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학교, 성폭력 안전지대인가?

교수-학생 성폭력 사건들의 경과와 학내 성폭력 실태를 알아보다

  지난겨울 서울대학교는 잇따른 교수-학생 성폭력 사건으로 몸살을 앓았다. <서울대저널>은 화제가 됐던 사건들이 진행되고 있는 경과(2015.3.3. 기준)와 전반적인 학내 성폭력 실태를 짚어봤다.

K교수, P교수, 그리고..?

  지난 11월, 수리과학부 소속 K교수가 성추행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고 있다는 사실이 언론에 보도됐다. ‘세계수학자대회’를 준비하던 중 만나게 된 한 타 대학 여학생(인턴)을 성추행했다는 것이다. 이후 학내 온라인 커뮤니티 ‘스누라이프’에서는 K교수에게 성추행을 당했다는 또 다른 피해자들의 제보가 속출했다. 피해자들은 ‘서울대 K교수 사건 피해자 비상대책위원회 피해자X’(대책위)를 조직했다. K교수는 학교에 사표를 제출했으나 정상적인 진상조사 및 징계절차를 위해 반려됐다. 현재는 학내 인권센터의 조사가 마무리되어 교무처로 회부된 상태지만, 아직 징계위원회가 소집되지는 않았다. 학교 내의 조사절차와 더불어 K교수는 형사재판에 회부돼 현재 증거조사까지 마친 상태이며, 3월 18일에 3차 공판이 있을 예정이다. 공판과정에서 K교수는 모든 혐의를 인정했지만, ‘2008년 뇌수술을 받아 당시의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뇌수술의 후유증으로 잦은 발작과 불면증에 시달리고 있다’며 사태직면을 회피하는 것 같은 모습을 보였다. K교수는 평소 활동적인 모습을 보여 왔고 구속 직전까지도 정상적인 생활을 했다고 알려져 있어, 이와 대조되는 그의 주장을 바라보는 시선이 곱지 않았다.

  2월 초에는 경영대 소속 P교수가 상습적인 성희롱과 성추행을 했다는 내용의 신고가 인권센터로 접수돼 조사가 진행되고 있다. P교수는 우선 교수 직무에서 배제된 상태이고, 인권센터는 사건의 진상을 자세히 알아보기 위해 최근 1년간 P교수의 수업을 들은 여학생 전원을 대상으로 면담조사를 요청했다. 그러나 요청 메일을 보냈다고 하더라도 얼마나 많은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면담조사에 선뜻 응할지는 미지수다.

  이 외에도 치의학대학원 소속의 어떤 교수가 석사과정의 여학생을 상습적으로 성추행한 혐의가 밝혀졌다. 그밖에 학내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몇 년 전에 일어났던 모 학과의 성추행 사건이 다시 화제가 되는 등, 교수와 학생사이의 성폭력뿐만 아니라 학생들 간의 성폭력문제도 다시금 이슈가 되고 있다.

실태조사 1 피해유형과 가해자의 지위

원하지 않는 육체적 스킨십, 성적인 농담 및

음담패설 등… 가해자 지위는 선배가 1위

  학내 성폭력 문제가 이슈로 떠오르면서, 총학생회 직무대행 단과대학생회장 연석회의 ‘성폭력 문제 해결법 TF’(성문법 TF)는 설문조사를 통해 학내 성폭력의 실태와 문제점을 짚어볼 필요성을 느꼈다. <서울대저널>은 성문법 TF와 함께 2015년 1월 12일부터 2월 8일까지 28일간 학내 성폭력 실태조사를 실시했다. 표본은 서울대학교 학생 200명이며, 편의추출법으로 선정됐다.

   ‘학내에서 또는 학내 구성원과 관련해 성폭력 및 성(性)과 관련한 불쾌한 일을 경험하거나 목격한(혹은 전해들은) 적이 있냐’는 물음에 58%는 없다고 답했다. 25.5%는 목격만 했다고, 10.5%는 경험과 목격 모두 했다고, 6%는 경험만 했다고 답했다. 그러나 조사가 온라인으로 진행돼 표본이 자발적 설문참여자 위주이고 편의추출 방식으로 구성됐기 때문에 경험 또는 목격했다는 비율 자체에는 큰 의미가 없는 것으로 판단된다. 따라서 이 자체에 의미를 부여하기보다 경험 또는 목격했다고 답한 경우에 한해 이후의 응답들을 살피는 데에 초점을 뒀다.

  성폭력 경험자(33명)를 대상으로, 경험했던 성폭력의 종류를 묻는 질문에서(복수응답 허용) 상위 3개 답변은 ‘원하지 않는 육체적 스킨십(57.6%)’, ‘성적인 농담 및 음담패설(57.6%)’, ‘외모에 대한 성적인 비유나 평가(45.5%)’였다. 목격하거나 전해들은 적이 있는 경우(69명)도 상위 3개 답변의 종류가 위와 같았고, 다만 ‘성적인 농담 및 음담패설’이 62.3%로 가장 많았다.

  경험한 경우 가해자의 지위는(복수응답 허용) ‘선배(54.5%)’, ‘동기(51.5%)’, ‘교수(27.3%)’순으로 많았다. 목격한 경우는 ‘피해자의 선배(53.6%)’, ‘교수(49.3%)’, ‘피해자의 동기(33.3%)’순으로 많았다. 아무래도 자주 마주치는 관계 속에서 성폭력이 발생할 가능성이 크고, 그 중에서도 위계관계를 이용한 성폭력이 대부분이다. 최근 교수와 학생 사이의 성폭력 사례가 많이 드러나고 있지만, 생활공간이 자주 겹치는 학생들 사이의 성폭력 역시 간과해선 안 된다는 점을 시사한다. 대응책으로는 학생회 차원에서의 반성폭력 내규 마련, 교육 사업 실시 등이 있을 것이다.

실태조사 2 피해 및 목격 시 대응 방법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것 같아 별다른 대응을 하지 않는다

  성폭력을 경험한 경우 ‘어떻게 대응했냐’는 질문에서(복수응답 허용) 상위 3개 답변은 ‘별다른 대응을 하지 않음(66.7%)’, ‘가해자에게 완곡한 표현으로 문제제기(30.3%)’, ‘자책(24.2%)’이었다. ‘소극적으로 대응했다면 그 이유가 무엇이냐’는 질문에서(31명, 복수응답 허용) 상위 3개 항목은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것 같아서(58.1%)’, ‘당황스러워서(48.4%)’. ‘이상한 소문이 돌 것 같아서(45.2%)’였다.

  한국성폭력상담소는 ‘문제가 해결될 것 같지 않다’는 답변이 많은 것을 지적하며 “성폭력문제는 잘 해결하고 처리하는 것이 예방하는 데에도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는 것은 이제까지 전해들은 사건들을 보며 학습된 인식일 수도 있고, 문제 해결을 위한 제도나 권리에 대해 잘 모르기 때문일 수도 있다. 또한 공동체의 분위기가 문제해결에 소극적일 경우 그것이 원인으로 제시될 수 있다. 성폭력 피해를 입었을 때 도움을 받을 수 있고 문제 해결이 가능하다는 믿음을 가질 수 있도록, 사건 해결의 좋은 선례를 만들어나가야 한다.

  성폭력을 당했을 때 자책을 하거나 이상한 소문이 돌 것을 우려했다는 답변이 많았다. 이에 대해 한국성폭력상담소는 “다른 성폭력 실태조사에서도 대체로 이런 정도의 데이터가 나오는 것 같다”고 평했다. 여전히 한국사회에서는 성폭력 피해사실을 말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그것을 공동체가 잘 해결해야할 문제라고 여기기보다는 공동체 내부에서 남녀 간의 문제로 사소하게 취급하고 오히려 피해자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 한국성폭력상담소 측의 설명이다. 이런 사회적 분위기를 탈피해 공동체가 피해자에게 지지적인 역할을 할 수 있어야 한다.

  

  한편 성폭력을 목격하거나 전해들은 경우 ‘어떻게 대응했냐’는 질문에서(복수응답 허용) 상위 3개 답변은 ‘별다른 대응을 하지 않음(59.4%)’, ‘피해자를 위로함(42.0%)’, ‘지인에게 알림(18.8%)’이었다. ‘소극적으로 대응했다면 그 이유가 무엇이냐’는 질문에서(67명, 복수응답 허용) 상위 4개 항목은 ‘나와 직접적으로 관련된 일이 아니라서(41.8%)’, ‘문제가 해결될 것 같지 않아서(32.8%)’. ‘문제가 더 커질 것을 우려해서(29.9%)’, ‘적극적으로 대응할 방법을 몰라서(29.9%)였다. 우선 피해자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고 위로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좀 더 적극적으로 문제해결을 위해 필요한 정보를 함께 찾아보고 문제제기를 돕는 방법도 있다. 다만 과도한 행동으로 피해자에게 부담을 주지 않도록 주의해야한다.

학생사회에서는 어떤 움직임이 있었나 

  지난해 12월 말, 가칭 ‘학내 성폭력 사례 수집 및 발간을 위한 학생 태스크포스’로 출발한 ‘성폭력 문제 해결법 태스크포스’(성문법TF)는 K교수 사건의 여파로 일어난 대표적인 학생사회의 움직임이다. 성문법TF는 실태조사를 통해 학내 성폭력의 현주소를 파악하고, 그에 따른 해결책을 강구하기 위해 시작됐다. 새맞이 기간에 맞춰 성폭력 방지 교육 자료를 배포하는 것도 주요 목표였다. 실제로 성문법TF는 초기 목적에 따라 실태조사를 진행했고 선배용 새맞이 교육자료를 배포했다. 연석회의에서 발간한 새터자료집에 안내글을 싣기도 했다. 안내글에는 ▲ 수리과학부 K교수사건 ▲ 성폭력의 다양한 모습들 ▲ 성폭력에 관한 오해와 진실 ▲성폭력을 막기 위한 학생회의 노력들 ▲ 성폭력을 당했을 때 대처방안 등의 내용이 실렸다. 하지만 실태조사, 교육자료, 안내글 모두 참여나 배포에 강제성을 띤 것은 아니라 충분히 많은 학생들에게 의미가 전달됐는지는 알 수 없다. 특히 새터자료집의 경우 공과대학을 비롯한 일부 단과대학에서는 아예 배포되지 않았다.

  K교수 사건에 이어 경영대 P교수 사건이 터지면서, 올해 2월 중순에는 ‘서울대학교 교수 성희롱/성폭력 문제해결을 위한 공동행동’(공동행동)이 출범했다. 여기에는 단과대학생회장연석회의, 대학원생 총협의회, 관악 여성주의 학회 ‘달’이 참여하고 있으며 성문법TF가 공동행동의 집행부 역할을 하게 됐다. 공동행동은 ▲공판·징계절차에 대한 감시 및 의견개진 ▲ 제도개선 도모 (본부에 학생들이 직접 참여하는 논의테이블 마련 요청) ▲ 인권센터에 의견개진 ▲ 성폭력 문제와 관련한 대중사업 논의 등을 역할로 설정했다. 다만 공동행동은 피해사례를 수집한다거나 피해자를 대변하는 것에는 관여하지 않는다. 이에 대해 공동행동은 “(K교수 사건의 경우) 대책위가 따로 있고 그것을 우리가 담당하길 원하지 않는다는 반응을 보였기 때문” 이라고 설명했다. 대중사업과 관련해서는 “일반적인 교수-학생 성폭력에 더 비중을 두되 학내 성폭력, 나아가 성폭력 문제 전반을 다룰 계획”이라고 한다. “학생들 간 성폭력도 여전히 적잖은 문제라는 사실이 여러모로 드러나고 있고, 교수-학생 성폭력에 대한 대처도 성폭력에 대한 동료 학생들의 전반적 인식이나 태도, 문화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이라는 것이 공동행동 측의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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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나연 사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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