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이다경 촬영기자
학생회관 지하로 내려가 ‘헤어클럽’이라 쓰인 반투명 유리문을 열고 들어간다. 그곳엔 지상의 시끌벅적함과는 조금 다른 종류의 소리들이 공간을 채우고 있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 사이사이에 가위질 소리, 바리캉 소리, 그리고 두런두런 말소리가 들려온다. 그 소리들의 중심에는 흰색 가운을 입은 이발소 ‘헤어클럽’의 원장 나정수 씨가 서있다.
학생회관 이발소의 역사는 4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발소는 1975년 학생회관 지하에 문을 열었다. 2001년 학생회관 지하가 식당으로 개조됨에 따라 후생관(현 아시아연구소)으로 자리를 옮겼다. 2010년 후생관이 사라지면서 이발소는 다시 학생회관 지하로 돌아왔다. 이 과정에서 이발소의 구성원도 바뀌어 왔다. 나 씨는 강남의 한 사우나에서 이발소를 운영하다, 사우나가 부도나면서 2005년 이곳으로 직장을 옮겼다. 현재는 나 씨를 포함해 남자 이발사 두 명과 여자 미용사 한 명이 이발소를 꾸려나가고 있다.
오랜 시간 자리를 지켜온 만큼 단골도 많이 생겼다. “정이 들어서 그런지 손님들이 계속 오신다”는 나정수 씨에게는 기억에 남는 손님들이 있다. “머리를 자르러 올 때마다 조는 학생이 있었어요. 그러면 의자를 눕혀 놔요. 그냥 한숨 자라고. 그럼 한 두 시간 자고 일어나요. 나중에 그 학생이 행정고시에 합격한 후 찾아와서 말하더군요. 잠시나마 쉴 수 있게 해줘서 참, 감사했다고.” 또 다른 손님은 공부가 좋아 30여 년 동안 서울대학교에서 학생 신분으로 지내다 몇 년 전 한 대학의 교수로 임명됐다고 한다. 나정수 씨는 “그런 분은 두 번 다시 나오지 않을 것”이라고 웃으며 회상했다.
아직 단골손님들이 있긴 하지만 이발소를 찾는 손님 수는 과거에 비해 많이 줄었다. 나 씨에 따르면 현재 이발소를 찾는 손님은 대부분 교수나 교직원들이고, 학생들은 별로 없다고 한다. 퇴폐 이발소가 등장하고, 젊은 남성들이 미용실로 발길을 돌리면서 이발업은 2000년대 이후 사양길로 접어들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후생관에 비해 학생회관 쪽은 주차가 불편해 자리를 옮긴 후 손님은 더욱 줄어들었다.
그럼에도 나정수 씨는 손님 수에 크게 연연하지 않는다. “적으면 적은대로, 오시는 분들에게 감사하다”고 말하는 그는 보다 만족스러운 서비스를 위해 부단히 노력 중이다. 나 씨는 “이발업 전체가 신기술을 받아들이는 데 소홀했다”는 성찰을 바탕으로, ‘투블럭 컷’ 등 젊은 스타일을 적극적으로 배우고 있다. 그는 이발소의 장점에 새로운 기술이 더해진다면 보다 많은 손님을 끌어들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일반 가위를 주로 사용하는 미용실과 달리, 이발소에서는 숱 가위로 머리를 자르기 때문에 가위자국이 남지 않아 더 깔끔해 보인다”고 설명하는 그의 눈빛에는 이발업에 대한 자부심과, 현재에 안주하지 않는 열정이 가득하다.
주6일의 빡빡한 영업시간 때문에 피곤할 수도 있지만 나정수 씨는 “오시는 손님들이 모두 점잖은 덕분에 크게 힘든 줄 모르겠다”며 현재 생활에 만족을 표했다. 자신의 일에 만족하고 끊임없이 발전을 모색하는 나정수 씨. 그에게 이발소는 과거 속에 갇힌 공간이 아니었다.
*영업시간: 평일-08:00~19:00, 토요일-08:00~17:00 / 연락처: 02-880-55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