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계는 정부가 주도하는 노동시장구조개혁의 방향은 ‘신자유주의적 불안정 노동의 일반화’라고 비판하고 있다. 이번 구조개혁이 노동조합의 미래에도 위협이 될 것이라는 지적도 이어진다. 기업에 비해 상대적으로 힘이 약한 노동자들이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뭉쳐서 함께 싸우고자 만든 것이 바로 노동조합이다. 만약 구조개혁의 이와 같은 방향성을 막아내지 못한다면 노동조합이 설 자리는 크게 위태로워질 것이고, 노동자의 지위는 더욱 더 약해지고 열악해질 것이다.
대기업·정규직·조직 노동자들은 비록 그 수는 적지만(전체 노동자의 7%) 노동조합의 ‘최후의 보루’역할을 하며 노동운동을 견인해왔다. 정규직 노조 가입률이 13.9%인 반면 비정규직 노조 가입률이1.4%라는 점(2013년 통계청 자료)에서 알 수 있듯이, 노동자의 지위가 어느 정도 안정적이어야 조직적 노동운동도 벌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부와 경영계는 계속해서 ‘정규직 과보호를 완화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정규직에 대한 정면 공격을 시도하려는 눈치다. 만일 그렇게 된다면 이는 곧 노동조합의 세력약화로 이어질 것이다. 특히 경영계와 정부의 제안에는 “과반수의 집단적 동의를 얻지 않더라도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을 할 수 있는 방법을 마련하자”는 조항이 들어 있다. 이렇게 되면 정규직이라고 해도 언제든지 불안정한 위치에 떨어질 수 있는 위기에 놓인다.
일각에서는 “정규직 공격이라는 소위‘뻥 카드’로 정규직 노동자를 압박해 비정규직 대폭 확대에 동의하도록 만들려는게 진짜 속셈이다. 정규직 노동자의 지위는 변함없을 것이다”라고도 한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구조개혁의 전체 맥락과 규모를 고려한다면, 대답은 ‘글쎄’다.
그렇지 않아도 현재의 노동운동은 폭넓은 사회적 지지를 얻지는 못하는 상황이라, 정규직에 대한 정면 공격이 전반적인 세력 약화로 이어질까 우려스럽다. 현재 노동조합 가입률은 10%대로 낮게 유지되고 있다. 선진국에서는 허용되는 정치 파업이나 연대 파업도 한국에서는 여전히 불법 파업으로 금지된다. 노동운동에 대한 과도한 형사처벌·손해배상·영상 채증 및 소음 측정·집회 시위 관련 사범 DNA 채취 등 공권력에 의한 압박도 상당하다.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엄진령 사무처장은 “공권력도 문제지만 시민들의 인식이 개선될 필요가 있는 것 같다. 노동운동에 대해 기본적으로 부정적인 인식을 갖고 있고, 파업을 해도 부정적으로 본다”라고 말한다. 노동운동 의제 역시 ‘대화 한번 해 달라’는 수준에 그치고 만다는 자조 섞인 목소리도 있다. 정규직에 대한 정면 공격, 노동조합의 주력 집단 흔들까 우려
하지만 한국의 노동조합도 과거에는 낮은 조직률에 비해 그 영향력이 선진국 노동조합에 못지않았다. 왜 이렇게 된 것일까. 엄진령 사무처장은 “과거에는 대기업 노동조합에서 처우개선이 이뤄지면 중소기업까지 그 효과가 이어지는 소위 ‘낙수효과’가 실제 일어났다. 하지만 요즘에는 대기업에서 상징적인 처우개선 사례를 얻어낸다고 해도 미조직 노동자에게 그 혜택이 전해지지 않는다”라고 분석한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의 처우 격차는 점점 벌어지고, 비정규직 노동자의 규모는 늘어가는 상황. 그러나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성공적으로 조직화되지 못했고, 정규직 노동조합은 비정규직 투쟁에 적극적으로 연대하지 못했다. 정규직의 입장에서는 당장 자신의 일이 아니고, 일신의 근로 안정은 보장되어 있기 때문에 소극적인 탓도 있다. 그리고 그것은 정규직 노조의 세력 또한 약화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정부는 ‘노동조합은 대기업·정규직 노동자들의 요구만 대변할 뿐’이라며 그 의견을 외면하곤 했다. 만약 정규직-비정규직 연대가 적극적으로 이뤄졌다면, 정부 입장에서도 노동조합의 의견을 쉽게 무시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이와 관련해서 엄 사무처장은 “IMF금융위기 이후 노동자 간 분할과 격차가 심화될 때 적극적으로 비정규직을 포섭하지 못한 것이 현재의 영향력 축소로 귀결된 것은 아닌가 싶다”며 “노동조합은 모든 노동자와 사회의 변화를 위해 투쟁하는 조직이어야 하는데, 현재는 ‘우리 조합원’의 요구에 치우친 면이 있다. 노동조합이 고민을 많이 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민주노총 박성식 대변인은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끌어올리고 조직화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어려울 것이므로 우선 비정규직 조직화 사업을 꾸준히 벌이고 있다”라고 답했다. 엄진령 사무처장도 이에 동의했으나 “비정규직 조직화가 시간이 많이 걸리는 사업이라 성과가 눈에 띄지는 않는다. 그 성과보다 정부 정책의 변화속도가 더 빠르다”며 현 상황에 우려를 표하기도 했다.
노동자 간 분절이 세력 약화로 이어질 수도
그러면서 그는 한 사례를 소개했다. 병원 비정규직 투쟁 중 정규직 노동자들이 비정규직과 연대해서 싸운 사업장에서는 정규직 일자리 수가 유지되었지만, 그렇지 않았던 사업장의 경우 정규직 일자리 수가 줄어들었다는 것이다. 자신의 이익만 지키면 고립되고 설 자리가 없어지지만, 연대하면 함께 지켜낼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노동시장 이중 구조 문제는 그 자체로도 차별과 갈등을 낳지만, 노동조합에 있어서도 동지들 간의 단절과 분열을 일으킨다는 점에서 치명적이다. 그런 상황에서 정규직 노동까지 위협받는다면, 더욱 큰 문제다. 엄진령 사무처장은 “이번 개혁에 큰 위기감을 느낀다. 이 정책을 막지 못하면 비정규직을 조직화하는 것도, 조직화된 노동자들이 영향력 있게 싸우는 것도 굉장히 힘들어질 것이다. 꼭 막아내야 하지만, 노동운동은 방향을 찾는 데 오래 헤맬 것 같다. 올해의 대응이 정말 중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