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저널>이 묻고 국립국어원이 답하다

지난 4월, 국립국어원이 주요 포털의 인기검색어 순위에 올랐다.성 소수자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커진 상황에서 국립국어원이 ‘사랑’의 개념을 이성애 중심적으로 정의한 것이 알려지면서다.5월 1일 근로자의 날(노동절)에는 국립국어원 트위터에 ‘노동자를 근로자로 순화해서 써야한다’는 트윗이 오르면서 국립국어원은 또 한 번 논란의 중심에 서기도 했다.

  지난 4월, 국립국어원이 주요 포털의 인기검색어 순위에 올랐다. 성 소수자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커진 상황에서 국립국어원이 ‘사랑’의 개념을 이성애 중심적으로 정의한 것이 알려지면서다. 5월 1일 근로자의 날(노동절)에는 국립국어원 트위터에 ‘노동자를 근로자로 순화해서 써야한다’는 트윗이 오르면서 국립국어원은 또 한 번 논란의 중심에 서기도 했다. <서울대저널>은 서울대학교 국어교육과 교수이기도 한 민현식 국립국어원장을 만나 논란에 질문을 던졌다. 논란에 가려져 보이지 않았던 국립국어원의 다양한 활동에 대해서도 들어봤다.

  Q) 올해 근로자의 날(노동절)에 국립국어원이 트위터를 통해 ‘노동자를 근로자로 순화해서 써야한다’고 공표했다가 실수를 인정했다. 어찌된 일인지 궁금하다. 항간에서는 국립국어원이 보수적인 사회적 가치를 대변한다는 지적도 많다.

  A) 국립국어원 트위터는 국어생활종합상담실에서 운영 되는데, 담당실무자가 관련 지식을 검색해 질문에 관한 답변을 올려주는 방식이다. 사실 현재는 근로자와 노동자의 개념적 차이가 존재하지 않아 두 개념을 모두 사용하지만 1992년도에는 노동자를 근로자로 순화해서 써야한다는 규칙이 있었다. 물론 1993년도에 바로 폐지되기는 했지만 실무담당자가 1992년도의 규칙만 보고 답변을 해 실수가 생겼다. 상담 과정의 실수를 인지한 직후 바로 보도 자료를 내보내 실수를 인정했다.

  국립국어원이 보수적인 가치를 대변한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국립국어원으로서도 억울한 부분이 있다. 사전이라는 특성상 사회의 변화를 즉각적으로 수용하고 개정하기에는 무리가 있기 때문이다. 이번에 개방형 한국어지식대사전을 편찬하는 것도 세월의 변화를 반영하기 위한 노력이다. 국립국어원에서는 소수 의견을 반영해 단어 기술에서의 다양성 변화를 도모하고자 하는 노력들을 기울이고 있다.

  Q) 국립국어원에서는 ‘우리말다듬기 프로그램’을 통해 순화가 필요하다고 느끼는 단어들이 무엇인지 언중(言衆)들로부터 직접 의견을 받고 있다. 이렇게 순화된 단어들을 통용시키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가.

  

  A) 우리말다듬기 프로그램을 통해 순화 작업을 마친 후, 정부 주도 하에 ‘고시’라는 절차를 통해 매년 적절한 시점에 순화된 용어를 공표한다. 그 외에도 보도 자료를 보내 언론을 통해 간접적으로 대중들에게 순화된 단어들을 알린다. 또한 이와 관련된 자료를 전국적으로 배포해 단어가 통용되도록 노력한다. 하지만 언론에게 순화된 단어를 사용하라고 강제하지는 못하는 만큼 언론에서 자발적으로 순화된 고유어를 사용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러한 측면에서 어문 정책이라는 것은 정부 혼자서 한다고 되는 일이 아니라, 학교와 언론, 공공기관 등의 협력이 있어야 한다.

  Q) 일부에서는 순화 운동이 너무 과해 오히려 언어의 경제성을 해치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있다. 또한 ‘우리말다듬기 프로그램’에서 단어의 순화가 필요하다고 지적하는 일부가 전체 언중(言衆)을 대표할 수 있냐는 우려도 있다.

  

  A) 사실 순화를 인위적으로 고유어로만 하다보니까 음절수가 길어지는 경향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다보니 순화된 용어가 언어의 경제적 측면에서는 수준이 떨어지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국립국어원에서는 순화 과정 중에 가급적이면 음절수도 조절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일부 사람들이 전체 여론을 대표할 수 있냐는 대표성의 측면에서는 분명히 한계가 존재한다. 하지만 ‘우리말다듬기 프로그램’을 참여할 정도로 국어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그만큼이라도 의견을 제시한다면 국립국어원에서는 그들을 여론의 선도자로 볼 수 있다. 그 분들이라도 간헐적으로 순화 운동에 대한 생각을 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귀중한 자원이 된다.

  Q) 대학수학능력시험 과목 중 언어영역에서 읽기, 듣기 영역에 비해 문법 영역이 차지하는 비중이 월등히 낮다. 사실 서울대학교 내에서도 학생들이 문법적인 실수를 하는 경우가 많은데 국립국어원에서는 현재 초·중·고등학교 교육 과정에서 문법 교육이 충분하다고 보는가?

  

  A) 우리나라의 문법 교육은 중학교 과정에서 끝난다. 3년간 여섯 개 단원을 통해 문법 교육을 하다 보니 문법적인 지식을 가르치는 데 한계가 있다. 또한 고등국어에서도 새로운 문법 지식을 알려주기보다는 중학교 과정에서 배웠던 문법 지식을 적용해보는 활동을 하는 것이 전부다. 특히 어법에 관한 교육은 더욱 부족하다. 초등학교 교육에서는 독서교육을 통해 문법 교육이 어느 정도 이뤄지고는 있다.

  한글이 배우기에 무척 쉽게 만들어졌기 때문에 배우기 비교적 까다로운 맞춤법에 대해 학생들의 반발심이 생기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문법에는 고유의 질서와 원리가 있기 때문에 익혀나가고자 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를 위해 국립국어원에서도 문법과 관련된 여러 문헌들을 제공하고 있다.

  Q) 현재 청소년들 사이에 줄임말, 은어 등이 많이 사용되고 있다. 국립국어원에서는 이러한 언어 사용의 변화를 청소년들의 잘못된 문화로 인식하는가, 혹은 국어의 자연스러운 변화로 인식하는가?

  

  A) 단어를 줄여 쓰려고 하는 줄임말 현상은 언어의 경제적 측면에서 매우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따라서 청소년들이 언어를 줄여 쓰는 모습은 청소년들의 언어에 대한 지혜와 재치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를 통해 학문적인 언어를 만드는 힘을 기를 수도 있고, 번역 과정 중에 새로운 단어를 만들어낼 수도 있다. 곧 줄임말 현상은 언어의 특성이자 본성이 반영된 결과다. 단 단어의 음절 하나하나를 해체해서 쓰는 말은 의사소통 과정에서 어려움을 준다. 따라서 무작정 음절을 줄이기보다는 다양한 시도를 통해 줄임말 현상을 자연스럽게 정착시키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Q) 국립국어원에서 청소년들의 바른 언어 사용을 장려하기 위해 실시하고 있는 별도의 정책이 있는가?

  

  A) 국립국어원에서는 ‘아름다운 한국어 가꾸기 운동’이라는 이름으로 중·고등학생들을 대상으로 언어 교육 관련 동아리 지원 정책을 펼치고 있다. 사실 재정적인 어려움이 있지만, 대학생들의 국어 관련 동아리 활성화가 필요할 것 같아 지원 시스템이 유지하고 있다. 최근에는 한글문화연대와의 공모사업도 추진해, 젊은 층의 국어 생활 혁신을 도모하고 있다.

  Q) 표준어대사전에 수록된 사랑, 애정, 연인, 애인, 연애의 의미를 이성애 중심적으로 바꾼 것이 논란이 됐었다.

  

  A) 요즈음에는 사회가 다원화되면서 하나의 단어도 그 형태를 해석하는 시선들이 다양하다. 그렇기 때문에 그 의견들을 모두 만족시키기에는 무리가 있다. 또한 한 단어의 뜻을 풀어 적은 의미와 그 단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인식하는 실제 의미를 조화시키기도 쉽지 않다.

  2010년 국립국어원에서는 ‘남녀 사이’로 한정돼 사용되던 다섯 개 단어의 의미를 ‘두 사람 간’에 적용되는 확장된 의미로 수정하기로 했다. ‘단어의 의미를 좀 더 포괄적으로 정의하자’는 취지였다. 실제로, 영미 사전에서도 ‘남녀 사이의 관계’로 한정됐던 의미를 ‘두 사람 간의 관계’로 확장시키려는 움직임도 있었다.

  하지만 그 후 2013년에 ‘사전에 단어의 의미를 포괄적으로 정의하는 것이 옳은가’에 관해 내부에서 논의가 있었다. 그리고 회의를 거쳐 다시 ‘남녀 간의’라는 말을 붙였다. 남녀 결혼 등 남녀 간의 관계는 전통적인 의미를 갖기 때문에 누구도 이에 대해 부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동성애는 사회적으로 여전히 논란이 존재한다. 이렇듯, 합의된 개념과 합의되지 않은 개념을 대등하게 하다 보니 논란이 지속적으로 생겼다. 이런 문제로 국립국어원이 사회적 논란을 일으키는 것은 국가 기관으로서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해 수정을 거친 것이다.

  또한, 사전은 다수의 통념과 관념을 반영하는 것이 기본이며, 신어를 즉각적으로 실을 수 없다. 사전은 신중하게 쓰여 져야 한다. 즉, 사전은 기본적으로 ‘한걸음 늦게 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사회적인 관용이 먼저 받아들여진 이후에 사전에 등재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해 의미를 변화시켰다.

  하지만 이런 사전의 의미 변화가 동성애를 인정하지 않으려 하는 것은 아니다. 지금까지의 한국 사회가 양성을 기초로 하여 체제를 구축하고 있기 때문에, 이런 논란을 최소화하기 위해 의미를 변화시킨 것이다. 게다가 2013년 이뤄진 전반적인 뜻풀이 점검 과정에서 ‘남녀간의’라는 뜻이 들어간 단어를 조사해 본 결과 수백여 개의 단어들을 찾을 수 있었다. 따라서 다섯 개 단어의 의미만을 확장시키는 것도 논란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판단해 의미를 축소시켰다.

  Q) 2010년에 사랑, 애정 등의 단어의 의미를 확장시킬 때에도 시민단체, 사회단체 등의 지속적인 의견 피력이 있었고, 이번에 의미를 축소시키기 전에도 여러 종교 단체들의 항의가 있었다. 때문에 어떤 사람들은 ‘단어의 의미가 기준 없이 사회적 여론에 휘둘려서 결정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을 하기도 한다.

  

  A) 어떻게 보면 단어의 의미가 사회적으로 영향을 받는다는 사실은 매우 당연하다. 이렇게 단어의 의미를 수정하는 문제는 국가 기관에서 고집을 부리거나 강행한다고 해결될 문제는 아니라고 본다. 이번 논란은 우리 사회가 공동체의 가치에 대해 어떻게 합의해 나갈 것인가를 고민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

 Q) 원장님은 언어의 소통적 기능을 강조하면서 “반대되는 주장이라도 대화를 하다보면 높은 차원에서 공통점이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고 말씀하셨다. 단어의 개념정의에 다양한 집단들의 주장이 대립하고 있는 상황에서 국립국어원이 이에 대해 소통의 장을 마련할 계획은 없는가?

  A) 사실 이 문제에 관해 다시 거론하기는 힘들 것 같다. 물론 언어학계에서 이와 관련하여 많은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기는 하다. 하지만 이 문제는 국어학만의 문제가 아니라 윤리학, 종교학 등 여러 가치가 개입되는 사건이기 때문에 통합적인 시각에서 바라보는 자세가 필요하다. 그렇기에 국어학자만의 논의로 결정할 수 있는 사항은 아닌 것 같다. 때문에 국립국어원에서도 별다른 대책을 마련하고 있지는 않다. 하지만 이 논란을 통해 단어의 의미 영역이 무엇인가에 관해 고민해볼 수 있는 기회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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