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시장에 구조적인 개선이 필요하다는 문제의식은 그 표현 양상은 달랐지만 이전부터 보수·진보를 막론하고 공유되고 있었다. 세계적으로 경제위기는 상시화 되었으며, 한국은 고도 성장기를 통과해 저성장 국면에 접어들었다. 게다가 경제상황의 변화속도도 빨라져 기업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빠르고 유연한 대처가 필수적으로 요구된다.
노동시장의 여러 문제 중에서도 이중구조 문제가 시급하다는 점 역시 사회적인 공감을 받고 있었다. 이중구조 문제는 90년대 말 신자유주의의 바람과 대규모 금융 위기를 겪으면서 심화됐다. 당시 노동시장은 한 차례 격변을 겪으며 수많은 불안정 일자리, 즉 비정규직을 탄생시켰다. 쉽게 쓰고 쉽게 끊어낼 수 있는 노동력이 생겨나자 기업은 비정규직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기 시작했다. 비정규직은 전체 노동자의 절반에 육박할 정도로 그 부피가 커졌다. 오늘날 동시에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의 격차는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심화된 이중구조는 근로빈곤자를 양산하고, 사회갈등과 분열을 키우며, 노동자의 생산성에도 큰 타격을 준다. 한국노동연구원 허재준 선임연구위원은 “한국 사회는 천천히 망해가는 중이다. 결단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 용어해설노사정위원회 : 1998년 경제위기 당시 노동자·사용자·정부가 노동정책 등에 관련된 사항을 협의하기 위해 만들어진 사회적 합의기구.
정부와 경영계의 마음 : 저성장 시기로의 진입, 이제는 묵은 문제를 해결할 때
정부는 이러한 위기의식 속에서 남은 성장 동력을 캐내기 위해 노동시장의 비효율적인 구조를 개선해보겠다고 나섰다. 지금까지는 노동시장 구조가 경직적이어도 경제성장에 힘입어 어떻게든 헤쳐 나왔지만, 더 이상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정부는 지금까지처럼 어느 한 부분만 조금씩 문제를 풀어서는 효과가 없으리라고 판단했다. 노동시장의 체질을 근본부터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선거가 없는 올해는 대대적 개혁을 하기 위한 적기이기도 하다. 정부는 ‘골든타임’이라는 말을 내세우며 서두르고 있다.
경영계는 정부의 개혁시도를 반기는 모양새다. 이번 개혁을 통해 그동안 바라오던 노동 유연화를 얻어내려는 심산이다. ‘기업이 힘들다’, ‘청년들을 위해 개혁이 필요하다’며 분위기 조성에도 나서고 있다. 그러면서도 비정규직에 대한 비용 증가는 견제하고 있다. 또 정규직 고용 부담으로 고용을 늘리지 못한다면서도, 정규직 보호를 완화하는 만큼 고용을 늘리라는 요구에는 구체적인 약속을 내놓지 않고 있다.

노동계의 마음 : 노동시장 구조개혁은 ‘개선’아닌‘개악’… 정부를 믿을 수 없어
노동계는 정부가 말하는 개혁은 개선이 아니라 개악일 뿐이라고 말한다. 달콤한 말을 늘어놓지만 결과적으로는 기업의 편만 들어줄 것으로 보고 있다. 이런 우려에는 충분한 근거가 있다. 과거 민주노총은 여러 차례 노사정 협상 테이블에 앉았지만, 정부와 경영계의 개악에 정당성만 내준 꼴이라는 비판을 종종 들어야했다. 한마디로 뒤통수를 맞은 것이다.
그래서 노동계로서는 노동시장 구조개혁이 ‘필요하다’는 문제의식에도 동의한다고 말하기 어렵다. ‘개혁이 필요하다’는 명제에 동의하는 것이 ‘개악’까지 찬성하는 것처럼 비칠까 우려스러운 마음이다.
정부와 경영계가 내놓은 구체적 내용들을 보아도, 경제부총리의 행보로 보아도, 이번 개혁의 목적이 유연성 확대에 방점이 찍혀 있다는 느낌이 강하다. 안정성 강화에 대한 내용도 있지만, 어디까지 실현될 지는 미지수다. 노동계에서는 정부가 선거가 없는 ‘골든타임’을 틈타 개악을 뚝딱 해치우려하고 있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구체적인 논의가 시작된 지 이제 막 두 달여가 지났다. 하나 둘 개별 의제에 대한 쟁점들이 터져 나오고 있다. 2015년은 단지 시작에 불과하다. 앞으로 적어도 10년은 노동시장의 지각변동이 계속될 것이고, 기본적인 방향이 올해 속속 등장할 것이다. 노동시장 구조개혁이 ‘개악’이아닌 ‘개선’이 되기 위해서는, 시민들이 나서서 개혁이 올바른 방향으로 진행되는지 눈여겨보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