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상의 내 정보를 잊으시오!

‘잊혀질 권리’를 둘러싼 다양한 논의들

 스페인 변호사 곤살레스는 자신의 과거 기록이 인터넷 상에 떠돌아다닌다는 것을 알게 됐다. 채무 불이행으로 부동산을 강제 경매 당한 사실이 10년이 지난 후에도 계속해서 인터넷 상에 남아있었던 것이다. 곤살레스는 EU 사법재판소에 개인정보 삭제를 요청했으며 해당 재판에서 승소했다. 곤살레스 사건 이후 인터넷 상 자신의 기록을 지울 수 있는 권리인 ‘잊혀질 권리’가 세계적 이슈가 됐다.

‘잊혀질 권리’란 무엇인가

 ‘잊혀질 권리’는 인터넷 상의 개인정보에 대해 삭제를 요청할 수 있는 권리이다. 지금까지 논의되어 온 ‘잊혀질 권리’의 형태는 ▲악성 댓글 삭제 ▲사후 디지털 기록 삭제 ▲과거 흔적 삭제 ▲개인정보의 삭제 및 유포 중지 청구권 등으로 요약될 수 있다. 이는 정보에 대한 개인의 ‘소유권’ 및 ‘자기통제권’을 강화하는 맥락이다.

 하지만 ‘잊혀질 권리’의 보장 범위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명확한 사회적 합의가 없다. 기존의 명예훼손정보 삭제청구나 정정보도청구 등과의 경계도 불분명하다. 또한 ‘잊혀질 권리’의 무제한적인 보장을 경계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기억할 권리’, ‘알 권리’ 등과 균형을 맞춰 보장 범위를 정해야 하므로 그 과정이 쉽지만은 않다. 따라서 아직까지 ‘잊혀질 권리’는 시대별·지역별로 그 의미가 계속 변하고 있는 실정이다.

 

한국 법체계에서 ‘잊혀질 권리’는 어디까지 보장 되는가

 한국에서도 ‘잊혀질 권리’와 관련한 논쟁이 뜨겁다. 2000년대 초반 전자상거래가 활성화되면서 개인정보보호법이 강화됐다. 또한 2005년부터 시작된 SNS의 등장 이후 일반 개인에게도 ‘잊혀질 권리’가 중요하게 여겨졌다. 이제는 스마트폰으로 언제 어디서나 개인의 정보를 공유하고 유통시킬 수 있게 되면서 인터넷 상의 개인정보와 관련된 ‘잊혀질 권리’에 대한 관심도 자연스레 커졌다.

 

 현재 한국의 개인정보보호법에는 개인정보 정정·삭제권, 처리정지 요구권 등이 있다. 또한 정보통신망법은 사생활 침해나 명예훼손의 경우에 한해 해당 정보를 삭제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잊혀질 권리’가 일정 부분 법적으로 보호받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어느 내용까지 삭제 가능한지에 대한 명확한 범위는 정해지지 않았다. 실제적인 명예훼손이 아닌 경우 개인정보에 대한 삭제를 요구하기가 어려운 실정이다. 다만 가천대 최경진 교수(법학과)는 “‘잊혀질 권리’의 국내적 도입을 신중히 해야 한다는 점에서 새로운 법 조항을 만들어 구체화시키기보다 이미 있는 법 조항을 정리하는 수준에서 체계를 갖추는 대응이 필요할 것”이라고 입장을 밝혔다.

 

다른 나라에서 ‘잊혀질 권리’는 어떻게 보장되고 있는가

 앞서도 지적했듯이 ’잊혀질 권리’와 관련해서는 그 구체적인 내용이 국가별 상황에 따라 다르다. 먼저 미국은 ‘스마트 경제’의 중심지로, 구글, 클라우드와 같이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기업이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이러한 기업들의 성장과 함께 미국에서는 ‘잊혀질 권리’를 법으로 보호해야 한다는 인식이 비교적 최근에 형성됐다. 미국에서는 2012년부터 소비자정보프라이버시와 관련된 기본구상을 내놓으며 ‘잊혀질 권리’를 법으로써 보장하려는 노력을 전개 중이다

 반면 유럽에서는 개인정보와 관련된 조항을 좀 더 세밀하게 규정하고 있다. 1995년부터 개인정보보호지침 상의 삭제권을 구체화 시키는 등 비교적 이른 시기부터 ‘잊혀질 권리’를 법제화시키려는 노력을 이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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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천대 최경진 교수(법학과)는 “‘잊혀질 권리’의 국내적 도입을 신중히 해야한다”고 말한다. ⓒ김대현 사진기자

‘잊혀질 권리’는 어디까지 보장되어야 하는가

 ‘잊혀질 권리’의 보장범위는 여전히 사회적인 논의 대상이다. ‘잊혀질 권리’를 지나치게 확장시킬 경우 표현의 자유가 위축될 수 있다. 고려대 박경신 교수(법학과)는 “’잊혀질 권리’가 특정 정보를 배제시키는 검열의 결과를 낳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특히 ‘잊혀질 권리’를 보장하는 움직임이 커질수록 언론 활동이 제약될 수 있다. 정보의 공익성 여부와 상관없이 정보의 유통이 원천적으로 차단될 가능성이 있다. 기사에 잘못된 정보는 없지만 ‘잊혀질 권리’를 보장받기 위해 사람들이 더 이상 그 기사를 볼 수 없게 해달라는 요청이 있을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잊혀질 권리’의 보장 범위가 확정되더라도 비용과 기술상의 어려움이 있다. 현재 개인이 ‘잊혀질 권리’를 보장받기 위해서는 개인이 개별 인터넷 사이트에 정보 삭제 요청을 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소위 ‘디지털 세탁소’라고 불리는 대행업체를 통해 개인정보를 삭제해야 한다. 이 때 대행업체를 통해 개인정보를 삭제할 경우 2백만 원이 넘는 적지 않은 비용이 든다. 특히 이러한 업체가 개인의 계정 비밀번호, 주민등록번호 등을 건네받아 개인정보를 삭제해준다는 점에서 대행업체를 중심으로 한 개인정보의 수집과 관리의 문제가 있을 수 있다.

 한편 최근 미국에서는 ‘잊혀질 권리’를 보장하려는 노력과 함께 ‘기억할 권리’에 대한 논의가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인터넷에서 유통되는 개인정보가 일반 대중의 ‘기억할 권리’, ‘알 권리’를 보장하는 공익적 역할을 수행한다는 목소리 또한 커지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잊혀질 권리’와 ‘기억할 권리’ 사이에서 균형을 찾기 위한 노력은 미국 외의 국가에서도 전 세계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한국에서도 국내 실정에 맞게 ‘알 권리’와 균형을 이룬 ‘한국형 잊혀질 권리’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필요한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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