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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총장의 탄생
지난 2월 20일 총추위는 제26대 총장후보자 모집 공고를 띄웠다. 3월 20일 총추위는 총장후보대상자 12인을 확정했고, 4월 3일에는 이를 다시 5명으로 압축했다. 4월 25일에는 교직원으로 구성된 정책평가단이 예비후보자 5명에 대한 평가를 실시했다. 정책평가단의 평가 결과 오세정 교수(물리천문학부)가 1위를 차지했고, 성낙인 교수(법학과)와 강태진 교수(재료공학부)는 각각 4위와 5위를 차지했다. 4월 30일 총추위는 5명의 예비후보자에 대한 평가를 별도로 실시했고, 이 결과와 정책평가단의 평가결과를 6:4로 합산해 총장후보자 3인을 선정했다. 합산 결과, 오세정 교수가 1위를 차지했으며 성낙인, 강태진 교수가 공동 2위를 차지했다. 5월 14일 총추위는 활동결과 최종보고서를 채택함으로써 활동을 일단락 지었다.
3인의 후보자 중 1인의 최종 후보자를 선출하는 것은 이사회의 몫이었다. 이사회는 6월 13일 후보자들을 면접했고, 6월19일에는 최종 후보자로 성낙인 교수를 선출했다. 성낙인 교수는 전체 15표 중 8표를 받았다. 최종 후보자 선출 과정에서 이사들 간의 토론은 이뤄지지 않았으며 투표방식은 무기명 비밀투표였다. 이후 성낙인 교수는 교육부 장관의 제청과 대통령의 임명을 거쳤다. 성 교수는 7월 20일부터 정식으로 총장 업무를 시작했으며 8월 5일에는 취임식을 가졌다.
교수들, 한 목소리를 내다
이사회가 총추위의 추천 순위를 뒤엎고 공동 2순위 후보였던 성낙인 교수를 최종 후보자로 지목하자 학내 곳곳에서 즉각적인 비판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7월 2일에서 4일까지 서울대 전임교수를 대상으로 교수협의회(교협)가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74.78%(전체 응답자 1007명 중 753명)가 총장 후보선출 과정에 불만이 있다고 답했다. 이사회의 결정이 있었던 다음날 교협 회장을 맡았던 이정재 교수(조경·시스템공학)는 회장직에서 사퇴했고, 그와 동시에 교수협의회 이름으로 성명서를 발표했다. 교협에 이어 평의원회와 ‘민주화를 위한 전국 교수 협의회(민교협)’, 그리고 인문대, 사회대, 자연대 평교수들이 차례로 성명서를 발표해 항의의 뜻을 표했다. 6월 27일 교협은 긴급 이사회를 열어 대응 방안에 대해 논의했고, 7월 9일에는 교수-학생-직원으로 구성된 연석회의가 열리기도 했다. 7월 16일에는 27년 만에 최초로 교협 임시총회가 열렸다. 교수들이 한 목소리로 항의의 뜻을 나타내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었다.
이사회, 총의를 무시하다
갈등의 시작은 이사회가 총추위의 추천 순위를 뒤엎은 것이었다. 교협은 성명서를 통해 이번 사태를 ‘이사회가 법 규정의 소홀한 틈을 타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러서 생긴 참사’라고 비판했으며 ‘(이사회는) 결정을 내리게 된 이유를 설명하되 그 정당성을 인정받지 못할 경우 전원 사퇴하고 재신임 받을 것’을 촉구했다. 평의원회도 성명서를 통해 ‘이사회가 제도적 허점을 악용하여 교내 구성원의 의사를 무시’했다며 ‘도덕적 정당성을 확보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번 사태는 그 동안의 불문율을 깨는 것이었다. 지난 20년간 서울대 총장은 직선제로 선출됐다. 지금과 마찬가지로 최종 임명권자는 대통령이었고 교직원들은 직선제 선거를 통해 선출된 2인의 최종 후보자를 대통령에게 추천했다. 하지만 이번 선거처럼 교직원들이 추천한 최종 순위가 뒤바뀐 전례는 없었다.
법인화 이후 이사회가 조직되며 최종 의결권이 이사회로 넘어갔다. 따라서 총추위에서 결정한 내용을 그대로 추인하라고 이사회에 요구할 수 없다는 지적도 있다. 이에 대해 평의원회 의장 정근식 교수(사회학과)는 “최종 의결권을 부여한 것과 전권을 주는 것은 다른 문제”라며 “최종 의결권이 있다고 총의를 무시하고 마음대로 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특히 서울대 이사회는 여타 사립대 이사회와는 달리 재단 형성의 공이 있는 것도 아니고, 국민적 대표성이 있는 인사로 구성된 것도 아니기 때문에 더욱 총의를 존중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교협 이정재 회장은 “1순위 후보를 검토하고, 2순위 후보를 검토하는 방식으로 선출된 결과라면 그나마 납득을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사회가 세 명의 후보를 두고 토론도 거치지 않은 채 원점에서 재평가하여 무기명 투표를 하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는 지적이다. 또한 평의원회 정근식 의장은 총추위에 이사회 추천 인사가 다섯 명이나 포함되어 있던 사실에 대해서도 문제를 제기했다. 정 교수는 “이사회는 총추위에 인사 추천을 하지 말거나 인사를 추천했다면 그 순위를 최대한 존중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다른 교수들도 총추위 위원 다섯 명이 합의하면 원하는 사람을 총장후보자 3인에 올릴 수 있기 때문에, 이사회가 정당한 이유 없이 총추위의 순위를 무시하는 것은 이사회 마음대로 총장을 선출하겠다는 것과 다름없다고 지적했다.

▲지난 7월 16일 교협은 27년 만에 최초로 임시총회를 열었다. Ⓒ 연합뉴스
‘총체적 난국’이었던 선거
민교협 최갑수 교수(서양사학과)에 따르면 이번 선거 과정은 이사회만 문제였던 것이 아니라 ‘총체적 난국’이었다. 최 교수는 이번 선거에 대해 “초등학교 반장선거보다 못한 수준”이라고 일침을 가했다. 다른 교수들도 이사회 뿐 아니라 총추위와 오연천 전임 총장 등에 비판을 제기하고 있다.
총추위는 선거과정에 지나치게 많이 개입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최 교수는 “총추위는 선거 관리 기능만 하고 후보자를 좁히는 과정은 학내 구성원들에게 맡겨야 했다”고 말했다. 이번 선거 과정에서 총추위는 12명의 후보자를 5명으로 압축하는 과정과 5명의 후보자를 3명으로 추리는 과정 모두에 참여했다. 최 교수는 “12명의 후보를 5명으로 줄이는 과정은 효율성을 위해 개입했다고 쳐도 그 이후에는 참여하지 말았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5명에서 3명으로 후보자를 줄이는 과정은 정책평가단의 평가 결과와 총추위의 평가결과를 합산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정책평가단은 무작위로 선발된 222명의 교수와 22명의 직원으로 구성됐다. 그러나 이 때 총추위의 평가결과가 정책평가단의 평가결과 보다 더 높은 비중으로 반영됐으며, 그에 따라 정책평가단의 평가 순위가 뒤엎어졌다. 정책평가단은 4월 25일 정책평가를 통해 오세정 교수를 1위, 성낙인 교수와 강태진 교수를 각각 4위와 5위로 평가했다. 총추위 평가는 그 이후인 4월 30일에 시행됐는데, 총추위 평가 내역은 공개되지 않았으나 정책평가단의 평가 결과와 최종 합산한 결과 오세정 교수가 1위, 성낙인 교수와 강태진 교수가 공동 2위를 차지했다. 교협 긴급이사회에서 일부 교수들은 이 같은 결과를 두고 “총추위가 일반 교직원들의 정책평가 결과를 뒤집음으로써 이사회가 총추위의 평가 결과를 존중하지 않아도 할 말이 없게 됐다”고 비판했으며 “총추위가 내린 결정이 전체 교직원의 의견을 대변했다고 볼 수 있겠냐”고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다. 한편 평의원회 부의장 자격으로 총추위 위원장을 맡았던 황인규 교수는 아무런 의사 표명 없이 평의원회 부의장직을 사퇴한 상태다.
오연천 전임 총장에 대한 비판 여론도 높다. 오 전 총장은 현재의 이사회를 구성한 인물이자 총장선거제도를 정비한 인물로 이번 총장선거에 대해 전반적인 책임이 있다. 교수협의회는 지난 7월 16일 임시총회를 마친 뒤 입장발표를 통해 “오연천 총장은 서울대학교 교수로 복귀하지 말 것을 권고 한다”고 촉구하기도 했다. 공식 석상에서 개인에게 비판의 화살이 돌아간 것은 이례적인 사례다.
오연천 전임 총장은 이번 선거와 관련하여 후보자들이 다 나온 뒤에야 제도가 완성되도록 방치했다는 비판도 받고 있다. 그렇게 함으로써 본인에게 유리하게 선거가 돌아가도록 했다는 것이다. 그에 따라 결과적으로도 오연천 전임 총장이 원하는 대로 선거가 마무리 됐다는 평가가 많다. 성낙인 신임 총장은 이번 선거 과정에서 오 전 총장에게 신세를 지게 됐고, 성 총장이 임명한 처장급 인사 가운데 이철수 기획처장을 제외한 대부분이 ‘오연천의 사람’으로 분류된다는 점이 이를 뒷받침한다는 지적이다. 평의원회 의장 정근식 교수는 “작년 8월부터 선거 제도를 정비하기로 했고 평의원회도 이에 맞춰 연구결과를 발표했으나 본부에서 이를 거절하고 방치했다”고 전했다. 교협 이정재 회장도 “후보자를 보고 그에 맞춰 자신(오연천 전 총장)에게 유리하게 규정을 정한 게 아니냐는 비판은 충분히 개연성 있는 지적”이라고 언급했다.
오연천 전임 총장은 임기 마지막 날 교수 1인당 500만 원의 교육·연구 장려금을 지급해 교수들의 반발을 사기도 했다. 교협에서는 장려금 모금운동을 벌이며, 단체 발송 이메일을 통해 ‘총장 선출 이후 학내에서 벌어진 갈등이 가라앉기도 전에 이런 지급 계획이 통보됐다는 점이 석연치 않다’며 이는 ‘서울대 교수진의 명예와 자존심에 큰 상처를 주는 일’이라고 비판했다. 한편 오 전 총장은 7월 11일 총장 이임인사에서 이번 선거과정에 대해 짧게 유감을 표했으며 현재는 스탠퍼드 석좌교수로 자리를 옮긴 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