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내 인권증진의 보루, 쇄신, 성공적이길

이번 성폭력 특집에서 인권센터에 큰 비중을 뒀지만, 사실 나는 그 존재 자체를 K교수 사건 이후 언론보도를 통해 알게 됐다.내 머리 속에 처음 각인된 인권센터의 이미지는 상당히 부정적이었다.피해자X 측은 인권센터의 조사에 불만족스러워하고 있으며 실명제보에 대한 부담감을 느꼈다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이번 성폭력 특집에서 인권센터에 큰 비중을 뒀지만, 사실 나는 그 존재 자체를 K교수 사건 이후 언론보도를 통해 알게 됐다. 내 머리 속에 처음 각인된 인권센터의 이미지는 상당히 부정적이었다. 피해자X 측은 인권센터의 조사에 불만족스러워하고 있으며 실명제보에 대한 부담감을 느꼈다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성폭력 문제 해결법 태스크포스’(성문법TF)는 학내 성폭력 실태조사에 인권센터에 대한 신뢰 정도를 묻는 항목을 넣어야겠다고 판단했다. 나는 성문법TF의 일원이자 <서울대저널> 기자로서 인권센터에 대한 신뢰도 판단의 이유들을 정리했다. 200개의 서술형 답변들을 하나하나 읽어보니 인권센터가 무언가 단단히 잘못해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피해자와 가해자를 같은 방에 있게 만들어 불편했다’, ‘피해자에게 지속적으로 선처를 요구했다’, ‘가해자에게 계속 연락이 와도 주의만 줄뿐 막아주지 못했다’, ‘인권센터 관련 사항이 외부로 유출된 것을 봤다’ 등등 실제로 인권센터와의 접촉 과정에서 상처를 입고 실망한 사람들의 답변이 상당수 있었기 때문이다. ‘도움을 구해본 적이 있고, 조언을 얻었다’, ‘인권센터와 일해본 적이 있다’는 경험을 근거로 신뢰한다는 답변도 있었지만, 불신하는 이유들에서 느낀 심각성을 뒤집을 정도의 믿음을 가져다주진 않았다.

  나를 혼란스럽게 만들었던 것은, 피해자들의 주장과 대조적인 인권센터의 주장이었다. 인권센터는 피해자와 가해자를 같은 방에 있게 한 적이 전혀 없다고 단언했다. 또한 비밀 유지가 철저히 이뤄지고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감정에 휘둘리면 안 되지만, 취재를 위해 만난 전문위원들에게서 열의와 성의, 긍지가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었다.

  피해자들과 인권센터 사이에서 어떤 입장을 취하는 게 옳을지 고민됐다. 인권센터 구성원들이 수행해내고 있는 엄연한 역할과 그들의 인간적인 선의를 깎아내리고 싶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무시하고 인권센터는 나름대로 열심히 일하고 있으니 믿고 이해해달라고 하는 것은 어딘가 찝찝했다. 아니 뗀 굴뚝에 연기가 나겠는가. 아무리 익명의 설문조사라 하더라도 굳이 거짓경험을 적어 내진 않을 것이다.

  만약 피해자들이 ‘오버’한 것인 마냥 그들의 의견을 가볍게 취급하면 내가 그들에게 또 다른 상처를 남기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렇다고 인권센터에 대해 맹렬한 비난을 퍼부으면, 학내 인권문제와 관련해 조사 및 징계권고 권한을 가진 대안기관이 없는 마당에 그나마 남아있는 희망마저 틀어막아 버리는 건 아닐까 걱정됐다. 인권센터를 지금 당장 비난하고 싶어도 신중해야 할 필요를 느꼈다. 결국 양쪽 모두의 손을 애매하게 들어주는 안전한 길을 택하고야말았다.

  블랙 저널리즘은 지양돼야 하지만, 그 형식을 빌려 몇 마디 던지며 마치고자 한다. 의도가 대의를 향하고 있으니 너그럽게 봐주길 바란다. “인권센터, 원래 더 비판하려고 했지만 현재로선 학내 인권보호의 마지막 보루라서 적당히 조절했습니다. 앞으로 피해자들이 인권센터 때문에 두 번 상처받는 일이 생기면 묵과하지 않겠습니다. 인권센터 구성원들뿐만 아니라, 학내 인권향상을 위한 구조를 만들어가는 모든 이들의 쇄신을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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