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우리 동네에 원자력발전소를 짓는 걸까?

원전 추가 건설과 안전 감시에 시민은 얼마나 참여할 수 있는가

 국가 주도의 산업화 시대에 안정적인 전력 수급을 위한 에너 지계획은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원자력은 이런 전력 정책의 총아였다. 그러나 값싼 전기료와 그를 통한 경제성장의 대가는 발전소 지역주민의 희생을 통해 얻은 것으로, 시민의 의사는 정 책에 반영되지 못했다. 그렇다면 정치적 민주화를 달성한 오늘 날의 사정은 어떨까? 국가와 산업 중심의 전력정책 결정과정과 원자력 안전관리에 대한 비판은 여전하다. <서울대저널>은 원자 력 정책결정과 안전감시 절차를 살펴봤다.

불투명한 위원회와 주민 없는 공청회

 지난 7월 제 7차 전력수급기본계획(전력계획)이 발표됐다. 계획에는 2개의 원전을 추가 건설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발전 사업자인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은 삼척 혹은 영덕에 원자력발전소(원전)를 짓겠다는 의향을 산업통상자원부(산업부)에 제출했다. 또 한수원은 6차 전력계획에 포함됐던 신고리 7, 8호기의 물량을 활용해 영덕에 원전 2개를 짓겠다는 의향도 제출했다. 환경단체와 영덕, 삼척의 주민들은 계획에 대해서 강하게 반대했다. 정부와 산업계를 중심으로 수립된 전력계획에 시민들의 의사가 반영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논란이 되고 있는 지점은 전력정책을 결정하는 위원회의 구성과 운영이다. 전기사업법 제25조에 의하면 산업부는 전력계획을 확정하기 전에 공청회와 전력정책심의회의 심의를 걸쳐야 한다. 계획의 기초가 되는 전력 수요와 전력 설비는 수요계획 소위원회와 설비계획 소위원회의 논의를 통해 계획한다. 수요계획 소위원회와 설비계획 소위원회의 경우는 전력정책심의회와 다르게 개회 근거가 되는 법률이 없다. 게다가 누가 위원으로 참여하고 있는지도 알 수 없다. 산업부는 “이들 위원회에 대한 별도 규정은 없다. 계획을 만들기 위한 일종의 작업반 개념으로 민간 전문가가 대부분”이라고 설명했다. 

 작성된 전력계획안을 심의하는 전력정책심의회의 경우는 설립 근거가 법률에 명시돼있지만 여전히 누가 위원인지는 알 수 없다. 윤순진 교수(환경대학원)는 “정보 자체가 투명하게 공개가 안 된다”며 위원회의 구성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다. 위원들의 긴 임기 또한 문제가 된 적 있다. 새정치민주연합 이원욱 의원실의 자료에 의하면 10년 이상 활동한 위원이 3명, 8년 간 활동한 위 원이 3명이다. 산업부는 이에 대해서 “전력정책은 전문성이 요구되는 분야고 정책의 일관성 또한 중요하다”고 해명했다. 에너지 계획을 구상하고 심의하는 위원회에 전문가가 참여하는 건 당연한 일이지만 정보가 공개되지 않는 한 전력정책심의회의 공정성에 의문을 품을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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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난 6월 18일 열린 7차 전력수급기본계획(안) 공청회의 모습. ⓒ에너지경제

 전력계획에 대한 공청회 역시 논란거리다. 지난 6월 18일에 개최된 공청회에 입장할 수 있는 인원은 450명이었고 사전 신청 절차를 거쳐서 입장권이 배포됐다. 손성문 ‘영덕 천지원전 건설 백지화 범군민연대(범군민연대)’대표는 “입장권을 4장밖에 얻을 수 없었다. 사전신청서는 소속단체, 이메일 번호 등을 써야 하는 등, 노인들은 쓰기도 어려운 양식이었다”며 공청회 운영 절차를 비판했다. 결과적으로 입장권 중 107석(한국전력 29석, 한수원 35석 등)은 공기업 및 공공기관에 돌아갔다. 삼척의 경우 원전에 찬성하는 ‘삼척원자력산업추진협의회’는 10석, 반대하는 ‘삼척 핵발전소반대투쟁위원회’는 1석을 받았다. 지역주민의 의사가 얼마나 반영돼야하냐는 질문에 이헌석 에너지정의행동 대표는 “지역주민의 의사를 광범위하게 들어야한다. 2시간 동안 일부의 의견을 듣는 것으로는 부족하다”고 대답했다. 

주민투표는 거부한다?!

 목소리를 낼 수 있는 통로가 좁은 건설 예정부지 주민들이 스스로의 의견을 모아 정책에 반영할 수 있는 방법으로 주민투표가 있다. 삼척의 주민들은 원전 유치신청을 철회하는 주민투표를 실시했고, 영덕에서는 준비 중이다. 그러나 산업부는 원전 예정구역 지정은 국가사무로 주민투표의 대상이 아니며, 지방자치 단체의 적법한 신청절차에 따라서 유치신청이 이뤄졌음을 근거 로 주민투표의 효력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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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덕 천지원전 건설백지화 범군민연대’ 손성문 대표.

ⓒ박나연 사진기자

 그러나 지방자치단체의 부지 선정 절차에서도 석연찮은 점이 있다. 영덕의 경우, 2010년 말 군의회의 동의를 토대로 원전 유치 신청을 했다. 언뜻 보면 문제가 없어 보이지만 군의회는 모든 군민에게 충분한 홍보를 하지 않았으며, 예정부지 주민에게만 찬반 의사를 물었다. 손성문 대표는 “(예정부지를 제외한) 주민들은 유치신청에 대해서 전혀 몰랐다”고 말하며 유치신청 과정에 의문을 제기했다. 심지어 예정부지인 영덕군 석리의 한 주민은 “처음에는 원전이 뭔지 몰랐다. 안내문이 왔는데 원전이 들어와야 군이 잘산다고 했다”며 당시 충분한 정보를 제공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삼척은 유치 신청 당시 시장이 유치에 대한 주민투표를 실시한다고 약속하고 군의회의 동의를 얻었다. 그러나 주민투표는 실시되지 않았고 ‘삼척시원자력산업 유치협의회’ 주도로 유권자의 96.9%가 찬성했다는 서명부가 만들어졌을 뿐이다. 유치신청 과정에 주민들의 의사가 반영되지 않았으므로 주민투표가 실시돼야 비로소 원전 유치에 대한 최초의 의견수렴이 이뤄진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주민투표법 7조는 국가 및 다른 지방자치단체의 사무는 주민투표의 대상이 아니라고 규정하고 있다. 원전 유치신청을 철회하는 것은 원전건설과 관련된 국가사무일까? 강원대 박태현 교수(법학전문대학원)는 논문 ‘원전 개발과 지방자치: 삼척시 10·9 주민투표의 법적 성격과 효력’에서 ‘유치신청이 국가 사무인 원전 개발에 포함되는 과정이라도 유치신청행위 자체의 사무 성격은 지방자치단체 고유의 자치사무’라고 기술했다. 유치 신청을 철회하는 것이 국가사무인지 자치사무인지는 이렇게 논쟁적이지만 산업부는 영덕의 경우에 대해서도 ‘국가사무’라고 못박았다. 박태현 교수는 이에 대해서 “주민투표 결과를 인정하면 앞으로의 원전 사업에 지장을 받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민간의 안전감시는 원전운영에 방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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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성 원자력안전 조례제정 운동본부'는 유성구 내의 원자력 시설에 대한 민간환경감 시기구 설립을 위해 주민 9,219명에게 서명을 받았다. 

ⓒ유성 원자력안전 조례제정 운동본부

 원자력 관련 시설에 대한 주민들의 불안감은 시설과 멀리 떨어진 이들이 느끼는 것보다 훨씬 크다. 주민들의 불안감은 원전 관련 시설에서 벌어질 수도 있는 안전사고에 대한 불안감으로, 정부나 원전 사업자가 제공하는 정보에 대한 불신으로 빚어지는 경우가 많다. 대전 유성구 관평동에 사는 한명진 씨는 “(원전 시 설에 대한 감시는) 안전보다 먼저‘ 안심’의 문제”라고 이야기 했다. 대전의 경우도 원자력 연구원에서 2007년 농축우라늄 시료 상자를 분실한 사건, 2011년 방사능 유출로 백색경보가 발령된 사건의 경과와 원인이 주민들에게 투명하게 공개되지 않은 바 있다. 이런 상황에서 주민들은 원전 시설 관계자의 말을 믿기 힘들다. ‘유성 원자력안전 조례제정 운동본부’ 의 강영삼 씨는 “민간환경 감시기구를 통해서 주민들이 (원전시설을) 감시하면 주민과의 갈등으로 인한 비용을 줄일 수 있다”며 주민들이 원자력 시설에 대한 감시과정에 참여해야 할 이유를 설명했다.

 원자력 발전소가 가동 중인 5개 지역에 있는 민간환경감시기구가 있다. 이들은 대체로 원전 주변의 환경방사능 측정, 시민교육, 예방정비시 감시활동 등을 수행하지만 여러 제도적 한계가 존재한다. 한빛원전민간환경감시기구 이하영 부위원장은 “환경 방사능 측정만으로 안전성을 확보하는데는 한계가 있다”며 발전소 운영 등 내부 상황에 대한 상시적인 점검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대전의 연구시설이나 원료가공공장에 대해서는 민간환경 감시기구 수립을 위한 법률적 근거조차 없는 상황이다.

 폐쇄적인 에너지정책 결정과정과 주민의 의사를 반영하지 않는 부지 선정과정은 원자력에 대한 시민들의 요구를 반영하지 못한다. 윤순진 교수는 현재 한국의 상황에 대해서 “성장제일주의가 비민주적인 에너지 정책 결정과정의 원인”이라고 설명했다. 산업화 시기 국가 중심의 정책 결정과정이 여전히 그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2011년 탈핵 결정을 내린 바 있는 독일의 정책결정과정은 어떨까. 윤순진 교수는 독일이 원자력 문제를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정치적 문제로 바라본다”고 말했다. 2011년 독일의 탈핵결정은 ‘안전한 에너지 공급을 위한 윤리위원회’(윤리위원회)의 권고를 정부가 수용하면서 이뤄졌다. 윤리위원회는 8주간 내부토론, TV공개토론을 진행하며 원자력 문제를 숙의했다. TV 토론의 경우는 다른 민간 전문가가 참여하기도 했으며, 일반 시민들은 문자나 전화, 이메일 등으로 참여했다. 이처럼 탈핵 결정의 바탕에는 민주적인 절차와 시민 참여가 있었다. 과거의 에너지 정책은 경제성장을 위한 것으로 전문가의 영역이었다. 하지만 오늘의 사정은 다르다. 시민들은 원전을 건설하는 정책과정에 참여하고자 하며, 직접 원자력 시설을 감시하고자 한다. 변화된 요구에 발맞춘 제도의 개선이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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