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학교, 흡연 공간은 어디에?

‘담배 냄새 맡지 않을 권리’와 ‘당당하게 담배 필 권리’

 중앙도서관 근처의 한 쓰레기통. 이곳에 대여섯 명의 사람들이 모여 있다. 흡연을 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어째 담배를 들고 있지 않은 사람도 흡연을 하게 되는 것 같다. 공간 분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보행자들에게까지 연기가 향하기 때문이다.  공과대학에 재학 중인 이경민(화학생물공학 14)씨는 학내에서 이루어지는 간접흡연의 구조적 원인을 지적하며 “공식적인 흡연 공간이 지정돼있지 않아 흡연자들이 건물 사이에서 흡연을 하고, 비흡연자들은 길을 가며 연기를 맡을 수밖에 없다”고 불편을 호소했다. 타 단과대학들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공식적인’ 흡연 공간은 마련돼 있지 않으며 대부분의 암묵적인 흡연 공간은 건물 혹은 보행로에서 멀리 떨어져있지 않다. 결국 비흡연자들은 원치 않는 흡연에 노출된다. 대학 내 건물은 국민건강증진법 제9조 제4항에 의거해 전면 금연 구역으로 지정돼있다. 하지만 이처럼 건물을 제외한 공간의 경우, 별도로 마련 된 규정이 없다.

다른 대학에서는 어떻게 노력하고 있나 고려대학교와 중앙대학교 캠퍼스는 비교적 흡연 공간이 잘 조성돼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고려대학교의 경우 2014년 ‘고대공감대’ 총학생회가 인문계•이공계 캠퍼스에 처음으로 밀폐형 흡연 부스를 설치했다. 하지만 현 ‘지음’ 총학생회 측은 “흡연부스 이용률은 생각보다 저조하다”며 “홍보 부족과 흡인 시설의 부재로 인한 내부 공기 오염 등이 그 이유”라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지음’ 총학생회 측은 “밀폐형 흡연 부스를 추가적으로 만들기보다 개방형 흡연 공간을 만들고 홍보를 위한 표지판 등을 설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중앙대학교 역시 고려대학교와 마찬가지로 밀폐형 흡연 부스를 설치했지만 결과는 다르지 않았다. 한웅규 중앙대학교 총학생회장은 “우천 시가 아니면 흡연 부스는 거의 이용되지 않는다”며 “내부 환기가 잘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이라고 그 이유를 설명했다. 하지만 중앙대학교의 경우 밀폐형 흡연 부스 외에 개방형 흡연 공간이 잘 조성돼있다. 고려대학교 학생회 측 역시 “중앙대학교의 개방형 흡연 공간을 본뜰 예정”이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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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앙대학교 개방형 흡연공간 ⓒ 오다혜 사진기자

 

 기본적으로 중앙대학교 캠퍼스 곳곳에는 ‘금연 공간’이라는 현수막이나 입간판이 설치돼 있다. 한편 흡연을 위해 별도로 마련된 공간에는 ‘흡연 공간’이라는 표시와 함께 보행자들의 양해를 구하는 현수막이 걸려있다. 이와 같은 공간의 명확한 구별과 그 명시 덕분에 흡연 구역 이외의 공간에서 흡연을 하는 사람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또한 흡연 공간이 큰 길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마련돼 있거나, 길과 인접한 경우 그 사이에 벽을 만들어 효율적인 공간 분리가 이루어져있었다.

캠퍼스 공간 이용한 효율적인 흡연 공간 신민형 담배소비자협회 회장은 “흡연자와 비흡연자가 서로 배려하자는 의미에서 흡연 공간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했다. “흡연자는 당당하게 흡연 할 수 있는 권리를 찾고, 동시에 비흡연자의 혐연권을 존중하며 예절을 지켜야 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신 회장이 강조하는 바와 같이, 바람직한 흡연 공간은 흡연자와 비흡연자를 모두 배려할 수 있어야 한다. 담배 연기가 비흡연자들에게까지 미치지 않으면서도 흡연자들이 쾌적하게 흡연 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한 것이다. 두 가지 조건을 만족시키는 흡연 공간 중 대표적인 것은 강력한 흡인기를 갖춘 밀폐형 흡연 부스이다. 신 회장은 “중앙대학교나 고려대학교의 경우 흡인 시설이 미흡하기 때문에 내부 공기가 좋지 않을 수 있지만 강력한 흡인기를 갖춘 흡연 부스는 그렇지 않다”고 이야기했다. 하지만 흡인 시설이 제대로 갖춰진 흡연 부스의 경우 10평에 3천~5천만 원 정도의 설치비용이 필요하다. 높은 비용 때문에 담배소비자협회에 일부 지원을 요청하는 기관들도 있다. 한편 금연 공간 확대로 인해 흡연 공간을 찾는 것이 더 힘들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한 별도의 정부 지원은 거의 없는 상황이다. 신민형 회장은 “서울대는 캠퍼스 공간이 넓다는 장점이 있다. 이를 활용하면 굳이 밀폐형 흡연 부스를 만들지 않아도 저비용 고효율의 개방형 흡연 공간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그는 “중앙도서관이나 학생회관 주변은 보행로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공간을 내고 앉을 수 있는 시설물을 설치하는 게 적합할 것 같다”며 “쾌적하고 여유롭게 흡연 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하고 간접흡연 문제도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효과를 강조했다. 일종의 ‘작은 공원’을 조성하는 셈이다. 신 대표는 이어 “단과대학이나 강의 건물과 같이 공간적 여유가 적은 곳은 구조물로 공간을 분리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한편 그 동안 학내 흡연 공간 조성에 대한 노력이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다. 지난 제55대 ‘서포터즈’ 총학생회는 ‘흡연부스 설치’를 공약으로 내걸기도 했었다. 그러나 당시 부총학생회장 직을 맡았던 이은호(서문 09)씨는 “비용은 많이 드는데 이용률이 저조하다는 타 캠퍼스 흡연 부스 설치 사례 때문에 공약을 이행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씨는 “대신 에버랜드처럼 ‘작은 공원’형식으로 흡연 공간을 설치할 것을 부총장급 대화협의체에 건의했으나 예산 미책정의 이유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한편 현재까지도 본부 측은 흡연 공간 조성을 위한 별도의 계획은 없다는 입장이다. 비흡연자를 배려하면서도 흡연자가 불편함을 겪지 않는 흡연 공간, 과연 언제쯤 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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