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8일, 서울시 종로구 참여연대 2층 아름드리홀에서 ‘해방·분단 70년 한반도의 현재와 미래’ 심포지엄이 개최됐다. 역사문제연구소, 인권재단 사람, 참여연대, ASCK(The Alliance of Scholar Concerned about Korea)가 주관한 이 행사는 8월 8일부터 8월 11일까지 이어지는 ‘2015 평화기행’의 일환으로 기획됐다.

심포지엄은 역사문제연구소 김성보 소장과 런던대학교 오웬 밀러(Owen Miller) 교수(동양아프리카연구대학)의 환영사로 시작됐다. 김성보 소장은 환영사를 통해“해방과 분단이라는 역사적 분기점이 70주년을 동시에 맞이했다”면서“ 이를 기점으로 한국 사회를 괴롭히는 폭력의 기원을 정확히 적시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다양한 실천방안을 모색하고자 한다”는 의의를 밝혔다. 오웬 밀러 교수는 환영사에서 한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 있어 정의와 평화는 중요하며, 이를 성취하기 위해서는 국제적 연대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날 행사는 총 3부로 진행됐다. 1부는‘ 동아시아 전후 질서와 한반도 분단체제, 그리고 역사전쟁’이라는 주제로 논의됐다. 한림대 이삼성 교수(정치행정학과)가‘ 동아시아 대분단체제와 한반도’라는제목으로 발제했다. 이어서 춘천교대 김정인 교수(사회과교육과)가 ‘역사교과서 논쟁과 뉴라이트의 역사인식’, 럿거츠대학 김수지 교수가 ‘북조선의 분단체제와 조선(한국)전쟁’이라는 제목으로 발표했다. 2부 주제는 심포지엄의 제목과 동일한‘ 해방·분단 70년 한반도의 현재와 미래’였다. 한반도를 둘러싼 안보상황, 한국 내 좌우 갈등, 그리고 한국 내 평화운동을 다루며 분단국가 한국의 현실을 짚고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모색했다. 3부에서는‘ 분단 그리고 전쟁을 거부하는 이들’이란 제목으로, 조선국적 재일교포와 병역거부자가 한반도와 한국 사회에서 겪은 경험에 대해 논의가 이뤄졌다. 이날 행사는 발제자들의 발표가 마무리 된 후 바로 청중의 질의응답을 받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서울대저널>에서는 분단 이후 한반도의 현실을 진단하고 개선안을 고민한다는 점에 주목해 2부의 내용을 집중 소개하고자 한다.
사드(THAAD)를 둘러싼 논란
2부는 일본국제기독교대학교 서재정 교수(정치·국제관계학과)의 ‘미국의 대아시아 전략 변화와 동아시아 군사갈등’이라는 발표로 시작됐다. 서 교수는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erminal High Altitude Area Defense:THAAD, 사드)의 한반도 도입 논란과 관련, “사드를 한반도에 배치하겠다는 주장은 궁극적으로 미국의 안보를 위한 것이며 한국의 안보 상황과 동아시아 대분단체제는 오히려 악화될 것”이라 지적했다.
한국과 미국 양 국의 정부와 록히드 마틴과 같은 군수업체들은 한국 내 사드 배치를 지지하는 입장이다. 한국의 경우 북한의 핵 개발과 무기개발로부터 영토보호를 위한다는 이유로 사드 배치를 지지한다. 미국은 한반도 내 주한미군의 보호와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 개발 가능성에 따라 북한으로부터 북미대륙을 보호하기 위한다는 이유를 표방한다. 록히드 마틴의 경우 기업적 이익을 위해 사드의 한반도 배치를 적극적으로 지지한다. 이러한 이해관계 속에서 한반도 내에 사드를 배치하는 문제는 1999년 미 국방성의 학술적 논의 이후 2013년 들어 본격화됐다. 서 교수는 최근 배치 장소 실사와 한·미·일 정보공유양해각서 체결 등으로 사실상 한반도 사드 도입이 현실화되는 단계라고 덧붙였다.

서재정 교수가 준비한 발제를 발표하고 있다. ⓒ김대현 사진기자
이어서 한국, 주한미군, 미국 대륙 각각의 입장에서 사드 배치의 당위성을 논했다. 서 교수는“ 1999년 미국 국방성의 연구와 2010년 스팀슨 센터의 연구에서 고고도 방어 시스템이 한국의 방어에 비효율적이라 결론내렸다”며 사드 배치가 한국의 안보에 도움이 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반면 미국 대륙 방어라는 관점에서는 한반도에 사드를 배치함으로써 미국이 모색하는 단계적 방어체계를 구축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끝으로 서재정 교수는 한국에 사드를배치할 경우 발생하게 될 결과를 설명했다. 경제적 비용으로는 미사일 방어체계 하나마다 1~3조 원이 소요되고 중국에 대한 안보불안감 조성으로 대중국 수출입에 큰 타격이 될 것이라 지적했다. 또한 복지 등 다른 영역에서 지출증대가 필요한 상황에서, 사드 도입이 국내의 안보 이외 정책들을 축소시킬 수 있다고 경고했다. 안보적 비용으로는 미·중 갈등 고조,한반도 안보 저해를 들었다. 미·중 간 긴장상태가 고조되는 상황에서 한반도 내 사드 배치는 중국의 안보 불안감을 증폭시킬 수 있다. 이는 기존 중국-북한-러시아로 이어지는 동맹체제를 공고히 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서 교수는“궁극적으로 한반도를 둘러싼 안정이 깨지는 상황에서 우리 정부와 군은 미국의 입장에 종속돼있다”고 비판했다. 서 교수는“ 미사일 요격체제를 설치해 핵 공격에 대비하는 상황에서 방어는 공격의 또다른 말”이라며 “집단방어체제보다는 공동안보체제로의 안보정책 선회가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한국 사회 내 보수세력의 부상과 결집
이어진 순서는 성공회대 김동춘 교수(사회과학부)가 ‘한국 정치의 우경화와 대중적 극우단체의 등장’이라는 제목으로 발표했다. 김 교수는 한국 사회 내의 보수세력이 최근 행동하는 보수로 변화함을 지적하며“ 보수의 운동화를 어떻게 볼 것인지 논의해야한다”는 말로 포문을 열었다. 그에 따르면 한국의 보수는 극우, 반공주의를 표방하는 냉전 보수와 시장경제 지지 세력인 신자유주의 보수로 나뉜다. 그러나 최근 한국 내 보수세력에게는이 두 가지 특성이 결합돼 나타난다. 김 교수는 보수세력의 결집 현상이 한국만의 현상이 아니라고 설명했다. 근래에 대두된 미국 공화당의 티 파티(Tea Party), 서방의 신나치세력, 2011년 노르웨이 우토야섬에서 극우세력에 의해 자행된 테러는 전 세계에서 우경화 경향이 뚜렷함을 보여준다.
김 교수는 이어서 한국 사회 내 신(新)보수의 등장을 설명했다. 뉴라이트로 대변되는 한국 내 신보수는 김대중 정부 이후 집중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했다. 뉴라이트, 기독교, 참전 군인, 사립학교로 분류되는 신보수세력들은 자유민주주의 정권에 대해 반동 의식을 갖고 있다. 김 교수는“ 무엇보다 신보수세력들이 군부, 보수언론사, 사립학교 등 한국 사회의 기득권을 장악하고 있기에 이를 활용해 조직적으로 움직인다”고 짚어냈다.
끝으로 김동춘 교수는 2010년대 들어서 새로이 나타난 보수현상으로 10대에서 20대 중반에 형성된 신(新)우익세력에 대해 진단했다. 그는“ 386세대로 대변되는 진보세력이 기득권화되면서 고용불안에 시달리는 젊은 층은‘ 일베’와 같은 극우적 구호에 쉽게 흔들리게 됐다”고 지적했다. 더 나아가 기존의 보수세력이 기득권을 활용해 젊은 우익세력들의 활동을 배후에서 조종한다는 게 그의 관측이다. 일베 등 젊은 보수세력은 아직까지는 놀이로서의 혐오로 인터넷 상의 활동에 머무르고 있다. 하지만 그는 일본에서 젊은‘넷우익’들이 점차 현실에서 공개적 폭력을 자행하는 만큼 한국의 젊은 우익세력도 현실에서 활동하게 될 가능성을 우려했다. 김동춘 교수는 발표를 마무리하며 한국의 보수세력에 대해“ 반공주의 외에 보수세력으로서의 이념이 없고 오직 반공과 자유·진보세력으로부터의 자기해방만을 목표로 삼는다”고 최종 진단을 내렸다.
국내 평화운동의 현실과 미래
참여연대 박정은 협동사무처장은 마지막 발표를 통해 지금까지 한국 내에서의 평화운동을 되짚고, 평화운동이 지향해야 하는 목표, 체계를 고민해보자는 메시지를 던졌다. 그는 최근 국가가 광복 70주년을 홍보하고 통일교육과 같은 나라사랑교육을 확대했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사람들은 각자도생에 골몰한다는 데 주목했다. 자유민주주의를 표방하는 국가가 보호해야 하는 대상은 국가 자체뿐만 아니라 국가 안의 시민도 포괄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단체제 하에서 안보담론에 치우친 국가는 세월호, 메르스 사태와 같이 시민의 안전을 위협하는 상황에 관심을 갖지 않았고, 국가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평화와 통일만을 내세웠다. 결국 시민의 안전이 위협받는 상황이 와도 국가가 여기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이에 시민들은 국가의 존재 자체에 의문을 갖게 됐다. 박 처장은 ‘통일이 평화를 담보하는가?’라는 질문을 들었을 때 한국은 거기에 제대로 답변할 수 없다고 꼬집어 말했다.
박 처장은“ 이러한 현실은 우리 사회가 추구해야 할 평화를 명확히 알지 못하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라고 지적하며“ 평화운동이 추구할 평화의 개념을 세울 것”을 촉구했다. 이때의 평화는 전쟁과 폭력의 부재를 의미하는 국가 중심의 소극적 평화와는 다르다. 박 처장은 국가가 시민의 안전을 보장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평화’란“ 개인의 존엄성과 생명을 존중하며 차별받지 않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라 정의했다.
이어 박 처장은 평화운동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이야기했다. 박 처장은“이제까지의 평화운동이 개별 이슈 하나하나에 대응했다면 이제는 전략적인 접근이 필요한 때”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평화의 개념이 개인의 안전과 존엄성 존중인 만큼 거대한 구조로서의 평화만큼이나 일상에서의 평화를 성취하는 것 역시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박 처장은 이러한 평화 개념을 바탕으로 “시민들이 자신들이 살고 싶은 공동체 내지 사회에 대해 논의를 지속할 때 안보국가담론을 탈피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마지막으로 박 처장은 시민운동이 활력을 잃는 상황에서 평화운동 전개에 제약이 되는 요소로, 실천적 지식인의 부재와 안보국가론을 담보한 채 모호한 안보관을 지닌 거대야당을 들었다. 그리고 이러한 제약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평화운동의 목표를 명확하게 하고 전략적으로 접근함과 동시에 활동가들의 역량강화에 힘써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해방·분단은 여전히 치유되지 않은 과제

발제가 끝난 후 한 참가자가 발제자들에게 질문하고 있다. ⓒ김대현 사진기자
제2부 행사는 예정된 시간을 훨씬 넘겨 진행됐다. 질의응답까지 모두 마무리된 후, ASCK에서 활동하는 진보적 성향의 한국현대사학자인 연세대학교 헨리 임 교수(언더우드 국제대학)와 인터뷰를 가졌다. 그는 “1945년은 해방과 동시에 남에는 미군정, 북에는 소련이 들어서면서 분단이 된 시기”라며“ 분단이 한국전쟁으로 이어지고, 그 전쟁이 아직까지 마무리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1945년은 현재 한국사회가 겪고 있는 상황의 원인”이라 지적했다. 임 교수는 한국 사회가 해방과 분단 70년이라는 의미를 잘 인지하면서 현재 한국이 겪고 있는 상황의 원인을 고민해 보는 것이 이번 심포지엄의 의의라고 평가했다.
이날 심포지엄은 한반도를 둘러싼 주변국들의 경쟁과 한국 사회 내부에서 벌어지는 좌우 간 대립을 짚으며 분단된 한국이 처한 현실을 진단했다. 나아가 분단된 한국의 현실을 극복하는 것은 안보담론에 빠진 국가에 의해서만이 아니라 초국가적 연대와 시민사회의 협력이 있어야 가능하다는 점을 보여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