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준국어대사전은 ‘독립(獨立)’을 ‘다른 것에 예속하거나 의존하지 아니하는 상태로 됨, 독자적으로 존재함’으로 정의하고 있다. ‘독립’이라는 단어는 자녀와 부모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 속에서 흔히 등장한다. 자녀 주변을 맴돌며 온갖 일에 참견하는 ‘헬리콥터 맘’과 같은 신조어는 성인의 정신적인 독립 부재를 꼬집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자녀들이 경제생활을 부모의 지원에 의존한다는 뜻의 용어, ‘엄마 아빠 은행(Bank of Mum and Dad)’을 제시했다. 이와 같이 자녀의 부모에 대한 정신적, 경제적 의존은 흔히 비판의 대상이 된다. 자립은 성인이 된 자녀의 당연한 도리로 여겨진다.
하지만 실상 주변을 살펴보면 부모로부터 자립, 특히 경제적 자립을 한 경우는 찾아보기 어렵다. 청년들이 게을러 일은 하지 않고 소비만을 원하기 때문인가?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김지경 연구원은 “그렇지 않다”고 이야기한다. 청년들의 경제적 자립은 사회 구조적인 어려움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등록금’과 ‘기본적인 생활을 유지하기 위한 비용’이라는 두 가지가 경제적 자립의 장애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김지경 연구원은 “전반적으로 물가가 낮고 등록금도 낮은 상황에서 옛날 대학생들은 과외나 여타 아르바이트를 하며 학업을 병행하는 것이 가능했다”고 말문을 열었다. “하지만 시간 당 최저 임금 수준이 그 옛날과 비교했을 때 많이 오르지 않았고, 등록금은 2000년대 이후 수직 상승했다”는 것이 김 연구원의 주장이다. ‘대학알리미’에 공시된 우리나라 대학생의 한 해 평균 등록금은 667만원이다. 2015년 최저 임금인 5,580원을 받는 아르바이트를 하루 4시간 주 5일 했을 때, 667만원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약 1년 3개월이 필요하다.
문제는 여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복지국가청년네트워크’의 <2014 대학생 실태조사>에 따르면 서울을 기준으로 했을 때 한 달 평균 생활비는 66만원이다. 여기에 주거비와 취업을 위한 사교육 비용까지 더해지기에 복지국가청년네트워크 운영위원장 문유진씨는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유지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며 고개를 저었다. 실제로 <2014 대학생 실태조사>에 따르면 평균적으로 주거비의 90% 이상은 부모 지원에 의존하고 있었다.

<2014 대학생 실태조사>에 따르면 서울을 기준으로 했을 때
한 달 평균 생활비는 66만원이다. ⓒ123RF
국가장학금과 학자금대출, 자립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대학생들의 재정적 부담을 완화시키기 위한 방안으로 가장 많이 제시되는 것이 국가장학금이다. 하지만 국가장학금 또한 재정적 자립을 위한 도구로 기능하기는 어려운 측면이 있다. 문유진씨는 “우리나라는 국가장학금이 부모 소득과 연관 된다”며 “부모로부터 지원을 받지 못해도, 부모 소득이 어느 정도 된다고 하면 지원의 기회 자체가 제한적”이라고 비판했다. 국가장학금이 가계부담의 축소를 위해 지급되기 때문에 청년의 자립에 직접적으로 도움이 되지는 못한다는 것이다. 더불어 한국장학재단은 소득분위가 8분위 이하인 학생들에게는 학기 당 150만원의 생활비 대출을 해 주지만, 방학을 포함한 약 6개월 간 150만원으로 생활비를 충당하기는 사실상 어렵다.
국가장학금이 제 기능을 하고 있다면, 국가장학금 수혜 정도가 클수록 대학생들의 근로 시간이 줄어야 한다. 하지만 김지경 연구원은 “국가장학금을 많이 받는 학생일수록 아르바이트를 더 많이 한다”는 연구 결과를 제시했다. 이는 저소득층 학생들이 국가장학금만으로 생활비와 등록금 모두를 충당하기 어렵다는 현실을 반증한다.
김 연구원은 이어 “학생에게 학습권은 노동권보다 우선한다”며, “이를 위해서는 등록금이 인하되거나 장학금이 더 지급되어야 하지만 현재 상태로는 둘 다 100% 충족이 되지 않고 있다”고 이야기했다.
현재 기초생활수급권자의 경우 연간 총 450만원을 국가장학금으로 1 유형으로 지원 받을 수 있지만 이는 평균 대학등록금인 667만원에 미달 되는 금액이다. 서울대학교의 경우 2 유형까지 합쳐 소득 분위 5분위까지 전액 장학금이 지급되지만 2 유형은 대학 별로 배정된 예산이 다르고 대학 내에서 지급 대상을 독자적으로 정해 놓아 일반화 하여 설명하기 어렵다. 예컨대 이화여자대학교는 국가장학금 1유형과 2유형을 더한 학기 당 지원 금액이 기초생활수급권자의 경우 332만 6천원으로, 한 학기 등록금을 다 채우지 못한다.
학자금대출도 대학생들의 재정 부담을 완화시키는 대표적인 방안 중 하나다. 학자금대출의 이자는 은행의 이자에 비해 낮은 수준으로 책정돼있다. 하지만 이는 분명한 ‘빚’이며, ‘상환’의 대상이다. 문유진씨는 “국가는 청년들을 위한 제도를 마련한다고 하면서 실제로는 그들에게 빚을 안겨주는 방식을 사용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김지경 연구원 또한 “학자금 대출을 많이 받은 학생들은 결국 대출금의 누적으로 인한 부담에 휴학하기도 하며, 취업이 늦어질 경우 빚이 늘어나기에 더욱 큰 부담을 지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강종만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의원의 <학자금대출제도의 문제점과 개선방향> 보고서에 따르면 학자금대출의 원금과 이자를 6개월 이상 연체한 신용유의자는 2010년 말 2만 6천여 명에서 2013년 말 4만 1천여 명으로 3년간 60% 가까이 급증했다.
복지청년네트워크 문유진씨는 “대다수 복지 선진 국가들은 재학 기간에는 이자를 받지 않는 방식으로 부담을 경감시키는 정책들을 마련해 놓았다”며 “국가적으로 이자를 감면해 주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문씨는 더불어 영국에서 시행하고 있는 ‘등록금 후불제’에 주목한다. 일단 재학 중에는 등록금을 내지 않고, 취업 이후 자기 책임 원칙에 입각 해 소득에 비례해서 등록금을 내게 하는 것이다.
대학의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한 현 상황
상황이 이렇다보니 학생들의 경제상황은 부모의 경제력에 큰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서울대저널>의 설문결과에서도 드러났듯이 부모의 경제력에 따라 학생들이 수업교재비 및 식비 등에 부담을 느끼는 정도, 인간관계에 제한을 느끼는 경험, 개인성장 투자시간 등이 다르게 나타나기도 한다. <한국일보>가 2011년 11월 27~29일 전국의 20대 8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90.7%가 “20대 내에 부익부 빈익빈 양극화가 존재한다”고 답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교육기관인 대학교에서마저 드러나는 양극화의 양상을 해소하기 위해 대학도 적극적이고 자체적인 노력을 기울여야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