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란의 중심, 대학구조조정을 들여다보다

대학구조조정에 대한 평가, 그리고 대안

  2014년 1월 교육부는 ‘대학 구조개혁 추진계획’을 발표했다. 학령인구의 감소로 2023학년도에는 현재 입학정원보다 16만 명이 부족할 것으로 전망되는 상황에서, 대학의 양적 규모는 대폭 줄이고 교육의 질은 높일 수 있는 선제적이고 적극적인 구조개혁 방안을 마련하자는 취지였다. 새로운 대학평가체제에 따른 정원감축 실시를 큰 줄기로 하는 계획에는 모든 정부재정지원사업 평가에 구조개혁 계획 및 실적 반영 정량지표 외 정성지표를 도입한 절대평가를 실시 등의 구체적 내용이 포함됐다.

  이를 바탕으로 교육부는 2014년 12월 ‘2015년 대학 구조개혁 평가 기본계획’을 확정했다. 단계별 평가에 따라 전체 대학을 A~E의 5개 등급으로 나누고, 등급별로 대학의 차등적인 정원감축을 이룬다는 내용이 핵심이다. 하위 등급(D·E등급)을 받은 대학은 정부 재정지원사업 참여 및 국가장학금, 학자금 대출이 제한된다. 올해 3월 시작된 평가는 올 8월 하순에 최종 결과를 확정할 예정이다. 한편 정부는 평가의 법적 근거로서 ‘대학구조개혁 및 평가에 관한 법률(대학구조개혁법)’을 마련했으나, 법안은 현재 국회에서 계류 중이다. 이미 평가가 시작된 상태에서 법을 소급적용할 수는 없기에 결과가 나와도 정부는 정원 감축을 강제할 수 없다. 그러나 교육부는 여전히 “하위 등급을 받은 대학은 정부 재정지원사업 참여를 제한하겠다”고 밝힌 상태다. 더욱이대학들은 하위 등급을 피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정원을 감축할 가능성이 있다. 법안 통과가 지연되더라도 구조조정의 방향은 크게 바뀌지 않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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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년 대학 구조개혁 평가편람(일반대학)

  박근혜 정부의 대학구조조정은 산업연계를 강화하는 방식으로도 추진되고 있다. 공학계열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정원 조정을 진행하는 대학에 재정을 지원하는 ‘산업연계 교육 활성화 선도대학 사업(PRIME)’은 2016년부터 시작될 계획이다. 정리하면 박근혜 정부의 대학구조조정은 대학평가에 따른 정원감축 및 정부 재정지원 제한 산업연계 강화라는 방향성을 지닌다.

구조조정에 대한 평가: 불가피한 구조조정, 그러나 잘못된 방향성

  현재와 같은 대학구조조정의 흐름은 과연 바람직한 방향일까. ‘한국대학학회’ 회장 윤지관 교수(덕성여대)에 의하면 “구조조정 자체는 필요할 뿐만 아니라 필 연적”이다. 학령인구의 감소로 현재의 규모를 대학들이 유지할 수 없는 상황에서 정원감축은 불가피한 것이다. 한편 그는 “정원감축을 시장의 수요에 맡기면 (서울과 수도권을 중심으로 심각하게 서열화 된) 우리나라 대학구조 현실상 지방의 작은 사립대학부터 없어질 것”이라는 의견을 밝혔다. ‘필연적인’ 정원감축은 정부가 일정 부분 주도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하지만 현재의 대학구조조정은 ‘방향이 잘못됐다’는 것이 중론이다. 윤지관 교수의 시평 ‘대학의 폐허화, 이대로 방치할 것인가’는 “(지역 양극화, 사립대학 편향, 사학비리 등) 한국 대학의 구조적 병폐를 해소 또는 개선하고자 하는 정책방향은 교육부의 구조개혁안에서 찾아보기 어렵다”고 주장한다. 그는 현재의 대학구조조정이 “비대증을 앓는 환자에 대해 의사가 진찰·처방 없이 그냥 비대해진 부분을 자르는 방식”이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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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대학학회 회장 윤지관 교수(덕성여대)는 “한국 대학의 구조적 병폐를 해소 또는 개선하고자 하는 정책방향은 교육부의 구조개혁안에서 찾아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 ⓒ 박나연 사진기자

지향점 없는 평가지표: 획일적 기준에 의한 소모적 경쟁 야기

  이러한 한계는 ‘2015년 대학 구조개혁 평가 기본계획’ 지표에서 우선적으로 드러난다. 정부는 ‘정량지표 외 정성지표를 도입한 절대평가 실시’를 새로운 평가체계의 의의로 제시했다. 그러나 전체 대학을 대상으로 하는 1단계 평가의 총점 60점 가운데 정량지표 배점은 42점에 달한다. 사실상 획일적인 기준에 따라 대학을 줄 세우는 것이다.

  이에 따른 차등적 정원감축과 재정지원은 기존의 대학 서열화를 완화시키지 못한다. 정부가 제시한 평가편람에 따라 143개 사립대학을 대상으로 대학교육연구소(대교연)가 모의평가를 실시한 결과, 정원감축 대상대학의 절반 이상을 지방 및 소규모 사립대학들이 차지한다. 수도권·대규모 대학 중심의 구조가 심화되는 것이다.

  평가지표의 구성 자체도 문제로 지적된다. 1단계 평가에는 학교 재정의 건전성이나 강의실, 도서관, 실험실 등 교육시설을 평가하는 항목이 포함되지 않는다. 더욱이 대교연의 모의평가 결과, 1등과 141등 간 점수 격차는 8.3점에 불과했다. 0점대의 점수차로 등급이 갈릴 수 있는 상황에서, 대학 간의 소모적인 경쟁이 벌어질 가능성이 있다. 이에 대해 대교연의 이수연 연구원은 “현재의 평가방식은 지향점이 없다”고 비판했다.

학내 구성원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구조조정

  구조조정을 위한 각 대학의 움직임은 구성원들의 피해로 이어진다. 산업수요에 맞춘 학과통폐합이나, 구조개혁 평가에 대비한 학사제도의 엄정화(재수강 제한 등)는 소속을 잃거나 심화된 학점경쟁에 내몰려야 하는 학생들의 고통으로 직결된다. 한편 재정의 상당부분을 등록금에 의존하는 사립대학 입장에서 ‘정원감축’은 곧 ‘재정상황의 악화’를 의미한다. 이를 만회하기 위해 대학은 지출을 줄일 가능성이 크다. 학생들에게 이는 교육시설에 대한 투자 감소 등 학생복지의 타격으로 나타난다. 교직원의 경우엔 고용 및 근로조건 악화로 이어질 수 있다. 전국대학노동조합의 김병국 정책국장은 “(지출 중) 제일 비중이 큰 것이 인건비이기 때문에 대학은 직원 숫자를 줄이는 상황으로 갈 수밖에 없다. 지방대 같은 경우 실제로 정리해고가 벌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 정책국장에 따르면 교원 역시 많은 사립대에서 정규직이 나가면 비정규직을 넣음으로써 고용불안에 처한 상태다.

  한편 국회에서 논의 중인 ‘대학구조개혁법’엔 사립대학의 잔여재산처분 방식을 규정하는 내용이 담겨있다. 이에 따르면 학교법인은 법인·대학 해산 시 잔여재산의 전부 또는 일부를 공익법인 사회복지법인 비영리법인으로 전환 또는 출연할 수 있다. 또한 학교법인은 잔

여재산을 ‘잔여재산처분계획서에서 정한 자’에게 귀속시킬 수도 있다. 그런데 직업능력개발훈련법인이나 평생교육시설 등 비영리법인을 운영할 경우, 현 제도 하에선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시설로의 전환 및 해산이 용이하며, 이때도 잔여재산은 ‘잔여재산처분계획서에서 정한 자’에게 귀속 가능하다. 결국 학교법인이 법인·학교를 해산하더라도 잔여재산을 보전할 수 있는 경로가 법에 의해 마련되는 셈이다. 이에 대해 대교연은 “사학법인들이 대학을 유지·발전시키기 위한 방안을 모색하기 보다는 손익계산을 통해 ‘자발적 퇴출’을 선택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이 같은 지적이 제기되자 국회에선 잔여재산처분 방식과 관련한 내용을 제외하고 법안을 통과시키려는 분위기다.

‘취업 안 되는 학과’를 겨눈 대학구조조정의 칼날

  대학구조조정과 산업수요와의 연계를 강화시키려는 흐름 속에서 구조조정의 칼날은 ‘취업이 안 되는 학문’, 즉 기초·순수학문으로 향할 수밖에 없다. 일례로 건국대와 한신대는 각각 예술디자인대학, 인문대학 중심의 학과통폐합 계획을 발표했다. 이미 여러 대학에서 지속적으로 진행돼온, 기초·순수학문을 대상으로 한 구조조정의 흐름은 현 정부 들어 더욱 강화된 것이다.

  하지만 인문계 학생들이 취업하기 어려운 것은 현실이 아닐까. 실제로 ‘졸업 후 취직이 어려운 인문학의 정원수를 줄이지 않는 것은 미필적 고의’라는 논리는 현 대학구조조정을 지지하는 사람들의 강력한 논리 중 하나다. 그러나 한국대학학회 회장 윤지관 교수는 “인문학이 너무 많다는 말은 사실과 전혀 다른 이야기”라고 주장한다. 윤 교수는 “대학은 산업수요에도 부응해야 한다. 그러나 대학의 기능에는 이뿐만 아니라 인간·사회의의미를 비판적으로 고민하는 사회과학이나 인문학의 역할도 포함돼있다”며 “현재의 방향이 지속되면 대학은 제 기능을 못하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기업화된 대학의 현실을 그려낸 ‘진격의 대학교’의 저자 오찬호씨는 모든 책임을 인문학에 돌리는 현실 자체를 비판한다. 그는 “(인문학 정원 축소의) 대전제는 대학은 사회의 변화에 따라서 발맞춰야 한다는 것인데, 사회 자체가 잘못됐을 수 있지 않느냐”며 기업논리에 지배된 사회를 대학이 따라가는 것이 문제임을 지적했다. 덧붙여 오씨는 “‘왜 기업에 들어가기 전에 이미 모든 것을 기업에 맞추길 원하는가?’ 질문이 향해야할 곳은 거기다”라고 주장했다.

  게다가 산업수요에 맞추기 위한 대학의 구조조정은 정작 취업난을 해결하지 못했다. 오찬호씨는 “10년 전부터 이미 ‘대학은 직업 양성소’라는 말이 나오면서 경영학과 등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그런데 현재 청년 실업은 사상 최악”이라고 지적했다. 애초에 경영학과 학생들이 부족해서 기업이 채용을 줄인 것은 아니라는 의미다.

한국의 고등교육이 나아가야 할 방향

  그렇다면 현 대학구조조정의 대안은 무엇일까. 대교연의 이수연 연구원은 “현재 추진되고 있는 정원감축 차원의 구조조정은 중장기적으로 우리나라 고등교육체제를 개편하는 방향과 맞물려 나아갈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정부가 고등교육정책에 관해 큰 그림을 그릴 필요가 있다는 의미다. 그에 따르면 그간의 정부정책은 이러한 지향점이 없었다. 90년대 대학 자율화 정책 추진 당시 10, 20년 후의 결과를 예상하지 못하고 사립대 중심의 양적 팽창을 방관해오다, 문제가 생기자 그때서야 기계적으로 정원감축을 진행해왔다는 것이다. 이 연구원은 “지역균형발전 및 사립대 과잉구조 해소에 대한 고려가 필요하다. 또한 최소한의 교육여건을 법적으로 규정하고 대학들이 이를 준수하도록 구조조정이 이루어져야 한다”며 방향성을 제시했다. 이어 그는 “사립대 부정비리의 책임자에 대한 처벌강화도 병행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를 위해 고등교육에 대한 정부의 책임이 확대·강화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그간 고등교육에 대한 정부의 지원은 매우 낮은 수준으로 이루어졌고, 그에 따라 사립대 위주의 구조가 형성됐다. <한국의 대학구조조정에 대한 재정사회학적 연구>의 저자 김일환씨(사회학과 박사과정)는 “(고등교육의 확대는) 공적 투자보다는 거의 전적으로 사적부담을 통해 이루어져 왔다. 그 결과 높은 대학진학률과 낮은 공공지출 구조를 동시에 지닌 고등교육 제도가 형성됐다”고 지적했다. 이는 OECD 국가 중 ‘대학교육의 가계부담 1위(2014년 기준)’라는 결과로 이어졌다. 그럼에도 교육의 질은 비싼 등록금만큼 향상되지 않았다. 이수연 연구원은 “(한국 고등교육은) 교육의 질을 담보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양적으로만 팽창했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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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간 고등교육의 확대는 거의 전적으로 사적 부담을 통해 이루어져 왔다. / ⓒ김일환 ‘한국의 대학구조조정에 대한 재정사회학적 연구’(통계청 데이터베이스(kosis.go.kr)에서 재구성)

  해결책으로서 김일환씨는 “‘정부통제형 사립대학’으로의 재편을 진지하게 고려해볼 만하다”고 주장했다. 국가의 공적지출을 확대하는 한편, 이를 매개로 사립대학의 공공성을 강화해야한다는 것이다. 김씨에 따르면 이는 고등교육에 대한 국가의 최소한의 책임을 확립해나가는 과정이자, 현 대학교육의 위기를 시장경쟁의 파괴적 결과에 노출시키지 않는

방안이다.

  그러나 여전히 고려할 부분이 있다. 정부의 책임성 확대는 대학의 자율성을 침해할 소지가 있다. 김일환씨는 “전체 대학기관에 대한 일괄적 정량평가, 특수목적형 재정지원의 극대화, 각종 행정적 제재 수단이라는, 재정지원을 수행하는 현 정부의 독특한 방식이 대학의 자율성을 억압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한다. 때문에 재정지원에 대한 근본적인 재검토가 필요하다. 이와 관련해 이수연 연구원은 “대학의 자율성을 어떤 부분에서 보장해주어야 하나”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정부가 학사관리 등 대학의 자율적인 영역에 대해선 개입하지 않는 대신, 국가적 차원에서 지역불균형 및 사립대학 과잉을 해소하기 위한 부분들은 대학과 조율해야 한다는 것이다. 

  노동시장 수요와의 연계 및 한정된 국가 재정 역시 넘어야 할 산이다. <시사IN>은 ‘‘대학 정원 감축’, 정부 칼 빼들었나’(제386호)라는 기사에서 “대학 진학률은 건드리지 않으면서 공공성은 공공성대로 높이자는 접근법이 등장하는데, 이 조합은 지속가능성이 의심받는다. 노동시장의 수요와 맞지 않고, 국가 재정을 잡아먹는 효과가 크다”고 지적했다. 이는 근본적으로 대학의 존재의미에 대한 문제로 연결된다. ‘노동시장에서 선택받기 위해 인적자본을 쌓는 공간’과, ‘학문을 육성하는 공간’ 사이에서 한국 대학은 정체성을 고민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대학구조조정이 획일적이고 정량적인 평가에 따라 이루어져서는 안 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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