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학교 기초교육원의 달라진 시책으로 2014년 이후 입학생들은 단과대별로 1~2개의 영어 필수 교과목을 포함해 총 7~9학점의 ‘외국어’ 영역 교과목을 수강해야 한다. 2014년 이전 입학생들에게는 영어 교과목만 필수 이수 대상이었다. 기초교육원에서 제2외국어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14학번 이후 신입생들은 졸업을 하려면 영어를 포함한 외국어 과목을 필수로 들어야 한다. 외국어 강의가 졸업 필수 요건이 된 만큼 강의의 체계와 관리가 더욱 중요해졌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서울대저널> 취재 결과 제2외국어 강의의 운영 실태는 주먹구구식에 가까웠다.

▲ 서울대학교에서 개강된 제2외국어 강좌의 개설학과
제2외국어 강의를 담당하는 곳부터 제각각
현재 수강편람에는 여러 종류의 외국어 강의가 등록돼있다. 이 강의들 중 기초교육원에서 ‘외국어 영역 교과목’으로 지정한 강의는 학문의 기초 영역의 교양 외국어 과목들이다. 교양 외국어 과목은 보통 이론수업과 실습수업으로 이루어지는데, 실습수업 시간에는 이론 시간에는 배울 수 없는 회화 교육을 집중적으로 한다. 보통 랩수업이라고 불리는 실습수업은 대부분의 교양 외국어 강의에서 이뤄지고 있다.
이번 1학기 외국어 영역 교과목으로는 초급중국어1, 초급프랑스어1, 초급독일어1, 대학영어1 등에서부터 이태리어1, 스와힐리어1, 산스크리트어1 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강의가 개설됐다. 이 중 영어 교과목이 110여개로 가장 많이 개설됐고, 초급중국어1 강의가 14개로 두 번째, 초급스페인어1 강의가 13개로 세 번째로 많이 개설됐다. 이에 비해, 몽골어1, 힌디어1, 말레이-인도네시아어1 등의 강의는 1개만 개설됐다. 이처럼 다양한 언어의 강의가 개설되다 보니 각 강의를 담당하는 개설학과도 다양하다. 실제로 이번 2014학년 1학기에는 총 9개의 인문대학 학과가 교양 외국어 과목을 개설했다.
문제는 각 강의마다 담당 학과가 달라지면서 강의의 운영과 관리가 체계적으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데 있다. 언어학과 측에서는 “이태리어, 몽골어 등의 외국어 강좌 자체를 언어학과에서 주관”한다며 “랩수업 강사 채용은 교과목 담당 교수가 섭외한다”고 밝혔다. 독어독문학과(독문과) 또한 “초급독일어 강좌나 중급독일어 강좌 운영은 전적으로 독문과에서 담당”한다며 “보통 외국어 강의의 강사는 해당 과에서 자체적으로 채용한다”고 말했다. 이에 반해 노어노문학과(노문과) 측에서는 “전체적인 강의 운영 방식은 기초교육원에서 짜고, 노문과에서는 개설만 하는 방식”이라고 입장을 밝혔다. 불어불문학과(불문과) 측에서도 “인문대 내의 교수들이 모여 회의를 통해 제시한 외국어 교양 수업 가이드라인을 따른다”며 “랩수업 강사 채용 또한 인문대 내 자격 요건을 준수한다”고 밝혔다. 강의의 실제 운영 방식이나 평가 방식, 랩수업 강사 채용 방식 등이 개설 학과마다 다르게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이렇듯 교양 외국어 교과목을 담당하는 곳이 제각각이라면, 그 교과목의 운영 방식 또한 제각각일 수밖에 없다. 특히 주변에서 쉽게 배울 수 없는 교양 외국어 과목 특성 상, 한 수업 하나 안에서 읽기, 말하기, 듣기, 문법 등의 복합적인 언어 능력을 모두 가르치려면 체계적인 학습 시스템이 필요할 것이다. 그 외에도 2014년부터 외국어 과목의 접근성이 확대되는 만큼, 새내기 학생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외국어 과목 내에서의 행정적인 통일성 또한 필요하다.

▲ 14학번부터 서울대학교에서 제시한 교양과목 이수규정 ⓒ 서울대학교 기초교육원
랩수업 원어민 자격도 학과별로 달라
일반적인 교양 외국어 강의에서는 정규 수업을 하는 강사 와 랩수업을 진행하는 강사가 다르다. 정규 수업에서는 이론적인 측면을 강조한다면, 랩수업은 활용적인 측면을 강조하기 때문에 보통 원어민을 강사로 위촉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실제 인문대학에서 교양 외국어 강의를 진행하는 각 학과는 원어민 강사를 채용하는 방식이 통일돼 있지 않다. 원어민을 강사로 채용하는 데에는 자격 요건 등 따져봐야 할 부분이 많지만 취재 결과 체계적인 강사 채용 구조는 존재하지 않았다.
언어학과 관계자는 “랩수업을 담당하는 원어민은 그 교과목을 담당하는 강사의 섭외를 통해 결정된다”며 “희소성이 있는 과목이다 보니 학과에서 원어민 채용을 전적으로 담당하기에 무리가 있다”고 말했다. 또한, “계절학기에는 교과목 강사가 랩수업까지 담당하는 경우도 있다”고 밝혔다. 이때 랩수업을 담당하는 원어민은 수업을 도와주는 ‘조교’의 역할을 하기보다는, 수업을 담당하고 평가에도 관여하기 때문에 ‘강사’의 직위를 갖는다. 언어학과 측은 “보통 석사과정이나 박사과정 중인 자국 원어민을 랩강사로 채용한다”고 밝혔다.
이와는 달리 독문과는 학과에서 직접 원어민을 채용한다. 독문과 측에서는 “랩수업을 담당하는 원어민들이 따로 시간강사의 자격을 갖기 않기 때문에 기초교육원의 심의를 받을 필요가 없다”며 “랩강사들은 학교에 소속된 개념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독문과는 랩강사의 자격 요건으로 ‘최소 원어민이면서 공인된 석사 학위를 가지고 있어야한다’는 자체 규정을 갖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노문과 측에서는 “랩수업을 담당하는 원어민은 현재 시간강사의 자격을 가진다”며 “인문대 기준으로 원어민이면서 석사과정 수료생 이상이어야 랩강사로 채용될 수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독문과와는 달리 강사로 채용되기 위해 언어에 관련된 학문을 전공할 필요는 없었다. 이와 유사하게 불문과 측에서도 “랩수업을 진행하는 원어민들은 모두 시간강사의 자격을 가진다”며 “인문대 전체에서 적용하는 시간강사 자격요건을 준수한다”고 밝혔다.
외국어 과목의 랩수업은 성적에 반영된다는 측면에서는 정규 수업만큼의 중요성을 가진다. 즉 외국어 과목의 랩수업은 단순히 정규수업을 보충하는 개념이 아니라 정규수업만큼의 중요성을 갖는다. 그런 만큼 랩수업을 운영하는 강사의 자격 요건은 중요한 문제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실제 각 학과에서는 랩강사의 채용부터 자격 요건, 직위까지 제각각이었다. 수업 진행과 평가 공정성 등에서 문제가 생길 소지가 있는 부분이다.

▲ 제2외국어 강좌의 랩수업 운영 현황
중급수업부터는 랩수업이 존재하지 않아
형식적으로 통일되지 않았다는 점 외에 ‘중급’ 수업에서는 랩수업이 운영되지 않고 있다는 점 또한 문제다. 실제로 중급 수준의 수업이 진행되고 있는 이태리어2, 힌디어2 등의 강의에서는 랩수업이 진행되고 있는데 비해, 중급중국어, 중급스페인어 등의 강의에서는 랩수업이 존재하지 않았다. 취재 결과 2012년까지는 중급 수업에서도 랩수업이 존재했으나 2013년 1학기부터 랩수업이 사라진 것으로 나타났다.
노문과 측에서는 “중급러시아어는 랩수업이 존재했지만 2013학년부터 학점구조상으로 랩수업이 사라졌다”고 밝혔다. 하지만 그에 이어“교수들의 협의상 심화된 회화 수업이 필요하다고 느껴 따로 랩수업을 진행하고 있다”며 랩수업의 필요성을 피력했다. 실제로 중급러시아어의 학점구조는 3-3-0이지만 매주 2시간의 랩수업이 진행되고 있었으며, 운영하는 교수들에 따라 랩수업이 성적에 반영되는 경우도 많았다. 여기서 학점구조가 3-3-0이라는 뜻은 이 강의는 3학점이며 그 중 이론수업이 3시간이고, 실습수업은 없다는 뜻이다. 하지만 실제 중급러시아어는 2시간의 실습수업이 진행되고 있었다.
또한, 독문과 측에서는 “중급독일어 진행 당시 랩수업도 같이 운영하려고 했다”고 밝히며 “중급독일어 수업 운영 당시부터 랩수업이 없었던 건지. 진행되다가 여건상 사라진 건지는 확실하게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와 유사하게, 중어중문학과(중문과) 또한 ‘2013학년도 1학기부터 중급중국어에서 랩수업을 진행하지 않기로 했다’고 말했다. 이렇듯, 중급 과정에서도 더 심화된 회화 교육이 필요하다고 느껴 랩수업을 진행하는 이태리어2, 아랍어2 등의 강의와 다르게 대부분의 중급 수준 강의에서는 랩수업이 운영되지 않고 있었다.
이에 대해 기초교육원에서는 “환경 상 강의를 운영할 여력이 부족했거나 중급 수준에서 랩수업이 필요하지 않다고 느껴 중급 과정에서 운영되지 않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인문대학 학과장과 교수들의 협의 하에서 결정된 후 기초교육원에 통보하였기 때문에 자세한 상황은 모른다”고 말했다.
서울대학교에서 랩수업이 운영 된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학교 지원을 통해 3~4년 전부터 랩수업 예산이 책정돼 별도의 강의 개설이 가능해졌다, 그만큼 학교에서도 회화 교육의 필요성을 인지했다는 것이다. 학교에서 이태리어 수업을 진행하는 A씨는 “랩수업 도입 전에는 문법 수업 때 회화 수업을 같이 다뤄 학생들에게 실제 사용되는 외국어를 접할 수 있게 해주는 시간이 부족했다”며 현재 진행되고 있는 랩수업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외국어 과목을 필수로 지정하고 회화교육을 강조하려면, 중급 과정에서부터 랩 수업이 없는 부실한 강의 질부터 손봐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 대륙별로 사용하는 언어의 현황 ⓒ www.bab.la
그 제2외국어 강의의 사정
외국어를 전문적으로 가르치는 대학교가 아니라면 제2외국어 교육에 큰 지원을 하기에 무리가 있다. 실제로, 서울대학교와 유사한 종합대학인 고려대학교에서는 2014학년 1학기 기준으로 불어, 서어, 독어, 러시아어, 일본어, 중국어 교과의 교양 강의만이 진행되고 있고, 이태리어나 라틴어, 산스크리트어와 같은 소수 언어 교양 강의는 아예 운영하고 있지 않았다.
비교적 많은 강의가 진행되기는 하지만, 서울대학교 제2외국어 교육 환경도 안정적인 것은 아니다. 현재 서울대학교에서 제2외국어를 가르치는 강사는 얼마 되지 않는다. 그러다보니 한 강의를 오랫동안 맡아온 강사들이 많아, 강의가 오랫동안 유지되는 데에도 한계가 있다. 그에 더불어, 랩수업을 맡을 원어민 강사를 구하는 데도 무리가 있다. 서울대학교에서 제2외국어 강좌를 맡고 있는 B씨는 “국내에 거주하는 원어민의 숫자 자체가 많지 않고, 대부분 회사 업무 차 한국에 왔기 때문에 장기적으로 수업이 가능한 원어민 시간강사를 구하기가 어렵다”며 “보통 대사관에서 활동하는 외국인을 채용하는 데, 그 방법에도 한계가 있다”고 주장했다. 특히, 소수 언어 강좌는 대부분 한 강사가 오랫동안 강의를 맡는 방식으로 수업이 운영된다. 그러다보니 희소한 언어를 다루는 교양 외국어 강의가 오래 지속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제2외국어는 ‘인문학의 다양성’이라는 측면에서 큰 중요성을 갖는다. 특히, 대부분의 교양 외국어 강의에서는 단순히 외국어의 문법이나 읽기 능력을 향상시키는 것뿐만 아니라, 그 나라의 문화나 태도를 이해하도록 하는 것에도 다양한 노력을 기울인다. 그렇기에 제2외국어 교육이 단순한 기술 교육이 아닌 교양 강의, 인문학 강의로 인정받을 수 있는 것이다.서울대학교에서 이태리어 강의를 맡고 있는 A씨는 “영어로 획일화돼가는 외국어 속에서 제2외국어 교육은 큰 의미가 있다”며 “학생들이 다양한 언어와 문화를 접하면서 세계를 보는 넓은 안목을 가질 수 있다는 측면에서 그 의미가 배가 된다”고 주장했다. 즉, 외국어 교육을 단순한 언어의 기술적 활용 교육이 아니라 인문학적 다양성의 측면에서 지켜볼 필요성이 있다는 뜻이다. 그런 점에서 서울대학교는 지속적인 제2외국어 교육을 위해서라도 더 체계적인 외국어 교육 시스템을 조직할 필요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