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주년을 맞아 <서울대저널>의 지난 기사들을 돌아봤다. 학내외 다양한 사안들을 다룬 기사들 중 대표로 몇 개를 꼽아보았다.
대표기사 01. 서울대 주거환경 잔혹사

2010년 3월 제101호 특집
본 기사에서는 서울대생의 주거문제를 살펴봤다. 녹두로 직접 나가 방을 구해보는 르포기사를 통해 쾌적한 주거공간을 구하는 데 제약이 되는 요소들을 짚어보기도 했다. 학교 근처의 주거환경을 점검하는 것을 넘어 기숙사나 임대주택 부족 등 학교 및 정부 차원의 대안이 부족하다는 점을 지적했다.
대표기사 02. IMF 시대 서울대생의 생활패턴 변화

1998년 4월 제22호 기획
IMF 이후 서울대생의 생활패턴과 용돈 씀씀이의 변화를 점검했다. 부직신청, 기숙사 지원, 학생회관 서적부(현재의 교보문고 자리에 있었던 서점) 이용, 도서관 대출, 구내식당 이용 등과 관련한 내용을 수치로 짚어냈다. 학부생 370명을 대상으로 수입 및 지출에 관한 설문조사를 실시하기도 했다. 그 외에도 총학생회, 대학신문사, 과 학생회, 중앙동아리 등의 재정상황을 점검하며 IMF 이후 학생단체의 재정상황 변화를 분석하고 자구책을 모색했다.
대표기사 03. 어떤 고시를 잡을꼬

2009년 9월 제96호 특집
‘고시열풍’ 현상을 진단하고 서울대생의 고시 준비 현황을 살폈다. 취업난 문제, 외부시선 때문에 고시를 택하는 현상, 늘어나는 학내 고시생 비율 등을 다루며 사회 전반적인 담론 형성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대표기사 04. 수업듣기 좀 나아지셨습니까?

2008년 6월 제91호 특집
수업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한 본부 및 총학생회 등의 움직임을 살펴봤다. 강의평가제도, 온라인강의제도 및 영어강의확대제도 등을 둘러싼 논란을 함께 살펴봤다.
대표기사 05. 관악의 소통문화 짚어보기

1999년 4월 제30호 특집
서울대학교의 대내외 소통문화를 전반적으로 짚어봤다. 학내 주요 언론매체의 변화양상과 한계를 짚었다. 대학 토론문화의 기반인 대자보와 관악에서 열리는 수많은 집회도 같이 살펴봤다.
대표기사 06. 소문난 20대 잔치에 20대는 없다?

2010년 4/5월 제102호 특집
20대의 정치 참여 현황을 살펴봤다. 학부생 357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해 당면하고 있는 고민, 20대 정치리더의 필요성, 정치활동 참여 수준 등에 대해 분석했다.
대표기사 07. 서울대와 지구온난화, 그 불편한 진실

2007년 12월 제88호 기획
관악캠퍼스의 전력사용현황과 도시가스 사용현황을 중심으로 학내 에너지 소비실태를 점검했다. 서울대의 에너지 친화적인 재구성 방안에 대해 환경대학원 교수와 인터뷰를 진행했다.
대표기사 08. 100돌 맞은 한국 만화, 새로운 출발선에 서다

2010년 6월 제103호 기획
한국 만화 100돌을 맞아 그 역사를 되짚어봤다. 출판만화에서 웹툰으로 이어지는 흐름을 점검하고, 원로작가와 신진작가를 인터뷰했다. 출판물의 위기 속에서 만화산업이 겪는 어려움, 웹툰의 등장과 만화 산업에 대한 국가적인 지원에 대한 내용을 담았다. 새로운 문화 영역으로서 웹툰의 가능성과 함께 한국 만화의 미래를 동시에 전망했다.
대표기사 09. 일그러진 교수의 상
1998년 10월 제26호 기획(김민수 교수 해직 사태 보도)
김민수 교수 해직 사태를 최초 보도했다. 본 기사는 교수임용비리의 현주소를 조명했으며 임용절차 뒤에 숨겨진 미묘한 신경전, 총장 선거를 대하는 교수들의 모습 역시 다뤘다. <오마이뉴스>를 비롯한 기성언론에서도 이를 인용 보도했다. 담당 기자였던 정혜진씨(<서울대저널> 공채 2기)를 인터뷰했다.
기사를 쓰게 된 계기가 있다면?
1학년 때 수습기자로 들어왔을 때가 마침 수강신청 기간 즈음이었다. 선배들이 김민수 교수의 ‘디자인과 생활’이라는 교양수업을 추천해주었는데, 김민수 교수가 해직되면서 강좌가 폐지됐다. 이후 교수님은 자하연 앞에서 천막 강의를 강행하셨는데, 매번 200명 이상의 학생들이 와서 수업을 들었다. 4월쯤 되자 김민수 교수 해직 사태는 점차 많은 주목을 받았다. 단과대학과 교수가 대립하는 사안은 자치언론이 아니면 다룰 수 없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서울대저널>외의 어떤 학내언론에서도 해당 사태를 보도하지 않았다. 그래서 취재를 시작했다.
기사와 관련해 기억에 남는 점이 있다면?
이 사건을 취재하면서 언론 쪽으로 진로를 굳혔다. 서울대학교는 그래도 상식이 통하는 곳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취재를 하다 보니 본부 측의 결정에 납득이 가지 않는 부분이 상당히 많았다. 김 교수의 학문적 업적, 강의의 질에 흠잡을 곳이 없었음에도 학교는 제대로 된 해명 없이 재임용 탈락 결정을 고수했다. 학교에서도 이런 불합리한 일들이 일어난다는 점에 충격을 받았고, 이와 같은 일을 짚어내고 바로잡는 것이 언론인의 일이라고 생각해 진로 결심을 굳혔다.
대표기사 10. 청테이프 사건 속보
2009년 11월 제53대 총학생회 선거 부정(‘청테이프 사건’) 속보
2009년 11월 26일, <서울대저널>은 제53대 총학생회 선거 보도를 위해 개표현장에 있었다. 이때 ‘예스위캔’ 선본이 박진혁 선관위원장의 부정행위가 녹음된 파일을 들고 나왔다. ‘예스위캔’은 연장투표 전 투표함이 보관돼 있던 총학생회실에 녹음기를 설치했다고 밝혔다. 녹음파일이 재생되었고, 현장에 있던 <서울대저널>은 해당 사태를 속보했다. 기사는 2만 건 가량의 조회를 기록했고 <한겨레21>등에서 <서울대저널>을 인용보도했다. 이후 학내 자치언론 위주로 ‘학생진상조사위원회’가 구성됐는데, 당시 위원으로 활동했던 김진용씨(<서울대저널> 14기)를 인터뷰했다.
보도 이후의 이야기가 궁금하다
전례에 따라 자치언론이 주가 되어 학생진상조사위원회가 꾸려졌다. <서울대저널> 3명, <관악> 2명, <교육저널> 2명 총 7명으로 구성된 학생진상조사위원회는 선거부정에 대해 조사하고 1·2차 보고서를 제출했다. 이후 단과대학생회장연석회의에서 공개 청문회를 개최했지만, 정작 선거관리위원장이었던 박진혁(경제 05)씨가 불참해 사건이 흐지부지됐다. 의미 있는 결과가 나오지 못해 아쉬웠다. ‘스누라이프’에 자주 등장하는 ‘박징역’ 태그도 이 사건에서 유래한 것이다.
수상기사 01. ‘노동을 뺏긴 노동자’
2009년 6월 제97호 특집 -2010년 제1회 <시사 IN> 대학기자상 대상
특수고용직 노동자 문제를 조명했다. 노동자들의 일상을 밀착취재 했고,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이남신 부소장과 민주노동당 홍희덕 의원 등을 인터뷰하기도 했다. 담당 기자였던 이진혁씨(<서울대저널> 공채 11기)와 김진용씨(<서울대저널> 공채 14기)를 인터뷰했다.
기사를 쓰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이진혁 당시는 특수고용직 문제가 크게 주목받지 못했을 때였다. 그때 학생자치회에서 재능교육 학습지 교사들과 연대해서 투쟁을 진행했는데, 거기서 영감을 얻어 본격적으로 취재해보기로 했다.
취재는 어떻게 진행되었나?
이진혁: 현장을 직접 뛰어다닌 취재가 대부분이었다. 특수고용직 노동자들이 겪고 있는 현실을 제대로 드러내고 싶었기에 여러 노동자들의 생활을 밀착취재하려고 노력했다. 각종 집회에 참여하느라 하루에 부산과 대전을 오간 적도 있다. 학업을 소홀히 했기에 가능했던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웃음)
취재에 대해 기억에 남거나 아쉬운 점
이진혁: 현장취재 위주로 하다 보니, 기획의도랑 맞지 않아 싣지 못한 부분들이 좀 있어서 아쉬웠다.
김진용: 인터뷰를 했던 홍희덕 전 의원은 환경미화원 출신이었는데, 직접 노동자를 위해 관련 법안을 발의한 것이 인상 깊었다. 기사 외적으로는, 이 기사를 기획했던 이진혁씨가 공모전에 기사를 제출한 것을 몰라서 수상 사실을 발표 당일에 알게 되었다는 점도 재미있는 기억이다.
수상기사 02. “삼성반도체 직업병 산재 인정 투쟁, 어디에 있나”
2013년 9월 제123호 특집 -제5회 ‘<시사in> 대학기자상’ 대상
삼성반도체 노동자들의 산재 인정 투쟁을 조명했다. 해당 사안에 대해 여러 방면에서 깊게 파고든 기획이었다. 반도체 제조 원리, 삼성반도체 노동자 르포, 해당 사건을 다룬 영화 <또 하나의 약속> 감독 인터뷰 등을 기사에 담았다. 담당 기자 최영권씨(<서울대저널> 공채 23기)를 인터뷰했다.
기사를 쓰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먼지 없는 방’이라는 책을 읽고 반도체 노동자들의 노동환경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 이 기사를 읽은 누군가가 졸업 후 이 주제와 관련된 결정을 내리게 되는 순간에, 이 기사를 떠올릴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기획했다.
취재는 어떻게 진행되었나?
관심 있는 주제였던 만큼 이 사안에 대해서는 전문가가 되어보자는 생각을 했다. 정말 열심히 취재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르포기사를 쓰기 위해 한 달 동안 주 2-3일씩 ‘반올림’ 활동가들을 따라다니면서 취재했다. 사안을 객관적으로 접근하려는 노력도 많이 했고, 기성언론 보도와 차별화하기 위해서도 노력했다.
취재하면서 느낀 점이 있다면?
<시사IN> 대학기자상 수상으로 인해 이 글이 조금이라도 더 널리 퍼진다면 기사를 쓴 의도가 제대로 실현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매체에 글을 싣는 것은 미약하게나마 누군가의 행동과 생각에 영향을 줄 가능성을 가진다는 의미일 것이다.
수상기사 03. “앞뒤가 똑같은 전화번호? 밤낮이 똑같은 노동현실!”
2012년 4/5월 제120호 특집 -‘<시사저널> 대학언론상’ 장려상
대리운전기사의 노동현실을 조명했다. 생생한 르포기사와 함께 회사의 착취구조까지 지적했다. 담당기자였던 원종진씨(<서울대저널> 공채 22기)와 최은국씨(<서울대저널> 21기)를 인터뷰했다.
기사를 쓰게 된 계기가 있다면?
심야광역버스를 타고 귀가하던 중 젊은 남자들이 휴대폰이 아닌 어떤 단말기를 계속해서 지켜보더라. 호기심이 생겨서 ‘지금 뭐 하고 계시는 거냐’고 물어보았고, 그들이 대리기사라는 것을 알게 됐다. 그들의 이야기가 궁금해져서 취재를 기획하게 됐다.
취재는 어떻게 진행되었나?
원종진: 7770번 광역버스 안에서 근무 중이던 대리운전기사에게 접근해 이야기를 듣기도 하고, 직접 대리운전기사를 불러 차를 타고 이동하면서 르포취재를 하기도 했다.
최은국: 전국대리운전기사노동조합과 ‘민주화를 위한 변호사 모임’으로부터 구체적인 도움을 많이 받았던 것 같다. 반면 노동부 측은 대책 마련에 소극적이어서 큰 도움이 되지 않았다.
기사와 관련해 기억에 남거나 아쉬운 점이 있다면?
원종진: 기사가 나가고 몇 년이 지난 후에 우연히 대리운전기사와 얘기를 할 기회가 있었는데 노동 현실이 크게 바뀌지 않은 것 같더라. 그런 이야기를 듣고 나니 마음이 복잡했고, 기자로서의 한계도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