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특별시
“서울역고가는 도시 인프라 이상의 역사적 가치와 의미를 갖는 산업화 시대의 유산으로서, 철거하기보다 원형 보존하는 가운데 안전, 편의 및 경관을 고려한 사람 중심의 공간으로 시민에게 돌려드리기로 했다”
2014년 9월 23일, 박원순 시장은 미국뉴욕의 하이라인 파크(Highline Park)에서 서울역고가의 공원화 방안을 발표했다. 쓸모없는 폐 철로가 시민들을 위한 공원으로 바뀌고 주변 지역의 재생으로 이어진 뉴욕 하이라인의 사례를 보며 많은 시민들은 열광했다. 그러나 동시에 이 말은 서울역고가 주변 지역 주민들 사이에 논란을 일으킨 계기가 됐다.
그로부터 1여 년이 지난 지금, 서울역고가 공원화는 ‘서울역7017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진행 중이다. 그러나 이 사업을 둘러싸고 가장 큰 영향을 받게 될 지역 주민들의 반발은 여전하다. 서울역7017프로젝트는 모두를 통하는 성공적 정책으로 남을까?
사업의 수립과 주민들의 반대
서울역7017프로젝트는 차가 다니던 서울역고가를 사람이 다니는 보행로로 재탄생시켜 40년간 단절돼있던 서울역 서부지역과 중구 남대문시장을 잇는 사업이다. 프로젝트는 서울역 서부와 동부지역의 연결을 통해 낙후돼있는 서울역 서부지역을 활성화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사업 명칭의 ‘7017’은 1970년에 만들어진 고가를 17개의 보행로로 주변 지역과 연결하는 것을 의미한다. 기존 건물의 철거와 신축이 핵심인 재개발과 달리 기존의 건물들을 보존하고 지역 주민의 의사를 반영해 그 지역에 알맞은 기능을 불어넣는 것이 재생의 핵심이다.

본래 서울역고가는 아현고가, 서대문고가와 함께 철거될 예정이었다. 2009년 이후 서울시는 서울역 북부 역세권개발사업과 연계해 근처에 새로운 교량을 설치하고 기존의 고가는 철거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그러나 서울시가 2014년 3월에서 4월에 걸쳐 서울역고가 재활용과 관련해 2차례에 걸친 구조안전성 검토 작업을 하면서 분위기가 반전됐다. 5월에는 서울역고가의 재활용이 박원순 시장의 민선 6기 공약에 포함됐다. 박원순 시장이 재임한 직후 서울시는 7월과 8월 디자인 및 구조 전문가 합동회의를 총 4차례 개최했고, 9월 4일 서울역고가 공원화 추진을 언론에 발표했다.
서울역고가 공원화 사업에 대한 지역주민들의 반발은 예상 외로 거셌다. 특히 남대문시장 상인들과 공덕동 봉제공장주들의 반발이 극심했다. 이들이 반대한 가장 큰 이유는 대체도로 없는 고가공원화였다. 2013년까지만 해도 서울시의 방침은 기존 고가 철거 후 대체교량 건설이었다. 그러나 2014년 처음 정책이 발표될 때 대체교량 건설의 이야기는 빠졌다. 2015년 1월 서울역7017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다시 정책을 발표할 때도 대체교량은 검토 수준에 그쳤다. 주민들과 상인들은 이에‘ 경제를 잇는 다리역할을 한 고가가 사라진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며 집중적으로 반대에 나섰다. 실제 지난 4월 중림동 지역을 대상으로 한 현장시장실에서 많은 주민들이‘ 도로는 핏줄’이라며 ‘핏줄이 끊어지는 것이 죽음이듯, 도로가 끊어지면 경제가 죽는다’라는 말로 반대의사를 표했다. 공덕동의 영세 봉제공장주들은 남대문시장과 동대문시장으로 생산품을 납품하는 데 시간이 10분 가량 더 걸릴 것이라 우려했다. 남대문시장 상인들은 대체도로가 없으면 대중교통을 통해서 시장에 접근하기가 어려워진다는 점에서, 대체도로 없는 재개발은‘ 전통시장 죽이기’라는 의견을 내놓았다.
고가의 안전문제도 제기됐다. 서울역고가는 2006년 12월 실시된 안전등급조사에서 D등급을 받았다. ‘시설물의 안전관리에 따른 특별법’에 따르면 D등급을 받은 시설물은 시급한 보수·보강 공사를 진행하거나 사용제한을 결정해야 한다. 실제로 서울역고가는 2014년 1월 교량의 바닥판 콘크리트가 탈락하면서 그 안전성에 문제가 제기된 바 있다. 이 상황에서 고가에 공원이 조성된다면 고가가 과연 그 무게를 견딜 수 있을지에 의문이 생긴다. 서울시는 고가를 보강하기 위한 예산을 350억 원으로 잡고 있는데, 실제 비용은 그 이상일 거라는 우려 또한 존재한다.
무엇보다 서울시가 주민들과 소통을하지 않고 사업을 밀어붙인다는 인상을 준 것이 큰 문제였다. 특히 박원순 시장이 뉴욕 하이라인에서 서울역고가의 공원화를 선언한 점은 사업을 독선적으로 추진한다는 인상을 남겼다. 서울시의회 이혜경 의원은“ 당시 시의회에서 다음해 예산안을 심의하던 과정이었음에도 약 350억원 이상이 소요될 중장기 사업을 갑자기 발표한 것은 절차를 무시한 행동이며 심사숙고하지 않은 태도”라고 비판했다.
서울역고가 공원화 산업에 찬성하는 시민단체와 공무원들도 사업의 갑작스러운 발표를 비판했다. 서울역고가를 지지하는 시민모임인 ‘고가산책단’의 출범 1주년을 기념한 대담에서 사단법인 서울산책 조경민 대표는“ 아직 진지한 검토를 하고 있던 상황이었는데 미국에서 (서울역고가 공원화 방안을) 갑자기 발표한 박 시장의 행동은 경솔했다”고 말했다. 이처럼 고가와 관련한 문제제기와 이해관계가 복잡함에도 불구하고, 서울시는 주민들의 반발이 발생한 후에서야 비로소 간단하지않은 상황을 인지하기 시작했다.
박 시장을 지지하는 당론을 따르기 위해 지역 주민의 목소리가 제대로 반영되지 않는다는 지적도 있다. 이혜경 시의원은 지역구민들이 정책 자체에 반대함에도“ 해당 지역구의 시의원들은 당의 전체 입장을 따르느라 지역구민의 목소리를 의회 안에 전달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서울역7017프로젝트가 중구, 용산구, 마포구를 포괄하는 큰 사업임에도 불구하고 시의회 안에서 이 문제가“ 중구만의 문제”로 부각되는 상황을 우려했다.
소통을 위한 노력, 그 평가
지난 1월 29일, 서울시는 주민과의 소통이 부족하다는 사회 각층의 지적을 받아들여 서울역7017프로젝트 계획안에 시민소통강화방안을 포함해 발표했다. 시민소통강화방안에는 시민이 참여하는 ‘시민위원회’와 ‘고가산책단’을 운영하고, 주기적으로 여론을 수렴하는 시민참여형 의사결정 모델을 구축·운영하겠다는 방침이 포함됐다. 이에 따라 지난 4월, 박원순 시장은 3일 동안 중구 중림동, 마포구 공덕동, 용산구 청파동을 도는‘ 현장시장실’을 운영해 주민들의 의견을 청취했다. 이때 주민 설명회가 함께 열렸고 전문가 설명회 또한 개최됐다. 건축·조경 분야 전문가와 각계의 시민들로 구성된 시민위원회 역시 5월과 7월 두 차례에 걸쳐 개최됐다. 시민을 대상으로 한 고가개방행사가 5월에 열렸고, 고가공원의 설계안이 발표됐다. 7월에는 시민을 대상으로 한 서울역7017프로젝트 아이디어 공모전 등 주민들 외에 시민 아이디어를 모으기 위한 행사도 시행됐다.
이 활동들을 토대로 서울시는 지난 5월 7일‘ 서울역 일대 종합발전계획’ 추진방향을 발표했다. 서울역7017프로젝트가 서울역고가의 공원화에만 집중할 뿐 주변 지역에 대한 관심은 떨어진다는 건의를 수용한 결과다. 실제 이 방안에는 현장시장실에서 만난 주민들의 의견이 반영됐다. 중림동의 경우 서울역고가 하단부에 자리잡은 청소차고지 이전이 발전계획안에 포함됐다. 기존에 추진하던 북부역세권개발 역시 가시화하는 방안도 포함됐다. 여기에는 특히 많은 주민들이 요구해왔던 대체교량의 신설문제가 언급됐다.
서울시의 움직임에 대해 시민들의 평가는 대체적으로 긍정적이다. 주민들의 의견 역시 무조건 반대에서 미온적 반대로 변했다. 조경시설팀 온수진 주무관은“이전에 반대가 극심했던 중림동의 경우 서울역고가가 가져올 변화에 대한 기대감이 상승하고 있다”는 말로 주민들의 변화를 짚었다. 남대문 시장의 상인들 일부도 최근에는 보행도로 신설에 따라 젊은 층과 관광객의 시장 유입이 잦아질 것을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비판 여론은 존재한다.이혜경 시의원은 서울시의 소통 노력을“보여주기용 요식행위”라 비판했다. 주민들과 진정성 있게 소통을 했다기보다는 소통했다는 사실을 홍보할 뿐이었다는 지적이다. 이 시의원은“ 남대문시장 상인들의 경우 생계의 문제가 있기에 지속적으로 대응하기 어려울 뿐”이라며 여전히 시장 상인과 지역주민들을 중심으로 반대 의견이 크다는 점을 지적했다. 또한 그는 시민위원회에 지역주민은 단 세 명만 포함됐을 뿐임을 지적, 고가 공원화와 별 상관없는 분야의 전문가까지 포함한 시민위원회가 어떤 결정을 내릴 것인지 의구심을 표했다.
실질적인 대안을 내놓지 못한 상황에서 말만 앞세운 행위라는 비판도 있다. 서울역 발전 종합대책이 내세운 대체교량의 경우 북부역세권사업을 주관하는 코레일이 사업을 시작해야 건설이 가능하다. 그러나 이혜경 시의원은“ 현재 서울시는 코레일과 이 부분에 대해 제대로 협의한 바가 없다”고 지적했다.
부정적 의견에 대한 반박도 존재한다. 남대문시장에서 잡화점을 운영하는 상인 A씨는“ 평소 정치적으로 보수이고 노령 세대가 대부분인 남대문시장과 시장 내 건물 및 땅을 소유한 상인회 입장에서 박원순 시장에 대한 인상은 좋지 않았다”며 박 시장의 갑작스러운 선언이 오히려 정책에 트집을 잡는 빌미가 됐다고 말했다. 서울시가 지난 1월 12일에 우체국 본부에서 개최하기로 한 전문가토론회는 남대문시장 상인과 지역주민들의 점거로 인해 무산됐고, 4월 남대문시장을 대상으로 한 현장시장실 역시 주민들의 반대로 개최되지 못한 점이 이를 방증한다. 1월 이후 시의 소통 노력에 대한 상인들의 반응을 묻는 질문에서 A 씨는“ 상인들은 자기 생계에 관계된 점이 아니면 시장에 어떤 행사가 있고 어떤 일이 있는지 관심이 없다”고 답했다. 상인들이 시의 소통 노력에 대해 어떤 관심도 주지 않은 채 기존의 입장만을 반복한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다.
서울역7017, 사람과 통(通)하기 위해서
서울시는 8월 19일 현장소통센터인 7017전망대를 중림동에 개소했다. 당국은 7월 1일부터 임시로 운영했던 이 곳에서 8월 중에만 총 30여 회의 관련부서, 센터, 지역주민 공동의 소통을 진행했다고 밝혔다. 이 중 20여 회 이상이 중림·만리·회현·청파·서계동 주민, 남대문시장, 공덕동 봉제산업 등의 단체를 대상으로 한 소통이다.
그러나 서울시의 프로젝트 진행이 쉽게 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서울지방경찰청이 7월 28일 교통안전시설심의위원회에서 ‘주변 지역에 대한 교통대책이 미흡하다’는 이유를 들어 교통 심의를 보류한 것이다. 8월 19일에는 서울시가 고가의 안전 강화 공사를 위해 문화재청에 요청한 심의도 보류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로 인해 10월에는 고가의 차량 통행을 금지하고 공사에 들어간다는 서울시의 계획에 차질이 생긴 셈이다.

ⓒ서울시청 조경과 온수진 주무관
서울시경의 이와 같은 결정이 나온 후 반대 여론은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시경의 보류의견이 알려진 후 중림동 지역에는 대체도로 건설과 더불어 사업이 예산낭비이고 고가도로 건설이 대한민국 경제를 막는다는 내용의 현수막이 새로이 붙었다. 뿐만 아니라 8월 18일에는 서울시청 앞에서 일부 남대문시장상인과 노동당의 주최로 ‘상인 내쫓는 서울역고가프로젝트, 남대문시장 정비계획 규탄 기자회견’이 열렸다. 사업을 진행함에 있어서 서울시가 남대문시장을 관리하는 남대문시장 상인회와 건물주들만을 주요 대화상대로 삼고, 이에 따라 실질적으로 일반 상인들의 의견은 수렴되지 않는다는 점이 지적됐다. 중림동에서 현장소통실 개소식이 있던 19일, 중림동 서울역고가 램프에서는 ‘서울역고가 대체도로건설 범시민대책위원회’의 명의로 대체도로 건설을 촉구하는 집회가 열렸다. 지난 7월 서울시가‘ 반대 여론이 수그러들었다’고 밝힌 것과 달리 고가공원화 사업을 둘러싼 논란은 쉽게 잦아들기 힘들어 보인다.
관계자들은 공통적으로 지역 주민들의 소통과 참여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조경시설팀 온수진 주무관은 “서울역고가는 오히려 반대가 많기 때문에 이전의 시 주도 사업처럼 공무원의 독주가 어렵다”는 점을 지적하며 이 문제가 주민과 시민 참여를 통한 진정한 민주주의 실현의 사례가 되기를 바랐다. 이혜경 시의원은 “관 주도의 일방적인 밀어붙이기보다 속도가 느리더라도 주민들의 의견을 진정성 있게 수렴하고, 현실적인 대안들을 마련하며 나아감이 옳다”며 일관성 있는 정책 추진을 통해 차기 시장이 당선되더라도 지속될 수 있는 사업을 만들 것을 당부했다.
2016년 완공을 목표로 했던 서울역7017프로젝트의 완공시기는 2017년 하반기로 미뤄졌다. 이번 서울시경과 문화재청의 결정으로 서울역7017프로젝트는 또 하나의 장애물을 만났다. 서울시가 처음 사례로 들었던 뉴욕의 하이라인 공원의 경우 주민수렴과 철로의 공원화까지 20년이 걸렸다. 도시재생 사업의 핵심은 이미 살고 있는 주민들의 의사를 반영하는데 있다. 서울역7017프로젝트가 시청과 시민, 주민 모두를 통하는 사업이 될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