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여성가족부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한국의 평균 결혼 비용은 2억 808만 원에 이르렀다. 신혼집 비용을 제외한 신혼여행, 본식, 예단, 혼수 등 결혼식 비용이 6589만 원이었다.
웨딩 패키지 업체의 ‘평생 한 번인데 이 정도는 다들 해요, 하셔야죠’라는 말 한 마디는 마법처럼 이 옵션, 저 옵션을 신혼부부들이 마음껏 ‘지르게’ 만든다. 이렇게 비싼 비용의 결혼식은 경제적으로 비교적 넉넉한 부부라 하더라도 감당하기에는 버거운 경우가 많다. 2012년 여성가족부의 조사에 따르면, 51% 이상의 부부들이 결혼비용의 절반 이상을 부모로부터 지원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고비용 결혼식에 대한 문제의식이 높아지면서 공공기관과 언론사에서는 작고 검소한 결혼식에 대한 캠페인을 벌이기도 했다. 지난 11월 11일부터 16일까지 서울시청 시민청에서는 작고 뜻깊은 결혼식 캠페인이 열렸다. 단지 작고 검소한 결혼식을 넘어서서 조금 더 뜻깊은 결혼식을 올린 부부들의 이야기가 전시됐고, 합리적이고, 소박하면서도, 개성 있고, 나눔이 있는 결혼식을 준비하는 방법들을 다양하게 만나볼 수 있었다.
<서울대저널>은 새로운 결혼식 문화를 만들어나가는 ‘조금은 더 뜻깊게’ 결혼식을 올린 신혼부부들과 이들을 돕는 사회적기업을 만나봤다.
환경을 사랑해서, 친환경 결혼식
이혜영·문준기 씨 부부는 평소 지구 환경 보호에 관심이 많았다. 인생에 한번 뿐인 결혼식을 부모에 의존해 허례허식으로 치르고 싶지 않았기에 작고 소박하면서도 환경을 생각하는 결혼식을 진행하기로 했다.
이후정·이미연 씨 부부도 친환경 웨딩 업체 ‘대지를 위한 바느질’을 만나 친환경 결혼식을 올렸다. 예식장 장식은 하루 쓰고 버려지는 생화 절화 대신 뿌리가 살아 있는 화분으로 준비했다. 화분은 일일이 포장해 하객 답례품으로도 활용했다. 청첩장은 콩기름으로 인쇄했고, 이혜영 씨는 이산화탄소 발생을 줄이기 위해 대중교통을 이용해 달라는 문구도 넣었다.
식사 대접은 친환경 유기농 뷔페를 준비했다. 이혜영 씨는 부케와 부토니에를 버섯과 피망, 브로콜리, 뿌리를 살린 식물을 이용해 만들었다. 친구들이 그렇게 못난 부케를 처음 봤다고 했지만 그의 마음에는 쏙 들었다. 부케를 받은 친구는 부케로 요리를 해먹었다. 이미연 씨는 눈부시게 하얀 색깔을 유지하기 위해 몇 번 입고 버려지는 웨딩드레스보다는, 일상복으로도 입을 수 있는 친환경 소재 드레스를 입었다.
이혜영 씨는 “결혼식이 100% 모두 친환경적으로 진행될 수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면서도 “아주 조금씩, 사소하더라도 (실천하는 모습을) 소중한 분들께 보여드리는 것만으로도 의미 있는 행동일 것이다”라는 의견을 밝혔다.

▲부케 던지기 순서는 부케를 받을 사람을 따로 정하지 않고 하객 모두가 참여하는 이벤트로 만들었다. ⓒ이후정
우리 같이 다함께, 잔치하는 결혼식
요즈음 주례 없는 결혼식은 많이 진행되는 편이다. 자칫 졸리고 지루해지기 쉬운 주례보다는 소중한 하객들과 함께 성혼 선언문을 읽기도 한다. 이후정·이미연 씨 부부는 하객들이 소외되는 결혼식을 만들고 싶지 않았다. 하객들도 즐겁게 참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계획해, 부케 던지기 순서를 모든 하객이 참여할 수 있게 했다. 또 하객들이 식전에 적어준 축하 카드를 추첨해 선물을 제공하기도 했다. 노래 잘 부르는 지인이 홀로 돋보이는 축가 무대가 아니라, 잘 알려진 노래를 준비해 하객들과 함께 축가를 ‘떼창’으로 부르기도 한다.
재능 있는 친구들이 결혼식 준비에 참여해 함께 만들어나가기도 한다. 김운이·곽성용 씨 부부의 결혼식에는 지인들이 세 팀의 축가를 구성해 흥겨운 잔치를 만들었다. 미용을 하는 친구가 헤어와 메이크업을 해주거나, 사진을 좋아하는 친구가 웨딩사진을 찍어주기도 한다. 지인들이 도움을 주면 비용이 절감되는 효과도 있지만, 함께 준비하며 추억도 돈독히 쌓고 다 함께 참여하는 잔치로 만들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나를 넘어 우리를 생각하는, 서로 돕는 결혼식
이후정·이미연 씨 부부는 결혼식의 행복을 세상과도 함께 나누자는 의미에서 축의금의 10%를 NGO에 기부했다. 특히 공공기관 건물에서 결혼식을 올린만큼 사회에 조금은 돌려주자고 생각했다. 결혼식 답례품으로는 장애인 고용 사회적 기업에서 만드는 쿠키를 돌렸다. 어떤 부부들은 식장 앞에 기부 부스를 설치해 축의금을 내는 하객들이 기부할 수 있도록 마련하거나, 쌀 화환을 받아 기부하기도 한다.
이혜영·문준기 씨 부부는 신혼여행을 공정여행으로 다녀왔다. 대기업 체인 호텔에서 숙박하기보다는 현지인에게 직접적으로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이탈리아 토스카나의 포도 농가에서 머무르는 농가 민박을 했다.
서울 성북구에서는 마을 결혼식을 2년째 진행하고 있다. 마을 결혼식에서는 결혼식에 필요한 각종 역할들을 마을 기업이 맡아 한다. 미용은 마을 미용실, 꽃은 마을 꽃집, 음식은 마을 음식점 또는 동네 어르신이나 가정주부들이 준비하는 식이다.
이를 담당하는 성북구청 사회적경제과 이인복 씨는 “마을 결혼식에서는 신랑 신부의 결혼식이 마을이 다 함께 즐기는 잔치가 된다”며 “신랑 신부는 고비용을 절감할 수 있고 지역 경제에도 보탬이 되는 의미 있는 결혼식이다”라고 말했다.

▲웨딩 연극을 하는 모습. 전문 배우가 신랑 신부의 이야기를 간략한 연극으로 꾸며 보여준다. ⓒ최게바라기획사
유쾌하고 개성이 넘치는 결혼식
일반적으로 웨딩 패키지 형태로 결혼식을 진행하려면 업체에서 제공하는 옵션을 선택하는 방식으로 진행할 수밖에 없다. 그 과정에서 불필요한 지출과 개성 부재가 나타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반면 ‘참웨딩’을 진행하는 ‘최게바라 기획사’의 결혼식 기획에는 틀이 없다. 신랑신부와 함께 컨셉부터 세세한 프로그램까지 모두 상담해 맞춤으로 결정한다. 그렇게 할 때 신랑 신부의 개성이 진정으로 드러나기 때문이다. ‘최게바라 기획사’의 정소진 씨는 “고객의 자녀 첫 돌에 초대받는 게 우리 목표라고 할 만큼, 사업으로만 접근할 게 아니라 사람 대 사람의 관계를 지향한다”고 말했다.
신혼부부 각각이 다양하고 독특한 프로그램을 기획하지만 그 중에서도 특히 웨딩 연극의 평이 좋다. 신랑 신부의 만남부터 결혼에 이르는 과정을 7분가량의 짧은 연극으로 꾸며 전문 배우들이 연기한다. 하객들은 신랑 신부의 이야기를 알게 되고, 연극을 바라보는 신랑 신부의 눈도 추억에 잠긴다.
웨딩 토크쇼나 웨딩 프리젠테이션을 하는 신랑신부도 있었다. 서로의 하객에게 자신이 이런 사람이라고 소개하는 과정이 되며 부부됨을 사회적으로 인정받는다는 결혼식의 참 의미도 살아난다. ‘최게바라 기획사’의 정소진 씨는 “신랑 신부의 소중한 사람들이 한 자리에 모이는 자리는 거의 결혼식이 유일하다”며 “그날만큼은 우리가 이런 사람이라는 것을 알릴 수 있는 자기다운 결혼식을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채소부케의 모습. ⓒ이혜영
내가 만들어나가는, ‘자기다운’ 결혼식 – 우리의 결혼식은 어디에 있나
서울 시청인 ‘시민청’에서 결혼식을 올리려면 사전 신청을 하고 결혼식이 시민청의 ‘작고 뜻깊은 결혼식’ 취지에 부합하는지 꼼꼼한 심사를 받아야 한다. 결혼식에 이르기까지 합리적인 결혼식 준비를 하고, 예비부부 교육을 받으며 직접 만든 기획서도 내야 한다.
신혼부부가 모든 것을 준비하는 데는 무리가 있기 때문에 보통은 사전 지정된 협력업체의 도움을 일부 받지만, 협력업체 도움 없이 처음부터 끝까지 진행한 부부도 있다. 사례자들은 모두 기성 결혼식 상품의 관행에 만족하지 못했고, 스스로 기획해 만드는 결혼식을 원했다. 원하는 컨셉과 예산, 개성 있는 프로그램 등을 기성 웨딩 상품으로 진행하기는 힘들었기 때문이다.
스스로 결혼식을 준비한다는 것은 분명 쉬운 일이 아니다. 김운이 씨는 “기성 서비스가 아닌 다른 서비스를 선택하는 것은 품을 더 들인다는 의미”라고 말한다. 우선 작고 소박하게 결혼하려면 하객 수에 제한이 생긴다. 웨딩 프로그램을 심도 있게 진행하는데 있어 지나치게 많은 하객 수는 프로그램 집중도를 망칠 수 있다.
예식 공간도 문제다. 결혼식장을 계약하면 대부분의 결혼식장에선 이들이 연결해주는 결혼식 업체를 선택하게 한다. 이를 피해 결혼식장이 아닌 공공기관이나 카페 등을 선택하면 주차나 수용 인원이 만족스럽지 않을 수 있다. 또 비어 있는 공간을 일일이 꾸미고 입·퇴장 동선을 고민하는 것도 번거로운 일이다. 고생하고 노력하는 것을 생각하면 패키지로 계약하는 게 더 싸고 편리할 수 있다. 스스로 결혼식을 기획하는 부부들은 아직 소수다.
부모나 친지들의 지지역시 필요하다. 작은 결혼식을 하는 부부들은 대부분 친지나 부모의 손님 비중을 줄이고 본인의 친구, 동료들을 더 많이 초대한다. 하지만 부모 입장에서는 받아야 할 축의금이 많기 때문에 갈등이 있을 수 있다. 작고 뜻깊은 결혼식을 올린 부부들 뒤에는 열린 마음으로 지지해준 부모들이 있었다. 융통성을 발휘하여 친지나 친구만을 위한 잔치를 따로 여는 부부도 있다. 예단, 함, 폐백 등 형식적인 부분은 잘 합의해 생략하기도 한다.
많은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작고 뜻깊은 결혼식, 스스로 만드는 결혼식을 올린 커플들의 만족도는 높다. 모든 행사가 그렇지만, 고생을 겪었어도 뒤돌아보면 추억이 된다. 또 남다르고 화기애애한 결혼식 분위기 덕분에 결혼식 당사자를 비롯해 부모님과 하객 모두에게 기억에 남는 행사가 된다.
‘최게바라 기획사’의 정소진 씨는 “결혼식을 다녀온 사람들의 머릿속에 남는 것은 사실 ‘밥 맛있었냐’밖에 없다”면서 “결혼식이 신랑신부에 더 진정성 있게 축하하는 자리가 되고 모두의 기억에 남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혜영 씨의 부모님과 친구들은 소박한 결혼식을 올리겠다는 말에 평생에 한 번인 결혼식을 망칠까 걱정하기도 했다. 하지만 막상 결혼식을 보고 나서는 만족스럽고 가장 기억에 남는 결혼식이었다며 칭찬했다.

▲결혼식 장식에 쓰이는 생화는 단 하루 사용되고 버려진다. 친환경 결혼식에서는 생화 대신 살아있는 화분으로 장식하고 하객을 위한 답례품으로 활용했다. ⓒ이후정
이런 결혼식에 대한 문의도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시민청 결혼식을 담당하는 서울문화재단 문지영 씨에 따르면 하객으로 왔다가 시민청 결혼식의 취지에 공감하고 실제로 식을 올린 사례도 많다. 강정원 교수(인류학과)는 “스스로 결혼식을 기획하고 특별하게 진행할 수 있는 것은 과거의 전통 혼례는 부모가 결혼을 시키는 것이었던 데 비해 스스로가 결혼의 당사자로 나서게 된 사회적 변화를 반영한다”고 말했다.
스스로 결혼식을 기획하는 과정은 그 자체로 배움과 성장의 이벤트이기도 하다. 김운이 씨는 “(결혼식을 통해) 스스로가 어떤 사람인가 하는 고민을 하면서 정체성을 확인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오랜 고생을 겪으며 만들어낸 결혼식은 신랑 신부의 사이를 돈독하게 연결해주고 마음속에 평생 기억으로 남는다. 이후정씨는 “모든 결혼식이 소중하고 특별하다”며 “‘어떻게 하면 특별할까’라기 보다는 어떻게 하면 새로 출발하는 부부와 인연을 맺는 두 가족이 행복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게 중요하다”고 의견을 밝혔다. 문지영 씨는 “작은 결혼식은 저렴한 결혼식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라며 “‘일생에 한 번뿐이니 우리답게’의 마음으로 합리적이고 진정성 가득한 결혼을 선택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