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시장구조개혁 관련 의제에는 단기 현안과 중장기 현안이 있다. 단기 현안은 현재 노사간 갈등이 표면화된 다급한 의제다. 중장기 현안은 장기적으로 사회의 공공선을 위해 개선이 필요하지만 표면화되지는 않은 구조적 문제들이다. 중장기 현안은 단기 현안에 비해 상대적으로 노사간 갑론을박은 덜하다. 하지만 한국 사회의 미래를 결정하는 중요한 문제들이므로 더욱 유심히 살필 필요가 있다.
노동시장 구조개혁의 구체적인 방안은 이제 막 논의되기 시작했다. 지난 1월 노사정의 제안이 담긴 보고서가 발표됐고, 이 내용을 중심으로 연중 협상이 있을 예정이다. 그리고 협상이 진행됨에 따라 차례차례 개혁방안이 결정될 것이다. 이번 구조개혁은 한꺼번에 많은 의제들을 다루기 때문에 어느 한 부분이 중요하다기보다는 종합적으로, 유기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어떤 방안에 문제적 소지가 있다고 해도 구조적 문제가 개혁된다면 꼭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단기냐장기냐에 따라 개혁방안이 적용되는 방식도, 효과도 다를 수 있다.
지난 1월 9일 제7차 노동시장구조개선특위 전체회의에서 ‘노동시장구조개선 노·사·정의 제안’이라는 제안서가 발표됐다. 여기에는 5대 의제와 14개 세부과제가 담겨 있다. 본 기사에서는 이를 하나씩 설명하기보단 키워드 위주로 그 구조를 짚고자 한다. 키워드로는 정규직 개혁·비정규직 확산·고용안정성을꼽았다.

전체적인 방향 : 노동 유연성 확대
정부와 경영계의 구조개혁안 면면을 살펴보면 방향성이 뚜렷하게 드러난다. 노동시장의 유연성 확대다.
기업이 일단 노동자를 고용하면, 마음대로 해고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기업은 정규직을 고용할 때 ‘고정 비용’이 있다고 여긴다. 기업 입장에서는 당연히 고정 비용 없이 노동자를 마음대로 쓰고 또 해고하고 싶어 한다. 그래서 비정규직을 사용한다.
경제 성장과 국가경쟁력을 견인하려면 고용이 늘어나고 경제활동이 활성화돼야 한다. 경영계는 고정 비용이 적으면 기업이 노동자를 더 많이 고용할 것이고 그에 따라 경제가 활성화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들은 노동시장의 이중구조 문제도 고용 경직성에 그 원인이 있다고 파악한다. 경직적 노동 구조 때문에 기업이 정규직 고용을 꺼릴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정규직 고용을 늘리려면 정규직에 대한 고용 부담을 덜어줘야 한다는 주장이다. 정규직에 대한 타격 ➊ 일반해고 완화
정리해고는 경영상의 이유로 노동자들을 집단적으로 해고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번 구조개혁 제안에는 일반해고 요건을 명시하자는 내용이 있다. 일반해고는 노동자 개인에 대한 이유로 노동자를 한 명씩 해고할 수 있는 것이다. OECD 고용보호지수 2013년 통계를 보면, 한국의 정리해고 보호지수는 34개국 중 29위,일반해고 보호지수는 12위다. 즉 OECD국가들과 비교해봤을 때 상대적으로 정리해고는 쉽고 일반해고는 어려운 편이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한국에서 일반해고는 상대적으로 엄격하게 규제된다. 대개 분쟁에 휩싸이면 노동자가 승소하기 때문에 기업은 일반해고를 거의 하지 않는다. 이 점에서 경영계와 정부는 근무태만자 등 정말 필요한 경우에도 노동자를 해고하지 못한다며 사유를 명확히 규정해 일반해고가 실제로 가능하도록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민주노총 박성식 대변인은 “실제 사례를 보면 이미 원하는 사람은 정리해고로 내보내고 있는 상황”이라며 “해고요건에 저성과를 포함하자고 하는데, 성과는 기업에서 자의적으로 평가할 것이다. 이를 이용해 노조 가입자만 골라 내보내는 등 압박이 발생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직업능력개발원 류기락 연구위원은 “우리나라는 정리해고로 *외부적/수량적 유연성은 이미 충분히 확보하고 있다. 모든 노동자에 대해 무기계약을 기본으로 하고 *내부적/기능적 유연성을 활성화하는 방향을 더 고려해야 한다.”고 말한다.
▶ 용어해설*외부적/수량적 유연성 : 고용, 해고로 확보되는 유연성*내부적기능적 유연성 : 임금 및 근로시간 조절, 직무전환배치로 확보되는 유연성
정규직에 대한 타격 ➋취업규칙 불이익 변경 요건 완화
기업이 취업규칙을 노동자들에게 불리한 방향으로 변경하기 위해서는 과반수 노동자의 집단적 동의를 얻어야 한다. 그런데 정부는 예컨대 사회의 공공선을위해 임금 삭감을 하려 해도 집단적 동의를 받아야 하면 노동자들이 개인적 유불리에 따라 반대만 할 것이므로 개혁을 할 수 없다고 말한다. 경영계와 정부는 사회 일반의 시각에서 합리적인 내용이라면 노동자 측에 불리한 방향이라도 동의 없이 변경할 수 있게 하자고 주장한다. 하지만 기업과 노동자 사이의 권력 균형이 명백히 기업 쪽에 쏠려 있는 상황에서, 일단 예외가 생겨 버리면 불합리한 조항들도 이런저런 토를 달고 기업 마음대로 변경할지 모른다. 분쟁이 늘어나면 결국 힘없는 노동자가 더욱 힘들어진다. 기업들이 완화된 요건을 정말 정당한 이유로만 활용하리라는 것은 순진한 생각이다. 비정규직 확산 ➊ 고령자 파견 전면 허용
정부와 경영계는 고령 노동자(55세 이상)를 대상으로 파견을 전면 허용하자고 제안한다. 현재는 32개 업종에 제한적으로 파견이 허용되고 있는 상황이다. 고령자의 실업률이 높으니 쉽게 고용할 수 있도록 파견을 폭넓게 허용해 고용을 촉진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되면 정규직 근로자를 55세가 되기 전 미리 해고하고 파견 직으로 고용할 것이라는 비판이 있다. 그러면 정년 60세보장법도 효과를 크게 잃는다. 고령자를 시작으로 모든 연령과 사업 부문에 파견을 확대해 나가려는 의도가 아니냐는 지적도 함께 제기되고 있으며, 질 낮은 일자리만 늘려주어봐야 무슨 소용이냐는 비판도 있다.
비정규직 확산 ➋ 기간제 기간 연장
정부는 35세이상 기간제 노동자는 본인이 원할 시 4년까지 계약을 연장할 수있게 하자고 한다. 기간을 연장할 수 있게 하자는 발상은 어떻게 나왔으며 왜 35세일까? 보통 정규직 진입은 청년기 취업으로 이루어진다. 이 시기 정규직에 진입하지 못하면 이후 계속적으로 비정규직 일자리에 남아야 한다. 어차피 비정규직으로 살아가야 하는 것이 현실이고 해고될 때마다 불안에 떨어야 한다. 그러니 한 곳에서 일할 수 있는 기간이라도 늘려주자는 결론이다.
기업 입장에서는 해고 후 신규 고용 시 업무 교육을 해야 하는 등의 비용이 있어 기간 연장을 줄곧 요구해왔다. 노동자 입장에서는 질 낮은 일자리만 감내해야 하고, 기업 편의만 봐준 방안이라는 비판이 제기된다.

고용 안정성 제고
기업의 고용 부담을 완화하기 위해 고용 유연성을 확대하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 노동자는 상품이 아니라 사람이기 때문에, 일정 수준의 고용안정성이 보장되지 못하면 빈곤·양극화·생산성 하락·권리 주장 약화 등 심각한 부작용이 발생한다. 고용 안정성이 확보되어야 하는 이유다.
정부는 실업급여 등 사회안전망을 확충하고 정부기관의 직업훈련·직업소개와 같은 적극적 노동시장정책을 확산시키겠다고 말한다. 기간제 노동자의 계약기간을 4년으로 연장하고도 정규직전환을 하지 않을 경우 이직 수당을 지급할것, 비정규직도 3개월 이상 근무하면 퇴직금을 지급할 것 등의 방안도 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의 고용 비용 격차를 줄여 비정규직을 줄여보려는 시도이기도 하다.
기업들이 노동유연성을 확보해 고용에대한 비용을 줄이는 만큼, 노동안정성을 확보하기 위한 사회적 비용이 필요하다. 노동안정성이 충분히 확보된다면 비정규직이라도 안정적인 삶을 꾸려나갈 수 있다. 사회안전망에 대한 논의는 다양하게 이뤄지고 있지만 핵심은 이 비용을 기업이 맡느냐, 사회가 떠안느냐다. 사회가 비용을 떠안게 되면 기업은 쉽게 노동력을 사용하는 반면 안전망 확충을 위해 일반 국민들의 소득세율만 껑충 뛰게 될 수도있다. 노동계는 근본적인 문제는 기업과 노동 사이에 소득 분배가 현저하게 불균형한 데에 있다고 주장한다. 기업의 사내유보금을 고용에 쓰도록 하고, 법인세를인상해 노동소득분배율을 높이기 위한 노력을 우선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정규직은 끌어내리고 비정규직은 끌어올려 둘 사이 ‘적정 수준’의 일자리를 확산시키겠다는 게 기본적인 방향이다. 하지만 현실에서 구상이 그대로 적용될까? 노동자의 지위를 끌어내리는 일들은 비교적 쉽고 빠르게 할 수 있지만, 노동자를 보호하는 것은 훨씬 오래 걸리고 더 어렵다. 이를 고려하지 않고 유연성-안정성을 동시에 추구한다면 전체적인 노동자 지위의 하향평준화만 낳을지 모르는 일이다.▶ 주목할 만한 현안 이슈 – 근로시간 단축
한국은 저임금·장시간 근로가 고착되어 그것이 심각한 사회문제로 지적되어 왔다. 노사정은 이미 2010년도에 2020년까지 실노동시간을 OECD 평균 수준인 연간 1800시간으로 단축하기로합의했다. 근로기준법은 이미 노동시간을 최대 주 52시간(기본 40시간+연장 12시간)으로 정하고 있다. 그러나 고용노동부는 법원과 달리 잘못된 행정해석을 이어왔고 실제로는 주 68시간(기본 40시간+연장 12시간+휴일16시간)을 인정해왔다.
정부는 근로시간을 단축하려는 입장이지만, 기업의 충격을 감안해 기업규모에 따라 단계적으로 적용하고 추가근로시간 8시간을 두자고 주장한다. 경영계도 당장 단축은 어렵고 추가노동시간 8시간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노동계는 단계적 도입은 양극화를 심화한다며 즉시 전 사업장에 도입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