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조정의 바람이 전국의 대학에 불 고 있다. 학생들은 이 상황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서울대저널>은 구조조정이 진행됐거나, 진행 중에 있는 6개 대학(중앙대, 이화여대, 한성대, 한신대, 한양대, 청주대)의 학생들을 인터뷰했다.

▲ 대학 구조조정에 반대하는 학생들이 거리 행진을 하고 있다. ⓒ한국대학신문
대응하는 학생들의 고민 각 대학에서 나타난 구조조정의 양상은 조금씩 달랐지만, 그 과정에서 본부가 학생들에게 보여준 태도는 비슷했다. 학생들을 배제한 채로 수립된 계획은 수정할 여지가 없는 상태에서 학생들에게 공표됐던 것이다.
중앙대의 ‘학사구조선진화 계획’은 올해 2월 26일에 발표됐다. 학생 모집 단위를 학과에서 학부, 더 나아가서는 계열로 확대하겠다는 내용이었다. 학부 혹은 계열로 모집된 학생들은 뒤늦게 학과를 선택한다. 자연히 학생이 몰리는 전공이 생기고, 학생들이 찾지 않는 전공도 생긴다. 후자의 전공들은 다른 전공에 통폐합될 가능성이 높아 문제가 제기됐다. 중앙대 ‘학생 구조조정 공동대책위원회’(공대위) 곽진경씨는 이에 대해서 “작년부터 설명회는 있었지만 추상적인 설명뿐이었다. 계획이 발표된 후에야 알게 됐다”며 발표 이전에 공개적인 논의절차가 없었다는 점을 지적했다.
이화여대는 몇몇 학과들을‘신산업융합대학’이라는 새 단과대학 밑으로 소속 시키는 안을 내놓았는데, 이 계획은 평의원회 안건으로 상정되기 전날에 당시의 비상대책위원회(총학생회 대체 기구)에 메일로 통보됐다. 그전까지의 논의 역시도 학생들에게 공개되지 않았다. 이화여대 ‘도전실천단’의 허성실씨는 “구조개혁이 될 거라는 소문은 많았으나 모두 학과 교수들을 통해 전해들은 이야기였다” 며 본부와 학생 간의 소통이 부족했음을 지적했다. 허씨는 “교수들과의 소통도 카톡방에서 ‘과 이름을 어떻게 바꾸면 좋겠냐’고 말하는 정도였다”며 논의된 내용이 구조조정의 핵심적인 내용이 아니었음을 비판했다.
구조조정에 대한 학생들의 논의가 활발해지기 위해서는 구심점이 필요하다. 대개 총학생회가 그 역할을 담당한다. 그런데 구조조정 계획이 발표됐을 당시 총학생회가 궐위 상태였던 한성대는 구조조정 문제를 공론화하는데 어려움을 겪었다. 한성대는 작년 11월 이후 총학생회가 없는 상태다. <한성대신문>의 편집국장 한재원씨는 “구심점이 없으니 대응이 어렵다. (학교와) 총학생회로 부딪히는 것과 단과대 학생회로 부딪히는 것은 다르 다”며 총학생회 없는 비대위 체제가 지니는 어려움에 대해 설명했다.
중앙대의 경우, 총학생회는 존재했지만 문제 공론화를 위해서 적극적으로 나서지는 않았다. 지난 2월 말에 구조조정 계획이 발표되자 가장 먼저 대응했던 주체는 총학생회였다. 하지만 총학생회는 소통하지 않은 본부의 태도만 비판할 뿐, 구조조정 안 자체에 대해서는 학생들의 의견을 수렴한 뒤에 입장을 밝히겠다는 태도를 보였다. 중앙대학교 독립언론 <잠망경>의 편집장 강남규씨는 “총학생회는 적극적인 활동을 하지 않았다. ‘소통해야 된다’는 성명서를 내도 실질적인 행동으로 나가지 않았다”며 총학생회의 태도를 비판했다. 총학생회의 입장발표가 늦어지면서 단과대나 학과 학생회장들이 따로 공대위를 꾸리기도 했다. 공대위 관계자 곽진경씨는 “총학에서 준비했던 총투표가 중앙운영위원회에서 부결되는 등 의견 수렴이 늦어져, 공대위에서 학칙개정안 반대 연서명을 총학에 전달했다”고 밝혔다.
학내 여론이 구조조정에 대해 찬성, 반대로 나뉘어져 있다는 점도 공론화를 어렵게 하는 요소였다. 학과 교수들의 주도로 구조조정이 진행되는 경우 학내 여론은 분열되기 쉽다. 이화여대의 경우, 학과 교수들의 지원으로 신산업융합대학의 대상이 되는 과가 정해졌다. 이화여대 도움실천단의 허성실씨는 “중앙대 같은 경우는 교수들끼리 대책위를 꾸리기도 하지만, 우리는 교수들이 회의를 해서 지원한다”고 밝혔다. 그는 “교수들이 학생 들에게 ‘너희에게 좋은 방향으로 갈 것이다’라고만 말한다”며, 이것이 구조조정에 대한 학생들의 의견을 한 데 모으기 어려운 이유임을 밝혔다.
학교의 재정 여건이 어려워 구조조정 에 대한 학생들의 여론이 갈리기도 했다. 한신대는 교육부의 대학구조개혁 평가에서 C-D등급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평가에서 D등급을 받게 되면 국가 장학금, 학자금 대출 등 국가의 재정지원 사업이 제한적으로 적용된다. 이에 대해 한신대 총학생회장 허인도씨는 “학교가 굉장히 어려운 상황에 직면해있기 때문에 반대하기 힘든 상황이라고 인식하는 학우들도 있다”며, 학내 여론이 갈리는 지점이 있음을 인정했다. 한신대 사회학과 전실라씨는“학교가 예산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기 때문에 구조조정은 피할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구조조정에 대한 찬성 입장을 밝혔다.
소속 학과에 따라서도 입장은 서로 다르게 나타난다. 중앙대 경제학과 신성철 씨는 “1학년 당시 과 선배들로부터(구조조정) 반대 시위에 참여하지 말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우리 과가 손해 보는 것이 없다는 이유였다”며, ‘구조조정반대’에 반대하는 분위기가 있다는 점을 말했다. 중앙대 심리학과 정현우씨는 “경영, 경제에서는 쉬쉬하는 분위기같고, 공대는 이미 학교에서 잘 밀어주니까 크게 상관하지 않는 것 같다”며 학내 여론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중앙대 독립언론 <잠망경> 편집장 강남규씨 역시 “사회과학대나 인문대 쪽에서는 (구조조정을) 많이 반대 를 했고, 경영대나 공대 쪽에서는 찬성하는 분위기인 것 같다”고 대답했다.
구조조정으로 느끼는 피로감이 학생 상호 간의 불신으로 이어져 논의를 가로막기도 했다. 중앙대 경제학과 신성철씨는 “고학년에게 구조조정은 이제 지겹다. 아무리 반대해도 달라지는 게 없다보니 이제는 관심이 가지 않는다”며, 구조조정에 대한 피로감이 무관심으로 이어진다고 이야기했다. 이러한 무관심은 서로의 입장에 대한 이해를 어렵게 만든다. <잠망경> 편집장 강남규씨는 학생들의 논의가 발전적인 방향으로 이뤄지지 않고 있 음에 아쉬움을 표했다. “학교 사안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야 입장을 알 수 있는 것인데, 학교에 찬성하는 학생들은 적극적으로 입장을 내지 않고 침묵으로 동의하는 편이다”며, “어떤 학생들은 구조조정 사안에 반대하는 학생들을 운동권이라고 인식해 반감을 가지기도 한다”고 말했다.
청주대에서는 학생들의 저항이 본부의 구조조정안을 철회시켰다. 폐과 당시의 상황은 암울했다. 청주대 사회학과의 노진현씨는 “폐과 소식을 학생들은 언론을 통해서 접했다”며 당시의 상황을 전했다. 사회학과 학생들의 항의에 본부는“이미 결정된 사안을 되돌릴 수는 없다. 이런 문제를 학생들과 논의해야하냐”는 반응을 보일 뿐이었다. 투쟁과정은 지난했고 2학기가 지나자 4명의 학생을 제외하고 20명이 넘는 학생들이 전과했다. 학교 측에서 학생들의 가정에 편지를 보내 ‘특례 전과를 시켜주겠다’고 회유했기 때문이다. 사회학과 학생들은 법원에 학교 측의 폐과조치에 대한 효력정지 가처분소송을 냈으나 이마저도 기각됐다. 노씨는“소송이 기각된 후에 희망이 없다고 생각했다”라고 말했다.
구조조정을 막아낸 학생들, 그리고 연대 그러나 작년 8월 청주대가‘정부 재정지원 제한대학’으로 선정되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학생들이 총장과 재단 이사회 에 대한 반대운동을 시작하면서 청주대 사회학과 복과 운동도 학생들의 지지를 받게 됐다. 지난 3월에는 학우 5천명이 모이는 비상총회가 있었으며, 총학생회 장이 단식투쟁을 벌이기도 했다. 결국 투쟁의 결과로 사회학과는 2016년도부터 20명의 신입생을 받게 됐다. 노씨는 “끝까지 내 학과를 지키고 싶었다”며 힘든 상황에서도 투쟁을 계속했던 이유를 밝혔다.
개별학교의 대응을 넘어선 학생들의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대학공공성 실현 대학생 네트워크‘모두의 대학’은 대학 구조조정에 대응하는 학생들의 연대 조직이다.‘모두의 대학’ 집행팀장 최장훈씨 는 “각개 대학에서의 투쟁으로는 구조조정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결국 정부의 구조조정 정책에 반대하는 학생조직이 필요하다”며, ‘모두의 대학’의 설립 취지 를 설명했다. 현재 ‘모두의 대학’에는 서울대, 이화여대, 동국대, 단국대, 국민대, 전북대의 총 학생회나 단과대학생회 혹은 개인 학생들이 참여하고 있다. 최장훈씨는 “현재 대학 구조조정에 대한 웹진을 발간하고 있으며, 구조조정이 벌어지는 대학의 반 대 투쟁에 연대하고 있다. 내부적으로는 대학에 대한 정책 대안을 마련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며, 모두의 대학의 주된 활동을 설명했다. 모두의 대학에 참여하고 있는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학생회장 이은호(서문 09)씨는 “대학 구조조정이 서울대 입장에서는 안 와닿는 문제일 수도 있지만, 우리 사회의 대학 교육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 지와 관련된 문제이기 때문에 (서울대 학생들에게도) 중요하다” 며 참여 이유를 밝혔다.
대학 단위의 네트워크 외에도 특정 전공을 중심으로 하는 연대체도 존재한다. 예술대학 학생회 네트워크(네트워크)는 예술대학 전반에서 나타나는 문제들에 대응하기 위한 조직이다. 현재 서울대, 홍익대, 건국대 등 7개 이상의 예술대학 학생회가 연합하여 출범을 준비하고 있다.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학생회장 김유진(조소 12)씨는 “예술대학 전반에서 발생 하는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서 다양한 학교의 학생과 학생회 간의 소통이 필요하다”며 네트워크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구조조정을 거치면서 학생들이 가장 뼈저리게 느낀 부분은 학교가 학생을 교육의 주체로 여기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화여대 도전실천단의 허성실씨는 “이런 활동을 하면서 ‘학교에서 결정하고 너네 (학생)는 따라오면 된다. 너희들은 학생이니까….’ 이런 식으로 무시 받을 때가 굉장히 많았다”며, 학교가 학생들의 의견을 배제하려는 점을 비판했다. 한양대 학교 총학생회장 박종진씨도 “우리는 항상 이런 소식을 뉴스를 통해서 접한다”며, 학생을 대하는 대학의 태도를 지적했다.

그렇다면 학생들은 구조조정이 이루어지고 있는 대학이라는 공간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 이화여대 도전실천단의 허성실씨는 “취업이 잘 되는 학과가 늘어난다고 해서 일자리가 많아지는 것도 아닌데, 학생들은 슬프게도 그걸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며, 취업난의 책임을 대학이 떠맡는 현실을 안타까워했다. 한신대 학생회장 허인도씨는“지금의 대학은 적어도 우리가 원하는 대학이 아니다”라며, 하고 싶은 공부를 하기 위해 대학에 온 학생이 많음을 강조했다.
분명한 점은 학생들이 교육서비스의 단순한 ‘수요자’는 아니라는 점이다. 학생들은 교육의 주체로 대학 정책의 방향에 대해서 정당히 목소리를 낼 수 있다. 구조조정의 바람이 전국 대학가를 사정없이 뒤흔들어 놓고 있다. 그에 맞서는 학생들의 움직임도 현재진행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