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로 그리고 미래로
폭력의 정확한 탈리오 법칙, ‘이슬람 국가’
주택시장과 청년 세대

폭력의 정확한 탈리오 법칙, ‘이슬람 국가’

정밀타격은 제2의 ‘이슬람국가’가 등장하는 비옥한 토양이 될 뿐

 “정의는 자신에게 진 빚을 갚을 것을 요구한다.” 고대 그리스 비극작가 아이스킬로스의 <제주(祭酒)를 바치는 여인들>에 나오는 대사다. 최근 뉴스의 국제 지면을 점령하다시피 한 ‘이슬람 국가(IS)’의 행동은 정확하게 이 원칙에 입각한 복수의 서사다. 

 복수극은 사우디아라비아 출신의 한 인물로부터 시작되었다. 한 때 공산주의 소련에 대항하는 모범적인 ‘자유의 전사’였던 오사마 빈 라덴은 걸프전쟁 당시 미군의 사우디아라비아의 주둔을 계기로 미국과 척을 지게 된다. 이슬람의 성지 메카와 메디나가 있는 ‘성스러운 땅’을 이교도 군대인 미군이 더럽혔다는 이유에서였다. 2001년 9월 11일, 오사마 빈 라덴의 다국적 군대는 미국의 성지인 뉴욕과 워싱턴을 강타했다. 

 테러 직후 발표된 오사마 빈 라덴의 성명서는 고통의 등가교환 법칙을 해설하는 설명서인 동시에 작금의 상황을 논하는 예언서였다. 그는 이슬람 세계의 ‘80년의 굴욕’을 논했다. 오사마 빈 라덴은 ‘80년의 굴욕’이 1924년 칼리프 제도의 폐지로부터 시작한다고 보았다. 칼리프 제도의 혁파 이후 이슬람 세계는 정신적인 구심점을 상실했다. 그 혼돈 속에 서구 제국주의가 강요한 국경선이 자의적으로 그어졌다. 이와 같은 문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극복책은 칼리프 제도의 부활과 그를 중심으로 한 이슬람 국가의 건설이었다.   

칼리프의 나라, ‘이슬람 국가’

 오사마 빈 라덴의 꿈은 그의 생전에 이루어질 수 없었다. 그는 이슬람 국가를 염원했지만, 영토와 인구라는 국가의 물적 토대를 확보하지 못했다. 그의 영향력과 명성에도 불구하고 알 카에다와 탈레반 정권은 최전성기에도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 일부 지역의 부족을 묶은 느슨한 연합을 이루는 데 그쳤다. 알 카에다의 대의에 동조한다면 모두가 손쉽게 알 카에다가 될 수 있었지만, 현대 세계가 기초한 근대국가 체제는 초국가 테러리즘의 의지만으로 전복되지 않았다. 오사마 빈 라덴 사후 알 카에다가 예전의 위상을 순식간에 상실한 것은 예측가능한 일이었다. 아프가니스탄은 세계 혁명을 지도하는 사령부를 설치하기에 그리 적절한 장소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사마 빈 라덴이 확보한 것은 ‘주권(主權)’이 독재자 일개인이나 민중이 아닌 신(主)에게 있다고 믿는 관념의 공동체였다. 고대 성서에 기초한 이스라엘에 대한 기억을 기초로 근대적 의미의 국가를 창출하고자 했던 시온주의자들과 마찬가지로, 이 관념의 공동체는 중세 이슬람 공동체에 기초로 둔 국가 건설에 나서게 된다. 2014년 이라크와 시리아에서 본격적으로 세력을 확장하면서 등장한 ‘이슬람 국가’가 바로 그들이다. ‘이슬람 국가’의 대변인이 말했듯이, 굴종과 치욕을 털어버리기 위해 혼돈과 무질서와 절망으로 얼룩진 중동에 칼리프의 나라가 우뚝 선 것이다. 이들은 이슬람 율법에 기초한 국가의 토대를 세웠으며, 바그다드 출신의 한 이슬람 법학자는 스스로를 칼리프라 칭하면서, 무함마드 사후 최초의 칼리프였던 아부 바크르라는 이름을 쓰기 시작했다. 알 카에다와 달리 ‘이슬람 국가’는 이라크와 시리아의 일부 지역을 실효적으로 지배하는 사실상의 국가로 성장했다. 국가는 조직화된 폭력이며, 전쟁이 국가를 만든다는 찰스 틸리의 통찰은 ‘이슬람 국가’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 

왹.JPG

관타나모 수용소 폐지를 청원하는 시위 ⓒAFP Photo/Nicholas Kamm

관타나모 수용소와 IS의 주황색 죄수복

 역설적으로 ‘이슬람 국가’의 등장은 미국의 이라크 침략을 통해 가능했다. 미국은 손쉽게 독재자 사담 후세인을 제거했지만, 정당하지 않은 미국의 전쟁은 복수라는 무한연쇄의 또 다른 출발점이었다. ‘이슬람 국가’의 폭력은 이라크 전쟁 이후 고통에 대한 정확한 반사작용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2015년 2월, ‘이슬람 국가’는 트위터 계정을 통해 요르단 조종사에 대한 화형 동영상을 공개했다. 화형이라는 끔찍한 처형방식은 스펙터클에 민감한 전 세계 모든 언론의 지면을 뒤덮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화형 자체보다도 필자의 눈에 들어온 것은 요르단 조종사 무아트 알 카사스베 중위가 입고 있던 주황색 죄수복이었다. ‘이슬람 국가’가 참수한 사람들이 입고 있던 주황색 죄수복은 관타나모 수용소에 감금된 죄수들의 옷이기도 했다.

 미국의 관할지역이지만 쿠바에 위치한 관타나모 수용소. 그곳에 수용된 ‘테러 용의자’들은어떠한 법의 보호도 받지 못하는 존재들이었다. 그들의 죄수복을 복제한 ‘이슬람 국가’의 주황색 죄수복은 미국이 ‘테러 용의자’들에게 가한 폭력을 그대로 인질들에게 돌려주고 있었다. (오바마 대통령이 여러 차례 공언한 것과 달리, 아직까지 관타나모 수용소는 폐쇄되지 않았다.) 

 20분에 가까운 화형 동영상은 화형 자체에만 집중하지 않는다. ‘이슬람 국가’는 극단적으로 현시적인 폭력을 선호한다는 점에서 다른 테러리스트들과 구분되지만, 그들이 전하는 메시지는 지극히 정확한 문법을 따른다. 동영상은 ‘이슬람 국가’의 다른 영상들이 그러하듯이, 카사스베 중위가 자신의 죄를 고백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그 자신이 요르단 공군 소속으로서 폭격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왔다는 것이다. 동영상 속 카사스베 중위는 자신의 폭격으로 무너졌을지도 모르는 건물의 잔해를 오랫동안 응시한다. 그리고 바로 그 장소에서 그 죄에 대한 탈리오 법칙은 끔찍하게 재연된다. 불에 탄 중위의 시체는 안식을 취하지 못하고, 폭격 속에 숨진 사람들의 시체처럼 콘크리트 더미 속에 파묻힌다. 

 ‘이슬람 국가’의 잔혹한 행동이 정당화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선뜻 이해되지 않는 그들의 행위 뒤에 내재한 일종의 문법 구조를 파악할 필요가 있다. 이들은 9.11과 ‘테러와의 전쟁’이 만들어낸 피조물이다. 피조물의 상상력은 감히 창조주를 넘어서지 못한다. 이들은 전도된 형태로 ‘테러와의 전쟁’을 정확하게 반복한다. 무인항공기에 의한 표적살인에 대해, 그들은 무차별한 처형으로 응답한다. 이들에 대한 ‘정밀타격’, 군사적 응징을 주장하는 것만으로 ‘이슬람 국가’를 완벽하게 박멸할 수 있을까? 그 공격이 낳을 ‘부수적인 피해’는 제2의 ‘이슬람 국가’가 등장하는 비옥한 토양이 될 것이다. 그리고 그 복수의 정도는 더욱 더 잔혹하게 이루어질 것이다.

 아이스킬로스의 비극에서 복수는 결국 지혜의 신 아테네의 판결로 가까스로 해결된다. 아테네는 복수의 연쇄 고리를 단절하고 새로운 출발의 기회를 만들어준다. 아테네의 개입과 설득을 통해 복수의 여신들은 이제 자비의 여신들로 변모한다. 자비의 여신들은 말한다. “피와 범죄에도 지치지 않고 광란의 소동을 일삼는 일이 다시는 성내에서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시민들의 억울한 피를 빨아 마신 먼지가 복수를 원하는 노여움으로, 죽음은 죽음으로 치워 주라는 파멸의 소리를 하지 않게 하리라. 그러나 사람은 사람끼리, 국가는 국가끼리 서로 아끼는 마음으로 즐거움도 같이 나누어 영원히 행복을 찾자는 맹세를 해야 할 것이다.”

 문학 속에서 가능한 해결방식이지만, 이는 우리가 도달할 수 있는 유일한 해결책이기도 하다. 그 출발은 적을 적으로서 대등하게 인정하는 태도가 아닐까? ‘이슬람 국가’가 단순히 사후세계가 아닌 현실 세계의 국가 건설을 추구하고 있다는 점은 인정을 위한 하나의 출발점이 될 지도 모른다.         

옥창준(외교학과 박사과정)

외교_필자.png

80년대 후반에 세상에 나왔다. ‘팍스 아메리카나’ 시기에 유소년 시절을 보냈다. 국제정치학을 전공하고 있으나, 국제적이지도 정치적이지도 못하다. 다만 세계에 대해 관심을 갖는 것은 우리의 익숙한 공간과 시간을 낯설게 볼 수 있는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하나가 아닌 다양한 상상이 가능한 세계를 희구한다. <은하영웅전설>을 잘못 읽은 탓이다. 최근에 석사논문을 겨우 썼다.      

댓글 댓글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

Previous Post

우주로 그리고 미래로

Next Post

주택시장과 청년 세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