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배우 고경표]

비단 영화과, 영상과 뿐만의 일이 아닙니다. 저희가 지나고 나면 지금 여러분들의 과도 겪게 될 일일지도 모릅니다. 

 

[내레이션]

2015년 3월 31일, 건국대 학생들은 행정관을 점거했다. 내년도 신입생 모집안에서 10개 과의 통폐합 계획이 발표됐기 때문이다. 학교 측의 일방적인 발표에 학생들은 분노했다. 이러한 학과 통폐합의 이면에는 대학 구조조정이라는 거대한 흐름이 자리 잡고 있다.

 

대학 구조조정은 IMF 시기 산업 전반에 걸친 구조조정의 일환으로 처음 등장했다. 1998년 김대중 정부는 ‘국립대학 구조조정 계획’을 발표했다. 이후 노무현 정부가 국립대학 중심의 정원 감축을 시도했고, 이명박 정부는 사립대학으로 감축 대상을 확대했다.

 

그리고 작년 1월, 박근혜 정부는 2023년까지 16만 명의 정원 감축을 목표로 하는 ‘대학 구조개혁 평가 기본계획’을 발표했다. 평가 요소는 1단계 12개, 2단계 6개 지표로 이뤄져 있으며. 엄정한 성적부여, 졸업생 취업률 등이 포함돼 있다.

 

각 대학은 평가결과에 따라 5개 등급으로 나눠지며, 관련 법안 통과 시 정원감축, 재정지원, 학자금대출, 장학금 지원에 있어 다음과 같은 조치를 받게 된다. 또한 2회 이상 E등급을 받은 대학은 퇴출된다.

 

학령인구 감소와 더불어 산업수요와의 미스매치 또한 대학 구조조정의 주요 논리이다.

 

[황우여 교육부총리]

중장기 인력 수급 전망을 감안하여 ‘산업수요 중심 정원조정 선도대학 사업’을 통하여 학과를 개편하고 정원을 조정하도록 하여 양적 미스매치를 점차 줄여나가겠습니다.

 

[내레이션]

구조조정이 산업 수요에 맞춰 이뤄질 때, 가장 큰 피해를 입는 것은 인문사회계열의 학생들이다.

 

그렇다면, 정부의 구조조정 정책에 각 대학들은 어떻게 대응하고 있을까? 서울지역 사립대인 한성대의 경우, 22개 학과를 대상으로 통폐합을 진행했다. 우리는 한성대 본부 측의 목소리를 직접 들어보았다.

 

[한성대 기획전략팀]

우리 학교가 평가에서 C를 맞는다면 아까 말씀 드린 대로 학생 수가 1600명에서 1000명짜리로, 주간 500명, 야간 500명짜리로 가야하기 때문에, 우리 대학 여건에서는 어쩔 수 없이 22개 학과를 운영하기는 현실적으로 규모의 경제에 이르지 못한다. 대략 모집단위가 몇 개라도 줄어들면 과목 가 줄어들고 교수 수가 줄어들고 공간이 줄어들잖아요.

 

그러면 우리 대학 같은 경우는 학생 수를 못 뽑으면 그만큼 돈이 줄어드는데, 경제적으로 (구조조정을) 필수적으로 갈 수 밖에 없었다는 생각을 해요.

 

[내레이션]

한편 한양대는 대부분의 수업을 절대평가에서 상대평가로 전환하는 정책을 발표했다. 이러한 학사관리 엄정화는 대학구조조정 평가 지표 중 하나였다.

 

[한양대 홍보처]

외부에서 이야기하는 학점 인플레에 대한 학교 측의 고민이 담겨있는 겁니다. 어느 정도 선만 넘으면 A학점으로 주는 건 어떻게 보면 변별력 같은 게 부족할 수 있잖아요. 그런 것까지 다 저희가 감안을 한 조치라는 겁니다.

 

[내레이션]

비 서울권 대학은 상황이 더 심각하다. 한신대는 학부제 전환, 정원 감축, 재수강 제도 변경 등 전면적인 학제 개편에 나섰다. 서울권 대학이 부분적인 구조조정을 실시했던 모습과 대비되는 지점이다.

 

이러한 대학 본부의 정책은 내용과 절차가 일방적이라는 점에서 학내 조직의 반발을 사고 있다.

 

[박종진 한양대 총학생회장]

사실 평가방식 변경 과정에 있어서도 저희들한테 이런 건 어떻냐고 물어본다든지 하는 상의하는 과정은 한 번도 없었거든요. 학교 본부를 통해서 얘기를 듣기보다는 외부 뉴스를 통해서 학교의 중요한 변화 사항을 듣는 때가 많았어요.

 

[허성실 이화여대 도전실천단 단장]

‘신산업융합대학’으로 관련 없던 과들이 모이면서 정체성이 불분명해지는 상황이 있던 거고 그리고 또 산업으로 모이는 것이기 때문에, 사실 예술대학에 있는 의류학과라고 하면 꼭 의류학의 산업 쪽으로 나가는 것이 아니라 예술 쪽으로 나갈 수도 있는 것인데 산업 쪽으로 폭을 좁히는.

 

[허인도 한신대 총학생회장]

우리 학교 같이 인문학적으로 특화돼있다거나 예체능계로 특화돼있다거나 하는 학교들한테는 굉장히 큰 타격이라는 거죠. 그런 나름의 학교가 갖고 있는 특성들을 지금 죽여가면서 나름의 특성화 사업이라고 학과, 학교 특성화를 진행하고 있어요. 원래 가지고 있던 특성들을 죽이고 새로운 응용학문, 실용학문으로서의 특성화를 지금 굉장히 추켜올리면서.

 

[내레이션]

하지만 모든 학내 조직이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것은 아니다. 중앙대학교 총학생회는 학교 측의 정책에 대하여 뚜렷한 대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

 

[강남규 중앙대 자치언론 <잠망경> 편집장]

총학생회는 비판적으로 얘기할 수밖에 없는데요. 정말 거의 적극적인 활동을 한 번도 하지 않았어요 지금까지.

 

[내레이션]

이에 단과대 대표들이 모여 공동대책위원회를 결성했지만 이 또한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강남규 중앙대 자치언론 <잠망경> 편집장]

(공대위가) 늦게 결성됐고, 학생회 여럿이 연합해서 연석회의 형식으로 있다 보니까 더 적극적으로 행동으로 나아가는 데 무리가 있었고, 그래서 좋은 활동을 펼쳤지만 뚜렷한 활동을 하지 못했다고 저는 평가를 하고 싶어요.

 

[내레이션]

일반 학생들의 이야기는 다양한 양상을 띠고 있었다.

 

[중앙대 심리학과 정현우]

이미 발표됐을 때부터 그때는 어떻게 협의를 하겠다는 그런 여지도 없이 너무 충격적인 내용들이 많이 있었어요. 그래서 반발이 좀 컸죠. 일단 내용 자체도 충격적이었고 홍보도 제대로 안됐고 그걸 기습적으로 발표한 게 정말 잘못됐다고 생각해요.

 

[내레이션]

이처럼 많은 학생들이 구조조정에 반대했지만, 어떤 학생들은 대학구조조정에 찬성하는 모습을 보였다.

 

[한양대 경제금융대학 전용아]

저는 (상대평가가) 어느 정도는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요즘 학점 인플레 문제도 있고, 그래도 상대평가가 노력에 대한 결과를 더 확실히 보여줄 수 있는 평가방법이라고 생각해서…

 

[한신대 사회학과 전실라]

저희 학교가 예산 문제로 많이 어려움을 겪고 있기 때문에 구조조정은 피할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내레이션]

한편으로는 대학 구조조정에 무관심한 학생들도 있었다.

 

[한신대 사회학과 허치영]

무엇보다도 일단 제 생활이 먼저라고 생각하니까. 사실 구조조정이 제 생활에 문제가 있는 것이지만 그냥 옛날부터 살아오면서 나만 잘 살면 된다, 학교 이런 일 하는 거 뭐 하러 학교 돌아가는 데 힘들게 하나 이런 생각이 여태까지 있었거든요.

 

[중앙대 경제학과 학생]

경제학과랑 경영학과는 피해 받는 게 없고 (피해 받는 건) 주로 인문대에요. 그래서 저희 과 같은 경우는 오히려 이런 데는 동참하지 말라고 옛날엔 그랬어요. 동참하지 말라고. 그래서 저는 사실 그렇게 큰 관심이 없어요. 지겨워요 사실은. 왜냐하면 똑같은 반복의 연속이거든요. 이게 이렇게 반대를 한다고 해도 여기서 시위도 하고 그래봤지만 제가 알기로 달라지는 건 없었어요.

 

[내레이션]

학내 구성원들의 의견이 엇갈리는 가운데, 전문가들도 대학구조조정의 필요성과 한계를 함께 지적하고 있다. 한국대학학회 회장 윤지관 교수는 대학구조조정의 필요성은 인정하지만 방법에 문제가 있다고 설명한다.

 

[윤지관 한국 대학학회 회장]

(대학 구조조정은) 필요할 뿐만 아니라 필연적입니다. 조정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있어요. 제일 중요한 건 학령인구가 감소했기 때문에 지금 현재의 규모를 대학들이 유지할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조정을 하지 말자는 게 아니라 조정은 필연적인데 조정 과정을 어떤 방식으로 해야 되느냐, 또 어떤 지향을 갖고 해야 되느냐 이게 문젠데, 지금 정부에서 하고 있는 구조조정은 그야말로 그 두 가지가 다 없는…

 

그런 식으로 모든 대학을 일률적인 잣대로 평가하는 그런 평가방식은 없습니다 세상 어디에도. 그런데 우리는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내레이션]

대학이 사회의 변화에 발맞춰야 한다는 주장도 다시 생각해볼만하다. <진격의 대학교> 저자 오찬호 씨는 대학이 산업 수요를 충족시켜야 한다는 주장에 반대한다.

 

[오찬호 <진격의 대학교> 저자]

대학이 사회의 변화에 발맞춰 변해야 된다, 따라가야 된다는 것은 그 자체로는 논리가 없는 거죠. 왜냐하면 사회가 늘 옳을 수가 없거든요. 사회가 변화한다고 대학이 따라간다는 것이 따라가지 않는다고 그게 무슨 죄를 짓거나 잘못된 것은 결코 아니라는 거죠. 오히려 대학은 만약에 사회가 잘못 변하고 있다면 그 잘못 변하는 사회에 브레이크를 걸 수 있는, 제어할 수 있는 역할도 필요하다는 측면에서 대학과 사회의 관계를 이해해야 되겠죠.

 

[내레이션]

최근 대학들은 2016년 신입생 모집 요강을 통해 학제 개편을 본격적으로 발표했다. 이 과정에서 홍익대는 학생 몰래 통폐합을 추진하기도 했다. 과연 학교는 학생들을 어떻게 바라보는 것일까?

 

[허성실 이화여대 도전실천단 단장]

저는 사실 이런 활동을 하면서 무시 받을 때가 굉장히 많았어요. 아예 학생들은 논의 대상이 아니라는 거죠. 학교에서 결정하고 또 학교에서 하면 되는 문제인데. 너희들은 따라오면 되는 거고. 왜냐하면 너희들은 학교를 다니는 학생들이기 때문에.

 

[허인도 한신대 총학생회장]

Q. 대학이란 어떤 곳이라고 생각하나?

정확하게 얘기를 드릴 수 있는 것은 ‘지금 대학의 역할이 무엇이다’가 아니라 적어도 지금의 대학은 우리가 얘기하는 대학 혹은 우리가 바라는 대학이 아니다…

 

[내레이션]

대학 구조조정은 개별 대학의 문제가 아닌 모든 대학이 직면한 문제이기에, 지난 3월 대학 공공성 실현을 위한 대학생 네트워크 ‘모두의 대학’이 출범했다. 우리는 ‘모두의 대학’과 함께 연대하는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학생회장 이은호 씨를 만나봤다.

 

[이은호 서울대 인문대학 학생회장]

거창하게 말하면 한국 대학교육이 어느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에 대해서 서울대 학생들 입장에서도 우리한테 피해는 오지 않고 앞으로 오더라도 맨 나중에야 올 수 있겠지만, 다음 학문의 후속 세대를 위해서나 한국 대학교육이 어떤 방향으로 갈지를 결정하는 데 있어서, 지금 방식의 대학 구조개혁은 급하게 추진하는 것 말고도 여러 가지 문제점들이 나타나고 있잖아요.

 

[내레이션]

미술대학 학생회장 김유진 씨는 ‘예술대학 학생회 네트워크’에 참여해 예술계열에 대한 구조조정에 대응하고 있다.

 

[김유진 서울대 미술대학 학생회장]

청년 예술인으로서 또 예비 예술인으로서 이 문제에 대해 알고 앞으로 같이 더 나은 방향성을 위해서 활동을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내레이션]

피할 수 없는 구조조정의 바람이 전국 대학을 휩쓸고 있다. 한 때 진리의 상아탑이라 불리던 대학이 취업의 관문으로 여겨지면서, 그 누구도 대학의 역할을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

 

대학 구조조정과 관련한 일련의 사태들은 대학이 어떤 곳인지에 대한 성찰을 요구한다. 지금 당장 우리에게 비껴나 있다고 해서 외면할 수만은 없다. 대학과 교육의 미래는 곧 우리 사회의 미래이기 때문이다.

 

 

PD/김대현(kchyun091@snu.ac.kr)

PD/박나연(ape094@snu.ac.kr)

내레이션/안미혜

공동취재

기자/신민섭(charliesnoopy@snu.ac.kr)

기자/홍인택(kanye128@snu.ac.kr)

 

제작 서울대저널

*본 영상은 132호(2015년 5/6월호) 특집기사 ‘대학구조조정, 근본적인 치료법일까’와 연계 제작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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