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공계 1학년 학부생들은 ‘학문의 기초’ 영역의 교양과목 중 물리학, 화학, 생물학 등을 필수로 수강해야 한다. 이때 물리학실험, 화학실험, 생물학실험 등의 실험과목도 함께 이수해야 한다. 실험과목은 학생들이 실질적으로 실험을 행함으로써 자연의 다양한 현상을 탐색하고 여러 가지 법칙들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좋은 목적을 가진 과목들이지만, 수강생들의 데이터 조작 또는 보고서 표절로 인해 그 본래의 취지가 얼룩지고 있다. 이런 문제에 대한 해결책은 물론 그 실태조차 공론화되지 않고 있으며 학생들 사이의 공공연한 비밀로 자리잡고 있다.

‘화학실험2’ 수업이 진행되고 있는 실험실의 모습. 학생들은 실험과목을 통해 실험의 기초적인 기술을 습득하고 자신의 전공분야 과목 수강에 필요한 기초지식을 학습하게 된다. (위 사진은 본문의 내용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습니다.) ⓒ최서현 촬영기자
데이터조작, 그 유혹의 손길
교양실험과목은 각 학문의 가장 기초적인 지식을 습득하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에 이론적인 답이 정해진 실험만을 다룬다. 가령, 설탕의 분자량이 이미 주어진 상태에서 어는점 내림현상을 확인하기 위해 역으로 설탕용액의 어는점으로부터 설탕의 분자량을 구해보는 방식이다. 그러나 실험장비의 불완전성과 미숙한 실험기구 조작 등으로 인해 이론과 다른 데이터를 얻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럴 때 학생들은 데이터 조작이라는 유혹의 손길을 뿌리치기 어렵다. ‘화학실험1’과 ‘생물학실험’을 수강한 김○○(컴퓨터공학 14) 씨는 “대부분 나온 결과 그대로 보고서를 작성하는 편이지만, 일부 실험에서 결과가 너무 비정상적으로 나온 경우 어느 정도 수긍할 수 있게 고친 적이 한두 번 정도 있다”고 털어놨다. 그는 “실험결과가 이론 치와 너무 차이가 커서 실험 분석이 불가능한 경우, 보고서의 ‘논의’ 부분을 쓰기가 극단적으로 어려워진다”며 “‘논의’를 제대로 작성하지 못하면 보고서의 분량을 채우기 어려워 점수를 잘 받지 못할 것 같았다”고 밝혔다. 김 씨는 “실험에서 결과값이 예상과 조금이라도 다를 경우 조원들끼리 입을 맞춰 데이터를 슬그머니 바꾸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고 증언했다. ‘물리학실험1’을 수강한 유△△(원자핵공학 14) 씨는 “한 명 한 명의 자료가 실험결과와 같은지 대조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크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많이들 다른 결과를 빌려 쓸 것”이라는 의견을 조심스럽게 내비쳤다.
하지만 학생들의 걱정과 달리 실험결과가 이론에 가까울수록 실험과목의 점수가 높은 것은 아니다. 2014년 1학기에 ‘화학실험1’ 조교를 했던 A 씨는 “일반화학실험의 특성상, 실험결과가 좋아야 점수를 잘 받는 건 아니며 학생들도 이를 알고 있다”고 단언했다. 실제로 김 씨가 데이터를 조작해 쓴 보고서와 그냥 쓴 보고서의 점수 차이는 크지 않았다.
‘소스’베끼기, 만연하지만 막기 힘든 현실
교양실험과목은 1학점이지만 실제 수업시간은 주 2시간이다. 학생들은 실험보고서를 대개 자필로 매주 작성해야 하며 과목에 따라 쪽지시험과 예비보고서도 매주 준비해야 한다. 따라서 학생들이 교양실험과목에 대해 느끼는 부담감은 적지 않다. 특히 갓 학교에 들어온 신입생들이 첫 보고서 과제를 받았을 때 느끼는 막막함은 더욱 크다.
하지만 약간의 쑥스러움을 감수하고 선배들에게 도움을 요청한다면 어렵지 않게 ‘소스’라 불리는 자료를 구할 수 있다. ‘소스’는 앞서 수강했던 학생들이 작성했던 실험보고서를 스캔이미지 또는 문서의 형태로 저장해놓은 자료를 말한다. 대개 좋은 점수를 받았던 선배들이 같은 과나 동아리의 친한 후배들에게 ‘소스’를 전해주곤 한다. ‘소스’를 받은 학생들은 이것을 각자의 방식대로 참고하며, 심지어 그대로 베끼기도 한다.

소위 말하는 ‘소스’를 재현해봤다. 보통 알집파일의 형태로 돌아다니며 그 안에 실험주제별로 폴더가 있다. 폴더 안에는 보고서의 사진, 스캔본 혹은 워드로 정리된 보고서들이 정렬돼있다.
학생들이 ‘소스’ 베끼기를 하는 가장 큰 이유는 실험보고서 작성의 수월성 때문이다. ‘소스’를 활용할 경우 보고서 작성 시간을 단축할 수 있고, 분석틀을 스스로 생각해낼 필요가 없어진다. ‘물리학실험1’을 수강했던 유△△ 씨는 “시간이 촉박할수록 ‘소스’의 참고 비중이 높아졌다”고 밝혔다. 그는 ‘소스’ 활용의 장점으로 “다른 사람의 분석 방식도 참고할 수 있어 혼자 결론을 낼 때보다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는 점을 꼽았다. 김○○ 씨도 “‘소스’를 직접적으로 베낀 적은 없고 보고서 작성이 막막할 때 ‘소스’ 몇 개를 훑어보면서 분석을 어떻게 진행할 지 흐름을 파악하는 식으로 참고했다”고 말했다. 김 씨는 “일부 학생들의 경우 좋은 ‘소스’를 잘 짜깁기해 자신의 능력보다 더 높은 점수를 받는 경우가 있는 것 같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문제는 이 같은 행태를 제재하기가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것이다. ‘화학실험1’ 조교 A 씨는 “보고서 표절을 잡아낸 건 한 번인데, 두 보고서의 내용이 아예 똑같았다”고 말했다. 그는 “각 실험보고서에서 기본적으로 요구되는 사항들이 있기 때문에 제대로 썼다면 내용은 비슷할 수밖에 없으므로 거기서 표절을 잡아내는 것이 쉽진 않다”고 덧붙였다. 내용이 표현까지 아예 똑같지 않은 이상, 말만 바꿔 ‘소스’를 베낀 경우 등을 밝혀내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것이다. ‘화학실험1’의 경우 한 조교가 채점해야하는 보고서의 양이 많은 점도 표절을 잡아내기 힘든 이유가 될 수 있다. 한 조교는 대개 전반기와 하반기에 각각 하나의 실험주제를 맡고 한 실험주제와 관련해선 120명 정도의 학생들을 책임진다. ‘화학실험2’의 경우 한 조교가 한 학기 동안 한 반을 책임지는 방식이다. 이 경우 다른 반에 속한 학생과 보고서가 같아도 채점자가 다르기 때문에 표절을 잡아내기 힘들다.
설문응답자 63%, 데이터 조작 경험
6월 1일부터 17일까지 서울대 학부생들의 실험과목에서의 보고서 표절, 데이터 조작 실태와 그에 대한 인식을 알아보기 위한 설문조사를 ‘구글 독스’를 통해 진행했다. 편의추출법으로 선정된 조사 대상자는 이공계 학부생 95명이었으며, 1학년 68명, 2학년 18명, 3학년 6명, 4학년 이상 3명으로 이루어졌다. 소속 단과대학별로는 공대 49명, 자연대 22명, 농생대 9명, 사범대 9명, 의대 3명, 간호대, 수의대, 치의대에서 각 1명씩 응답했다.
데이터 조작과 관련해, ‘본인이 직접 혹은 가담해 실험데이터를 임의로 가공하거나 실험을 거치지 않고 데이터를 지어낸 경험이 있다’고 답한 응답자가 63%였다. 데이터를 조작한 이유로는 ‘이론적 수치에 근접하게 만들어 보고서를 수월하게 쓰기 위해서’(75%), ‘실험을 잘 수행했다는 평가를 받기 위해서’(10%)라는 답변이 주를 이뤘다. 한편, 다른 수강생의 데이터 조작 행위를 목격하거나, 행했다는 진술을 들은 경험이 있는 응답자는 84%였다. 데이터 조작에 대한 전반적인 인식을 살펴보면, ‘심각한 문제’라고 답한 응답자가 25%, ‘문제지만 그다지 심각하지 않다’고 답한 이가 65%, ‘별 문제 없다’고 답한 이가 9%였다.
보고서 표절과 관련해서는, 전체 응답자의 85%가 ‘‘소스’를 받아본 적이 있다’고 답했다. 이들 중 ‘한 번 이상, 일부의 내용이라도 ‘소스’를 베낀 적이 있다’고 답한 응답자가 44%, ‘베낀 적은 없고 참고만 했다’고 답한 응답자가 52%였으며 ‘베낀 적도 참고한 적도 없다’고 답한 응답자는 4%에 불과했다.
‘소스’의 내용을 베낀 이유로는 ▲보고서에 무엇을 써야할 지 막막해서(43%) ▲보고서에 투자할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해서(15%) ▲보고서에 시간을 투자하는 것이 아까워서(13%) ▲남들보다 점수를 잘 받기 위해서(13%) ▲선배들의 조언이고, 동기들도 그렇게 하니까 나만 뒤쳐질까봐(12%) 등이 제시됐다. ‘소스’를 베끼는 것에 대한 전반적인 인식을 살펴보면, ‘심각한 문제’라고 답한 응답자가 37%, ‘문제이긴 하지만 심각하지 않다’고 답한 이가 51%, ‘별 문제가 아니다’라고 답한 이가 13%였다.
한편, ‘소스’를 베끼는 것이 표절이 아니라고 답한 응답자가 18%에 달했다. 추가로 제시하고 싶은 의견이 있다면 자유롭게 기술하라는 문항에 한 응답자는 ‘다른 사람의 저작물을 보고 작성하는 것을 표절이라고 정의한다면 단언컨대 서울대 교양실험에서 표절이 없어질 날은 없을 것이다’고 답했다.

익명의 설문응답자들이 추가로 제시한 의견들 중 일부를 캡쳐한 모습이다. 이공계 학부생 실험에 대한 학생들의 솔직한 생각을 엿볼 수 있는 답변들이다.
표절은 다른 사람의 저작물의 일부 또는 전부를 몰래 가져다 쓰는 행위다. 서울대학교 기초교육원에서 발간한 ‘우리 학교 기초교양교육과 배움의 윤리’에서 규정하는 표절의 사례는 ▲출전을 밝히지 않고 다른 사람의 연구결과를 사용하는 경우 ▲출전을 밝히지 않고 다른 사람의 자료(도표, 그림, 통계 등)를 사용하는 경우 ▲원전과 다른 표현을 사용했더라도 특정인의 연구방법, 논리전개, 문장구조를 모방하는 경우 ▲진위 여부에 관해 논란이 되고 있는 역사적·사회적·자연적 현상을 출전을 밝히지 않은 채 사용하는 경우 ▲출전을 밝히지 않고 여러 사람의 글을 모아서 짜깁기를 한 경우를 포함한다. 참고문헌에 ‘선배의 소스’를 쓰는 사람은 없기 때문에, 그대로 베낀 경우가 아니고 핵심 내용의 대부분을 참고해 쓴 경우도 표절이라고 할 수 있다.
가벼운 학습윤리의식, 가벼운 교육
교양실험과목을 수강하는 학부생들이 갖고 있는 학습윤리의식이 그리 무겁지 않음을 지적할 수 있다. 2009년 학부에 입학했던 ‘화학실험1’ 조교 A 씨는 “1학년 때는 실험에 대한 비중을 별로 두지 않았기에 죄의식 자체가 없었지만, 학부를 다니면서 그런 윤리의식이 자연스럽게 생겼다”고 한다. 현재 대학원 2년차인 A 씨는 “실험을 능동적으로 하지 않는 한 그런 윤리의식을 갖기 힘들다”고 주장했다. 그는 “조교들이 실험 오리엔테이션에서 ‘표절하지 말라’고 주의를 주지만, 학생들은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릴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컴퓨터공학 14) 씨는 “실험결과를 조작하거나 ‘소스’를 보고 베껴도 ‘그럴 수 있지’ 하는 분위기가 있고, 오히려 그에 대해서 진지하게 타박하면 ‘너무 진지한 것 아니냐, 다들 그러는데’ 하는 분위기가 있다”고 한다.
학습윤리의식 배양을 위해 충분한 교육이 이뤄졌는지도 의문이다. ‘연구 및 실험윤리에 관해 정식 강의를 통한 교육을 받아봤다’고 답한 응답자가 7%, ‘실험 전에 조교에게 간단히 교육을 받았다’고 답한 응답자가 39%, ‘받은 적이 없다’고 답한 경우가 54%였다. 전반적인 연구 및 실험윤리에 관한 교육 역시 충분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기초교육원 김세훈 실무관은 “실험과목에서 조교들이 관련 교육을 진행하는 것과 기초교육원 차원에서 진행하는 관악모둠강좌 ‘진리탐구와 학문윤리’ 외에 따로 교육을 진행한 적은 없다”고 밝혔다. 하지만 관악모둠강좌는 소수의 학생들만 선택해서 듣는 선택교양이고 매학기 모든 주제의 강좌가 열리는 것은 아니다. ‘진리탐구와 학문윤리’를 주제로 하는 강좌의 경우 2008년부터 2011년까지는 매학기 열렸지만 최근 3년 동안은 2013년 2학기, 2014년 2학기에만 열렸다.
배움의 윤리 되새길 필요 있어
데이터 조작이나 보고서 표절이 옳지 않은 행위인 것은 분명하지만, 학생들 사이에 별다른 문제의식 없이 만연하게 퍼져있는 행위인 것이 현실이다. ‘화학실험1’ 조교 A 씨는 “실험은 이론과 달리 모범답안대로만 되는 것이 아니고 막상 실험해봤을 때 달라지는 것들이 많다”며, “그 결과를 설명하는 방식이나 도구가 다양함에도 불구하고, 모르면 답지 보듯이 ‘소스’를 보는 건 맞지 않는 것 같다”고 밝혔다.
아무리 어렵고 ‘소스’ 보는 게 도움이 된다고 해도 대학에 와서만큼은 자기가 능동적으로 습득하고 쓰는 것이 정석이라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데이터 조작과 ‘소스’의 유혹, 이를 막지 못하는 미비한 학부생 대상 실험윤리 교육으로 인해 실험과목은 본래의 취지를 잃어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 학교 기초교양교육과 배움의 윤리’의 다음과 같은 구절을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
‘학생 여러분들이 장차 어떤 분야를 전공하든 간에 공통적으로 요구되는 소양은 저절로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정직하고 성실한 학습과정을 통해 자발적인 학습능력을 기를 때에만 온전히 체득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