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시민교육의 현재와 전망

“제가 정의내릴 수 있는 개념은 아니고, 문헌이나 연구 자료를 찾아보시는 편이 좋을 것 같아요.”, “보수와 진보 진영 사이의 대립이 첨예한 한국사회이기에 시민 개념에 대한 합의가 쉽지 않습니다.”, “‘시민’으로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는 나도 잘 모르겠고”.기자가 시민교육 활동가, 연구자들에게 한국 사회에서의 ‘시민’ 개념에 대해 물었을 때 들은 답변이다.

  “제가 정의내릴 수 있는 개념은 아니고, 문헌이나 연구 자료를 찾아보시는 편이 좋을 것 같아요.”, “보수와 진보 진영 사이의 대립이 첨예한 한국사회이기에 시민 개념에 대한 합의가 쉽지 않습니다.”, “‘시민’으로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는 나도 잘 모르겠고”. 기자가 시민교육 활동가, 연구자들에게 한국 사회에서의 ‘시민’ 개념에 대해 물었을 때 들은 답변이다. 이처럼 ‘시민’이라는 단어는 학문적, 이념적 맥락에 따라 현실에서 각기 다른 의미로 쓰이고 있다. 때문에 시민교육 또한 기관마다 일관되지 않은 형태로 이뤄지고 있다. 한국사회에서 시민교육이 안고 있는 문제점과 앞으로의 전망에 대해 진단해봤다.

‘시민’과 ‘시민교육’ 개념에 대한 합의

  엄밀히 말하면 ‘시민’이란 말은 수입된 개념이다. 서양에서 시민이란 문명을 형성해 온 주류 계급이다. ‘civil’에서 유래한 이들 시민은 도시민, 부르주아 등 자치를 누리던 사람들로 법치와 문화예술을 일궈냈다. 그러나 조선에서는 양반이라는 소수 특권층이 지식-권력을 독점했으며 이들은 근대화 과정에서 도태됐다. 서양과 같은 시민역사가 없는 한국에서 시민이라는 말은 정치적 편의성에 의해 이식됐다. 오랫동안 초등 및 중등 교육에서 ‘시민’ 개념은 ‘착한 시민’, 즉 ‘순종적이고 법과 질서를 준수하는 개인’의 맥락에서 사용됐다. 

  이후 민주화 과정을 겪으며 시민은 새롭게 재탄생한다. 시민 개념은 헌법상 ‘국가의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조문의 ‘국민’과 동일한 의미를 갖게 됐다. 그러나 헌법 조문을 넘어 실질적 인권 차원에서의 시민권은 아직 정착되지 않았다. 또한 한국 사회에서 실질적으로 시민권을 누리는 사람들은 계급적으로 중산층에 한정된다는 지적도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시민을 기르기 위한 ‘시민교육’에 대해서도 정의가 다소 모호한 실정이다. 민주시민교육포럼의 ‘민주시민교육 지원법안’은 ‘시민교육’에 대해 “시민사회의 발전을 위해 그 구성원으로서 가져야 할 권리와 의무에 관한 의식을 함양하고, 각 분야에서 민주적 참여와 건전한 비판을 할 수 있도록 합리적 의사결정과 문제해결 등 민주시민의 자질을 절차적으로 학습하는 제 교육”으로 정의한다. 이처럼 시민교육은 주로 민주주의를 발전·심화시킬 수 있는 시민적 ‘가치’와 ‘덕성’, 그리고 ‘비판적 사고’와 ‘자율적 행동’을 가르치는 것으로 정의된다. 하지만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 윤종희 교수는 “이러한 개념 정의는 시민교육이 아닌 시민교육을 통해 얻을 수 있는 효과를 나열한 것에 불과하다”며 시민교육을 시민의 덕성과 태도 같은 윤리교육의 일환으로 간주하는 것에 대해 비판한다. 

  이에 대해 서울대 교육학과 한숭희 교수는 시민교육을 ‘구태여 표준화하거나 규격화할 일도 아니며 다양한 주체와 방법, 계기와 목적과 형태가 난무하는 것을 걱정스레 볼 일도 아니다’라고 반박한다. 한 교수는 ‘한 시민으로서 건강하고 정의롭게 산다는 것’을 가능하게 하는 모든 것은 시민교육이 될 수 있으며, 오히려 시민교육은 온갖 주체들이 각기 자신의 목소리를 내게 해 주는 공론장이라고 주장한다. ‘학교교육처럼 통일성을 갖는다면 그건 이미 시민교육이 아니’라는 것이다. 

시민교육의 성장

  한국의 시민교육은 7~80년대 농촌운동 및 민중운동에서 출발한다. 이 시기의 시민교육은 민중들에게 노동과 민족 문제 등을 알리고 사회에 대한 비판적 사고를 형성하는 것을 목적으로 시행됐다. 민주화 이후 인권, 여성, 환경, 소비자 등 다양한 영역에서 시민단체들이 탄생하면서 시민교육의 양상도 달라졌다. 교육 대상은 의식화된 소수에서 일반 시민으로 확대됐고, 교육 내용은 사회구조 및 거시적 담론에서 시민 생활과 밀접한 다양한 문제들로 분화됐다.

  현재 참여연대, 흥사단, 경제정의실천연합(경실련), 환경운동연합, 한국여성단체연합, YMCA, 자유총연맹 등의 시민단체가 부설단체를 통해 시민교육 관련 행사 및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그 내용은 단체별로 다르다. 시민교육의 하위 범주로 이뤄지고 있는 통일교육의 경우 진보 단체인 흥사단, 경실련과 보수 단체인 자유총연맹 간에 교육 내용이 상이하다.

  근래에는 대학과 언론사가 시민교육의 주체로 떠올랐다. 대표적으로 2010년 경희대학교는 후마니타스 칼리지를 발족해 시민교육을 교양필수과목으로 지정했다. 언론사에서도 유료 시민강좌를 통해 시민교육에 나서고 있다. 이렇듯 국내에서의 시민교육은 양과 다양성 측면에서 성장해 왔으나 아직 미비한 점이 많은 실정이다.

강의자 중심의 일방적 시민교육은 시민교육의 취지에 어긋나

  많은 시민교육 연구자들은 공교육 및 정부기관 시민교육의 문제로 일방적 교육과정을 언급한다. 윤종희 교수는 “한국의 중등교육은 특정한 도그마를 학습하는 형태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시민교육의 취지에 어긋나고 만다.”고 지적했다. 한숭희 교수는 “우리 사회에서 교과서적인 시민교육이 만연해 왔고 사회적 쟁점에 대한 이슈 파이팅에 그치는 교육이 많았다.”며 시민 일반의 수준이 성장한 만큼 그 눈높이에 맞춘 학습자 중심의 시민교육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경제정의실천연합 통일협회에서 활동 중인 홍명근 간사는 공교육 및 정부 기관에서의 통일교육에 대해 “정부의 통일 담론을 일방적으로 강요해 대중과 괴리돼 있다”며 “토론, 현장방문, 기행과 같은 체험적 교육이 부족하다.”고 비판했다. 이와 관련해 조희연 서울시 교육감 당선인은 <여성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민주시민교육 활성화 방안에 대해 “교실은 교사의 강의를 듣기만 하는 곳이었다. 이런 교육으로는 민주시민을 양성할 수 없다”며 학교 구성원 모두의 자율성 회복과 학생참여형, 협동학습형, 토론형, 탐구형 수업 정착을 구체적 방침으로 밝힌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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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실련통일협회에서 운영하는 민족화아카데미는 DMZ 현장 기행을 하는 등 다양한 체험활동을 시도하고 있다. 

ⓒ경실련

교양, 직업교육에 편중된 평생교육

  지자체 및 시민단체에서 진행하고 있는 평생교육에서 시민참여 교육이 차지하는 비율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도 문제다. 교육부 통계자료 ‘2013 한국 성인의 평생학습실태’에 따르면, 2013년 비형식교육(학원수강, 개인교습, 문화센터 등 공식적인 학위나 졸업장의 취득을 목적으로 하지 않으면서 교육프로그램이나 강좌를 통해 학습 및 훈련에 참여하는 교육)영역별 참여율에서 시민참여 교육은 남자가 0.8%, 여자가 1.0%에 불과했다. 다섯 가지 영역 중 두 번째로 낮은 수치다. 게다가 시민참여 교육 참여자 중 시민단체의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사람의 비율은 9%로 주민 자치센터의 42.2%에 크게 뒤졌다. 

  이에 대해 한숭희 교수는 “역설적이게도, 시민단체들이 가장 시민교육을 외면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러한 편중현상의 원인에 대해 한 교수는 “수강생이 모이지 않는 이유가 가장 크겠지만, 사실상 수강생이 모이지 않는 이유는 국가적 관점에서 시민을 계몽하려고 했거나 절차적 정보를 전달하는 등의 정보전달에 그치는 등, 학습자를 시민으로 대우하지 않는 시민교육이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진단했다.

  그러나 이러한 문화예술 및 인문교양교육의 상당수가 시민교육으로 전환될 수 있다는 전망도 있다. 한숭희 교수는 “바리스타, 동화구연, 미술 교육을 예로 들자면 배우는 데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라며 “기부 행사를 하거나 아이들을 상대로 동화구연 봉사활동을 할 수도 있고, 벽화 그리기를 통해 지역 문제를 같이 생각해 볼 수도 있다. 이 같은 활동들을 통해 공동체에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 지를 고민하는 것이 하나의 시민교육이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참여연대 부설 아카데미 느티나무에서는 참여연대 회원 및 일반 시민을 대상으로 민주적 진행자 워크숍, 복지국가 독서클럽 등 ‘민주주의학교’ 프로그램이 열리고 있다. 이외에도 반야심경 읽기, 드로잉, 우클렐레 교실과 같은 여러 인문교양, 문화예술 교육이 이뤄진다. 아카데미 느티나무 천웅소 간사는 “단순히 기술의 습득이나 지식의 전달이 아니라 강의자와 학습자 쌍방의 소통에 의해 서로 배우고 삶의 문제에 대해 고민할 수 있는 교육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밝혔다.

지역의 시민교육환경 부재

  교육부의 ‘2011·2012 평생교육백서’에 따르면 연령대, 소득집단 간 평생학습 참여 격차는 감소했으나 성별과 지역에 따른 평생학습 참여 격차는 증가했다. 한국교육개발원에서 시행한 “2012년 국가 평생교육통계조사”에 의하면 평생학습 참여율은 2008년 이후로 꾸준히 증가해 왔으나 농어촌(26.6%) 거주자 참여율이 서울 및 광역시 거주자 참여율(37.3%)에 비해 크게 낮은 것으로 드러났다. 평생학습 참여의 장애요인으로 ‘가까운 거리에 교육훈련기관이 없어서’를 꼽은 비율은 농어촌(37.2%), 중소도시(14.8%) 서울 및 광역시(8.5%) 순이었다.

  게다가 평생교육백서의 진단에 따르면 농정당국, 농협 등의 기관을 통해 제공되는 교육 프로그램 대부분이 농업과 직접적으로 관계된 것이다. 지역의 문제와 다문화가족 등 소외받는 사람들이 누구인지를 고민해보게끔 도와주는, 지역공동체 문제와 관련된 교육은 거의 없는 실정이다.

  한숭희 교수는 “(시민교육 과정을 운영하는)기관들이 서울 시내에 집중돼 있어 수도권에서는 관심만 있으면 참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많지만, 경기 이남으로만 가도 교육을 할 만한 전문가들이 없어 참여가 어려워진다”며 시민교육의 수도권 편중 문제를 지적했다. 홍명근 간사는 “지역에서 통일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했을 때 피드백도 많이 이뤄졌고 해당 지역에서 통일 토론 모임이 만들어진다”며 “이처럼 통일교육 수요가 높음에도 불구하고 서울에 비해 통일교육이 부족하다”고 밝혔다. 

시민교육 활성화를 위한 노력

  이처럼 아직 극복해야 할 과제는 많지만 여러 시민단체와 활동가들에 의해 시민교육 정착을 위한 노력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사단법인 시민과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등의 단체에서 시민교육과 관련된 학술행사를 꾸준히 개최하고 있으며 ‘민주청서 21’과 같이 시민교육의 현주소를 진단하고 향후 방향을 모색하기 위한 연구도 이뤄지고 있다. 제도적 차원에서의 시민교육 도입 시도도 계속되고 있다. 지난 4일에 치러진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조희연 서울시 교육감 당선인을 비롯한 진보 진영 후보들은 공동 3대 주요 공약 중 하나로 ‘체험 중심 민주시민교육 강화’를 내걸었다. 조희연 당선인은 지난 5월 선거사무소 개소식 인사말에서 학생들이 알바에 참여하고 이미 노동의 현실에 직면하고 있다. 올바른 노동의 가치와 제도, 법을 알아야 한다”며 ‘노동인권교재’와 ‘세계시민교육’이라는 부교재를 교육청 수준에서 내고 싶다는 뜻을 밝힌 바 있다. 선거 결과 서울, 경기, 강원, 광주, 전북, 전남 6개 지역에서 진보 교육감이 당선됐다. 이들의 시도가 의미 있는 성과로 이어질 수 있을지 앞으로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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