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최고의 학교인 서울대학교에서 공부할 수 있는 장학금을 받게 됐다. 처음 그 소식을 듣고 매우 놀랍고 기뻤다. 하지만 처음 몇 달간은 모든 것이 기대했던 것과 달랐다. 2014년 8월 29일 아침, 인천 공항에 도착했다. 나의 한국 친구 경준이 공항에 마중을 나왔다. 처음 두 달간은 관악사에 들어갈 수 없었기 때문에 캠퍼스와 가까운 녹두거리에 방을 빌려야 했다.
의사소통은 가장 어려운 문제였다. 한국어를 모르는 사람에게 한국생활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집주인 아저씨는 영어를 못하셨기 때문에 동작을 사용해 의사소통 하거나 영어를 할 줄 아는 친구에게 통역을 부탁했다. 9월 1일부터 강의가 시작되자 더 심각한 어려움에 부딪쳤다. 영어강의인줄 알았던 강의는 한국어 강의였고 때문에 나는 강의내용을 이해할 수 없었다.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은 친구들에게 물어보거나 교수님께 많은 질문을 해야 했다. 한국 친구들과의 의사소통도 쉽지 않았기 때문에 친구들은 내가 질문을 하면 힘들게 설명을 해주곤 했다. 같은 내용을 공부하기 위해 한국 학생들보다 두 배의 시간을 들이고 노력을 해야 했다. 나 자신을 한국 학생들과 비교할 수 없다는 것을 알지만, 그들은 나보다 훨씬 뛰어나고 똑똑했기 때문에 내 어려움은 더 깊었던 것 같다.
그 다음으로는 식사 문제가 있었다. 한국 음식은 매운 김치와 함께 먹어야 하는 경우가 많았고, 또 대체로 매운 음식이었다. 그래서 점심이나 저녁을 먹은 후에는 복통으로 힘든 시간을 보내곤 했다. 학생회관에서의 음식 외에는 선택권이 없기 때문에 나는 살기 위해 먹어야 했다.
날씨는 또 다른 어려움이었다. 캄보디아에는 우기와 건기가 있다. 처음으로 한국에서 가을과 겨울을 보냈기 때문에 그 어려움은 더 했다. 추위로 얼굴이 얼고 가끔씩 어지러움을 느껴서 잠을 자거나 쉬어야 했다. 건물 안에서도 두꺼운 자켓을 입고 생활해야 했다. 지난겨울 동안 추위로 인해 감기에 걸렸던 날도 많았다.
핫팩을 마신다? –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
이러한 어려움 속에서도 재미있는 일도 있었다. 한국 생활 초반에 집으로 하교하는 버스를 잘못 타는 바람에 집까지 걸어서 돌아가야 했던 적도 있었다. 핫팩에 관한 재미있는 에피소드도 있다. 한 한국 친구가 나에게 핫팩을 줬다. 나는 아무 설명도 듣지 못했기 때문에 마시는 음료라고 생각했다. 몇 주 동안 냉장고에 두었다가 어느 날 목이 말라서 핫팩을 꺼내어 가위로 잘랐다. 그 순간 나는 그것이 마실 수 없는 음료라는 것을 알았다. 커피를 마시지 않는 나는 그것이 가루로 된 커피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핫팩을 휴지통에 버렸다. 2주 전, 내가 한국어를 배우고 있는 ISF(국제학생회)에서 산천어 축제를 갔다. 나의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핫팩을 나누어주셨는데, 나는 “커피를 마시지 않아요”라고 말했다. 주위에 있는 사람들은 내가 왜 그런 말을 했는지 궁금해 했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나는 핫팩을 손에 들고 있는 친구들을 보고서야 핫팩이 커피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이야기를 들은 친구들은 배꼽을 잡고 웃었고 나 자신도 내 실수를 생각하며 많이 웃었다.
5개월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외로움을 느낀다. 부모님과 형제자매들이 그립고 친구들, 고향에서 가르쳤던 학생들도 보고 싶다. 몇 달이 지났기 때문에 날씨와 음식에는 어느 정도 적응했지만 여전히 고향에 가고 싶고 캄보디아 음식도 그립다. 겨울은 내게 어려움을 주었지만 일생 처음으로 눈을 보았을 때를 잊을 수 없다.

김소쿤(수리과학부 석사과정)
1985년 캄보디아에서 태어나 Royal University of Phonom Penh(RUPP) 수학부 수학과를 졸업했다. 현재 서울대학교 수리과학부 석사과정 1학년에 재학 중이다. 본교에서 박사과정까지 마친 후 캄보디아의 모교로 돌아가 교수가 되는 것을 희망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