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성커플, 우리 결혼했어요

아일랜드 보수사회는 어떻게 동성커플을 포용했나

   지난 5월 22일 아일랜드에서는 세계 최초로 국민투표에 의해 동성결혼이 합법화됐다. 이날 인정받은 동성결혼제도는 이르면 가을부터 발효될 전망이다. 한 외신 인터뷰에서 독일 옌스 슈판 의원은 “아일랜드와 같은 가톨릭 국가가 해냈다면 우리도 할 수 있다”고 발언했다. 아일랜드의 국민투표 결과가 세간의 관심을 모았고, 이웃 국가에서의 동성결혼 합법화 논의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다. 보수적인 아일랜드 사회에서 동성결혼 합법화가 이뤄지게 된 과정을 짚어보고 그 속에서 시민운동의 역할을 살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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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일랜드에서는 국민투표를 통해 동성간 결혼을 허용하는 문구를 헌법에 추가하기로 

결정했다. ⓒYes Equality 2015

동성애가 범죄 행위라고?

  아일랜드에서는 영국으로부터 독립하기 이전에 제정된 빅토리아 형법에 따라 1990년대까지 동성애를 범죄로 취급했다. ‘신체상해에 관한 법률(1861년)’ 제61조에는 ‘사람 혹은 동물과 항문성교 하는 자는 무기징역에 처한다’고 돼있고, 개정형법(1885년) 제11조에서는 ‘다른 남성과 외설행위를 하는 남성은 2년 이하 징역에 처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처럼 동성애를 강력하게 제재하는 분위기였지만 더블린에서는1970~80년대에 동성애자 권리를 위한 모임이 결성되며 성소수자들이 조금씩 스스로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러던 가운데 1982년 9월 데클란 플린이라는 게이 청년이 다섯 명의 십대들에게 살해당하는 일이 벌어졌다. 가해자들은 기소됐지만 집행유예를 받고 풀려났다. 이 사건을 계기로 동성애자 인권 운동이 활발해지기 시작했다.

  동성애를 범죄로 여기지 말자는 논의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은 1983년 데이비드 노리스 상원 의원이 대법원에 빅토리아 형법을 심사청구 하면서였다. 대법원은 해당 법이 결혼제도를 보장하고 있고, 폐기 시 에이즈 확산으로 공중보건에 악영향을 줄 것을 우려해 청구를 거절했다. 노리스 의원은 5년 뒤 같은 법을 유럽인권재판소에 심사청구 했다. 재판소에서는 동성애를 불법화하는 조항이 개인의 사생활을 보장하는 유럽인권보호조약 제8조에 저촉된다는 판결을 내렸다. 이후 정부 측에서 검토를 거쳤지만 5년간 성과가 없는 가운데 1993년 꾸려진 새로운 연립 정부에서 빅토리아 형법을 제거하자는 법안이 발의됐다. 그 해 6월 상원과 하원에서 법안이 통과돼 동성애는 더 이상 불법행위가 아니게 됐다.

  이어 1998년에는 고용평등법이, 2000년에는 동등지위법이 통과됐다. 고용평등법에서는 고용과 채용 과정에서 레즈비언과 게이 직원들의 평등권을 보장한다. 동등지위법에서는 동성애자들에게 재화와 서비스의 평등한 공급을 보장한다. 이를테면 호텔이나 식당, 공원을 제약 없이 이용할 권리를 보장하는 것이다.

  동성애자들을 보호하고 평등권을 보장하는 법이 마련되자, 학교나 직장에서 자신의 성정체성을 드러내는 사람들의 수가 많아졌다. 그동안 타자화됐던 동성애자들이 누군가의 가족이고 동료일 수 있다는 점이 받아들여지면서 시민들의 인식도 점차 바뀌었다. 레즈비언이나 게이들이 평범하게 연출되는 미국이나 영국 드라마도 인식 개선에 기여했다. 더블린에 거주 중인 올라 하워드 씨는 “시민들 각자가 스스로 동성애 의제에 대해 고민하는 여정(journey)을 거치며 긍정적인 판단을 내린 것 같다”고 말했다.

 

  국민의 84%가 가톨릭 신자인 아일랜드는 교육기관의 대부분이 과거에는 교회에서 운영될 만큼 오랫동안 교회의 영향이 강했다. 하지만 아일랜드 가톨릭계가 아동폭력 및 성추문에 휩싸이면서 교회는 그 영향력이 줄어들었다. 아일랜드 정부가 설치한 아동학대 조사위원회가 2009년 제작한 보고서에 따르면 가톨릭 사제와 수녀들이 수십 년간 수천 명의 아동을 폭행해왔다.

  던보인에 거주하는 케빈 로드 씨는 “대중들의 정신적 지주였던 교회에서 문제들이 발견되자 아일랜드 시민들은 그동안 익숙해져있던 종교적인 가르침에 의문을 제기하기 시작했다”며 현지의 상황을 설명했다. 교회 안에서 부정당하던 동성애자의 존재에 대해 신자들이 다시 생각해볼 수 있는 여지가 마련된 것이다. 이러한 변화가 평등에 기초한 동성애자 시민단체의 구호와 맞물리면서 동성애를 인정하는 가톨릭 신자들이 생겨났다. 국민투표가 끝난 지금도 교계는 동성결혼에 반대하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지만 동성결혼을 지지하는 교인들은 많아졌다.

시민단체의 노력과 시민결합의 탄생 

  아일랜드의 대표적인 성소수자 시민단체로는 ‘게이레즈비언평등네트워크(GLEN)’, ‘결혼평등(Marriage Equality, ME)’, ‘전국레즈비언게이연합(NLGF)’이 있다. 이들 단체는 동성애자들의 모임으로서 역할 하는 동시에 동성애자들이 차별받지 않도록 하기 위한 사회적 논의도 이끌어갔다. 이 가운데 GLEN은 대외적인 접촉을 통해 보수적인 사회 곳곳에 메시지를 전달했다.

  아일랜드 성소수자 시민단체들이 집중하는 활동영역 중의 하나가 교육 분야다. 교회에서 운영되는 대부분의 초·중학교에서 성소수자 학생들에 대한 인식은 곱지 않았다. GLEN은 어떠한 이유로든 학생이 학교폭력(bullying)에 시달려서는 안 된다는 점을 들어 교육 지도자들과 공감대를 형성했다. GLEN에서 2009년 펴낸 ‘성소수자들의 정신건강과 행복에 관한 연구’에 따르면 58%의 성소수자 학생들이 동성애 혐오 폭력을 당했고, 85%의 성소수자 학생들은 한 번 이상 자해를 시도했다. GLEN은 성소수자 학생들이 성적지향성을 이유로 폭력을 당한 점에 호소하면서 학교 측에 학내 폭력 금지와 학생 및 교사 대상 반폭력 교육을 정책적으로 시행할 것을 요구했다. 

  정치인들에게도 공통된 문제의식을 갖고 다가갔다. 대표적인 진보정당인 노동당은 오랫동안 성소수자들을 지지해왔기 때문에 시민단체들은 비교적 규모가 큰 중도보수성향의 통일아일랜드당과 아일랜드공화당을 설득해야 했다. 아일랜드의 시민운동가 브라이언 시한 GLEN 상임이사는 “공화당이 가지고 있는 가치체계에 주목했다. 동성애자 인권의 정당성을 얘기하기 위해 모든 공화시민은 동등한 대우를 받을 권리가 있다는 가치를 들었다”며 “반대의견에는 맞서기보다 그것이 덜 중요해 보이도록 대응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시민단체의 꾸준한 노력으로 동성애자 인권 의제는 정치권의 공감을 얻기 시작했다. 2007년 총선거를 앞두고서는 아일랜드의 모든 정당들이 동성애자들에 대한 정책을 공약으로 내세우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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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이언 시한 GLEN 상임이사는 아일랜드 시민들이 동성애자 권리를 인정하게 된 배경으로 포용, 관대, 평등에 기반한 가치 체계를 들었다. ⓒThe Irish Times

  2004년 한 동성부부가 혼인관계를 인정받기 위해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냈다. 캐나다에서 결혼식을 올린 이들은 아일랜드에서 공동 명의 세금신고를 하기 위해 부부로서의 지위를 인정받고자 했다. 당시 법원은 아일랜드 헌법상 결혼은 이성 간에만 성립되기 때문에 인정할 수 없다고 판결했다. ‘칼 케이스(KAL case)’라고 불리는 이 소송을 계기로 동성커플의 관계에 대한 제도적인 논의가 점차 확산됐다.

  아일랜드 정부는 2006년 초 결혼제도 밖에 있는 가족관계 대한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 앤 콜리 의원을 위원장으로 하는 특별조사위원회를 꾸렸다. 동성커플이나 동거 중인 이성커플, 친척끼리 살면서 법적 보호를 원하는 경우 이를 보장해줄 방법을 모색하기 위함이었다. 특별조사위원회가 2006년 정부에 제출한 ‘동거커플에 대한 대책 보고서’에는 동성커플을 위해 시민결합(Civil partnership)이 제안됐다.

  그로부터 4년 뒤 ‘시민결합과 동거인의 권리와 의무에 관한 법률(Civil Partnership and Certain Rights and Obligations of Cohabitants Act)’이 통과됐고, 아일랜드에서는 2011년부터 동성커플의 지위가 시민결합의 형태로 보장되기 시작했다. 아일랜드에서 시민결합에 등록돼있는 동성커플의 수는 2014년 6월 기준 1,467쌍이다.

  시민결합은 결혼과 유사한 제도로, 나라마다 운영 형태나 조건은 조금씩 다르지만 혼인관계가 아닌 가족관계를 법적으로 보장해준다는 점은 동일하다. 이성간에도 인정해주는 국가가 있지만 아일랜드에서는 동성커플에게만 적용된다. 시민결합에 참여하는 동성커플은 주거, 시설, 연금, 세제, 사회복지, 이민, 결별 등의 면에서 결혼과 유사한 권리를 보장받는다. 결혼과 유사하다고 해서 모든 권리가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대표적인 예가 입양에 관한 문제다. 아일랜드의 현행 제도 하에서 혼자인 사람은 아이를 입양할 수 있지만 비혼의 이성커플과 동성커플은 그럴 수 없다. 시민결합이 동성커플에게 일정 부분 권리를 줬다는 점에서 고무적으로 보는 입장이 있는가 하면, 이러한 불충분한 조건 때문에 동성애자에 대한 차별을 유지시키는 것이라는 비판도 있다.

시민의 손으로 동성결혼을 인정하다

  시민결합 시행 이후 동성결혼 논의는 빠르게 진전됐다. 2011년 수립된 연립 정부는 헌법협의회를 열고 동성결혼 도입을 포함하는 헌법 개정안을 검토했다. 헌법협의회는 동성결혼을 허가하는 조항을 승인하며 이를 국민투표에 부칠 것을 권고했다. 앤다 케니 아일랜드 수상은 국민투표가 2015년 봄에 시행될 것이라고 공고했다.

  투표에 앞서 시민사회에서는 ME, GLEN, ‘시민자유를위한아일랜드회의(ICCL)’를 주축으로 한 연합단체 ‘예스평등캠페인(Yes Equality Campaign)’이 결성됐다. 캠페인 공동단장을 맡은 브라이언 시한 GLEN 상임이사는 “우리는 시민들에게 ‘그들(동성애자)을 지지해 달라’고 하지 않고 ‘우리를 지지해 달라’는 메시지를 전달했다”고 말했다. 동성결혼이 특정 집단의 문제가 아니라 모두가 평등한 사회를 만드는 데 기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캠페인의 주된 구호는 ‘나는 찬성해, 왜 그런지 물어봐(I’m voting yes, ask me why)’였다. 시민들의 자발적인 고민과 참여를 유도하기 위함이었다. 캠페인에서는 6주간 매일 집집마다 다니면서 시민들에게 투표에 관해 설명하고 찬성해줄 것을 부탁했다.

  시민들에게서 지지를 얻어내는 것이 쉬운 것만은 아니었다. 투표를 앞둔 기간에는 캠페인과 나란히 반(反)동성결혼 운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홍보기간 중 이뤄진 토론회에서는 동성애자들이 부모가 되기에 합당하지 않다거나 동성결혼이 기 결혼제도를 파괴할 것이라는 주장이 이어졌다. 가톨릭계에서는 강력한 반대 성명을 내거나 국민투표에 반대하는 설교를 하는 신부도 있었다.

  2015년 5월 22일, 아일랜드에서는 헌법 제41조에 ‘결혼은 두 사람의 성별 구분에 상관없이 계약될 수 있다’는 조항을 넣는 것을 찬성하는지 묻는 국민투표가 열렸다. 60.5%의 유권자가 참여해 62.07%가 찬성했다. 브라이언 시한 예스평등캠페인 공동단장은 결과에 대해 “아일랜드와 아일랜드 국민의 승리”라며 “다른 무언가가 아닌 가치 있는 진보”라고 평가했다. 올라 하워드 씨는 “이전까지 사람들은 시민결합을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했다. 결혼이라는 방법과는 별개의 제도가 따로 있는 것이 좋지 않았던 것 같다”며 “투표 결과가 나오던 날은 크리스마스 같았다”고 회상했다.

  앞으로 아일랜드에서 동성커플로서의 지위를 법적으로 인정받으려면 시민결합 대신 결혼제도를 택하면 된다. 기존에 시민결합을 맺고 있던 커플은 원하면 결혼을 선택할 수 있고, 그렇지 않으면 그대로 시민결합 상태에 남아있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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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스평등캠페인은 시민들의 인식을 바꾸는 중요한 계기가 됐다. 캠페인 기간 중 전국에 60개가 넘는 지부가 운영됐다. ⓒThe Clare Herald

2015 국민투표, 그 후 

  동성결혼 합법화를 이룬 동성애자와 시민단체의 다음 지향점은 무엇일까. 브라이언 시한 공동단장은 “사회 모든 영역에서 성소수자들의 완전하고 평등한 참여를 이뤄내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라고 밝혔다. 법적으로는 동성결혼이 인정받았지만 사회에서 성소수자들이 완전히 받아들여지기 위해선 지속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시민단체들은 직장과 학교를 대상으로 여러 가지 교육과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있다.

  ‘희망을 만드는 법’ 류민희 변호사는 “국민투표를 시행했다는 것 자체가 동성결혼이 통과되리라는 자신감의 표현이었다고 본다”며 “아일랜드뿐 아니라 동성결혼을 인정하는 국가가 늘어나고 있다. 지난 6월 말 미국 연방 대법원의 ‘동성결혼합헌’ 판결이 한국에도 영향을 줄 것”이라고 설명했다.

  브라이언 시한 공동단장은 “설득하려는 단체와의 공통적인 가치를 찾아 접근하고, 되도록 대립하려 하지 말라”고 한국의 성소수자 운동에 대해 조언했다. 아일랜드 시민사회는 지난 23년 동안 관용과 포용의 가치에 기반해 모두가 행복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달려왔다. 여러 국가에서 성소수자의 권리를 인정하고 있는 가운데 한국에도 무지개 깃발이 날릴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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