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이과 통합, 융합 교육의 미래를 그리다

대학 교육과 연계하여 큰 틀에서 바라봐야

 작년 9월 교육부가 ‘2015 문·이과 통합형 교육과정 총론’을 발표하면서 그동안 꾸준히 논의돼왔던 고등학교 문·이과 통합 문제가 가시화됐다. 문과와 이과 사이의 칸막이 없는 학교교육을 통해 학생들이 인문학적 상상력과 과학기술 창조력을 갖춘 융합형 인재로 성장할 수 있도록 교육과정을 근본적으로 개혁하겠다는 것이다. 교육부는 2014년 2월 ‘국가교육과정 개정연구위원회’를 구성하여 총론의 주요 사항을 연구해왔다. 새로운 교육과정은 올해 중으로 세부 사항이 확정되어 2018년부터 도입된다. 또한 2021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부터 새 교육과정이 적용되며, 구체적인 내용은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3년 예고제에 따라 2017년에 확정될 예정이다. 본지에서는 새 교육과정 총론의 주요사항을 살펴보고, 고등학교에서의 문·이과 통합이 대학 교육에 갖는 함의를 분석해보았다.

문·이과 통합, 왜 필요하나?

 우리나라는 1966년도에 도입된 제2차 교육과정부터 학생의 진로와 직업 선택에 따라 고등학교에서 문과와 이과를 분리하여 가르쳐 왔다. 제7차 교육과정부터 문과와 이과의 공식적인 구분은 사라졌지만 효율적인 대학 입시 대비를 위해 개별 학교에서는 편의상 계열을 나누어 수업을 해온 것이 현실이다. 오세정 교수(물리천문학부)는 “고등학교에서 문과와 이과를 나누는 것은 서양의 발전 속도를 따라잡기에만 급급했던 산업화 시대의 소산”이라고 말한다. 지식을 빠르고 효율적으로 주입시키기 위해서는 일찍부터 분야를 나누고 개인별로 자기 분야에만 집중할 필요가 있었다. 고등학교 교육과정을 문과와 이과로 나눈 것은 빠른 지식 습득을 위한 일종의 ‘국가적 분업 시스템’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학생들을 문과와 이과로 구분하여 가르치는 교육과정의 폐단이 점차 드러나기 시작했다. 고등학교 때부터 자신의 분야가 정해지고 대학 입시가 그 분야의 과목에 의해서만 결정되니, 대다수의 학생들이 다른 분야에 대한 관심의 끈을 아예 놓아버리게 된 것이다. 장대익 교수(자유전공학부)는 “고등학교 문과 출신 학생들이 대학에서 평균적으로 듣는 이공계열 강의의 수가 1.5개밖에 안 된다”며 “고등학교 1학년 때 내린 단 한 번의 결정으로 인해 평생 접할 수 있는 지식의 범위가 절반으로 줄어드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라고 했다. 

 고등학교 때 문과 출신으로 대학에 들어와 외교학과 수리과학을 전공하고 있는 이서호(자유전공 14)씨는 “고등학교 시절 문과라는 틀에 한정되지 않고 좀 더 폭넓게 공부할 기회가 있었으면 이과 전공에 대해 더 빨리 생각해볼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선택하는 과정에서 진입장벽이 적었을 것”이라며 문·이과를 구분하는 현행 교육과정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더 큰 문제는 고등학교에서부터 문·이과를 구분하는 전통이 학문의 편제에도 영향을 미쳐 학문의 세계 한 가운데를 가로지르는 큰 장벽이 형성됐다는 것이다. 김영식 서울대 명예교수는 그의 저서를 통해 미국에서 공부를 마치고 귀국하고 난 후 문과와 이과로 양분된 학과 체계에서 겪었던 어려움을 토로했다. 그는 학부 화학공학과 출신으로 대학원에서 기초학문으로 전향하여 물리화학 박사학위를 딴 후, 다른 학교 대학원에 재입학해서 역사학을 공부한 독특한 이력을 가지고 있다. 그가 귀국했을 때 국내 대부분의 대학교에서 과거의 ‘문리과대학’이 사라지고 ‘인문대학’, ‘사회과학대학’, ‘자연과학대학’ 등이 생겨났다. 이러한 학과 체제에서 그의 전공인 ‘과학사’ 관련 과목을 개설하고 연구 지원을 신청하고자 할 때마다 그는 문·이과 구분의 문제에 시달릴 수밖에 없었다. 

 장대익 교수는 “본래 우리가 풀어야 할 문제는 문과와 이과의 경계가 없는 것”이라고 말한다. 예를 들어 노인 문제는 사회학만의 연구 주제가 아니다. 인류 역사에서 노인이 이토록 많아진 이유에 대한 연구는 진화생물학의 영역이다. 또 ‘노인’이라는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집단의 정신 상태를 다루는 것은 의학과 심리학의 영역이다. 이처럼 애초에 문과와 이과의 경계는 인위적이다. 그런데 단지 교수·학습의 편의를 위해서 나누어 놓은 이 경계가 마치 원래부터 존재했던 것처럼 느껴질 때 여러 폐단이 나타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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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정 교수(물리천문학부)가 문·이과 통합형 교육과정에 대해 말하고 있다. ⓒ박나연 사진기자

‘2015 문·이과 통합형 교육과정 총론’ 들여다보기

 교육부는 문·이과의 구분으로 인한 문제점을 인식하고 창의적 인재에 대한 사회적 요구를 반영하여 문·이과 통합형 교육과정을 도입하기로 했다. ‘문·이과 통합형 교육과정’이라 이름을 붙이긴 했지만 사실 새 교육과정에는 초등학교의 ‘안전 생활’ 교과, 소프트웨어 교과 등 문·이과 관련 개정 외에도 다른 내용이 많이 들어가 있다. 여기서는 문·이과 통합에 대한 내용만을 살펴보도록 한다.

 지금까지는 교과 간 균형 잡힌 학습을 위해 필요한 해당 교과(군)의 최소이수단위인 ‘필수이수단위’를 충족만 하면 개별 학교에서 자율적으로 과목을 선택하여 교과과정을 편성할 수 있었다. 예를 들어 사회 교과의 경우 사회 교과(군)에 소속된 과목인 ‘사회’, ‘한국 지리’, ‘경제’ 등을 선택하여 필수이수단위인 10단위 이상을 학생이 배우도록 하면 되는 것이다. 하지만 현행 교육과정에서는 개별 학교에서 학생들을 문과와 이과로 나누어 학생이 선택하지 않은 계열의 교과(군)에서는 쉬운 과목들로만 필수이수단위를 간신히 채우고, 나머지는 전부 수능과 입시에 직결되는 과목 위주로 구성하는 등의 문제가 발생했다. 문과 학생들의 경우 수능에서 과학탐구 과목을 보지 않기 때문에 과학 교과에서는 비교적 쉬운 물리I, 화학I, 생명과학I, 지구과학I 등의 과목으로만 필수이수단위인 10단위를 채우고 나머지 학교자율과정은 수능에 도움이 되는 국어, 영어, 사회 등의 교과에서만 채우는 식이다. 

 

 새 교육과정에서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모든 고등학교 학생이 필수적으로 들어야 하는 ‘공통과목’을 신설했다. 필수이수단위만 지정하고 과목 선택은 전적으로 개별 학교의 자율에 맡긴 현행 교육과정과는 달리, 각 교과 별로 필수 과목을 지정하는 것이다. 공통과목은 각 교과별 필수이수단위 범위 내에서 이수하게 된다. 예를 들어 과학 교과의 경우, 공통과목인 ‘통합과학’ 8단위와 ‘과학탐구실험’ 2단위를 이수하고, 선택과목에서 하나 이상을 골라 필수이수단위인 12단위 이상을 듣게 하는 식이다. 이런 방식으로 계열의 상관없이 모든 학생들이 공통과목을 필수적으로 듣는다면 적어도 필수이수단위 내에서는 자신이 선택한 계열에만 집중하는 것을 막을 수 있다는 것이 새 교육과정의 취지다. 또한 새 교육과정에서도 공통과목 외에 선택과목을 운영하여 학생들이 자율적으로 자신의 적성과 흥미에 따라 심화된 내용을 배울 수 있도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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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수능’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현재 교육부가 발표한 총론에는 수능에 관한 내용이 빠져 있기 때문에 이와 같은 식의 문·이과 통합은 반쪽짜리일 뿐이라고 말한다. 우리나라의 고등학교 교육과정이 수능과 대입제도에 많이 의존하고 있는 것이 현실인 이상, 그 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꿀 수 없다면 가장 먼저 손을 봐야 하는 부분은 바로 수능이다. 더구나 이미 교육과정에서 공식적으로는 문·이과 구분이 사라졌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개별 학교에서는 계열 별로 수업을 진행하고 있는 가장 큰 원인이 수능임을 고려한다면, 과목과 이수단위 조정만으로는 아무런 실효가 없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현행 수능에서는 대학교의 학과별 요구 기준에 맞춰 대부분의 문과 학생들은 사회탐구 두 과목을, 이과 학생들은 과학탐구 두 과목을 선택한다. 따라서 학생들은 다른 계열의 과목을 공부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고등학교 3년 동안 자신의 선택과목에만 집중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수능을 어떻게 개편해야 문·이과 통합의 취지를 살리면서도 교육과정의 안정성을 확보할 수 있을까. 한 가지 방안은 신설된 과목인 ‘통합과학’과 ‘통합사회’를 수능에 출제하는 것이다. 학생들이 자율적으로 사회탐구영역이나 과학탐구영역에서 두 과목씩 선택하도록 하지 않고, 모든 학생이 필수적으로 ‘통합과학’과 ‘통합사회’ 두 과목을 시험 보게 만드는 것이다. 그리 하면 인문·사회계열에 흥미를 가지고 있는 학생도 기본적인 과학적 소양을 갖출 수 있으며, 이공계열에 관심이 있는 학생도 사회 과목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을 습득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수능 체제에서는 학생들이 심화된 내용을 공부하려 하지 않을 것이라는 비판이 있다. 공통과목들만 수능에 출제한다면 고등학교에서 ‘경제’, ‘물리II’ 등의 선택과목 수업이 파행적으로 운영될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오세정 교수(물리천문학부)는 수능 제도를 아예 미국의 대학입학 자격시험처럼 바꾸어 기본적 소양과 선택과목에 대한 성취도를 모두 평가할 수 있도록 하자고 주장한다. 미국의 대학입학 자격시험인 ‘SAT(Scholastic Aptitude Test)’는 ‘SAT논리력시험’과 ‘SAT과목시험’으로 나뉜다. ‘SAT논리력시험’에서는 모든 학생들이 비평적 독해, 작문, 수학의 3가지 영역에 모두 응시하고, ‘SAT과목시험’에서는 대학의 요구사항에 따라 학생들이 물리학, 세계사, 스페인어 등의 과목을 선택한다. 오 교수는 수능을 두 가지 영역으로 나누어 한 영역에서는 ‘SAT논리력시험’처럼 공통과목을 중심으로 학생들의 기초적 소양을 평가하고, 다른 영역에서는 ‘SAT과목시험’과 같이 선택과목에 대한 성취도를 평가해야 한다고 말한다. 일시적으로는 학생들의 학업 부담이 늘어날 수도 있겠지만, 장기적으로 봤을 때 수능을 절대평가에 기초한 자격시험으로 바꾸고 한 해에 여러 번 시행한다면 학생들의 부담을 줄일 수 있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중요한 건 ‘잠재력’과 ‘다양성’

 과학기술계 일각에서는 교육부가 제시한 문·이과 통합형 교육과정은 사실상 ‘이과 폐지’라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이공계의 특성을 무시한 채 성급하게 문과와 이과를 통합하려 하면 고등학교 수학 및 과학 교육의 수준이 낮아질 것이라는 비판이다. 그들은 학생들이 공통과목에만 지나치게 집중한 나머지, 선택과목으로 돼 있는 물리II나 화학II 등의 심화과목을 소홀히 할 것이라 우려한다.

  

 이와 같은 주장에 대해 오세정 교수(물리천문학부)는 “수능과 대입 제도를 함께 바꾼다면 문·이과 통합형 교육과정으로도 충분히 심화 교육을 시킬 수 있으며, 대학에서 다양한 학습 배경을 가진 학생들을 위해 수준별 강의를 많이 열면 해결되는 일”이라고 말한다. 현행 교육과정에서도 물리II를 공부하지 않고 물리학전공을 선택하는 학생이 있고, 화학II를 수능에서 선택하지 않고 화학부에 진학하는 학생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대학에 잘 적응 할 것이라고 기대할 수 있는 까닭은 대학에서 학생의 수준을 고려하여 다양한 기초 강의를 제공하고 있기 때문이다. 만일 문·이과 통합형 교육과정으로 인해 입학하는 학생들의 지식수준이 전반적으로 낮아진다면 대학에서 그러한 기초 강의를 확대하면 된다는 주장이다. 

  

 그렇다면 대학은 무슨 기준으로 학생을 선발해야 할까. 장대익 교수(자유전공학부)는 “대학이 이미 지식을 갖추고 있는 학생을 뽑기보다는 학생이 가지고 있는 ‘잠재력’을 보고 뽑아야한다”고 주장한다. 장 교수는 학부에서 기계공학을 전공하고 대학원에서 과학사 및 과학철학을 공부했다. 그는 처음 대학원에 진학했을 때에는 한 번도 접해본 적이 없는 역사와 철학을 공부하느라 힘들었지만, 한 학기 동안 학부 수업을 청강하는 등의 많은 노력을 기울인 끝에 ‘할 만 하다’는 느낌이 들었다고 한다. 마찬가지로 충분한 의지와 역량을 갖춘 학생이라면 대학에 와서 새로운 분야의 공부를 시작해도 늦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는 “선행학습을 통해 많은 지식을 배우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새로운 지식을 습득할 수 있는 역량을 기르는 것”이라 말한다.

  

 한편 김승회 교수(건축학과)는 “고등학교에서의 문·이과 통합 교육도 꼭 필요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든 학생들이 개인의 적성과 흥미는 무시된 채 획일적 교육을 받게 되는 것은 지양해야 한다”고 말한다. 대학이 학생을 선발할 때 또한 중요하게 봐야 할 것은 학습 배경의 ‘다양성’이라는 것이다. 현재 건축학과 건축학전공에서는 문과 학생들에게도 교차 지원을 허락하고 있다. 김 교수는 “매년 다양한 관심사를 가진 학생들이 들어오면서 학부 수업이 더 풍부해지는 느낌”이라며 “다른 학과에서도 다양한 학습 배경을 가진 학생들을 선발하면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고등학교 문·이과 통합을 넘어서

 장대익 교수(자유전공학부)는 이제는 대학의 역할이 단순한 지식의 전달보다는, 학생들이 평생 새로운 지식을 습득할 수 있도록 기초체력을 길러주는 데 있다고 말한다. 그는 이를 위해 철학, 역사, 문학 등의 인문학 외에도 기초과학 공부가 꼭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대학에서 전공의 구분 없이 모든 학생들이 기초과학을 배워놓아야 나중에라도 필요를 느끼면 언제든 새로운 분야에 도전할 수 있다는 것이다.

  

 많은 주목을 받으며 등장한 새로운 교육과정이 앞으로 고등학교에서의 문·이과 통합을 넘어 대학 교육에서도 긍정적인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을지 지켜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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