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년 12월 정부가 발표한 ‘제4차 투자활성화대책’은 의료민영화 논란의 불씨가 됐다. 지난 7월에는 입법예고 된 의료법 시행규칙 개정안에 100만 명이 반대 서명운동을 펼쳐 화제가 됐다. 8월에는 보건·의료서비스 분야의 내용이 담긴 새로운 투자활성화대책이 발표돼 다시 한 번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서울대저널>은 ‘건강권 실현을 위한 보건의료단체연합’ 변혜진 기획실장을 만나 정부의 정책들을 둘러싼 의료민영화 논란에 대해 질문했다. 더불어 한국 의료의 현실과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한 의견도 들었다.
Q. 정부의 투자활성화대책들 중 보건·의료 서비스 분야의 골자를 설명해달라. 지금까지 어느 정도 진행됐는가?
A.기업이나 투자자들이 의료부문에 돈을 투자하고 이윤을 배당받는 것을 가능케 하는 것이다. 작년 12월에 발표된 내용에는 대표적으로 ▲의료기관의 부대사업목적 영리자회사 설립 허용 ▲의료법인 인수합병 허용 ▲영리법인약국 허용 등이 있다. 지난 6월에는 부대사업 목적 자법인 설립 운영에 관한 가이드라인이 나왔다. 부대사업의 범위를 대폭 확대하는 내용을 담은 의료법 시행규칙 개정안의 경우 입법예고 기간이 지난 7월 22일 마감됐고 심의를 위해 법제처에 넘어가 있는 상태다. 지난 8월 12일에 발표된 내용은 대표적으로 ▲의과대학 산하 기술지주회사 설립 ▲임상실험에 대한 규제완화 ▲개인의료정보 활용을 위한 법적 기반 마련 등이 있다. 올해 하반기부터 이와 관련된 개정 법안들이 나올 것이다. 현 상황은 간단하게 말하면 의료민영화를 위한 핵심적인 첫 단추를 푼 상태다.
※ 기술지주회사: 대학이 보유한 기술의 사업화를 목적으로 대학 산학협력단이 기술자산을 출자해 설립한다. 영리적인 성격을 띠는 자회사를 소유한다.
Q. 자법인 설립 운영 가이드라인, 의료법 시행규칙 개정령 등의 효력은 어느 정도이고, 이를 내놓은 정부의 의도는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A.자법인 설립 운영 가이드라인은 영리병원을 만들기 위한 안내서이긴 하나, 남용방지를 위한 규제 장치일 수는 없다. 법적 실효성이 없기 때문이다.
병원의 영리행위를 금지하고 있는 의료법을 개정하려면 국회를 거쳐야한다. 그러나 더 빨리, 더 쉽게 적용하기 위해서 행정부 임의로 개정할 수 있는 시행규칙을 선택한 것이다. 사실 의료법에 영리행위 금지 조항이 있기 때문에 의료법 시행규칙은 모법에 배치된다.
문제는 의료법 시행규칙 개정과 가이드라인을 통해 일단 영리자회사가 만들어지면 법적으로 의료법 소관이 아니라 상법 소관이 된다. 상법상 회사를 만들어서 이윤을 추구하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으므로 자회사를 만들고 나면 어떤 방법으로도 규제할 수 없다.
Q. 이번에 발표된 ‘유망 서비스산업 육성 중심의 투자활성화대책’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점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A.의과대학 산하 기술지주회사 설립을 허용한다는 점이다. 그와 동시에 의과대학이 일반 기업들로부터 프로젝트를 받아서 임상실험·연구를 실시하고 병원과 의사들에게 수익배당이 되도록 바꿨기 때문에 문제다. 정부가 주장하는 기대효과는 신의료기기·의료기술, 신약 등 의료관련 제품들의 특허를 개발해 상업을 촉진시키는 것이다. 하지만 특허 때문에 의약품은 비싸지고 환자들은 수술기법이나 진단방법마다 사용료를 별도로 내야한다. 그래서 의료비가 굉장히 오르게 된다.
또한 보건·의료 연구·임상실험을 활성화시키겠다고 발표했는데, 2년 연속으로 전 세계에서 임상실험이 가장 많이 행해진 곳이 서울이다. 우리나라는 암센터, 암병동에 집단으로 환자 군이 모여 있어 임상실험을 하기에 좋은 환경이다. 규제도 다른 나라에 비해 거의 없는데 이번에 발표된 것은 없는 규제마저 완전히 완화시키겠다는 계획이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담보로 돈 버는 행위를 허용하는 것이다.
Q. 이런 정책들을 대변하는 말로 무엇이 적합한가? 흔히 ‘의료민영화’라는 주장과 ‘의료영리화’라는 주장 두 가지로 나뉘곤 한다.
A. ‘의료민영화’든 ‘영리화’든 혹은 ‘상업화’라 부르든 모두 의료비를 급증시키고 환자의 안전을 위협하는 정책들을 추진한다는 점은 동일하다. 정부는 건강보험을 건드리지 않으니 민영화가 아니라고 한다. 하지만 지금 추진하고 있는 정책들은 결국 건강보험도 위협하게 되고 무엇보다도 의료공공성의 큰 보루인 비영리법인이라는 법적규제를 무너뜨린다. 민영화 여부에 대한 논쟁을 벌이기보단 의료 영리·상업화는 왜 하는 것인지, 결국 민영화로 가기 위한 규제완화가 아닌지에 대해 논하는 것이 더 합리적이다.
Q. 정부는 의료 외 부대사업으로 병원 경영을 돕는 것이니 의료비는 늘 수 없다고 한다. 의료비와 부대사업의 상관관계를 어떻게 설명하면 좋을까.
A.병원 공간 안에서 벌어지는 부대사업이 영리적으로 행해지면 실질적으로 환자와 보호자들이 병원을 이용하는 비용이 올라간다. 게다가 이번에 허용한 자회사의 부대사업 중에는 진료와 관계된 것도 많다. 대표적으로 의약품 및 의료기기 연구·개발을 허용해줬다. 판매는 허용하지 않았으니 문제되지 않는다고 했지만 원래 의약품과 의료기기는 판매되는 것이 아니라 의사가 처방하는 것이다. 의사들은 건강보험이 적용되는 다른 대안이 있어도 자회사나 주식을 갖고 있는 회사의 의약품과 의료기기에 대한 처방을 더 많이 할 것이다. 이런 방식으로 진료와 관련된 부대사업도 허용했기 때문에 국민들의 의료비는 상당히 올라가게 된다.
Q. 일각에서는 경쟁을 도입하면 의료비가 감소하고 의료서비스의 질도 향상될 것이라고 믿고 있다. 이에 대해 어떻게 반박할 수 있는가?
A.의료는 시장에서 가격이 결정될 수 없다. 진료 및 처방 받은 정보를 환자들이 알 수 없고, 공급자인 의사만이 알 수 있는 정보독점제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공급자에 의해 수요가 창출되고 시장이 주도된다. 환자들은 불필요한 과잉진료를 받아도 알 길이 없고 의료서비스의 질을 제대로 비교할 수 없다. 경쟁이 심화돼도 의료비가 내려가거나 과잉진료 하는 병원이 퇴출되지 않는다.
Q. 우리나라의 건강보험재정이 어렵기 때문에 의료영리화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있다. 어떻게 생각하는가?
A.우리나라 건강보험재정이 어려운 큰 이유는 직장보험과 지역보험에서 기업·정부와 노동자의 부담 비율이 5대5밖에 되지 않는 것이다. 평균적인 OECD 국가의 비율은 기업과 정부가 더 많이 내는 7대3이다. 실제로 건강보험 재정이 어렵다면 의료영리화가 아니라 정부가 나서서 어떻게 재정을 확충할지 고민해야한다. 이걸 국민의 호주머니에서 해결하려하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의료가 영리화 되면 건강보험재정은 오히려 더 어려워질 수 있다. 병원에서 의사들이 돈을 버는 방식 중 하나는 본인이 처방한 것에 대해 건강보험에 급여를 청구하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행위별수가제이므로 의사가 환자를 많이 볼수록 돈을 많이 벌 수 있다. 의료영리화가 진행되면 환자들을 병원에 불필요하게 오게 할 위험이 있다. 그럴수록 건강보험재정의 돈이 의사들에게 가고 재정은 더 어려워진다.
※ 행위별수가제: 개별 진료행위의 가격을 모두 합해 총 진료비를 산출하는 진료비 지불제도. 환자에게 행하는 진료 행위의 양을 늘릴수록 의사의 수입이 늘어난다. 이로 인해 환자에게 꼭 필요한 만큼의 진료 행위를 넘어 과잉 진료할 우려가 있다.
※ 의료수가: 건강보험공단과 환자가 의사나 약사 등의 의료서비스 제공자에게 지불하는 돈을 말한다. 의료수가는 환자에게 제공되는 서비스의 정도, 서비스 제공자의 소득, 물가상승률 같은 경제지표 등을 토대로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에서 심의해 결정된다.
Q. 원격의료가 의료사각지대의 소외계층에게 의료접근성을 높여주기 위해 필요하다는 주장이 있다. 그 실효성이 궁금하다.
A.의료사각지대 소외계층은 주로 도서·산간지역의 노인, 장애인들을 말한다. 그런데 몸이 불편한 장애인이 컴퓨터를 두드리고 노인들이 어플을 받아서 건강을 체크하는 것은 실질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대면진료가 정말 필요한 사람들에게 원격의료를 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사기다.
원격의료를 위한 프로그램을 설치하는 데에는 비용도 많이 든다. 실상은 재벌들을 위한 원격의료다. 정부시범사업에서도 효과가 입증된 적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IT 기업들이 이것을 원하기 때문에 하려는 것이다.
Q. 국제의료특별법 혹은 외국인 의료관광을 통해 국내 의료산업을 활성화시키는 것의 문제는 무엇이고, 외국인 환자 유치를 위한 정책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가?
A. 외국 환자들에겐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기에 한국인이 내야하는 의료비의 4배를 내게 된다. 이게 과연 도덕적으로 바람직한가라는 문제도 있지만 가장 큰 문제는 이를 통해 국내법의 규제를 완화한다는 것이다. 지금은 건강보험 당연지정제가 지켜지고 있어서 병원이 건강보험환자를 의무적으로 받아야만 하고, 수가를 국민건강보험과 계약한다. 그런데 의료관광이 활성화되면, 앞서 말한 외국인 환자들의 높은 의료비를 낮춘다는 명목으로 민간보험사들과도 계약을 하게 해달라고 할 것이다. 보험회사는 병원과 결탁해 환자유치·알선하는 것을 금지하는 규제를 풀어달라고 요구할 것이다. 말은 해외환자 유치지만 사실 국내의 건강보험 체계를 무너뜨리기 위해서 의료관광을 활용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이번 의료법 시행규칙 개정안 중에는 외국인 환자를 위한 1인실은 병상 수 제한을 두지 않는다는 내용이 있다. 따라서 1인실은 늘어나고 건강보험이 적용되는 다인병상은 상대적으로 줄어든다.
※ 건강보험 당연지정제: 병원들이 국민건강보험 환자를 의무적으로 받아주도록 돼 있는 제도.
Q. ‘법인약국 허용’이 실질적으로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가? 지금과 비교해서 어떻게 달라진다는 것이고 그 부작용은 무엇인지 궁금하다.
A.지금은 약사만 약국을 개설할 수 있는데 이제는 일반기업도 약국을 개설할 수 있도록 허용한다는 것이다. 기업이 대규모 체인형 약국들을 두기 때문에 작은 동네약국들은 대부분 문을 닫게 되고, 응급시 필요한 약국에 대한 접근도가 떨어질 것이다. 또한 기업들이 이런 영리약국 체인을 갖게 되면 계열사로 있는 제약회사의 약품만을 체인에 갖다놓을 것이다. 약값 담합, 제약회사의 리베이트 문제도 심해질 것이고 약사들의 자율권, 전문성보다는 매출을 올리라는 기업의 요구에 얽매이게 될 것이다.
※ 리베이트: 판매자가 지급받은 대금의 일부를 사례금이나 보상금의 형식으로 지급인에게 되돌려 주는 일.
Q. 진정으로 의료 공공성 보장을 위해 현재 우리나라의 보건의료시스템에서 우선적으로 개선되어야 할 점, 그리고 장기적인 대안은 무엇이라고 보는가?
A. 첫 번째는 공공의료 확충이다. 공공의료기관을 확충해서 표준진료를 함으로써 민간병원들의 과잉진료 실태에 조치가 내려져야 한다.
두 번째는 건강보험 보장률을 높이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 정부지원을 높여야 하고 기업주와 사용자부담을 5대5가 아니라 최소 6대4로 바꿔서 재정을 확충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의료상업화 추세로 가고 있는 불필요한 치료 및 시술을 줄여야한다. 특히 줄기세포·유전자치료를 포함해 위험하고 불필요한 임상실험에 대한 규제 마련이 시급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