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개혁 이후, 노동운동의 운명은?
현안을 넘어선 고민, 임금직무체계가 실마리
어떤 이야기가 나왔나

현안을 넘어선 고민, 임금직무체계가 실마리

공정 임금이 작동하는 노동시장이 되려면

  노동시장의 이중구조를 해결한다는 것은 기업별·고용형태별로 다른 근로조건 격차를 해소한다는 의미다. 이를 위해 일차적으로 가능한 방안은 ‘기업 간 공정거래정책’이다. 대기업이 중소기업과 이익을 나누도록 규제하고 ‘단가 후려치기’등을 단속해 중소기업도 노동자들의 근로조건을 자연스럽게 향상시킬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여기까지는 규제에 그치지만, 구조개혁에 걸맞는 과제는 노동시장의 틀 자체를 바꾸는 일이다. 임금은 이러한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는 중요한 열쇠다. 현재 단기적인 임금 현안으로는 통상임금, 임금피크제 등이 이야기되고 있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중장기적이고 구조적인 관점에서 논의되고 있는 임금 결정체계다.  노동시장에서 임금을 어떻게 결정할지를 바꾸는 것은 노동의 가치를 어떻게 대접하느냐에 대한 사회 전체적인 패러다임의 전환이다. 

이중구조는 임금과 직결  노동시장 이중구조는 임금문제와 직결된다. 한국 노동시장에서는 기업규모·고용형태에 따라서 임금이 크게 다르다. 대기업이나 공공기관의 정규직은 근속년수에 따라 임금이 오르는 ‘연공급’을 적용받지만, 대다수 비정규직 노동자나 중소기업 노동자들은 임금이 오르지 않는 ‘단순직무급’에 시달리고 있다. 임금 상승을 기대하지 못하는 비정규직·중소기업 노동자들은 그만큼 생산성도 낮아지며 빈곤 상태에 떨어지게 되기도 한다.  그 밖의 다양한 분절구조 역시 임금 문제와 직결된다. 연령별·학력별·성별 임금 차이가 크다는 점은 이중 구조를 넘어 더 다종다양한 노동시장 분절구조를 낳는다. 재취업 역시 문제다. 한 번 대기업 정규직이라는 틀에서 이탈되면, 기존 경력을 인정받지 못하고 질 낮은 일자리를 감내해야 한다.  출산 및 육아로 인해 경력단절이 빈번한 여성 노동자들에게는 더욱 절실한 이야기다. 이처럼 노동시장 분절구조가 심화되면 사회 통합을 저해하고 생산성에도 타격을 입힌다. 임금직무체계를 통해 위와 같은 문제들을 한 번에 다룰 필요성이 있다.  경영계는 기본급 비중을 낮추고 성과에 따라 임금을 지급하자는 ‘직무성과급’을 주장한다. 정부는 이와 유사한 ‘직무능력성과급’을 주장한다. 하지만 한국노동연구원 임금직무센터 이장원 소장은 “성과주의는 임금체계의 족보에도 낄수 없다”며 목소리를 높인다. 임금체계는 노동을 제공하기 이전에 어떻게 노동의 대가를 지급할 지 약속하는 것이다.반면 성과급은 사후의 결과에 따라 대가를 지급하겠다는 것이므로, 임금체계에 포함시킬 수 없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임금체계는 기본급 결정 체계다. 성과급은 기본급을 깎는 식으로 작용해서는 안 된다. 이 소장은 또 “현재 기본급 비중이 57%대인데 선진국은 70~80%수준이다. 그만큼 늘려나가야 한다”라고 말했다.  한편 노동계는 현행의 ‘연공급’을 유지하고 차별임금을 엄격히 규제하자는 입장이다. 하지만 이에 대해 기업들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아우성치는데도 규제만능주의로 애써 현실을 외면하고있다는 비판이 있다.  중소기업에게 연공급을 할 수 있는 돈을 줄 것이냐, 또는 조세 부담률을 높여 근로빈곤자에게 사회적 임금을 줄 것이냐에 대한 논의는 가능하지만, 이러한 논의는 기업 중심 노동시장에서의 연공급 자체가 갖는 문제점을 외면한 것이다.

기사4.JPG

  ‘직무숙련급’, 해법이 될까  개별 주체의 이해관계에서 잠시 떠나 사회적 공공선을 위한 대안을 제시한다면, ‘초기업적 표준 직무숙련급 체계’(직무숙련급)가 답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직무숙련급은 직무에 따라 임금을 산정하고 직무별로 숙련 단계를 설정해 높은 단계로 올라갈수록 임금이 상승하도록 만들어진 체계다. 이장원 소장은 이것을 ‘공정 임금’이라고 명명했다.  초기업적으로 적용되는 표준 직무숙련급에서는 하는 일이 같다면 어느 기업에서 어떤 고용형태로 일하든지 같은 임금을 받는다. 연령별·학력별·성별·인종별 임금 차별도 해소된다. 노동계에서 주장하는 동일노동 동일임금을 개별 사업장을 넘어 사회 전체에 확장한 것이다. 여기에 연공급의 장점을 결합해 숙련 상승에 따라 완만한 임금 상승이 이뤄진다. 독일에서는 이러한 직무숙련급 체계를 채택해 산업별로 단체협약을 통해 임금산정을 한다.  그러나 한국은 임금직무체계와 노동시장이 기업 중심으로 편성되어 있어, 기업이 기존에 갖고 있던 임금결정권을 일부내주어야 하는 표준임금체계에 대한 기업의 반발이 강할 것으로 예상된다. 연공급을 받던 노동자의 경우에도 임금이 깎여 불만이 생겨날 수 있다. 실현가능성에 대한 의문도 제기된다. 그러나 이 소장은“이미 개발된 국가직무능력표준(NCS)을 활용해 숙련단계를 정하고, 노사정과 공익위원이 참여하는 협의체를 통해 임금 가이드라인을 준강제적으로 규제하는 방안은 충분히 실현가능하다”고 말한다. 실제 일본이 노사정 임금협의체를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의 엄진령 사무처장은 “정부가 시키고 강제한다고 해서 그대로 따라올 지는 의문이다. 누군가의 노동이 얼마큼의 가치가 있는지 재단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사회적 합의를 얻기 어려울 것”이라며 “정부가 나서기보다는 노조가 활동할 수 있는 바탕을 잘 마련해주고 산별노조를 키워 협상할 수 있게 하면 된다”라고 주장했다.  

위기 타개하기 위해 대타협 필요  직무숙련급 도입에 얼마나 걸리겠냐는 기자의 질문에 이 소장은 ‘10년’이라고 단언했다. 그렇게 짧은 기간에 정말 가능할 지 의문이 드는 순간, 그는 “경제위기가 오면 더 짧아질 것”이라고 바로 덧붙였다. 이 소장은 이어 “한국 사회의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선 결국 대타협을 해야만 할 것”이라며 “올바른 방향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그것을 과연 실천하느냐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라고 담담히 말했다.

댓글 댓글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

Previous Post

구조개혁 이후, 노동운동의 운명은?

Next Post

어떤 이야기가 나왔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