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7일, 서울대학교 아시아연구소 영원홀에서는 세월호 참사 1주기 추모 심포지엄 ‘세월호가 묻고, 사회과학이 답하다’가 개최됐다. 서울대학교 사회과학연구원이 주최한 이번 심포지엄에서는 세월호 참사의 발생 원인에 대한 사회과학적 분석과 사고 발생 이후 상황을 통해 바라본 한국 사회에 대한 진단이 함께 이루어졌다. 심포지엄의 1부는 교수 4인의 발표로, 2부는 종합토론으로 진행되었다.
심포지엄은 박찬욱 사회과학대학 학장의 격려사와 구인회 사회과학연구원 원장의 개회사로 시작됐다. 구인회 원장은 이번 심포지엄이 “세월호 참사 1주기가 되도록 어느 누구도 사고의 발생 원인이 무엇이고 이러한 사고의 재발을 막기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지 자신 있게 말하지 못하는 현재 상황에서 사회과학자들의 진지한 노력이 모일 수 있었던 기회”라며 행사의 취지와 의의를 밝혔다. 이후 이어진 발표 및 종합 토론은 이재열 교수(사회학과)의 사회 아래 진행되었다.

ⓒ김대현 사진기자
세월호 참사, 한국 사회의 민낯
이현정 교수(인류학과)┃ 1부 발표의 서두에서 이현정 교수는 인류학자의 면밀한 시각으로 세월호 참사의 고통이 가지는 총체성을 조명했다. 이 교수는 “현대 사회에서 타인의 고통은 미디어의 표상을 통해 경험적 사실로 인식된다. 미디어를 통해 고통을 경험하는 이러한 방식은 고통의 본질에 대한 접근을 저해하고 오히려 이분법적 갈등을 조장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와 같은 사실이 ‘사회적 고통’으로서의 세월호 참사에 대한 논의를 불가능하게 했다고 덧붙였다.
이어서 그는 “사회적 고통은 각 집단이 처한 사회적 조건이나 의미 부여의 방식에 따라 서로 다른 방식으로 경험된다”며 안산의 지역적·역사적 특수성에 대해 설명했다. 안산은 70년대 말 조성된 대규모 공업단지로, 안산 주민들에게 안산은 돈을 벌기 위해 거쳐야 하는 잠정적 거주지로 인식된다. 때문에 안산 주민들은 세월호 참사를 ‘빨리 돈을 벌어 떠나지 못하고 계속 남아 있었기 때문에’ 발생한 사고로 인식한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이러한 안산의 지역성과 더불어 안산 주민들의 계급적 위치성에 대한 자각이 그들 고통에 특수성을 부여했다고 설명했다. 또한 그는 같은 안산 주민이라고 해도 죽음을 직접 경험한 유가족과 생존자 가족은 전혀 다른 고통을 경험한다며 이들 사이의 긴장과 불신이 세월호가 남긴 가장 큰 상처라고 덧붙였다.
끝으로 고통에 대한 전문가적 개입이 오히려 고통을 악화시킨다는 점도 지적됐다. 이 교수는 안산의 종교 지도자와 신도들이 위로가 아닌 배제와 비난을 실천한 점, 의료전문가들이 병리학적 프레임이라는 ‘전문성의 굴레’에 씌어 고통의 본질에 대한 이해를 시도하지 않았던 점, 행정부서 간 갈등 및 책임 전가가 발생했던 점을 들었다. 발표를 마무리하며 이 교수는 세월호 사건은 기존의 분과학문적 접근으로는 파악하기 어렵기 때문에 다양한 상호 소통이 요구된다고 주장했다.
박종희 교수(정치외교학부)┃이어진 발표는 박종희 교수가 맡았다. 박 교수는 “세월호 사고가 한국 사회의 민낯을 보여줬다면 세월호 이후 1년 동안의 과정은 한국 정치의 민낯을 처절하게 보여주는 일면”이었다고 지적하며 한국 정치의 맥락 속에서 세월호 참사가 어떻게 받아들여지고 사회적으로 증폭되었는지를 분석했다.
박 교수는 우선 ‘재난의 정치화’ 개념에 대해 설명했다. 그에 따르면 세월호 사건은 재난 발생의 원인보다도 사후 대응 및 처리 과정의 적절성에 모든 논의의 초점이 맞춰진 ‘재난 관리의 정치화’를 보여준 사례였다. 또한 그는 재난의 정치화 과정이 사회적 학습을 가능케 하는 등 긍정적 효과를 불러올 수도 있는 반면 세월호 참사의 정치화는 아주 소모적인 형태의 ‘당파 정치화’였다고 설명했다.
박 교수는 이어서 재난이 정치화되는 구조적 원인에 대해 설명하며 이를 세월호 참사에 적용하여 분석했다. 박 교수에 따르면 재난은 ▲재난 자체의 사회적 파장이 크거나 ▲재난 발생 및 대응 과정의 정치적 책임소재가 분명하거나 ▲재난에 대한 정보가 비대칭적으로 배분되거나 ▲재난 발생 이후 중요한 정치 일정이 자리하고 있는 경우 쉽게 정치화된다. 세월호 참사의 경우 그 사회적 파장이 전례 없이 컸고, 재난의 발생 및 대응 과정의 총책임이 행정부 및 여당에게 전적으로 귀속되었으며, 사고 발생과 구조 과정에 대한 정보가 매우 제한적으로 공유되었을 뿐만 아니라 참사 직후 두 번의 선거가 예정되어 있었기 때문에 쉽게 정치화됐던 것이다.
박 교수는 세월호 참사가 리더십을 강한 장점으로 내세우는 다수주의 정치 제도의 맹점을 확인하게 해 주는 계기였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의 9.11 위원회와 같이 재난에 대한 초당파적 조사 위원회를 통해 개인의 책임이 아닌 시스템의 책임을 찾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재난의 정치화를 막기 위한 준칙 마련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발표를 마쳤다.
한규섭 교수(언론정보학과)┃박 교수에 이어 한규섭 교수는 세월호 참사를 통해 바라본 한국 언론에 대한 구체적 분석을 제시했다. 한 교수는 “참사의 재발을 막기 위해서는 언론에 의한 담론 형성이 제대로 이루어져야 하는데 현재 한국 언론의 상황으로 보아 이는 매우 어려울 것”이라며 한국 언론 환경에 대한 회의적인 견해를 드러냈다.
한 교수는 세월호 참사의 여러 원인들 중 ‘비용’ 문제가 가장 핵심적이라고 주장하며, 사고의 재발을 막으려면 연안 여객 사업의 적자 운영을 해소하기 위한 정책적 담론이 형성되어야 한다고 밝혔다. 아울러 그는 현재 한국의언론은 이러한 담론을 형성할 능력이 없으며, 이는 한국 언론의 고질적 병폐 때문임을 짚어냈다.
한국 언론의 두 가지 병폐로 한 교수는 언론의 극단적 정치화와 상업화를 꼽았다. 그에 따르면 한국언론은 해외 언론에 비하여 상당히 정치화되어 있는데, 이는 정부의 정치적 성향에 따라 언론사의 운명 및 언론인의 커리어가 좌우되기 때문이다. 또한 그는 ‘언론 과잉’의 상황이 지나친 경쟁을 야기했고 이것이 한국 언론의 상업화를 낳았다고 지적했다. 세월호 참사 당시 유병언의 행적 등 사고의 본질과는 무관한 사안에 대한 보도들이 뉴스를 채우게 된 원인도 바로 이러한 언론의 상업화 때문이었다.
끝으로 한 교수는 “우리나라에 세월호와 같은 참사가 재발하지 않을 것이라고 자신할 수 없다. 한국 언론의 병폐가 개선될 가능성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라며 비슷한 사고의 재발 가능성에 대한 우울한 진단을 내리며 발표를 마무리했다.
장덕진 교수(사회학과)┃장덕진 교수의 발표로 심포지엄의 1부는 마무리됐다. 장 교수는 일본, 미국, 독일, 네덜란드, 한국의 사례를 비교하며 재난은 사회적 취약성에 의해 증폭된다는 견해를 밝혔다. 장 교수는 “재난이 촉발되는 것은 자연재해 때문이지만 그것이 얼마나 큰 재난으로 증폭되는지는 사회적 취약성과 관련이 있다”며 한반도 태풍 관통시 북한의 피해가 남한의 약 200배에 달한다는 연구 결과를 예시로 들었다.
장 교수는 한국의 가장 심각한 취약성으로 ‘공공성의 결여’를 꼽았다. 그는 공공성의 정도에 따라 위험의 정도에도 체계적인 차이가 나타난다고 밝혔다. 또한 공공성의 문제는 국가 및 제도뿐만 아니라 시민에게도 있다고 지적하며, 한국의 가정이 자녀들에게 공공성의 핵심인 타인에 대한 존중과 관용을 가르치지 않는 경향이 강하다는 점을 근거로 들었다.
끝으로 그는 한국 사회에서 재난이 반복되는 원인에 대한 분석을 제시했다. 그는 “재난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는 재난의 위험을 평가하고 위험 통제 전략을 외재화하여 법과 제도를 수정해야 하는데, 한국 사회는 끊임없이 내재화 전략을 택해 재난에 대해 책임을 질 희생양을 찾고 그를 처벌하는 것으로 상황을 종결한다”며 정책학습 과정에서 이러한 ‘이중 학습(double-loop learning)’의 실패가 거듭된 재난을 불러온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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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의 과제, 해답은 시스템과 정치에
심포지엄의 2부는 1부 발표에서 제기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한 교수 4인의 토론으로 진행됐다. 최인철 교수(심리학과), 유조안 교수(사회복지학과), 이철희 교수(경제학과), 강원택 교수(정치외교학부)가 차례로 발언했으며, 발언 이후에는 청중 질의응답이 잇따랐다.
첫 번째 발언을 맡은 최인철 교수는 세월호 참사에 대한 대응 및 처리 과정에 대한 안타까움을 전했다. 어떤 형태의 어려움을 당한 사람이든 치유의 가장 핵심적인 과정은 사고에 대한 제대로 된 설명을 가지는 것인데, 사고 이후 정부의 태도는 “제대로 된 설명이 이루어지지 않은 상황에서 치료를 강요하는 듯”했다는 것이다. 또한 그는 사고 피해자들에게 지속적이고 제도화된 지원을 제공하는 시스템의 부재와, 세월호 사고에 대한 미시적 분석의 부족에 대한 아쉬움을 전했다. 끝으로 최 교수는 “우리 사회에는 무엇이든 빨리 해결하려는 욕구가 강하다”고 지적하며 “세월호 참사의 치료와 관리에 대한 장기적 시각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유조안 교수는 아동복지 연구자의 입장에서 바라본 세월호 사건의 의미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그는 “세월호 사건이 아동청소년들에게도 간접적인 피해를 입혔음에도 불구하고 이와 관련한 대응이 미흡하다”며 “한국은 사회적으로, 제도적으로 아동의 견해를 고려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또한 유 교수는 재해·재난 대처 연구가 조직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미국, 일본 등지와는 달리 한국에서는 그러한 연구가 진행되고 있지 않음을 지적하며 이번 심포지엄이 그 출발점이 되기를 바란다는 희망사항을 전했다.
이어서 이철희 교수는 안전한 사회가 가지는 경제학적 가치에 대해 소개했다. 그는 안전하지 못한 사회는 개인의 고통을 가져올 뿐만 아니라 장기적으로 큰 비용을 초래하기 때문에 안전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투자하는 것이 경제적으로도 매우 중요하다는 견해를 밝혔다. 안전하지 못한 사회가 초래하는 비용으로서 그는 개인 건강의 악화로 발생하는 비용과 사회적 신뢰가 무너짐으로써 발생하는 비용을 들었다.
토론은 세월호 참사와 한국 정치의 연관성을 풀어나가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강원택 교수는 세월호 참사 자체는 정파적 특성이 없으나 국가 전체의 시스템에 대한 불만과 충격을 자아낸 사건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사고의 처리 과정에서 나타난 무기력에 대한 분노와 충격이 책임자를 찾기 위한 노력으로 이어졌고, 결국 대통령에게 모든 책임이 돌아가게 되었다고 덧붙였다. 또한 강 교수는 “세월호 참사는 우리나라의 정당정치가 가지는 대표성이 얼마나 취약한지 보여주는 사건이었으며, 지역주의에 기반을 두는 두 정당이 독점해 온 폐쇄적 정당 구조가 깨져야 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더불어 한국 사회가 국가에 대해 가지는 과도한 기대를 버리고 시민 사회를 강화하여 어떻게 시민 스스로가 공동체를 이끌어나갈 것인지에 대한 자각을 가지는 것이 필요하다는 견해를 밝혔다.
재난을 통한 학습, 사회과학의 역할
토론과 질의응답이 끝난 뒤 사회를 맡은 이재열 교수(사회학과)는 심포지엄의 의의를 다시 한 번 밝혔다. 이 교수는 사회를 무대에 비유하며 “재난은 무대 뒤의 적나라한 모습을 보여주는 고통스럽지만 귀한 관찰의 기회”라고 말했다. 재난이 시스템의 실패를 경험하게 하고 이를 통해 사회에 성찰의 기회를 제공한다는 것이다. 덧붙여 그는 사회과학의 역할이 “시스템이 실패했을 때 누구를 비난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것을 통해 학습하고 시스템을 바꿔나가는 것”임을 밝혔다.
심포지엄이 끝난 후 구인회 사회과학연구원 원장은 <서울대저널>과의 인터뷰에서 이번 행사의 의미에 대해 설명했다. 그는 “행사에 약 220명이 참석했으며 학부생·대학원생의 질의와 토론도 열띠게 이루어졌다. 서울대학교 구성원들이 예상보다 높은 관심을 보여줬다”고 말했다. 또한 구 원장은 “행사의 발표자와 참석자들은 이번 심포지엄이 일회성으로 끝나지 않도록 향후 지속적인 연구를 진행할 것”이라는 포부를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