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23일,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주관 하에 서울대학교의 국정감사가 진행됐다. 이번 국정감사에서는 수능 세계지리 출제 오류, 지역균형 선발전형의 확대, 특목고 학생들의 높은 입학 비중 등 서울대학교 예비 신입생들이 관심 가질 입시 주제들이 많이 공론화됐다. 자유전공학부를 비롯한 미술대학, 음악대학은 특히 더 높은 특목고 학생 비율이 지적되기도 했다.
성낙인 총장은 세계지리 출제 오류에 대해 ‘선의의 피해자가 발생한다면, 법적시효의 문제와 별도로 학생들에게 공부할 기회를 부여하는 것이 정당하다’며 피해 학생들에 대한 조치 의사를 내비쳐 화제가 됐다. 또한 그는 ‘서울대학교는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법인이기에 공교육 정상화의 큰 틀에서 접근할 것’이라며 총장 취임과 더불어 입시에 변화가 있을 것임을 암시했다. 이와 더불어 성 총장은 수시 우선 선발 전형이 특목고 학생을 뽑는 데 활용된다는 지적에 ‘우선 선발은 원래 다양한 학생을 뽑겠다는 목적으로 만든 것인데 효과가 별로 없으니 대학교육협의회의 승인을 받아 2016학년도 전형부터 폐지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권오현 서울대학교 입학본부장이 지역 균형 선발 전형을 지금보다 확대할 방침이라고 밝힌 것과 동일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 11월 21일에 서울대학교 수시 모집 일반 전형 면접 및 구술고사가 있었다. (좌) 입시 당일 고사 본부는 아침부터 북적였다. (우) 서울대학교 공과대학은 수시 당일 학부모들의 시험장 출입을 금지했다.
현재까지는 ‘智·지·지’, 이제부터는 ‘智·덕·체’
전태원 서울대학교 사범대학장은 성낙인 총장의 공교육 정상화 정책에 대해 큰 공감을 표했다. 그는 “지금까지 서울대에서는 다양한 전형을 활용해왔지만 다양한 인재가 뽑혔는지는 의문”이라며 기존 입시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특히 그는 “지금까지는 쉽게 공정성을 확보하기 위해 학업 성적으로 획일화해서 자르다보니 ‘지·지·지’인 학생들을 많이 뽑았다”며 “결론적으로는 지·덕·체를 겸비한 일반고 학생들도 뽑을 수 있는 방법이 필요하다”고 단언했다. 현 입시 시스템에서는 지·덕·체를 갖춰 사회의 지도자로 성장할 수 있는 학생들을 선발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그렇기에 그는 학생들에게 기회를 균등하게 줄 수 있는 지역 균형 선발 전형 확대를 강조했다.
지역 균형 선발 전형은 2005년에 처음 도입된 전형으로 다양한 학생들을 선발하겠다는 취지에서 만들어졌다. 이 전형에서 각 학교장은 우수한 학생을 2명까지 추천할 수 있다. 이 전형은 내신 성적을 중점적으로 평가하기에 일반고 학생들에게 유리한 측면이 있다. 사범대학장은 “다른 측면의 자기계발을 통해 재능과 잠재력은 키웠으나, 상대적으로 수능 시험을 잘 못 본 아이들을 뽑을 수 있는 방법을 개발해야한다”며 공교육 정상화를 위해 지역 균형 선발 전형을 연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즉 특목고 학생이 학업 능력이 더 높을지는 몰라도, 잠재력이 있는 일반고 학생 또한 뽑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에 덧붙여 전태원 학장은 전형 과정에서 선행학습이 필요한 문제를 내는 것에 비판적인 태도를 보였다. 그는 “기존에 배웠던 내용 중에서 학생의 응용력, 창의력을 끌어낼 수 있는 문제를 내야 한다”며 선행학습과 학원 문제 사이의 연결성을 역설했다. 즉 공교육 범위 내에서의 창의력을 강조한 것이다. 성낙인 총장의 ‘공교육 정상화’정책과 연결되는 대목이다.
이 같은 경향은 서울대학교뿐만 아니라 연세대학교와 고려대학교 등에서도 나타났다. 특히 올해 연세대학교는 과학고 혹은 영재고에 재학하는 지원자들이 대부분인 과학·공학 인재 계열(특기자전형)에서 창의력을 평가하는 논술 문항을 출제했다. 이 문항은 단순히 수학·과학적인 전문성을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수리논리학’이라는 큰 틀 안에서 학생들의 창의력을 이끌어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 연세대학교는 2015학년도 수시 모집 과학공학인재계열 면접 구술 시험에서 기존 교과 지식형 문제와는 차별화된 문항을 출제했다.
“공부 잘하는 학생을 선발하기보다는 기회를 넓힐 것”
전 자유전공학부 초대학과장이자 전 입학사정관인 서경호 교수는 자유전공학부 내 특목고 학생 비중이 지나치게 높다는 지적에 대해 “가능한 한 빨리 지역균형 선발 전형을 도입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덧붙여 그는 “적게는 20% 많게는 50%까지 지역 균형 선발 전형을 도입하기로 내부 합의가 진행됐다”며 지역 균형 선발 전형의 80%이상은 일반고 학생들로 선발될 것이라고 발표했다.
이에 따라 자유전공학부 내 특목고 학생 비율은 감소할 것으로 보인다. 자유전공학부는 2009년에 신설된 학과로 수시 일반 전형만으로 학생들을 선발해왔다. 작년부터 문·이과를 통합해서 생활기록부 종합 전형을 활용해 모든 학생들을 선발하는 점이 특징이다.
실제로 <서울대저널>이 입수한 통계 자료에 따르면 자유전공학부는 과학고, 국제고, 영재고, 외국어고를 포함한 2014년도 특목고 학생 비중이 약 37%가량이었다. 이는 서울대학교 특목고 학생 비중 평균치인 25%보다 월등히 높은 수치다
이에 대해 서경호 교수는 “예전에는 서울 주요 대학이 우수한 학생을 뽑기 위해 고교 등급제 등을 활용했다”며 “당시 입학본부에서 특목고 학생들에게 입학사정관제를 통해 약간의 혜택을 주었다”고 밝혔다. 하지만 지원자의 개인 정보를 보지 못하는 최근 입학사정관제 전형의 특성상, 고등학교에 따른 특혜는 주어지지 않는다. 그럼에도 자유전공학부에 특목고 학생 비중이 높은 이유는 일반고에는 자유전공학부가 잘 알려져 있지 않아 지원자 자체에서 특목고 학생 비중이 높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는 “상당수의 특목고 학생들은 어릴 때부터 사육을 받아가며 철저하게 입시를 준비해왔다“며 ”특목고 출신 학생들의 학점이 높기는 하나 그것은 공부하는 기술이 있고, 학점 관리를 철저히 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즉 특목고 학생들의 학습 능력이 일반고 학생들에 비해 더 뛰어나다고 볼 수는 없다는 것이다.
현재 자유전공학부 내에서는 서울대학교가 세금으로 운영되는 국립대학인 이상 공교육 정상화를 이끌어낼 수 있는 방향으로 입시 제도를 운영해야 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특히 서경호 교수는 “일반고 학생과 특목고 학생을 동일하게 경쟁 시키면 일반고 학생들이 불리하므로 지역 균형 선발 전형을 도입해야한다”며 “기회를 넓혀야 한다는 측면에서 일반고 학생을 많이 뽑을 것”이라고 밝혔다.
“예술 공교육은 완전히 붕괴됐다”
미술대학의 경우는 사정이 달랐다. 자유전공학부와 같이 특목고 비중이 높은 것은 사실이지만 지역 균형 선발 전형을 도입할 계획은 없다고 밝혔다. 지역 균형 선발 전형 자체가 예술대학에 적합하지 않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구체적으로 미술대학부학장 문주 교수(조소과)는 “일반고에서는 예술이라는 공교육 자체가 붕괴됐기 때문에 도입이 어렵다”고 밝혔다. 입학본부 측에서도 미술대학, 음악대학은 지역 균형 선발 전형 도입 대상에서 배제하고 있었다. 현재 미술대학과 음악대학은 수시전형을 통해 모든 학생을 선발한다.
문주 부학장은 국정감사에서 예술 교육 또한 공교육으로 지도될 수 있어야 한다는 지적에 비판적인 태도를 보였다. 그는 “일반 중·고등학교 내의 예술 교육 자체가 사라져버렸다”며 중등교육을 비롯한 공교육의 맹점을 지적했다. 이외에도 그는 “수학, 영어 같은 과목도 기초적인 교육은 일단 하지 않느냐”며 예술의 기본적인 부분조차 사라진 현 교육과정을 안타까워했다. 이러한 예술 공교육 붕괴 현상은 자연스럽게 특목고 학생 비율 상승으로 연결된다. 이에 덧붙여 그는 곧 변화될 교육과정에 예술 교육이 더욱 축소된 것을 우려했다.
그는 “현실적으로 미술대학 내 특목고 학생 비중은 점점 높아질 것”이라고 밝혔다.
문 교수는 “공교육 내 예술 교육 자체가 수적으로 떨어져 있기에 예술을 공부하려는 학생은 어쩔 수 없이 초등학교 때부터 예술중, 예술고에 가기 위한 공부를 해야 한다”며 사교육이 깊이 뿌리내리고 있는 현 상황을 인정했다. 구체적으로 그는 “일반고에 다니다가 뒤늦게 예술에 대한 적성을 확인한 학생은 기회를 박탈당한 것”이라며 그러한 학생들이 사교육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꼬집었다. 예술대학 내 특목고 학생 비중이 높은 현상은 공교육 붕괴의 결과라는 것이다.
그와 더불어 다양한 학생들이 모여야 한다는 측면에서도 일반고 학생들이 어느 정도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문 교수는 “초기에는 예술고 학생들의 표현력이 월등히 우수하나 4학년이 되면 일반고 학생이 됐든 예술고 학생이 됐든 크게 차이나지 않는다”며 실력 차이에 대한 우려는 하지 않아도 된다고 밝혔다. 문 교수는 다양성 측면에서 일반고 학생을 선발하기 위해서는 선발 방식에 보완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구체적인 제도적 변화에 대해서 그는 “표현력에 몰려있는 평가 기준을 다른 측면에 배정해 다양한 능력을 검증할 것”이라며 일반고 학생들도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문제 개발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예술고 학생들의 실기 시험 시 표현력이 상대적으로 더 우수하다는 점을 감안했을 때, 이는 일반고 학생들에게 유리한 환경을 조성해주겠다는 뜻이다. 그는 “소묘, 석고 데생과 같은 ‘따라 그리기’식의 문제로부터 탈피해서 문학적 소질을 비롯한 다양한 측면을 평가할 것”이라고 밝혔다. 실제 작년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수시 시험 문항 중 ‘발상 과정을 설명하라’와 같이 학생의 창의력을 요하는 문항이 포함되기도 했다.

▲ 서울대학교 미술대학은 2015학년도 수시 모집 기초 소양 실기 평가 1차 전형 문항에서 표현력뿐만 아니라 상상력, 창의력 등의 다른 능력 또한 평가할 수 있는 문항을 출제했다.
미술대학 수시 전형은 크게 두 개의 과정으로 이뤄진다. 일반적으로 1차 전형은 주어진 평면에 자신이 본 대상을 그리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이를 통해 정원의 5배수 정도를 선발한다. 2차 전형에서는 각 학과에 적합한지 기초소양과 전문성을 평가한다. 미술대학 측에서는 현재와 같은 상황에서는 1차 전형에서 ‘따라 그리기’를 잘하는 학생들이 우선적으로 뽑혀 창조성이 있더라도 표현력이 부족한 학생들은 그 기회가 박탈된다.
이에 대해 문주 교수는 “내년부터는 1차 전형과 2차 전형을 통합해서 한 학생에게 여러 가지 문제를 주고 풀게 하는 실기 방법을 도입할 것”이라며 “간소화된 측면이 있지만 한 학생의 능력을 한 번에 여러 가지 측면에서 볼 수 있다”고 밝혔다. 이런 측면에서 미술대학 입시 전형은 그 기본적인 틀은 유지되겠지만 평가 방식에서 다양한 변화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한편 이번 국정감사에서는 수능 최저 학력 기준을 낮추라는 지적도 나왔는데, 문주 교수는 이에 대한 반대 입장을 밝혔다. 그는 “미술대학의 최저 등급 기준은 이미 많이 낮아져 있다”며 “오히려 최저 등급 기준을 높이는 것이 맞다”고 전했다. 미술대학 내에서도 교육을 받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학업 능력과 지적 호기심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공교육 정상화, 이뤄질 수 있을까
성낙인 총장의 ‘공교육 정상화’ 정책이 의도한 대로 작동될 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우려의 시선이 많다. 이전에도 ‘공교육 확대’를 표방하며 내세워진 입시 정책들이 많았으나 큰 효과를 거둔 정책은 몇 없었기 때문이다.
<베리타스 알파>에 따르면 2015년도 특목고 내 서울대학교 수시 일반전형 1단계 합격자 수는 크게 감소했다. 외대부고(용인외고)는 85명에서 올해 64명으로, 대원외고는 81명에서 61명으로 합격자수가 크게 줄었다. 이와 더불어 서울과학고는 98명에서 68명으로, 경기과학고는 85명에서 68명으로 상당 부분 감소했다. 다양한 학생을 뽑겠다는 신임 총장의 의지와 입시 결과가 맞닿은 지점이다. 이것이 우연일지, 변화의 전조일지는 지켜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