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서비스지회의 1년, 그리고 현재

“지금이 가장 힘듭니다” 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지회 박성주 부지회장이 인터뷰 중 한 말이다.삼성전자서비스지회는 지난 6월 28일 삼성을 상대로 기준단체협약을 얻어냈다.이로써 76년간 유지해온 삼성의 ‘무노조 경영 신화’가 무너지고 삼성에 최초로 단체협약을 지닌 노동조합이 생기게 됐다.노조의 불모지라 불리는 삼성에서 지회가 이루어낸 성과에 대해 축하와 찬사가 이어졌다.

“지금이 가장 힘듭니다”

 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지회 박성주 부지회장이 인터뷰 중 한 말이다. 삼성전자서비스지회는 지난 6월 28일 삼성을 상대로 기준단체협약을 얻어냈다. 이로써 76년간 유지해온 삼성의 ‘무노조 경영 신화’가 무너지고 삼성에 최초로 단체협약을 지닌 노동조합이 생기게 됐다. 노조의 불모지라 불리는 삼성에서 지회가 이루어낸 성과에 대해 축하와 찬사가 이어졌다. 하지만 단체협약 체결 후 약 두 달이 지난 지금, 삼성전자서비스지회 내부는 마냥 밝지만은 않다. 문제들은 여전히 해결되지 않았고, 투쟁은 계속되고 있다. 삼성전자서비스지회의 지난 1년과 현재를 짚어봤다.

‘또 하나의 전태일’, 삼성전자서비스 기사들의 열악한 노동 환경

 삼성전자서비스지회 위영일 지회장은 작년 초 자신의 블로그에 ‘2013년 또 하나의 전태일 열사가 있다. 그 사람들은 바로 삼성전자서비스 직원들이다’하는 글을 올렸다. 이 글은 당시 노동조합 준비에 한창이던 삼성전자서비스 직원들의 열악한 노동 실태를 시민에게 알리는 계기가 됐다. 위 씨가 전태일과 삼성전자서비스 직원들을 비교한 것은 이들도 40년 전 전태일과 마찬가지로 당연히 지켜져야 할 근로기준법 준수 쟁취를 위해 싸우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위영일 지회장이 노조 결성 전 부산 동래센터 재직 시 가장 먼저 요구한 것이 ‘최저임금’이었다. 6월 체결된 기준단체협약에서도 제1순위는 임금 체계 개선이었다. 기존에 삼성전자서비스 직원들의 임금은 기본급 없이 제품 수리 건 수에 따른 ‘건당 수수료 체계’를 기반으로 지급돼왔다. 직원들은 각 기기의 고장 유형 별 수리시간에 분급 225원을 곱한 값을 임금으로 받는다. 예컨대 A 기기의 수리시간이 30분으로 정해져있다면 A기기를 수리 완료시 30분에 225원을 곱한 6750원을 벌게 된다. 이 체계는 수리 전후 시간, 이동 시간, 상담 시간 등을 모두 제하고 수리에 걸린 시간만을 노동 시간으로 친다. 또한 수리가 오래 걸리거나 실패하면 그 손해는 고스란히 직원에게 돌아간다. 더구나 이 서비스 과정에서 필수적으로 발생하는 식대, 통신비, 차량 유지비 등도 직원들의 급여에서 공제한다. 이 기이한 임금체계 하에서 삼성전자서비스 직원들은 최저임금도 보장받지 못했다. 삼성전자서비스 직원들은 성수기에는 최대한 많은 건수를 처리하기 위해 과로에 시달렸다. 하루 열 세 시간 이상 일하면서 휴일도 없었다. 한편 비수기에는 건수가 없어 최저임금에 한참 못 미치는 급여를 받았다. 시간 외 수당과 연차 수당은 당연히 없었다.

삼성전자서비스 수리기사들은 안전사고에도 노출돼 있다. 사진은 삼성전자서비스 기사가 아파트 고층 난간에 매달려 에어컨을 수리하는 모습. ⓒ삼성전자서비스지회.jpg

▲삼성전자서비스 수리기사들은 안전사고에도 노출돼 있다. 사진은 삼성전자서비스 기사가 아파트 고층 난간에 매달려 에어컨을 수리하는 모습. ⓒ 삼성전자서비스지회

 힘든 것은 육체뿐만이 아니었다. ‘삼성은 고함치면 잘해준다’는 우스갯소리는 곧 삼성전자서비스 직원들의 슬픈 초상이었다. 직원들은 고객들의 터무니없는 요구를 온몸으로 감내해야 했다. 노동환경건강연구소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자의 23.5%, 30.4%가 각각 중등도, 고도 우울상태에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자살 충동을 느낀 적이 있는 노동자가 34.8%, 최근 1년 사이 실제로 자살을 시도한 노동자가 4.5%였다. 자살 충동 사유의 72.7%, 자살 시도 사유의 50.0%가 ‘직장 내 문제’인 것으로 나타났다.

 삼성전자서비스지회의 창립은 이런 착취적인 노동환경에 있던 직원들의 울분이 터져나온 결과였다. 위영일 지회장 등이 기자회견을 하고 조합원을 모집하기 시작한 그날만 몇 백 장의 가입서가 금속노조 측으로 날아들었다. 위 씨는 작년 7월 14일 있었던 창립총회를 ‘울음바다’로 묘사했다. 그는 “조합원들이 마치 억울한 일 당한 초등학생이 엄마 앞에서 울 듯 숨 넘어 갈 듯 울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책임지지 않는 삼성, ‘삼성이 죽였습니다.’

 삼성전자서비스 직원에 대한 이와 같은 착취는 ‘삼성전자-삼성전자서비스-협력사(삼성전자서비스센터)’로 이어지는 간접고용 체계를 기반으로 한다. 삼성전자서비스지회 설립 초기부터 함께 활동한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 류하경 변호사는 삼성의 고용형태가 ‘위장도급’이며 명백한 위법이라고 말한다. 그는 “삼성은 센터 수리기사들을 교육·감독하고 보고도 받고 상벌도 줬다”며 “마치 자기 직원처럼 쓴 것인데, 이는 일의 완성을 위한 도급 계약이 아니라 간접 고용인 파견 근로 계약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파견 근로는 간접고용으로, 노동자의 지위가 불안정해질 수 있는 염려가 커 법에서 엄격하게 규정하고 있다. 류 씨는 “삼성전자서비스센터에서 하는 수리업은 파견이 허용되지 않고, 각 센터들도 노동부 장관으로부터 허가를 받지 않아 파견 근로가 불가능하다”고 이야기했다. 류 씨는 현재 원청인 삼성전자서비스를 상태로 삼성전자서비스 직원들이 제기한 ‘근로자지위확인소송’을 맡아 진행하고 있다.

 삼성 측은 도급 계약을 내세요 책임이 각 협력사에 있다며 삼성전자서비스 직원들이 겪은 착취에 대해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 삼성 측은 그런 한편으로 노조 조합원들에 대해 탄압을 가했다. 가장 흔한 방법은 ‘표적 감사’다. 본래 감사는 일 년에 2번, 3~6개월 치 자료를 가지고 이루어지는 것이 보통이지만 노동조합 창립 이후 마구잡이로 진행됐다. 협력사 측은 본래 감사가 이루어지지 않는 기간에 3~5년 치 자료를 가지고 조합원들을 압박했고 이것이 적게 수만 원에서 많게는 수십만 원에 이르는 월급 공제로 이어졌다. ‘일감 몰아주기’도 횡행했다. 이것은 조합원이 없는 지역에 일감을 몰아줘 조합원들의 일감을 끊는 방식이다. 그러던 와중 지난 해 말 천안분회 조합원이었던 고 최종범 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최 씨 또한 표적 감사의 희생양이었다. 센터 사장이 최 씨에게 심각한 인격적 모독을 한 사실도 녹취 자료를 통해 드러났다. 센터 사장은 최 씨가 아내, 아이와 함께 있는 저녁 시간에도 전화를 해 ‘고객이 주장(항의)하는 게 있으면 네가 지져버리든지, 칼로 찔러 갈기갈기 찢어서 죽여 버리든지 해야지’ 등의 폭언을 퍼부었다. 최 씨는 “(지회에)부디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라는 카카오톡 메시지를 마지막으로 남기고 차 안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위영일 지회장은 “최 씨가 본인도 힘들어했지만 주위 동료들이 똑같이 당하는 걸 보고 많이 힘들어 했다”며 “이것은 삼성이 노동조합을 탄압하기 위해 저지른 살인이다”라고 말했다.

고 최종범 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기 전 조합원들에게 남긴 SNS 전문. ⓒ삼성전자서비스지회.jpg

▲고 최종범 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기 전 조합원들에게 남긴 SNS 전문. ⓒ 삼성전자서비스지회

두 사람의 죽음, 한 번의 시신·유골 탈취, 무기한 투쟁과 극적 타결

 삼성전자서비스지회는 이후 전국 각지에서 동시다발적인 1인 시위, 결의대회, 시민선전전, 각 센터 앞 집회를 진행했다. 12월 3일부터는 서초동 삼성 본관 앞에서 노숙농성이 이어졌다. 수백에 달하는 조합원들이 한겨울 강남 한 복판 시멘트 위 노숙농성에 동참했다. 노숙농성 16일, 고 최종범 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지 51일 만인 12월 20일, 지회는 사측의 권한을 위임받은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와 과도기적 협상을 타결했다. 합의안에는 ▲생활 임금 보장 ▲업무 차량 리스와 유류비 지급 ▲노조 탄압 금지 ▲유족 보상 등의 내용이 포함됐다. 지회의 우선적 목표인 노사 간 단체협약에 대한 언급도 있었다.

 결과적으로 합의안은 제대로 이행되지 않았다. 노조에 대한 탄압이 오히려 가속화됐다. 센터 사장들이 조합원에게 조합 탈퇴를 종용했고, 본사나 외부에서 대체 인력을 들여 조합원의 일거리를 빼앗았다. 2월 말에는 부산 광명해운대센터, 아산센터, 이천센터 등이 노조를 압박하기 위한 ‘위장폐업’에 들어갔다. 지회 측에서 이에 대항해 1월부터 게릴라 파업, 권역별 총파업, 전국 경고파업 등을 벌였으나 경총 측에서는 나몰라라 했다. 교섭이 늦춰지면서 조합원들의 생계가 날로 악화됐다. 결국 또 한 번의 비극이 발생했다. 5월 17일 양산분회장인 고 염호석 씨가 강릉 해안도로 위 자신의 차 안에서 싸늘한 시신으로 발견됐다. 염 씨의 유서에는 ‘더 이상 누구의 희생도 아픔도 보질 못하겠으며 조합원들의 힘든 모습도 보지 못하겠기에 절 바칩니다’라는 말이 적혀있었다. ‘지회가 승리할 때 까지 시신을 안치해달라’는 부탁도 함께 담겼다. 그러나 이 부탁은 지켜지지 못했다. 서울의료원 강남분원 장례식장에 안치됐던 염 씨의 시신은 무장한 경찰 병력 200여 명의 난입으로 탈취돼 20일 오전 밀양화장장에서 화장됐다. 경찰 측은 염 씨 부친의 신고를 받고 출동했다고 주장했다. 위영일 지회장은 “염 씨 아버님이 삼성의 합의금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며 “정황상 삼성 측이 염 씨 부친을 회유해 일을 진행한 듯하다”고 말했다.

삼성전자서비스지회 조합원들이 경찰 측의 시신 탈취에 항의하자 경찰 측에서 조합원들에게 캡사이신을 살포하고 있다. ⓒ삼성전자서비스지회.jpg

▲삼성전자서비스지회 조합원들이 경찰 측의 시신 탈취에 항의하자 경찰 측에서 조합원들에게 캡사이신을 살포하고 있다. ⓒ 삼성전자서비스지회

6월 18일 삼성서비스지회 조합원들이 서초동 삼성본관 앞에서 무기한 노숙농성을 하는 모습. ⓒ삼성전자서비스지회.jpg

▲6월 18일 삼성서비스지회 조합원들이 서초동 삼성본관 앞에서 무기한 노숙농성을 하는 모습. ⓒ 삼성전자서비스지회

 염 씨의 죽음과 시신 탈취 사건은 삼성전자서비스지회에 큰 충격을 안겼다. 지회 측은 염 씨의 죽음 이튿날인 5월 18일부터 총파업과 서초동 삼성본관 앞 무기한 노숙 농성을 전개했다. 이 농성에는 전국에서 올라온 노동자들이 함께했다. 시멘트 바닥에서 천여 명이 밤을 지새운 노숙 농성이 41일 째를 맞은 6월 28일, 삼성 무노조 신화를 깨는 기준단체협약이 체결됐다. 합의안에는 ▲삼성이 고 염호석씨 관련 애도·유감·재발방지 노력 내용과 교섭타결 보도 자료를 낼 것 ▲2달 이내 폐업센터 소속 조합원에 대한 고용 승계 ▲타임오프 9000시간(6명 이내 분할 사용) 및 사무실 보증금 1억 원 지원 등 노조활동을 보장 ▲급여체계를 ‘기본급(120만 원)+건당 수수료(기준 60건 이상 건당 2만5천 원, 다만 편차 인정)’로 표준화하는 등의 내용이 포함됐다.

삼성 무노조 신화 격파, 하지만 달라진 것은 ‘無’

 삼성전자서비스지회가 타결한 기준단체협약은 비공개 교섭이나 삼성을 상대로 이끌어 낸 첫 단체교섭이라는 데 의의가 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그 내용적 미흡함을 지적하기도 한다. 류하경 변호사는 “역사적으로 큰 성과를 거둔 것은 맞지만 실질을 들여다보면 법에 명시된 최저임금, 노동3권을 되찾아온 것 뿐”이라고 평가했다.

 현재 삼성전자서비스지회 조합원들을 가장 괴롭게 하는 것은 이 ‘당연한’ 협약안조차 각 협력사에서 잘 받아들이지 않고 있는 데에 있다. 기준협약은 최소 조건을 보여주는 일종의 ‘샘플’이다. 기준협약의 타결 자체는 강제력이 없고, 이를 바탕으로 각 협력사에서 개별교섭을 통해 임금 및 단체협약을 체결하면 그때부터 강제성이 생긴다. 기준협약을 체결할 때 개별교섭을 7일 내에 마무리 짓기로 했지만 한 달이 지난 지금까지 인천, 중부권(대전충청)을 제외한 나머지 지역에서는 교섭이 아직도 진행 중이거나 결렬된 상태다. 이처럼 개별교섭이 지지부진한 데 대해서 지회 측은 협력사 사장의 이기심과 권한 부재를 가장 큰 이유로 들고 있다. 박성주 부지회장에 따르면, 일부 사장들이 계약을 왜곡하는가 하면, 실질적인 권한이 없는 ‘바지사장’들은 다른 권역과 삼성 측의 눈치를 보느라 시간 때우기에만 골몰하고 있다.

 6월 28일 체결된 기준단체협약은 7월 1일부터 효력이 발생했다. 하지만 개별교섭이 대부분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대다수 조합원들의 상황은 이전과 달라진 것이 없다. 조합원 성영섭 씨는 “적게는 50만 원에서 보통 100만 원 내외의 기존급여보다도 못한 월급을 받았다”고 전했다. 허윤무 강원분회의장은 “가장 큰 문제는 임금 투명성 확보”라고 밝혔다. 사측에서 기준을 밝히지 않고 임의로 월급을 지급했기 때문이다. 기준협약에서는 “임금은 투명성을 반영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고 했지만, 개별교섭이 이루어지지 않은 상황에서 이것을 강제할 방법이 없다. 조합원들의 생활고가 계속되고 있고, 대체인력과 일감몰아주기를 통해 노조에 압박을 주는 것도 여전하다. 위장폐업 문제도 기준단협의 내용과 달리 아직 완전히 해결되지 않았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기준단체협약 이후 조합원들의 부풀었던 기대는 깊은 실망으로 바뀌고 있다. 박성주 부지회장은 “1년 넘게 싸워왔는데, 지금 이 시기가 가장 힘들다”고 토로했다. 그는 “외부에서는 축하하는 분위기지만 우리는 아무것도 변한 게 없다”며 “조합원들이 굉장히 실망하고 분노하고 있다”고 전했다. 큰 성과는 거뒀지만 여전히 산더미같은 문제를 안은 채로, 삼성전자서비스지회는 8월 16일 고 염호석 씨의 49재를 치렀다. 고 최종범 씨와 고 염호석 씨의 죽음을 지회와 함께 지켜봤던 류하경 변호사는 “헌법에 명시돼있는 노동권을 보장해달라고 하는 것뿐인데, 그 당연한 것 때문에 사람이 죽었다”며 “우리나라 노동 환경이 이만큼 척박하다”고 착잡하게 말했다. ‘당연한 권리’를 찾기 위해 삼성전자서비스지회가 얼마나 더 많은 산을 넘어야 할지 알 수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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