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념 속에 가려진 아내들의 비명
가정폭력처벌법과 가정폭력방지법, 이름값 하고 있나
뿌리를 끊어내다

가정폭력처벌법과 가정폭력방지법, 이름값 하고 있나

아내폭력과 관련된 법은 ‘가정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가정폭력처벌법)’과 ‘가정폭력방지 및 피해자 보호법(가정폭력방지법)’으로 나뉜다.아내폭력을 가정 내에서 다뤄야 할 일이라고 받아들인 과거 현실에 비춰보면 1997년 두 법의 제정은 획기적인 사건이었다.그러나 두 법률이 시행된 이래로 법률과 현실 간의 괴리가 끊임없이 지적됐다.수차례 개정으로 보완의 과정을 거쳤지만 아내폭력은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채 남아있다.

  아내폭력과 관련된 법은 ‘가정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가정폭력처벌법)’과 ‘가정폭력방지 및 피해자 보호법(가정폭력방지법)’으로 나뉜다. 아내폭력을 가정 내에서 다뤄야 할 일이라고 받아들인 과거 현실에 비춰보면 1997년 두 법의 제정은 획기적인 사건이었다. 그러나 두 법률이 시행된 이래로 법률과 현실 간의 괴리가 끊임없이 지적됐다. 수차례 개정으로 보완의 과정을 거쳤지만 아내폭력은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채 남아있다. 올해에도 가정폭력처벌법과 가정폭력방지법의 일부개정법률안이 발의됐다. 왜 가정폭력처벌법과 가정폭력방지법 개정안이 발의될 수밖에 없었을까.

가해자를 처벌하지 않는 가정폭력처벌법  가정폭력처벌법은 가정폭력사건 처리 절차를 명시한다. 아내폭력사건을 최초로 다루는 기관은 경찰로, 신고가 접수되면 경찰은 현장에 임해 ▲폭력행위를 제지하고 ▲행위자와 피해자를 분리한 뒤 ▲피해자를 상담소나 보호시설 혹은 의료기관으로 인도해야 한다. 아내폭력 피해 여성은 남편의 폭력을 고소할 수 있다. 고소가 접수되면 경찰은 사건을 검찰로 송치한다. 검찰은 사건을 살피고 불기소처분을 할 것인지, 가정보호사건으로 처리할 것인지, 혹은 형사사건으로 기소할 것인지 결정한다. 이 과정에서 피해 여성의 의견이 반영되나 결정은 검사의 재량에 달려있다. 불기소처분이 결정되면 남편의 폭력은 처벌받지 않는다. 가정보호사건으로 처리되면 사건은 가정법원으로 송치되고, 가해자는 보호처분을 받는다. 형사사건으로 분류되면 구약식 혹은 구공판으로 처리된다. 구약식은 서면심리를 통해 벌금형을 선고받는 것을 의미한다. 구공판으로 처리되는 경우 가해자는 공판절차를 거쳐 형을 선고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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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폭력사건이 처리된 과정을 나타낸 표. 아내폭력사건은 가정폭력사건의 65% 이상을 차지한다.

출처: 2013 가정폭력실태조사

  가정폭력처벌법은 제정 목적으로 ‘가정폭력범죄로 파괴된 가정의 평화와 안정의 회복’과 ‘피해자와 가족구성원의 인권 보호’를 내세운다. 하지만 두 보호법익 사이의 위계서열이 명시돼있지 않다. 이에 대해 서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양현아 교수는 보호법익의 병렬적 구조로 인해 두 보호법익이 충돌하는 경우 공권력의 입장에 따라 사건이 처리될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점을 지적한다. 2008년부터 2012년까지 검찰로 송치된 가정폭력사건의 절반 이상은 불기소처분을 받았다. 이 경우 사건은 종결되며 가해자는 처벌받지 않는다. 가정보호사건으로 송치된 비율도 10%를 상회한다. 이 경우 가해자는 ▲피해자에게 접근하는 행위의 제한 ▲전기통신을 이용하여 접근하는 행위의 제한 ▲사회봉사 ▲상담위탁 등을 명령받는다. 폭력 행위에 상응하는 처벌은 존재하지 않는다. 기소로 넘어간 사건의 다수도 구약식으로 처리됐다. 구약식은 가해자에게 벌금을 부과한다. 형법에 따라 처벌을 내리는 구공판은 전체 사건의 5% 미만을 차지했다. ‘가정의 보호’와 ‘피해자의 인권 보호’ 중 무엇이 중시되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가정폭력처벌법 제정 당시 ‘가정보호사건 처분’은 여성단체가 시대상을 고려해 넣은 법률이었다. 90년대 당시 사회는 남성이 일을 하고, 남성의 임금으로 여성이 가정을 꾸리는 형태를 전형적인 가정으로 인식했다. 남편이 실형을 선고받는 경우 아내의 생계가 위험에 처할 수 있었다. 따라서 가정폭력처벌법은 보호처분을 통해 가해자의 폭력에 대한 처벌 대신 성행의 교정을 통해 가해자를 가정으로 돌려보내는 방식을 취했다. 하지만 가정보호처분이 남발되면서 피해자의 인권이 침해된다는 비판이 존재한다. 가정폭력처벌법은 가정폭력사건을 가정보호사건으로 처리할지 형사법원에 재판을 청구할지 결정하는 과정에서 피해자의 의견을 존중할 것을 명시한다. 법률에 근거해 피해자는 가해자 처벌과 관련해 자신의 견해를 제시할 수 있다. 하지만 실제 사건 처리 과정에서 검찰은 피해 아내에게 이혼의사 여부를 묻는다. 김푸른솔(법학전문대학원 12) 씨는 “피해자에게 처벌 의사가 있다면 검사는 가해자를 기소해야 하지만, 피해자에게 이혼의사가 없다는 이유로 처벌의사와 관계없이 가정보호사건으로 처리한다”며 현 사법관행을 비판했다.

재발방지에 무력한 가정폭력처벌법  가정폭력처벌법이 가해자 처벌과 재발 방지에 실질적인 효과를 거두지 못한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존재한다. 사법연감의 통계에 따르면, ‘가정보호사건’으로 처리된 경우 가해자는 주로 ‘보호 관찰’과 ‘상담 위탁’ 처분을 명령받는다. 가정폭력처벌법 제14조에 따라 보호처분 기간은 6개월을 초과할 수 없으며 최대 연장 가능한 기간은 2년이다. 한국가정법률상담소 박소현 상담위원은 “보호처분이 끝난 뒤 가해자가 다시 폭력을 행사할 것을 걱정하는 피해자가 있다”며 “보호처분 기간의 연장을 소망하기도 한다”고 밝혔다.

  ‘접근금지’의 실효성에 대해서도 지속적인 비판이 존재한다. ‘접근금지’는 가해자로부터 피해자를 보호하기 위해 도입된 조치다. ‘접근금지’는 세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경찰 조사 단계에서 경찰이 취하는 ‘긴급임시조치’가 있다. 또한 검사 단계에서 검사가 판사에게 ‘임시조치’를 청구할 수 있다. 이후 ‘가정보호사건’으로 처리되는 경우 판사는 ‘보호처분’으로 피해자에 대한 가해자의 접근을 막을 수 있다. 이 외에도 피해자의 법원 청구에 따라 판사가 ‘임시보호명령’과 ‘보호명령’을 내릴 수 있다. 하지만 수많은 접근금지 수단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피해자는 가해자로부터 보호받지 못한다. 또한 피해자를 가해자로부터 보호하지 못한다. 가해 남편은 감시받지 않으며, 가해자가 접근금지를 어길 경우 신고의 의무는 피해자에게 돌아간다. 접근금지 명령을 어긴 대가는 과태료 부과이다. 김푸른솔 씨는 “접근금지의 실효성이 보장되기 위해서는 피해자의 신고를 받는 즉시 가해자를 체포하는 제도가 존재해야 한다”며 “과태료 부과는 접근금지의 실효성을 무마시킨다”고 답했다. 과태료 부과는 역으로 피해자에게 부담을 지우기도 한다. 부부 관계가 지속되는 한 피해자 또한 과태료를 분담해야하기 때문이다. 접근금지가 피해자를 가둘 수 있다는 지적도 존재한다. 신상희 씨는 “주거지와 근무지를 중심으로 가해자의 접근을 금지할 경우 피해자가 갇힐 수 있다”며 “피해자 인권 보호를 위해서는 가해자의 행동반경을 제한하는 형태로 법이 개정돼야 한다”고 피력했다. 피해 아내에게 이혼 의사가 있어 사건이 형사재판으로 송치돼도 대부분의 경우 구약식으로 처리된다. 구약식은 벌금형을 선고한다. 김푸른솔 씨는 “피해자의 의사를 존중해 기소한다 해도 벌금형으로 끝난다면 재발방지 효과는 별로 없다고 볼 수 있다”고 전했다.

  2008년 불기소처분의 한 유형으로 가정폭력처벌법에 ‘상담조건부 기소유예’가 도입됐다. 검사는 행위자에게 성품과 행위의 교정이 필요하다는 판단 하에 상담을 조건으로 불기소처분을 내릴 수 있다. 경미한 사건의 경우 가해자를 실형으로 처리하기보다 상담을 통해 개선의 여지를 주자는 취지다. 하지만 ‘상담조건부 기소유예’는 아내폭력에 면죄부를 제공한다는 비난을 면치 못하고 있다. 김푸른솔 씨는 “학계에선 상담조건부 기소유예가 실효성이 없다는 입장을 보인다”며 “이 조항은 가정보호에 치우쳐 물리적 폭력을 행한 가해자도 가정으로 돌려보낸다”라고 비판했다. 한국가정법률상담소가 2012년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2011년 서울중앙지검과 인천중앙지검으로부터 상담위탁 보호처분 혹은 상담조건부 기소유예 처분을 받은 가해 남편 55명 중 14명은 흉기를 사용해 아내를 다치게 한 전력이 있었다. ‘한국여성의전화’ 고미경 가정폭력상담소장은 그의 글 ‘인권의 관점에서 본 가족폭력정책과 제도’에서 아내폭력 상담위탁을 받은 상담소들이 ‘상담조건부 기소유예’자가 행하는 폭력의 정도가 심각한 것에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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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폭력으로 보호관찰 및 상담위탁 처분을 받은 남편이 상담을 받는 도중 아내에게 폭력을 휘둘렀다. 아내의 신고에 경찰은 남편을 구속했다. 아내폭력 재발로 남편이 구속된 경우는 이 사건이 처음이다. ⓒ세계일보

생계비 지급조차 보장 못하는 가정폭력보호법

  가정폭력방지법에 의거해 상담소, 가정폭력 피해자 보호시설(쉼터) 등에 대한 지원이 이뤄진다. 쉼터에서는 아내폭력 피해여성과 동반자녀에게 숙식을 제공하고 상담 치료, 의료지원 등을 실시하고 있다. 쉼터 지원은 가정폭력방지법에 명시돼있지만 현재 쉼터는 ‘사회복지사업법’에 근거해 장애인복지시설, 노인복지시설 등과 함께 보장시설로 분류되고 있다. 사회복지사업법상 보장시설의 장에게는 일괄적으로 보장시설 입소자들의 자산을 조사해 사회보장정보시스템(행복e음)에 입력할 의무가 주어진다. 입력된 자산사항을 토대로 보장시설 입소자 중 시설수급자가 선정된다. 수급자로 선정된 입소자에게는 생계급여가 지급되고 의료급여증이 주어진다. 생계급여에 대해서는 생계급여가 최소한의 생활을 영위하기에도 턱없이 부족하다는 비판이 계속해서 제기됐다. 시설 생활에 필요한 주식비, 부식비, 연료비, 피복비 일체를 생계급여로 감당해야 했기 때문이다. 이런 비판을 감안해 2014년 생계급여는 30인 미만 시설 기준으로 수급자 1인에 대해 월 22만 6,260원(일 7,439원)으로 책정됐다. 2013년 생계급여 월 15만 4,082원(일 5,364원)와 비교할 때 이는 크게 인상된 금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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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사회보장정보시스템(행복e음)에 쉼터 입소자 정보 입력을요구했다. 사회복지담당 공무원 등이 정보에 접근할 수 있다. 가해자가 집요하게 피해자를 쫓는 아내폭력의 특성상 정보보호가 엄격히 이뤄지지 않는 전산 시스템에 쉼터 입소자 정보를 입력하는 것이 위험하다는 지적이 있다. ⓒ한국보건복지정보개발원

  올해부터 생계급여가 인상됐음에도 불구하고 쉼터의 사회복지사업법상 보장시설 지정이 아내폭력 피해자들의 현실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결과라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아내폭력 피해자와 장애인, 노인, 아동 등 취약계층 사이에 질적인 차이가 고려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전국가정폭력피해자보호시설협의회 고미경 상임대표는 “아내폭력 피해 여성들은 폭력 피해자”라며 “이들은 사회복지 수혜자와는 달라 사회복지의 관점으로 바라볼 때 문제가 생기는 부분이 있다”고 밝힌다. 아내폭력 피해자는 가해자의 폭력이 극심해질 때 더 이상 함께 생활할 수 없다고 판단하고 쉼터로 피신한다. 폭력이 예고 없이 행해지기 때문에 피해자는 본인 명의의 자산을 미리 챙기지 못해 쉼터에 피신할 때에는 빈손인 경우가 많다. 실질적으로 본인 소유의 자산이 없는 상태인데도 쉼터 입소자의 일반재산, 금융재산, 자동차 등을 모두 포함한 자산이 조사된다. 조사된 생활수준이 수급자 선정기준을 초과하면 비수급자가 된다. 비수급자는 집, 가게, 자동차 등이 본인 명의로 돼있어도 가해자의 위협과 신변 노출의 위험 때문에 본인 명의의 자산에 대한 권리를 행사할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일괄적으로 실시되는 자산조사와 수급자 분류는 이 같은 현실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됐다.

  2008년 수급자 분류가 실시된 후 아내폭력 피해자의 비수급자 지정 문제가 공론화됐다. 이는 비수급자 생계비 문제의 해결책을 촉구하는 움직임이 이어졌다. 아내폭력 피해자가 수급자와 비수급자로 나눠지고, 아내폭력 보호 시설 지원이 사회복지시설로 분류되는 상황은 해결되지 않았지만 비수급자에 대한 생계비 지원은 약속됐다. 그 결과 2011년부터 수급자에게는 ‘국민기초생활보호법’에 의거해 보건복지부로부터 생계급여가 지급되고, 비수급자에게는 가정폭력방지법에 따라 여성가족부(여가부)로부터 보호비용이 지급되고 있다. 아내폭력 피해자 지원 제도의 미비와 모호한 수급자 기준으로 인해 생계비 지급이 이원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이원적인 생계비 지급 체계로 인한 혼란도 문제지만 여가부의 생계비 지급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것은 더 시급한 문제다. 비수급자의 생계비는 범죄피해자보호기금에서 지급된다. 그러나 범죄피해자보호기금의 기금관리주체가 법무부이기 때문에 여가부는 예산 조달에 어려움을 겪는다. 이 때문에 쉼터 비수급자에 대한 생계비 지급이 늦춰지는 실정이다. 한국여성의전화 부설 쉼터 오래뜰은 예산 부족을 이유로 지난 7월까지 지급받아야 할 생계비를 절반밖에 받을 수 없었다. 매해 이런 일이 반복되고 있음에도 여가부는 예산이 부족하다는 입장을 밝힐 뿐 해결책을 마련하지 않고 있다. 고미경 상임대표는 “생계비는 생존을 위해 반드시 확보해야 하는 예산임에도 예산이 부족해 지급할 수 없다는 말은 납득할 수 없다”며 답답함을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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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1월 29일 한국여성의전화는 가정폭력방지법 시행 15주년을 맞아 가정폭력방지법 전면 개정을 위한 토론회를 개최했다. ⓒ한국여성의전화

개정법률안 발의, 문제 해결의 열쇠가 될 수 있을까

  2014년 2월 28일 가정폭력방지법의 일부개정법률안이 발의됐고, 5월 28일 가정폭력처벌법의 일부개정법률안이 발의됐다. 가정폭력방지법 개정안은 ▲노인, 임산부 등의 특성을 고려한 보호시설 설치 ▲모든 쉼터 이용자에 대한 생계급여 지급 등을 내용으로 하고 있으며, 가정폭력처벌법 개정안은 ▲가정폭력범죄의 피해자와 가족구성원의 안전과 인권 보호 ▲사법경찰관의 가정폭력 위험조사서 의무 작성 등을 내용으로 하고 있다. 두 개정안에는 그간 상담소, 피해자 보호시설에서 다년간 일했던 종사자와 가정폭력 전문가 등의 목소리가 반영됐다. 아내폭력에 대한 그간의 법제 집행과정에는 피해자의 입장, 아내폭력의 특수성에 대한 고려가 부족했다는 것이 중론이다. 가정폭력처벌법 개정안은 목적조항에서 가정보호 관련 내용을 삭제함으로써 가정보호보다 피해자인권보호가 우선시됨을 분명히 하고 있다. 가해자 처벌과 피해자 보호가 제대로 이뤄져 가정폭력처벌법과 가정폭력방지법이 이름값 할 날이 올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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