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학생은 결정할 수 없습니까?

학생 참여 확대가 필요한 학내 거버넌스

 지난 제26대 총장선거 직후 학내 거버넌스의 민주성 문제가 다시 한 번 주목을 받았다. 이사회가 총장추천위원회의 추천순위를 뒤엎고 공동 2순위 후보자였던 성낙인 교수를 최종 후보로 선택한 것이다. 이에 27년 만에 최초로 교수협의회 임시총회가 성사되는 등 비판여론이 거세게 일었다. 총장선출제도의 제도적 개선이 필요하다는 데에 의견이 모아져 ‘총장선출제도 평가 및 개선 소위원회’(소위원회)가 꾸려지기도 했다. 이후에도 학내 거버넌스 개선에 대한 관심은 꾸준히 지속되고 있는 상황이다. 교수협의회는 거버넌스 개선을 위해 학내 구성원들의 의견을 수렴해 국회에 제출할 예정이다.

 교수뿐 아니라 학생들도 목소리를 함께하고 있다. 지난 3월에는 <대학 거버넌스에의 학생 참여 필요성>이라는 제목으로 학생자치단체의 공동연구보고서가 발간되었다. 또한 지난 4월 5일 ‘총장선출 제도 개선 공청회’에서는 학생회가 학생 참여 없는 제도 개선 움직임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하기도 했다. <서울대저널>은 학내 의사결정구조의 학생 참여 현황을 짚어 보고, 왜 학생 참여를 말해야 하는지, 학생들의 참여 요구가 어떤 수준인지를 살펴보았다.

 사례 1 총학생회에서 일하던 김아무개씨는 교육환경개선협의회(교개협)에 가면 과장급 직원들과 학생들의 건의사항을 논의 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는 학교가 적극적으로 문제해결을 위해 협조해주리라는 희망을 품고 교개협에 참석했지만, 직원들은 학생들의 건의사항을 듣고는 “예산이 없다”는 말만 반복할 뿐이었다. 김아무개씨는 실망감을 감출 수 없었다.

 사례 2 학생들은 시흥캠퍼스 추진 논의를 외부 언론 보도를 통해 처음 알았다. 새로운 캠퍼스를 짓는 중차대한 사안이 7년간 학생들 모르게 진행되었다는 사실에 충격을 금할 수 없었다. 하지만 학교는 사업을 원점화하기에는 이미 너무 진행되었다고 주장했다. 학생들은 천막 농성과 함께 투쟁에 돌입할 수밖에 없었다.

의사결정에서 소외된 서울대 학생들

 현재 서울대의 의사결정구조에서 학생들은 실질적인 의사결정 주체로 참여하지 못하고 있다. 학교 운영 전반에 대한 중요 사항을 심의·의결하는 주요 기구들인 이사회, 평의원회, 재경위원회, 총장추천위원회는 모두 법령으로 구성원을 규정하고 있는데, 현재 학생의 참여를 배제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나마 평의원회는 학생 대표 2인의 참관을 허용하고 의장 재량으로 발언 기회도 주고 있다. 하지만 평의원회도 형식적 참관에 그친다는 지적이 있다. 전 총학생회 정책국장 정주회(서양사 10)씨는 “회의 직전 정리되지 않은 방대한 자료가 담긴 안건지를 주는데, 도저히 회의 전까지 소화할 수 없는 자료”라고 말했다.

 현재 학생들이 참여할 수 있는 의사결정기구도 있다. 장학복지위원회, 인권센터운영위원회, 시흥캠퍼스대화협의체, 시흥캠퍼스기숙사프로그램위원회에 대학원생과 학부생 각 1인씩, 등록금심의위원회에 대학원생 1인과 학부생 2인이 위원으로 참여한다. 또한 총학생회와 각 단과대 학생회는 한 학기에 한 번 교육환경개선협의회(교개협)에 참가해 본부 및 단과대와 의견을 나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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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나 이와 같은 기구들도 실질적으로 사안을 결정하기보다는 학교 측의 주장을 학생들에게 통보하듯이 운영되고 있다는 불만이 제기된다. 사회대 학생회장 김상연(사회 12)씨는 “교개협은 사실상 단과대 학생회가 단과대와 대화할 수 있는 유일한 창구나 다름없는 곳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학생들이 여러 가지 안건을 내면 학교 측에서 수용 가능 여부만 따져 일방적으로 통보하는 식으로 운영되고 있다”면서 “이대로는 민원을 집단적으로 내는 것 외에 별 의미가 없다”는 불만을 토로했다.

 학생들이 학교에 ‘정보를 공개하고 함께 논의하자’고 하면, 학교는 ‘아직 충분히 논의가 진행되지 않았기 때문에 학생들과 논의할 단계가 아니’라고 한다. 하지만 일단 안이 발표되고 나서는, 학생들이 아우성을 쳐도 이미 결정된 사안이라며 경직된 태도를 보인다. 정귀환 서울대노조위원장은 “교수, 직원, 학생 등 다양한 학내 구성원 집단 중에 오직 학생만이 의사결정구조에 온전히 참여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학생이 거버넌스에 참여할 수 없다는 편견

 ‘국립대학법인서울대학교’의 학생들은 평의원회 의결권도, 재경위원회 심의권도, 총장 선거권도 없다. ‘학생은 의사결정에 참여하지 못한다’는 명제가 당연하게 들린다면, 국내의 다른 대학들을 살펴보자. 2005년 ‘사립학교법’이 개정되면서 사립대는 평의원회에 학생의원을 의무적으로 두게 됐다. 또한 올해 초 ‘국립대학 재정 및 회계에 관한 법률’이 개정되면서 국립대학교는 재정위원회에 학생을 참여시키는 것이 의무화됐다. 한편 <서울대학교 학생자치단체 공동연구보고서 - 대학 거버넌스 구조에의 학생 참여의 필요성>에 따르면 전국 4년제 일반 국·공립대 총장선출과정에서 학생이 전혀 참여하지 못하는 경우는 27곳 중 단 5곳이고, 이중 하나가 서울대학교다.

 주무열 총학생회장(물리·천문 04)은 서울대학교 의사결정구조의 학생참여 실태를 평가해 달라는 질문에 “질적인 면에서는 비교적 협조가 잘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을 주지해야 하겠지만, 제도적 보장 차원에서는 (우리나라에서도) 아주 낮은 수준이며 특히 평의원회 참여는 전국에서 가장 낮은 수준인 것이 사실”이라고 답변했다.

 해외 사례도 마찬가지다. 보고서 <대학 거버넌스 구조에의 학생 참여의 필요성>에 따르면 미국대학 중 학생의 총장선거 참여를 보장한 경우는 국·공립대가 87.8%, 사립대가 66.1%였다. 영국·독일·프랑스의 경우에도 학생 및 교직원 등으로 구성된 평의원회가 총장을 선출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특히 일본 와세다대의 경우 총장 후보에게 학생들의 신임투표를 거치도록 하고 있어 특기할 만한 사례로 소개됐다.

학내 민주주의 달성 위해 학생 참여 필수적

 김재원 대학원생총학생회장(법과대학 박사과정)은 “학생들 역시 학교라는 공동체의 구성원이므로, 학교를 가꿔 나가는 과정에 주체로서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면서 “단순히 학교가 교육서비스를 제공하고, 학생은 서비스의 소비자가 되는 관계는 바람직하지 않다. 요즘 교수들을 중심으로 학내 민주주의가 주목받고 있는데, 거기에는 당연히 학생도 포함되어야 하는 것 아니겠느냐”고 주장했다.

 학생들이 참여하는 학내 민주주의의 달성을 위해서는 대학 공동체의 성격을 규정하는 것이 선결 과제다. 정주회씨는 “학생과 교수, 조교는 모두 연구자로서 대학 공동체의 구성원이다. 대학이 교육 공공성의 가치에 부합하기 위해서는 대학 구성원의 자율성이 존중되어야 하며 여기에는 학생도 포함되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그는 “의석 한 두개 얻는다고 큰 변화가 생기리라 기대하지 않는다. ‘학교가 이렇게 어렵다’는 논리에 매몰되는 ‘협조주의적 협치’가 될 가능성도 얼마든지 있다”고 덧붙였다. 민주적 의사결정과정을 위한 학생 참여 요구가 단순히 의석 싸움에 머물러서는 안 되며, 학생 참여를 확대해 나가는 발판이 되어야 한다는 의미다.

학생과 함께하면 의사결정 더 효율적

 주무열 총학생회장은 “충분한 논의를 하는 것이 당장은 느리게 보일지 몰라도, 장기적으로는 더 효율적”이라면서 “학생들의 의견을 의사결정의 초기 단계부터 반영했다면, 천막농성이나 본부점거 같은 일도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의사결정의 핵심에서 학생과 함께하는 것은 본부 입장에서도 리스크를 줄이는 일”이라고 말했다. 김재원 대학원총학생회장은 역시 “학생들에게 필요한 것은 학생들이 가장 잘 알고 있다. 학생 스스로 원하는 것을 말할 수 있어야 학교도 효율적 의사결정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대학행정자치연구위원회(대자연) 전 위원장 양기원(서양사 08)씨는 “각 기관들도 학생의견을 바라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 하지만 각 기관에서 집단적으로 수렴한 공식적인 의견은 듣지 않고 일대 일로 의견수렴 시늉만 하는 것은 진정한 참여가 아니다”라면서 “학생에게 필요한 것은 의사결정의 핵심에서 진중하게 같이 토론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일부 교수들은 ‘학생들은 대학 운영에 관한 전문성을 갖고 있지 못하므로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시킬 수 없다’고도 말한다. 하지만 등록금심의위원회가 좋은 반례가 될 수 있다. 주무열씨는 “대자연은 그간의 등록금 협상에 진지하게 임하며 성과를 내왔다”면서 학생들도 거버넌스에 참여할 역량을 충분히 지니고 있다고 주장했다. 또 다른 이는 ‘학생들이 거버넌스에 참여하지 않아서 당장 문제되는 것이 무엇이냐’고 묻는다. 그러나 양기원씨는 “문제가 당장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없는 것은 아니다. 학생들이 정보를 받아보면 문제가 무엇인지 알 수 있을 것”이라며 “지금 당장 의결권까지 얻기는 어렵더라도, 각 심의기구에 참관하고 자료를 공유하는 정보접근까지는 최소한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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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적인 면에서는 비교적 협조가 잘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을 주지해야 하겠지만, 제도적 보장 차원에서는 아주 낮은 수준이며 특히 평의원회 참여는 전국에서 가장 낮은 수준인 것이 사실” ⓒ김대현 사진기자

법률 개정 긴 시간 소요… 단대별 창구도 필요

 주무열 총학생회장은 거버넌스 관련 활동 계획에 대해 “법령을 고치는 것은 시간이 많이 걸리는 싸움이고, (현 총학생회) 임기 내에 법안이 통과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본다”면서 “우선적으로 학생들이 참여하는 협의체 범위를 확대해 나가고, 대학행정자치연구위원회 등 내부적인 자치 역량을 기르는 데 집중하겠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그는 “궁극적으로는 평의원회, 이사회에까지 학생이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 말했다.

 양기원 전 대자연위원장은 단대별로도 거버넌스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을 펼쳤다. 재정과 교육, 특히 수업에 관한 실무 사안들은 단과대학에서 전임하고 있는데, 사실상 단과대 학생회와 단과대학이 협상할 수 있는 통로가 제도적으로 보장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사회대 학생회장 김상연씨는 “단과대학은 거의 일방적으로 행정을 하고, 학교의 필요에 의해서 학생을 동원할 때 외에는 학생이 주도적으로 참여할 제도적인 창구가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양기원씨는 “단대 차원에서는 학생들의 ‘피부에 닿는’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다. 단대 차원의 학생협의체를 만들면 자치의 체감효과 및 기대감도 높아지고 이에 따라 학생들의 참여도 높아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편 기획처장 이철수 교수(법학전문대학원)는 “본부는 원칙적으로 집행기구이기 때문에 의사결정구조에 대해 발언하기는 어려운 입장”이라면서도 “성낙인 총장이 대학의회를 공약으로 제시했던 만큼 원칙적으로 (학생 참여 확대라는) 방향성은 합당하고, 전향적으로 검토할 만한 사안”이라고 의견을 밝혔다. 이어 “학교는 항상 학생의 의견에 귀를 열고 있다. 다만 학생의 거버넌스 참여는 법령 수정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의사결정구조의 하위 단계부터 신중한 검토를 거쳐 진행해야 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학생 참여에 대한 명분도, 효과도, 학생들의 역량도 충분히 제시되고 있다. 이제 서울대학교의 선택이 남아 있다.

학생 참여 확대 위해서는 학생들의 관심과 참여 필요해

학내 의사결정구조 학생 참여에 관한 설문조사 결과


 <서울대저널>은 학내 의사결정구조 학생 참여에 대한 학생들의 의견을 들어보기 위해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설문조사는 2015년 5월 3일부터 5월 13일까지 10일간 진행됐으며, 총학생회 및 단과대 학생회의 협조를 받았다. 표본은 서울대학교 학부생 264명이며 편의추출법으로 선정됐다.


 학생들은 학내 전반의 의사결정구조에 학생들이 참여할 필요성을 인식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와 관련한 학생사회의 움직임에 대해선 관심과 참여가 저조하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학생 참여 확대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학생들의 관심과 적극적인 참여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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