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동 사회대 도서관을 이용하는 학생들이라면 한번쯤 마주쳤을 청소 아주머니가 있다. 여느 직원들과 다르게 학생들을 한번쯤 돌아보게 만드는 것은 바로 그녀의 강렬한 머리 색깔이다. 10년째 사회대 도서관 청소를 담당하고 있는 강정행 씨는 사회대 학생들 사이에서 ‘빨간 머리 아줌마’로 통한다.
2005년부터 사회대에서 근무한 강정행 씨는 35년 이상을 서울대에서 보낸 ‘서울대 붙박이’다. 1980년, 남편의 일자리가 어려워지자 강 씨는 당시 3살, 6살이던 아이들을 키우기 위해 학생회관 식당에 직원으로 취직했다. 그렇게 서울대 식당에서만 25년을 보내고 정년퇴직을 맞은 그는 이듬해인 2005년, 서울대학교 청소 업체 직원으로 재취업했다. 강 씨는 재취업 이후 10년째 16동 및 사회대 도서관에서 근무하고 있다.
‘서울대 붙박이’답게 그는 1980년 이후 학교의 역사를 또렷이 기억하고 있다. 강 씨는 “제15대 권이혁 박사부터 시작해서 25대 오연천 박사까지 11명 총장들의 취임식을 대부분 지켜봤다”며 역대 총장들의 이름을 줄줄 읊었다. 그에게 특히 기억에 남는 것은 1980년 5월, 광주민주화운동의 연장선으로 교내에서 시위가 열리던 날이다. 건물 곳곳에 천막이 쳐지고 군인들이 들어왔던 일, 식당 직원들과 옥상으로 올라가서 봤던 자욱한 최루탄 연기, 학생회관에서 기르던 개가 놀라서 이리저리 날뛰며 짖던 일 등이 강 씨의 뇌리에 아직도 생생하다.
오랜 세월 학교에서 근무하면서 학생들과의 에피소드도 많다. 특히 학생들의 물건을 찾아준 적이 여럿 있었다. 한 번은 배터리가 나간채로 있던 휴대폰을 우여곡절 끝에 찾아준 적이 있었는데, 다음 날 학생이 감사의 표시라며 짧은 봉투를 건넸다고 한다. 강 씨는 “숙직실에 갖다놓고 다시 일하러 갔다왔는디 나중에 열어보니까 편지랑 같이 돈이 들어있었어. 바로 열어봤으면 쫓아가서 돌려주기나 했을틴디…”라며 당시를 회상했다. 강 씨는 학생에게 받았던 그 편지를 아직도 서랍 속에 고이 간직하고 있다. 그는 “학생이 준 돈으로 고등어 반찬을 사서 청소 아줌마들과 맛있게 먹었다”며 “학생을 다시 만나면 꼭 그 돈을 돌려주고 싶다”고 말했다.
그의 트레이드마크가 된 독특한 헤어스타일과 패션은 학교에서 오래 근무하면서 나오게 된 것이다. 강 씨는 “젊은 학생들과 어울리는 공간에서 지낸다는 생각에 흰머리를 염색하면서도 조금 더 과감한 색깔을 선택하고, 마음에 드는 외출복을 입고 당당하게 출퇴근을 한다”고 말했다. “일을 쉬는 기간에는 끊임없이 여행을 하고 세상 구경을 한다”는 그는 지난 겨울 캄보디아 여행 때 찍은 사진을 꺼내 보였다. 선글라스를 끼고 활짝 웃는 그의 모습이 여느 대학생의 모습처럼 젊게 느껴졌다.
이제 그는 서울대에서의 두 번째 퇴직을 2년여 앞두고 있다. “서울대는 이제 집과도 같다”고 말하는 강 씨는 “딸이 초등학교 들어갈 때 까지 하자며 시작한 일인데, 지금 내 손녀딸이 고등학교 3학년”이라며 웃었다.
“학생들이 이렇게 알아주니까 30년 넘게 일한 게 헛되지 않았다”며 학생들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는 ‘빨간 머리 아줌마’ 강정행 씨. 16동을 지나다 그를 만나면 반갑게 인사를 건네 보는 것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