남편을 잃은 여성은 ‘방송이 진실을 전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언론은 남편의 장례식과 이 여성의 출산을 따라가 보도했다고 한다. 이를 보며 사람들은 ‘저 사람이 남편을 잃었다’며 수군댔다고 한다.

  두 나라 모두 재난 앞에서 정부, 언론, 사회의 무기력하고 비뚤어진 단면이 그대로 드러났다. 하지만 두 사회의 모습에 같은 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일본 사회에서는 사건 이후에도 <언더그라운드>와 같은 증언이 나왔다. <언더그라운드>는 피해자의 증언이다. 당시의 상황, 경험에 대한 묘사를 넘어 피해자의 입을 통해 당시 상황에 대한 불만이 드러난다. 사건 관계자는 한목소리로 당시의 문제점을 지적한다.

  물론 대구 지하철 참사가 일어난 후에도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참사 이후 전국의 지하철은 의자 시트를 내연성 시트로 교체했다. 지하철 화재 대비 대피훈련을 정기적으로 하고 있다. 도곡역 방화 사건에 대처한 승객과 직원들의 모습은 긍정적 변화의 결과일 수 있다. 그러나 그 변화에서 피해자는 없었다. 가장 위로받아야 할 사람, 참사의 중심에 있던 사람들은 이후의 담론에서 소외됐다. 참사의 한 피해자가 지금까지 PTSD(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치료를 받지 못해 힘든 삶을 보낸다는 언론 보도는 반향을 얻지 못했다. 

  더 나아가 생각해보면 이 사회는 피해자의 이야기를 들을 마음이 있는 것인지 의문이 든다. 바람직한 사회는 애도와 위로의 시기가 지나면 참사와 그 이면을 바라보고 개선하는 사회다. 피해자는 이 과정의 중심에 있는 사람이다. 우리는 피해자를 도식화된 ‘안타까운 희생자’가 아닌 그 사건을 경험한 개인으로 생각하고 그들의 말을 듣고 있는가. <언더그라운드>는 하나의 사회를 부럽게 느껴지게 하고, 또 하나의 사회를 부끄럽게 느끼게 한다. 

About 일본지하철 사린가스 사건

  일본 지하철 사린가스 사건는 <언더그라운드>의 배경이 되는 사건이다. 1995년 3월 20일 월요일 8시경, 일본의 종교단체 옴진리교가 다섯 개의 지하철 차내에 사린이라는 신경가스를 살포했다. 12명의 사망자와 5,510명의 부상자를 남긴 이 사건의 가해자는 각 열차에 타 사린가스 봉지를 터트려 사린을 살포했다. 이후 지하철에서 빠져나와 준비된 차량으로 도주했다. 살포된 사린은 빠르게 퍼져나가 피해를 입혔다. 

사린가스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이 전쟁용으로 개발한 유기인 계열의 가스. 사린은 중추신경을 손상시켜 시야협착, 마비, 구토 등의 증상을 유발한다. 우리가 흔히 아는 농약이 유기인제로 농약중독이 이와 증상이 비슷하다. 농약과 달리 사린은 빠르게 기화돼 공기 중으로 퍼져나가며, 적은 양으로도 치명적이다. 

옴진리교

  아사하라 쇼코(본명: 마츠모토 치즈오)가 세운 일본의 사이비 종교 단체. 일본정부를 전복시키고 새로운 국가를 세우려는 목적을 갖고 있었다. 무장계획을 비롯해 테러행위를 자행했다. 이 사건 이후 강제해산 됐지만 그 세력이 남아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월요일 8시경, 다섯 개의 지하철

  사린은 에이단지하철(현 도쿄메트로) 마루노우치 선, 히비야 선 두 대의 열차와 지요다 선 한 대의 열차에 살포됐다. 이 지하철 노선들은 관공서 밀집지역을 통과한다. 마침 3월 20일은 월요일로 출근시간대에 많은 사람이 몰려 큰 피해를 불러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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