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는 ‘배(船)’다

우석훈, 《내릴 수 없는 배》, 웅진지식하우스.Ⓒ 웅진지식하우스 세월호 관련 여론이 급물살을 타고 있다.얼마 전까지만 해도 언론에서 가장 ‘핫’한 소재는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의 죽음과 그 장남 유대균 씨의 검거였다.그들에 대한 관심이 시들해지면서 이제 그 자리는 ‘세월호 특별법’이 이어받았다.유 씨 일가 검거보다 세월호 참사의 본질에 한껏 다가간 사안이다.그런데 ‘세월호 특별법’을 둘러싼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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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석훈, 《내릴 수 없는 배》, 웅진지식하우스. Ⓒ 웅진지식하우스

 세월호 관련 여론이 급물살을 타고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언론에서 가장 ‘핫’한 소재는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의 죽음과 그 장남 유대균 씨의 검거였다. 그들에 대한 관심이 시들해지면서 이제 그 자리는 ‘세월호 특별법’이 이어받았다. 유 씨 일가 검거보다 세월호 참사의 본질에 한껏 다가간 사안이다. 그런데 ‘세월호 특별법’을 둘러싼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어느새 특별법에 대한 담론이 세월호 참사 유족에 대한 담론으로 슬그머니 바뀌더니 유족에 대한 루머와 해명이 SNS를 뜨겁게 달구기까지 했다. 여당을 중심으로 세월호 특별법의 잇따른 합의 실패가 다른 경제 활성화 법안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며 일은 더욱 복잡하게 꼬여가고 있다. 세월호 참사의 진상은 물론 진상에 다가갈 시도조차 아스라한 상황이다.

바보야, 문제는 ‘배(船)’야!

 우석훈의 《내릴 수 없는 배》는 세월호 참사에 대한 최초의 분석서다. 세월호 참사가 복잡다단하게 얽혀가는 현 상황 속에서 세월호 참사 자체를 정직하게 파헤친 이 책은 신선하기까지 하다. 저자인 우석훈은 경제학자로, 《88만 원 세대》, 《FTA 한 스푼》 등을 쓰며 사회 현상을 경제학적으로 풀어내는 작업을 해왔다. 그는 특유의 경제학적 관점을 이번 세월호 참사를 분석하는 데도 적용했다. 그는 세월호가 ‘배’라는 데 주목한다. 그는 배가 침몰한 사건을 다루려면 마땅히 배를 이야기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 책은 우리나라 선박산업의 문제와 그 원인 등을 파악하고, 이를 통해서 세월호 참사의 본질에 접근을 시도한다.

 ‘학생들이 왜 배를 타게 됐는가’가 이 책이 제기하는 첫 질문이다. 제주도까지 가는 이동수단 중 가장 편리한 것은 단연 비행기다. 항공료는 비싸다는 통념이 있지만 저가 항공의 경우 배보다 저렴하게 탈 수 있다. 더구나 비행기를 이용하면 배에 비해 시간을 월등히 절약할 수 있다. 이처럼 비행기가 배보다 장점이 많은데도 수학여행에서는 배를 적지 않게 이용한다. 저자는 그 이유가 정부의 권유 혹은 유도에 있다고 밝힌다. 저자가 제시한 자료에 따르면 교육청은 2011년부터 사고가 나기 직전인 2014년 3월까지 카페리를 통한 수학여행을 장려해왔다.

 저자에 따르면, 교육청의 이와 같은 방침은 2011년 이후 우리나라 선박업의 사양화, 그리고 이와 엇갈려 진행된 정부의 크루즈 산업 중흥 방침 등을 배후에 두고 있다. 이명박 정부는 과거 한반도 대운하 건설 공약으로 이러한 야망을 공공연히 표한 바 있다. 이른바 경제활성화법 중 하나로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크루즈산업 육성 및 지원에 관한 법률안’은 이런 흐름이 이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한편 고유가, 저가항공 및 KTX 노선의 확대로 인해 선박 중에서도 여객선, 특히 1만 톤 이하 페리가 이동 수단으로서 지니는 장점은 줄어들었다. 자연스럽게 여객선 이용자도 줄었다. 이와 같은 여객산업의 침체는 세계적인 흐름이기도 하다. 저자는 정부가 주춤한 여객산업을 되살려 아라뱃길·4대강 사업 등을 원만히 추진하기 위해 고등학생들을 ‘배에 태운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경제지상주의, ‘시민의 안전’은 헐값

 앞서 제시한 분석에 따르면, 수학여행시 여객선 이용장려는 정부가 수학여행을 기업적·정치적 이익에 이용한 것이다. 저자가 이보다 더 문제 삼는 것은 정부가 선박업 부활을 위해 넘겨준 것이 손님뿐만이 아니라는 데 있다. 그에 따르면 정부는 헐떡이는 선박업의 숨통을 트게 할 작정으로 여객에 관한 규제를 느슨하게 했다. 실제로 이명박정부와 박근혜정부는 모두 선박업과 관련한 규제를 완화한 바 있다. 2008년에는 연안여객선 선령제한이 20년에서 30년으로 증가했고, 세월호 참사 전날인 4월 15일에는 선박 운항 자격을 완화하는 법안이 발의됐다. 이명박정부 이후 ‘규제 완화’는 하나의 큰 흐름이다. 규제를 줄이는 목적은 기업 투자를 활성화해 경제를 성장시키는 데 있다. 크루즈 선박에 대한 정부의 높은 관심을 볼 때, 선박업에 대한 규제 완화는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이는 배의 노후, 미숙 운행 등의 문제를 필연적으로 야기한다. 결과적으로 정부는 정치·경제적 이익과 배에 타게 될 시민의 안전을 교환한 셈이다. 그리고 학생들은 위험해진 배에 정부의 권유 하에 타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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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는 일본에서 ‘나미노우에호’라는 이름으로 18년 동안 문제없이 운행됐다. 청해진해운이 이 배를 사들여 개조했고, 사고 당시 세월호의 선령은 21년이었다. (좌=ⒸThink Defence, 우=Ⓒ청해진해운)

 경제활성화를 위한 규제 완화에는 간접고용·비정규직 등에 대한 규제 완화도 포함된다. 비정규직은 이제 너무도 흔한 것이 됐다. 배의 운행과 관리를 책임져야 할 선장마저 비정규직이다. 세월호 참사에서 선장과 선원 다수가 보인 이기주의와 무책임함은 시민들을 경악케 했다. 그들 대부분이 비정규직이라는 사실이 참사를 다루는 도중 잠시 화제가 된 바 있다. 고용이 불안정하고 한 직장을 오래 다닐 수 없는 환경에서는 노동자에게 전문성을 기대하기 힘들다. 저자는 배 안에 있던 수백의 생명을 내버리고 달아난 데 대해서 처벌을 내리지 않을 수는 없지만 그것만으로 ‘일벌백계’식 효과를 기대하기는 힘들다고 말한다. 그는 대한항공이나 아시아나 사고가 있을 때 항공 승무원들이 보여주는 일사불란한 모습이 고귀한 정신뿐 아니라 반복된 훈련에서 온다고 지적한다. ‘비정규직 선장’은 다른 한편으로 여객 산업의 민낯을 드러내기도 한다. 정부 지원으로 버티고 있는 여객산업의 고용자로서는 선장을 정규직으로 앉힐 여유가 없기도 하고, 또 정부가 각종 규제 완화를 내세우며 여객산업에 너그러운 태도를 보이는데 굳이 그럴 필요가 없기도 한 것이다.

 안전하지 않은 배이므로 곧 사고가 날 수 밖에 없었다. 언제 나는가의 문제일 뿐이었다. 사고가 날 수 밖에 없는 구조 속에서 사고 대응 체계는 어떤가. 세월호 참사 때 온 국민이 지켜봤듯이 ‘엉망진창’이다. 최초로 사고에 대처해야 할 선장과 선원은 신고조차 제대로 못했다. 정부 내에 수많은 임시조직이 난립하고 지휘·감독 주체가 혼란에 빠져있는 동안 탑승자를 구할 골든타임은 지나갔다. 언론에서 여러 차례 지적한 바 있듯이 국가안보실(NSC)로 일원화된 위기관리대응체계는 이명박정부 때 없어졌다. 기업의 이익을 보장하면서 사고의 예방을 도외시했을 뿐 아니라 사고 후의 구조에도 무책임했다는 이야기다. 학생들과 시민들이 태워진 배는 그런 배였다.

대한민국의 자본주의가 만든 ‘유령선’, 그 배에서 내릴 수 없다면…

 현재 우리나라의 경제지상주의적 성격은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2008년에 시민에 의해 선택됐고 여태까지 지속됐다. 이는 시장중심의 작은 정부를 지향하는 방향으로 발현됐다. 때문에 2008년 이후로 우리나라의 공적 영역은 지속적으로 축소돼왔다. 이 흐름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이 국가나 공기업의 재산을 민간 자본으로 넘기는 민영화다. 현재 국회에서는 의료민영화에 관한 법안인 서비스발전 기본법(의료법인의 영리목적 자회사 설립 허가), 의료법 개정안(원격 진료 허용)이 가장 치열한 쟁점이다. 작년 말에는 철도 민영화가 나라를 뜨겁게 달군 바 있다.

 저자는 우리나라 선박의 위험성을 줄이기 위해서 여객에도 공영제를 실시할 것을 제안한다. 민영화가 정부 주도 아래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는 현 상황에서는 어불성설인 소리다. 저자도 이를 알고 있다. 그럼에도 저자가 이런 제안을 하는 이유는 ‘누군가는 그 배에 탈 것’이기 때문이다. 청해진해운이 운영하던 제주-인천 간 뱃길은 세월호 참사 이후로 끊겼다. 하지만 8월 26일 인천지방해양항만청과 인천항만공사는 CJ대한통운과 제양항공해운이 9월 중 인천-제주 항로에 화물선 투입을 추진 중이라고 밝혔다. 화물선에 한정되기는 하나 항로가 부활하는 셈이다. 무엇보다 인천-제주 항로가 아닌 곳에서는 여전히 노후한 배가 미숙한 선원의 감독 하에 운영되고 있다. 여객산업은 명백히 내리막을 걷고 있고, 이 내리막은 세월호 참사 이후 이용객의 감소로 인해 더 가팔라질 것이다. 여객선은 더 허술해지면 허술해졌지 튼튼해지지는 못할 것이다. 저자는 연안 여객을 유지하기 위해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은 민간에 맡기고 규제를 풀어줘 나 몰라라 하는 것이 아니라 아예 정부 산하로 여객산업을 끌어오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배’로 시작한 이 책은 이처럼 다시 ‘배’ 이야기로 끝난다. 세월호 참사 이후의 4월과 5월에는 ‘전 국민이 우울증에 걸렸다’는 말이 심심찮게 들렸다. 그만큼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사건에 대한 분노는 그것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아주 특수한 인물이나 아니면 국가 전체를 통괄하는 집단인 정부에 대해 표출됐다. 세월호 선장에 대한 처벌과 유 씨 일가 잡기가 말초적으로 관심을 끄는 동시에 ‘대한민국이 침몰했다’는 카피가 가장 흔히 보이기도 했다. 정부의 대처도 크게 다르지 않아서, 대통령은 ‘해경 해체’와 함께 국가 차원의 대형 사고에 대해 국무총리실에서 직접 관장하는 ‘국가안전처’ 신설방안을 내놓았다. 저자는 유 씨 일가에 대한 말초적 관심과 정부에 대한 추상적 비판 사이에 숨어있던 여객산업의 폐해를 전면으로 끌어온다. 그리고 세월호 참사의 선박업이라는 특수성과 경제지상주의라는 보편성을 놓치지 않고 함께 풀어내는 능수능란함을 보인다. 저자가 책 뒷부분에 덧붙인 통찰도 통렬하다. 재난 상황을 이용해 관철하고 싶던 바를 밀어붙이는 정부의 ‘재난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 그리고 고등학생을 피동적인 ‘아이’로 취급하는 사회분위기에 대한 지적은 가렵던 곳을 시원하게 긁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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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도 팽목항에는 아직 돌아오지 못한 실종자 10명(학생 5명·일반인 3명·교사 2명)의 이름을 적은 깃발이 나부끼고 있다.

Ⓒ한겨레

《내릴 수 없는 배》는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지 100일 째인 7월 24일 발간됐다. 7월 24일은 광화문에서 ‘세월호 참사 100일 추모 시낭송 그리고 음악회’가 진행된 날이기도 하다. 이날 예술인들은 각각 음악, 시를 통해 유족과 시민에게 위로를 전했다. 이것이 감성과 관계된 추모라면 《내릴 수 없는 배》는 이성을 바탕으로 한 추모다. 전자가 예술인의 몫이라면 후자는 언론인과 전문 연구인의 몫이다. 우석훈 씨는 서문에서 이전에 한반도 대운하와 FTA에 대해 저작을 발표했던 일을 언급한다. 그는 ‘(한반도 대운하와 FTA 정책의 변화가) 그런 사회적 사건이 있었을 때마다 말과 글과 행동을 벌인 이들이 만들어낸 작은 결론이라 생각한다’며 《내릴 수 없는 배》를 쓴 목적을 밝혔다. 《내릴 수 없는 배》는 하나의 신선한 통찰을 제시하지만 저자가 직접 밝혔듯이 급하게 쓴 책이기에 치밀하지 못한 면도 분명 존재한다. 하지만 이 책은 ‘세월호 참사’에 관한 분석서의 시발점이 됐다. 이 책의 진정한 의의는 앞으로 발간될 연구서들의 향방과 함께 논해져야 마땅할 것이다. 

▶ 책속 한 구절

 학생들은 제주도로 ‘간’ 것이 아니다. 각 지역 교육청 등 교육 당국을 통해 ‘보내진’ 것이다. 자신들이 지켜야 할 학생들을 ‘아이들’이라고 부르면서 실상은 그들 부모의 돈을 노리는 산업을 만들고, 정책을 만들고, 배를 운용한 이들이 그렇게 한 것이다. 그리고 이런 일이 벌어질 때 아무도 판단하지 않았다. 그러니 학생들에게 던져진 “가만히 있으라”는 말은 세월호 선내에서 들리기 전에, 이미 전달됐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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