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재보험은 노동자들의 업무상 재해를 신속하고 공정하게 보상하고 재해예방과 노동자들의 복지증진을 위해 1964년에 도입된 우리나라 최초의 사회보장제도다. 올해로 산재보험은 시행된 지 50주년을 맞았다. 보험의 적용대상과 보상수준을 점차 확대해나가는 추세지만 여전히 문제가 많은 제도라는 목소리도 크다. <서울대저널>은 한국경영자총협회 임우택 안전보건팀장과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최명선 노동안전국장을 만나, 50년이라는 짧지 않은 역사를 지닌 산재보험의 문제점과 개선방안에 대한 의견을 들어봤다.
Q. 삼성반도체 백혈병 사망자의 산업재해 인정이 7년 만에 이뤄졌다.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이 제1장 제1조에서 밝힌 목적인 “근로자의 업무상의 재해를 신속하고 공정하게 보상”을 진정으로 실현하고 있는 법이라고 생각하는가.
A. 한국경총 임우택(임): 개별 사례를 일반화하는 오류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 산업재해보상제도는 신속성과 공정성이라는 두 가지 원칙에 입각해 운영돼야 한다. 원인주의에 입각해서 형평성과 공정성에 대해서도 분명하게 짚고 넘어가야 한다. 직업병을 제외한 산재 사고 중 90% 이상의 사건에 대해선 사업장에서 사고가 났다는 것만 입증되면 보상이 지체될 이유가 없다. 직업병의 경우도 개인적인 요인에 의해 발생한 것이 아니고 특정 유해물질을 사용해 발병한 것이 분명하다고 역학조사나 기존사례를 통해 판단되는 영역은 인정된다.
삼성반도체 사건의 경우 벤젠이 근로자의 직업병을 일으킬 만큼 사용됐고 노출됐는지, 일반 국민과 해당 근로자들 간 통계적 수치에 이상이 있는지 최초로 검토했을 때 질병의 업무관련성이 낮다고 나왔다. 이 결과가 판정위원회심사, 재심사, 소송까지 거치면서 처리가 길어졌다.
민주노총 최명선(최): 직업성 암을 비롯한 많은 직업병이 보상받기까지 5~6년의 긴 과정을 거치는 경우가 많다. 직업성 암에 걸린 노동자들이 장기간의 처리과정 속에서 중도 사망하는 경우도 많다. 직업성 암이 발병한 것 자체도 큰 문제인데 소송하는 과정도 힘들어서 노동자들의 고통이 매우 크다.
신속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공정하지 않기 때문에 노동자들의 투쟁이 계속된다. 산업안전보건법에 의하면 사업주는 정기적으로 작업환경을 측정하고 그 결과를 보존해야 한다. 사용자는 사용물질에 대한 정보를 사업장에 붙여놓고 위험물질에 대해선 경고표시도 해야 하며 그 공정에 투입되는 노동자에게 교육해야 한다. 하지만 이것들이 위반된 상태에서 노동자들은 병에 걸린다. 대기업들이 사용하는 화학물질의 정보를 공개하지 않는 비율이 90%가 넘는다. 노동자에겐 아무런 정보가 제공되지 않는 상태가 일할 때부터 소송까지 계속된다.
Q. 세계보건기구는 전체 암 환자 중 최소 4%를 직업성 암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 한 해 발생하는 암 환자 20만 명 가운데 단 0.01%만이 직업성 암으로 인정받고 있다. 직업성 암 판정이 잘 내려지지 않는 이유와, 판정절차 상에서 짚을 수 있는 문제점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A. 임: 다른 나라에서도 암 환자 중 직업성 암 판정 인정 비율은 4%가 되지 않는다. 우리나라의 전체적인 직업병 승인율은 50%가 넘고, 직업성 암과 관련된 승인율만 봐도 20~30% 정도로 외국보다 결코 떨어지지 않는다. 즉, 직업성 암의 승인율 자체가 낮은 것은 아니다.
다만 인정 건수는 외국에 비해 적다고 할 수 있다. 근로자들이 암 발생 시 그것이 직업병일 수도 있다는 인식이 부족했던 면이 있다.
최: 대부분의 직업성 암이 잠복기가 길다. 노동자가 작업하던 시기에 어떤 물질을 다뤘는지, 어느 정도 노출됐는지에 대한 자료가 없거나, 있어도 사업주가 공개하지 않는다. 노동자들은 그 정보를 갖지 못하므로 직업성 암이 발생한 원인을 밝히지 못한다. 지금은 여러 투쟁 과정을 통해 직업성 암 승인 절차가 많이 바뀌었지만 그 전에는 많은 직업성 암들에 대해 역학조사가 이뤄지지 않았다. 임의적인 판단으로 아예 조사를 나가지 않은 채 불승인하는 경우도 많았다.
더 큰 문제는, 직업성 암이 많이 발병할 위험군으로 분류되는 노동자들이 상당수 있는데도 신청 자체가 많이 안 된다는 것이다. 이는 자신이 사용하는 물질에 대해 충분히 교육받지 못해서 직업과 병의 연관성에 대해 잘 모르기 때문이다. 단기간노동자의 경우 자신이 오래 전에 근무했던 사업장에서의 근무기록을 증명하지 못해 산재신청이 적을 수밖에 없다.
Q. 대기업에서 하청업체로 산재가 전가되는 현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리고 개선을 위해 어떤 조치가 취해져야 할까.
A. 임: 안전에 대한 관심과 투자, 관리방식에 있어서 소규모 사업장과 대규모 사업장 간의 차이에 의해 나타나는 결과다. 중소 사업장의 모든 산재가 원청에 책임이 있다는 것처럼 호도하는 건 잘못된 것 같다. 원청의 사업장 밖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모두 원청이 책임지는 것은 공정거래법상 부당지배개입행위가 된다.
대기업에서 위험한 산업을 하청에 맡길 땐 고용부의 인가를 받게 돼있고, 원청이 산재예방을 위해 해야 할 조치들을 명확히 규정하고 있다. 이런 제도의 틀 속에서 얼마든지 관리가 가능하다. 법적으로 사각지대가 있다면 도급 인가사업을 확대하거나 관리를 강화하는 등의 방식으로 해결해야 한다. 대기업이 사회적 책임을 다해 취약계층 사업장에 대한 지도를 강화하는 등 공생·협력하기 위한 노력도 필요하다.
최: 대기업들은 주로 위험한 업무에 대해 하청을 주고 있으며 그 비중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 하청 노동자들은 일반적으로 작업환경이 열악하고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므로 산재나 직업병의 발병 확률이 더 높아진다.
기본적으로 민주노총은 간접고용에 반대하는데 특히 위험한 업무를 도급 주는 것을 금지해야한다는 입장이다. 산업안전보건법 28조엔 위해·위험업무에 대한 도급금지 조항이 있지만, 내용을 보면 금지가 아니라 정부의 허락을 받고 도급을 주라는 정도다. 범위도 옛날에 문제제기가 됐던 일부 업종에 한정돼있다. 일반적인 간접고용에 대해서도 원청이 안전을 책임져야 한다. 산업안전보건법 29조에서 안전에 대한 원청의 책임을 규정하고는 있는데 굉장히 형식적이다. 원청과 협력업체사장들끼리 회의만 해도 의무를 다하는 것으로 돼있다. 이런 문제들에 대해 법 개정 요구안을 제출해 19대 국회에서 발의는 됐지만 환경노동위원회에 계류 중이다.
Q. 산재은폐 요인으로 작용한다는 비판을 받는 개별실적요율제를 소규모 사업장까지 확대하는 내용의 시행령 개정안이 국무회의에서 의결됐다. 적절한 개정안이라고 생각하는가.
※ 개별실적요율제도: 사업장별로 산업재해 발생 정도에 따라 산재보험료를 인상 또는 인하해주는 제도
A. 임: 산재보험은 사회보험이고 강제가입이기 때문에 모든 사업장이 가입해야 한다. 그러나 같은 업종이라고 해도 안전관리에 많이 투자해서 사고가 드문 사업장과 그렇지 않은 사업이 있다. 이들 간에 형평성을 맞추기 위해, 산재예방에 대한 인센티브 차원에서 개별실적요율제를 도입한 것이다. 소규모 사업장에서도 형평성 문제가 있기 때문에 적용 대상이 확대된 것이다. 소규모사업장의 경제 활성화를 위해 규제완화 측면에서 이뤄졌다.
대규모 사업장보단 소규모 사업장이 보험료에 대해 경제적으로 부담을 느낄 여지가 있으니 산재가 은폐될 요지는 더 있다고 본다. 이처럼 일부 부작용이 있을 수는 있지만 이것은 관리·감독의 문제이지, 근본적인 문제는 아니라고 본다.
최: 개별실적요율제 자체가 문제다. 노동부가 사업주를 대상으로 조사했을 때, 산재사고를 산재보험으로 처리하지 않고 은폐하는 첫 번째 이유로 보험료의 증가우려를 들었다. 결국 개별실적요율제로 인해 사업주들이 산재를 은폐한다는 것이다. 이 제도를 소규모 사업장으로까지 확대하는 것은 더 큰 문제다. 한번 사고가 터지면 보험료가 오르고 인상된 보험료를 몇 년 동안 내야해서 사정이 어려운 중소사업주들은 산재은폐를 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든다. 따라서 취약한 노동자들이 아예 보상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질 것이다. 노·사·정이 논의하기로 했던 것을 무시하고 졸속 처리해 절차적으로도 문제가 있다.
Q. 업무상 질병의 입증책임이 신청자에게 있다는 것이 타당하다고 생각하는가. 만약 아니라면, 입증책임제도가 어떻게 변화해야한다고 생각하며, 그로 인한 기대효과는 무엇인가.
A. 임: 권리를 주장하는 측에서 입증책임을 가지는 것이 근대 소송법의 기본 원리다. 따라서 입증책임 전환의 논리는 받아들일 수 없다. 개인이 입증하기 힘든 영역이 있을 수는 있다. 하지만 근로자가 진술을 하면 그에 대한 조사는 근로복지공단에서 한다. 애매한 부분이 있으면 산업안전보건연구원에 역학조사를 의뢰할 수 있다. 근로자가 다 찾아다니며 입증하는 것이 아니다.
입증책임을 전환하면 모든 질환이 산재보험이 될 것이다. 직업병이 아니라는 증명을 사업주가 다 쫓아다니면서 각각의 근로자에 대해 ‘악마의 증명’을 해야 한다. 입증책임 전환 보다는, 근로자들이 잘 모르는 전문적인 영역에 있어서 입증을 완화해줄 수 있는 환경을 정비하는 것이 필요하다.
최: 현재의 상태에서 입증책임을 노동자에게 부여하는 것은 산재보상을 받지 말라는 것과 같다고 생각한다. 노동자들은 정보가 없기 때문에 입증하려해도 할 수 없는 상황이다. 산재보상보호법에 의하면 노동자가 산재신청을 했을 경우 사업주의 조력의무가 있는데 사업주들이 제대로 의무를 다하지 않고 그에 대한 처벌도 없기 때문이다.
입증책임은 근로복지공단이 져야한다. 이를 통해 직업병에 걸린 노동자들의 산재신청에 대한 부담을 줄일 수 있고 정당한 보상의 규모를 늘릴 수 있다고 본다. 하지만 현재 국회에 제출된 입증책임 전환과 관련된 법은 ‘산재가 아님을 공단에서 입증하지 못하면 다 산재’라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어서 함부로 말하기 힘든 복잡한 문제다.
Q.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질판위)는 어떤 맥락에서 등장했는가? 등장 이전과 이후의 차이점, 위원회가 원활히 기능할 수 있는지 궁금하다.
※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 근로복지공단의 산하기관으로, 업무상 질병으로 인정할지 심의가 필요한 질병에 대해 요양 또는 보상이 신청됐을 때 열린다.
A. 임: 기존엔 질병판정이 근로복지공단의 해당지사에서 이뤄졌는데, 판정의 객관성과 전문성 문제가 노·사 단체 모두에게서 제기됐다. 따라서 사회적 합의기구를 둬 공단이 아닌 외부의 전문가들에 의해 객관적이고 공정하게 판정하자는 취지에서 질판위가 등장한 것이다.
복수의 위원들이 해당 위원회에 참여해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장점이 있지만 제도 운영과 관련해서 문제점도 있다. 전문가가 제대로 참여하고 있는지, 일부 위원들에 의해 판정이 왜곡되진 않는지 등의 문제다. 노·사 중에 목소리가 큰 사람을 따라가는 구조라 이와 관련해 개선해야할 점도 있는 것 같다.
최: 2006년의 노·사·정 논의를 통해 등장했다. 근로복지공단의 불합리한 불승인 남발에 대한 문제의식과 공단이 아닌 독립적인 기구가 있어야 한다는 문제의식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질판위를 만들고 나서 불승인이 더 남발됐다. 위원회가 대부분 산재나 직업병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하는 임상의사들로 구성됐기 때문이다. 직업성 암에 대한 판정을 하는데 그 분야의 전문의가 참여하지 않은 경우도 있었다. 따라서 제도 개선 합의를 다시 해 관련분야 전문의가 심의에 참여하도록 했다. 한 번에 20여건씩 심의해야 해서 ‘날림판정’이 나는 것들에 대해서도 부분적으로 개선했고 노동계에서 추천하는 의사들의 비율도 높였다. 승인율이 예전보다 조금 올라가긴 했지만 문제가 완전히 개선된 것은 아니다. 뇌·심혈관계 질환의 경우 80%, 근골격계 질환도 50% 정도는 여전히 불승인이다.
Q. 택배기사, 레미콘 운전사, 보험설계사 등 특수형태근로종사자로 규정된 특수고용노동자들의 산재보험 적용제외 신청을 제한해 의무가입을 유도하는 내용의 법안이 현재 법제사법위원회에 계류 중이다. 이 법안의 필요성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 특수고용노동자: 근로계약이 아닌 위임계약 또는 도급계약에 의거해 노무를 제공하고 실적에 따라 수당을 받는 개인사업자 형태의 노동자. 이들 중 근로자와 유사하게 노무를 제공함에도 근로기준법 등이 적용되지 않아 업무상의 재해로부터 보호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된 6개 직종의 노동자들은 ‘특수형태근로종사자’로 규정돼 산재보험이 당연 적용된다.
A. 임: 특수고용종사자의 경우도 산재보험 의무가입대상이지만 근로자 본인이 원하지 않는 경우에 산재보험 적용제외신청을 할 수 있도록 해 놓았다. 특수고용노동자의 경우 보험료를 사업주와 근로자가 함께 부담하는데, 이 때 근로자가 보험료 부담을 원치 않을 수 있으니 강제로 산재보험에 가입시키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특수고용노동자 중 보험설계사의 경우 특별히 위험직종이 아니고 보험사에서 대부분 단체보험을 가입시켜주고 있다. 산재보험은 원인주의이므로 원인이 입증돼야 혜택을 받을 수 있는데 비해, 보험사에서 가입시켜주는 민간 단체보험의 경우 질병이나 재해를 당한 것 자체로 혜택을 받게 된다. 따라서 이들 중 어떤 것을 선택할지는 개인의 자유의사로 맡겨 두는 것이 맞다.
사업주가 강제하는 부분이 있다고 문제가 제기되지만, 기본적으로 근로자가 신청해야 적용제외가 이뤄지는 것이다. 일부 이탈행위가 있는지는 잘 모르므로 강제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부적절하다.
최: 산재보험은 원래 사업주나 노동자의 의사에 상관없이 당연가입이고 사업주가 보험료를 전액 부담한다. 특수고용노동자들의 경우 일부 직종에 한정해서 산재보험 특례제도를 적용하고 있으며 보험료를 노동자와 사업주가 반씩 부담한다. 따라서 노동자가 내지 않겠다고 하면 제외해줘야 한다는 이유로 적용제외 신청이란 제도를 넣었다. 특수고용노동자 중에서 산재보험 특례를 적용받는 직종이 6개로 확대됐는데 이에 해당되는 노동자가 44~46만 명 정도다. 이 중에 40만 명 정도의 노동자가 산재보험 적용제외 신청을 했다. 대다수 사업장들이 통째로 적용제외 신청을 냈다. 그 과정에서 서류조작의 문제가 비일비재하다. 지난 7월 9일 ‘노동자가 바라본 산재보험 실태와 개혁 방안’ 토론회에 참석한 보험설계사에 따르면, 이미 산재보험 ‘적용제외 신청’으로 체크된 서류에 서명해야했던 사례가 있었다. 어떤 노동자는 적용제외신청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산재사고에 대한 보상을 공단에 문의했더니 사업주가 허위로 적용제외신청 서류를 낸 경우도 많았다.
Q. 시대의 흐름 변화에 따라 직업병의 인정범위도 넓어져야 한다는 의견이 있다. 대표적으로 감정노동으로 인한 정신질환을 산재로 인정하는 법 개정안이 국회에 발의돼 있지만, 아직 환경노동위원회에 계류 중이다. 이 외에도 산재보험에서 고려조차 되고 있지 않은 직업병이나 직종에는 어떤 것들이 있고, 이에 대해 어떤 조치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가.
A. 임: 기본적인 산재보험법 틀 내에선 근로자성을 전제로 하고 있기 때문에 근로자가 아닌 부분에 대한 산재 적용은 논의가 어렵다. 소규모 건설공사의 경우 상시근로자가 1인 이상이 되지 않는 등의 이유로 법적 사각지대에 놓이는 경우가 있다. 이와 같은 취약계층을 관리하기 위한 제도가 좀 더 갖춰져야 할 필요는 있다.
산재는 해당 직업병이 원인과 결과에 의해 명백히 드러나야 하는데, 감정노동의 경우 직업병을 일으킨다는 직접적인 인과성이 아직 입증되지 않아 법제화되기에는 부족하다. 감정노동은 직접적으로 고객과 접촉하는 부분이므로 사업주가 그 부분을 관리해주고 치유하는 것은 필요하지만 산재로 인정하기엔 기초적인 근거가 부족한 상태다.
최: 감정노동으로 인한 정신질환, 심야노동으로 인한 수면장애, 정신질환, 호르몬계통 질환 등의 문제가 있다. 얼마 전에 직업병 인정기준이 바뀌었지만, 이 때 이 질환들은 외국에 사례가 없다는 이유로 직업병 인정목록에 포함되지 못했다. 하지만 이는 외국에서 심야노동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감정노동과 관련한 정신질환 중에는 외상 후 스트레스만 포함돼있다. 따라서 어떤 큰 사건으로 인한 스트레스가 있어야 인정되지만 감정노동은 일상적으로 겪는 스트레스도 문제다. 특히 여성노동자와 관련된 직업병에 대한 고려가 굉장히 부족하다. 심야노동 등으로 인한 유산, 선천성 기형아 등의 문제가 많이 보고됐는데 모두 인정되지 않고 있다.
새로운 노동의 유형이 생기고 있고 현장에서 쓰이는 발암물질도 많이 변화하고 있다. 하지만 직업병 인정기준을 몇 십 년 만에 한번 바꾸는 것이 문제다. 현장에서 발생하고 있는 새로운 직업병에 대한 논의가 정기적으로 있어야 하고 꾸준히 인정기준이 업데이트돼야 한다. 전문가들도 다 동의하는 부분이지만 노동부가 받아들이고 있지 않다.
Q. 근로복지공단이 최근 5년 동안 산재보험으로 5조원의 흑자를 냈다고 한다. 산재보험 재정이 꾸준히 흑자를 유지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A. 임: 사회보험에선 흑자라는 개념이 없다. 적립금이라는 표현이 맞다. 돈이 남는다고 흑자가 아니다. 수지차가 발생할 수는 있지만 남는 부분은 다음 해의 사업에 쓰인다. 적립금이 여유가 있다는 것은 반대 논리로 얘기하면 사업주에게 걷어 가면 안 될 부분을 더 걷어갔다는 의미다. 이것이 매년 반복되고 있다.
산재보험의 적용대상 확장은 재원조달과 관련이 있다. 산재보험은 가입자가 사업주라 사업자가 근로자의 보험료를 내는데, 근로자성이 불분명한 경우 보험료를 납부할 대상도 모호하다. 사업주가 낸 보험료를 다른 곳에 쓴다면 보험제도의 취지에 맞지 않다. 적립이 된다고 무조건 퍼줘서도 안 된다. 보장을 확대해나가려면 정부에서 일반회계지원이 제대로 이뤄져야 한다.
최: 일차적으론 보상을 제대로 하지 않기 때문이다. 출퇴근 재해의 경우 외국에선 모두 산재로 인정하지만 한국에선 인정하지 않는다. 출퇴근 재해를 산재로 인정하면 7천억 정도의 재정이 더 소모된다. 이렇게 당연히 산재로 보상해야하는 것들을 보상하지 않기 때문에 흑자가 쌓인다. 산재보험에서 치료비로 나가는 건수는 점점 줄고 있다.
Q. 장기적으로 우리나라 산재보험제도는 어떻게 발전해 나가야한다고 생각하는가.
A. 임: 사회보험 제도간의 균형적인 발전이 필요하다. 지금은 연금에서 감당해야 할 부분도 산재보험에서 감당하고 있다. 고령자라 은퇴 대상인 경우에도 휴업급여나 장해급여는 평생 지급되기 때문이다. 아파서 정상적인 근로를 하지 못하는 경우 보상을 받아야 하지만 일하고 있을 때보다도 더 많이 받는 것은 문제다. 또한 쉽지 않은 문제긴 하지만 사회보험 제도가 더 발달하고 건강보험 재정이 확충돼 아픈 사람에 대한 치료가 건강보험에 일원화되면, 아픈 사람은 모두 치료받을 수 있으니 입증책임문제가 생길 이유도 없다.
최: 산재보험이 사회보장제도로서의 성격과 위상을 분명히 하는 것이 올바른 발전방향이다. 한국에서 산재보험은 취업자의 60%만 적용받고 있다. 대표적으로 특수고용노동자, 소규모 건설공사장의 노동자들이 배제되고 있다. 해외로 나가는 비정규직 노동자들도 산재보험이 적용되지 않는다. 적용대상을 대폭 늘려야 한다. 또한, 산재 노동자들이 산재보험을 신청하고 보상받는 과정에서 더 고통 받지 말아야 한다. 누구나 쉽게 치료·보상받을 수 있어야 한다. 근로복지공단은 공기업 평가 대상이다. 이 때문에 산재보험 재정이 흑자여야 좋은 평가를 받고 우수한 기관이 된다. 흑자경영 때문에 본래 산재노동자가 더 많은 보상을 제대로 받을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하는 근로복지공단이 노동자들에게 공공의 적처럼 되고 있다. 근로복지공단은 산재보험을 위한 공공기관의 취지에 맞게 바뀌어야 하고 산재보험법은 그런 내용을 담는 방향으로 변화해 나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