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는 올해 초 ‘민주시민교육에 관한 조례’를 공포했다. 이에 따라 서울시는 서울시민이 민주시민교육을 충분히 받을 수 있게 시책을 수립할 의무를 갖게 됐다. 경기도교육청도 작년 말 시민교육 교과서 ‘더불어 사는 민주시민’을 개발했다. 올해 초 이 교과서를 신청한 도내 고등학교의 비율은 93.9%에 달한다. 이런 세태는 6·4 지방선거 교육감 후보들의 공약에도 반영됐다. 진보 교육감 후보들이 발표한 3대 공동 정책 중 하나가 ‘친일독재교과서 반대와 민주시민교육 활성화’였다. 이처럼 우리나라는 이제 막 시민교육의 첫 걸음을 떼려는 상황이다.

시민교육 자체의 역사는 결코 짧지 않다. 경기도에서 개발한 교과서 ‘더불어 사는 민주시민’에 영감을 준 프랑스의 시민교육은 1882년 처음 일선 학교에 도입됐다. 프랑스 시민교육은 시민성을 ‘교육’한다는 것이 권위적이라는 이유로 1960년대 중반부터 약 이십 년간 교육 과정에서 퇴출 당한 적도 있었으나, 1985년 다시 도입돼 지금에 이르고 있다. 시민교육의 모범 사례로 자주 언급되는 독일 ‘정치 교육’의 경우도 2차 세계 대전 이후 시행되기 시작해 그 역사가 반세기가 넘는다.
국가마다 이상적으로 여기고 기대하는 시민의 모습이 다르므로, ‘시민교육’의 모습도 국가마다 특징적인 모습을 보인다. 같은 국가라 하더라도 시대에 따라 강조하는 시민의 덕목이 변화해 이에 따라 교육 방향이 수정되는 일도 있다. 하지만 어느 국가든 시민성의 교육에 있어 학습자 간의 토론과 참여가 가장 중요시된다. 성숙한 시민을 양성하는 데 있어 비판적 사고가 최상의 기준이라는 믿음이 공유되고 있기 때문이다. 프랑스 교육부는 시민을 “공동체에서 일어나는 일에 참여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자”라고 정의하면서, “이는 이성적인 의견을 형성하고 표현의 자세를 가지며, 대중의 토론을 수용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고 밝히고 있다. 독일은 시민교육을 목적으로 한 교과로 ‘정치교육Politische Bildung’을 두고 있다. 이 정치교육 과목을 관할하는 기관인 독일 연방정치교육원의 설립규정에서도 그 목적을 “정치적 사안에 대한 이해를 증진시키고 국민의 민주시민의식을 고양하여 성숙하고 비판적이며 적극적으로 정치일상에 참여하도록 유도한다”고 밝히고 있다.

ⓒ김창환, <독일의 정치교육제도와 운영실태>(2001)
공통적으로 강조되는 ‘토론’의 중요성
시민교육 선진국에서 비판적 사고의 양성은 학생-학생, 혹은 선생-학생 간의 토론으로 성취된다. 프랑스의 ‘시민교육Education civique’ 교과목에서도 마찬가지다. 교수자는 주로 토론 주제나 이와 관련한 자료를 제시하는 역할에 그친다. 학습자는 토론의 방식에 대한 이해부터 시작해, 정보 수집, 사실의 재조직, 의견 표명, 논쟁을 통한 사고의 다양성 수용, 다양한 사고에 대한 가치 판단 등을 경험한다. 프랑스인 발랑탕 두브와 씨는 “시민교육 수업은 선생님이 선거, 감옥, 벌금 등의 다양한 주제를 제시한 후 이에 대해 학생들이 토론하는 식으로 진행됐다”고 말했다. 그는 “예를 들어 어떤 수업은 벌금의 사용처에 관한 것이었는데, 벌금을 경찰에서 사용하는 것이 옳은 지 옳지 않은 지를 토론했다”고 설명했다.
프랑스의 시민교육에서는 학생들이 인권, 자유, 정의, 평화, 환경, 노동, 언론, 정치 참여, 국제 관계 등 폭 넓은 주제를 학습하게끔 한다. 주제는 시대·지역·교수자에 따라 변동할 수 있다. 하지만 모든 주제는 주어진 상황에서 학습자가 시민으로서 어떤 행동을 취하는 것이 옳은 지로 수렴한다. 프랑스 고등학교 1학년 교과 ‘시민-법률-사회교육Education civique juridique & sociale’에서는 노동조합, 단체협상, 파업권 등 기본적 개념에 대해 우선 설명한 후, 이어 토론 주제로서 ‘공공 분야에서 파업권의 제약이 정당한가’를 제시한다. 이와 함께 관련된 법적 자료, 사진 자료, 그리고 참고할 만한 다양한 관점들이 제공된다. 아래는 함께 수록된 질문들 중 일부다.
●공공분야에서의 파업권 제한이 가지는 위험성은 무엇인가?
●공공분야에서의 파업권 실행이 어떤 점에서 위험성이 적은가?
●왜 공공분야에서 파업권의 실행이 규제되는가?
●공공 서비스 요원들은 파업권 실행에 있어 충분한 권리를 갖고 있지 않은 시민이라고 볼 수 있는가? 이 분야에서의 제한을 어디까지 인정할 수 있는가?
이외의 토론 주제로는 ‘평등을 이루기 위해 법이 선거에서 남녀의 동등(동수)을 강요할 수 있는가?’, ‘국적의 취득을 이민자 통합의 최종 단계로 보아야 하는가?’, ‘학교는 사회적 통합의 역할을 하는가?’ 등이 있다.
시대에 따라 변화해온 시민교육의 내용
시민교육의 주제와 방향은 곧 그 국가의 시민이 어떤 시민이 되기를 바라는 지에 대한 가치 판단을 내포하고 있다. 이런 가치판단은 시대의 흐름에 따라 변하는 경향이 있다. 당시 국가의 상황에서 가장 큰 과제로 여겨지는 것을 시민교육에 반영하기 때문이다. 앞의 토론 주제도 현재 프랑스 사회가 중시하는 가치를 반영하고 있다. 실제로 각 국가에서 시대에 따라 시민교육의 주 목적이 변화한 전례가 적지 않다.
프랑스의 경우, 1789년 프랑스 혁명부터 제3공화국(1874-1940)에 이르는 시기에는 ‘시민교육’이 국민을 교화하고, 애국심을 고취시키며, 국민을 단합시키기 위한 장치로 기능했다. 2차 대전 이후부터 1985년까지의 시기에는 시민교육의 정당성에 대한 근본적 의문이 제기되고, 시민교육을 국가적 이데올로기 교육으로 의심하는 시각이 늘면서 시민교육이 행해지지 않았다. 하지만 이후 학교 폭력, 이민과 인종 차별, 세계화 등의 문제가 불거지면서 1985년부터 시민교육이 다시 교과 과정 내에 편입됐고, 이후 계속적으로 시민교육이 이뤄지고 있다. 이와 같은 역사적 맥락 때문에 프랑스 시민교육 내에서는 최근 문화적 다양성, 학교 문제에 대한 토론 비중이 늘어났다.
독일의 시민교육도 사회적·역사적 맥락에 따라 그 성격이 변화했다. 독일의 경우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나치 시대를 스스로 반성하는 맥락에서 시민교육의 필요성이 대두됐다. 나치시대의 재발을 방지하기 위해 국가적·조직적 불합리성을 간파할 수 있는 성숙한 시민을 길러내자는 의도였다. 전쟁 직후 점령국인 미국에 의해 미국식 민주주의가 들어왔으나, 이에 한계를 느낀 독일 시민들의 개혁 요구가 커졌다. 이에 1976년, 정치학자, 교육 관계자 등의 합의를 거쳐 시민교육(정치교육)의 공동 기반이 마련됐다. 이를 ‘보이텔스바흐 합의Beutelsbacher Konsens’라 한다. 이 합의의 내용은 ▲교화와 주입식 교육을 금지한다 ▲현재 논쟁적인 내용은 수업에서도 논쟁적으로 구성한다 ▲현재 정치 상황을 분석할 때 학생들이 자신의 이해관계를 고려할 수 있도록 배려해야 한다 등이다. 보이텔스바흐 합의는 현재까지도 독일 시민교육의 근간을 이루고 있다. 더불어 독일의 시민교육은 분단 및 통일 상황과 긴밀하게 연결돼 진행됐다. 특히 독일 통일 후 시민교육은 분단으로 인해 벌어진 의식 격차를 좁히는 데로 집중됐다. 서독 지역 주민들에 대해서는 동독에 대한 물질적 희생을 이해시키는 데에, 동독 주민들에게는 본인이 가지고 있던 전체주의적 이데올로기를 객관적이고 비판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하는 데에 주안점을 뒀다.

시민교육의 ‘정치성’, 어떻게 형성해야 할까
프랑스와 독일의 사례는 시민 교육의 방향이 상당히 유동적임을 보여준다. 시민교육은 가치판단과 시대성을 동반할 수밖에 없어 시행 과정에서 혼란을 겪을 여지가 많다. 실제로 미국, 독일, 프랑스 등 대부분의 시민교육을 행하는 국가들이 시행 초기 혼란을 겪었다. ‘시민교육이 국가의 주류 가치관을 세습하는 것 아닌가?’, ‘정치성을 띠는 문제를 어떻게 교육해야 하는가?’ 등이 주된 문제였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시행 초기 비슷한 문제를 겪을 가능성이 크다. 독일에서 교육 과정 일부를 밟은 적이 있는 김현경 씨는 “독일의 정치교육이 한국에서 시행될 경우 시민의 정치참여도를 높일 수 있는 장점이 있지만, ‘정치교육의 정치성’을 다루는 문제가 쉽지 않을 것이다”라며 “어젠다와 논리보다는 지역 감정과 종북 논쟁 등이 아직은 지배적인 한국에서는 정부 차원에서 정치교육을 체계적으로 추진하기 쉽지 않을 것이다”라는 의견을 밝혔다.
시행 초기 어떤 ‘정치성’을 형성할 것인지 방향을 잡지 못한 시민교육은 ‘애국심 교육’으로 귀결되는 경우도 많다. 건국 초 미국이나 혁명 이후 혼란이 수습되지 않았던 프랑스의 경우 초기 시민교육의 주목적 중 하나는 ‘애국심 고취를 통한 단합’이었다. 우리나라도 비슷한 길을 걷고 있다. 지난 2010년 교육과학기술부(현 교육부)는 학생들에게 애국심과 준법정신을 심어주겠다는 취지로 ‘민주시민교육 활성화 방안’을 내놓았다. 민주시민교육을 위해 범정부협의체를 만들어 각 부처가 직접 교육프로그램을 만들고 이를 교육과정과 연계하겠다는 계획도 포함됐다. 국가보훈처의 경우 ‘나라사랑 실천학교’를 지정하고 태극기, 애국가, 무궁화 등 국가 상징을 친근하게 받아들이도록 하겠다는 교육프로그램을 구상했다. 당시 이 방안에 대해 현직 교사, 교육감, 교수 등이 “학생들에게 비판적이고 다양한 사고 대신 국가주의적이고 순응적인 가치관을 심어줄 수 있다”는 우려를 표명했다.
이에 대해 시민교육에 있어 민·관·정의 협업이 중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독일의 경우 민·관·정을 두루 아우르는 다양한 정치교육 기관이 존재한다. 국가 기관으로는 제도 교육을 실시하는 학교와 연방정치교육원, 그리고 주마다 존재하는 주정치교육원이 있다. 민간 기관으로는 정당 산하의 재단과 교회, 노조, 시민대학 등이 존재한다. 독일의 정치교육에 있어 가장 핵심적인 기관인 연방정치교육원은 학교를 제외한 모든 부문에서 시민교육을 담당하고 있다. 이 기구를 운영하는 3인의 위원은 내무성 장관의 제청으로 대통령에 의해 임명된다. 이 위원들의 주요 결정 및 활동에 대해서는 각 정당을 대표하는 의회의원들이 감독하게 돼있다. 연방정치교육원은 주정치교육원과 협업하며, 시민교육과 관련한 대중매체, 출판간행물, 학술회의 등을 지원해 국가 주도 시민교육 뿐 아니라 민간 주도 시민교육의 지원에도 큰 역할을 하고 있다. 미국의 경우에는 아예 연방이나 주 차원의 정부 주도 시민교육 기관이 존재하지 않는다. 미국의 시민교육에 있어 중심적 역할을 하는 L.A. 소재 시민교육센터도 민간에 의해 설립된 비영리·초당적 기관이다. 미국의 시민교육은 다양한 교육기관들이 개발한 교육프로그램을 각 학교에서 자율적으로 선택해 교육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