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노답’ 정치, 주민운동이 희망이다

영덕과 대전의 주민운동을 취재하면서 만났던 주민운동가들은 농부, 종교인, 가정주부 등 정치와는 거리가 먼 이들이었다.그들이 본업을 떠나 주민운동이라는 험한 길을 걷는 이유는 무엇일까.대전에서 한 주민이 했던 이야기가 떠오른다.그는 “안전은 전문성의 영역일지 몰라도, 안심은 전문성의 영역이 아니다”라고 답했다.주민들은 원자력 시설에 대해서 안심할 수 없기에 거리로 나선 것이다.

  영덕과 대전의 주민운동을 취재하면서 만났던 주민운동가들은 농부, 종교인, 가정주부 등 정치와는 거리가 먼 이들이었다. 그들이 본업을 떠나 주민운동이라는 험한 길을 걷는 이유는 무엇일까? 대전에서 한 주민이 했던 이야기가 떠오른다. 그는 “안전은 전문성의 영역일지 몰라도, 안심은 전문성의 영역이 아니다”라고 답했다. 주민들은 원자력 시설에 대해서 안심할 수 없기에 거리로 나선 것이다.     한국의 정치 체제는 주민들의 안심 문제를 효과적으로 해결하지 못했다. 중앙 정치의 문제점은 차치하더라도(중앙 정치의 문제가 결코 적다고는 할 수 없지만), 지역의 정치 체제는 주민들의 요구에 충분하게 부응하지 못했다. 주민들의 불안감을 대변해 안전감시 체제를 확보하고, 원전 유치 과정에 영향력을 발휘해야 할 기구들이 주민들에게 보인 태도부터 가관이었다. 취재하면서 만난 대전의 한 시민은 조례제정 운동을 하면서 구의원을 만났을 때 ‘이미 결정된 일 을 가지고 왜 그러냐’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지역 정치인의 이러한 태도를 보았을 때, 어떤 지역 주민이 정치인과 정당을 신뢰할 수 있을까.     영덕의 경우 상황은 더 좋지 않다. 시장과 시의회가 주민투표를 행정적으로 지원했던 삼척과 달리 영덕의 주민투표는 순전히 주민의 힘만으로 추진되고 있다. 군수는 국가로부터 최대한의 지원을 받아낸다는 입장을 고수할 뿐 주민투표를 지지하고 있지 않다. 군의회는 지난 4월 주민투표 요구 결의안을 통과시키는 모습을 보였지만, 이후 별다른 움직임 없이 주민투표 추진위원회의 간담회 요청만을 거부하고 있다. 지역 정치인들의 이런 뻣뻣한 자세는 6번의 지방선 거 동안 새누리당 소속의 군수가 당선되고, 무소속을 제외하고서 야당이 의석을 차지한 적 없는 영덕의 지역주의적 투표 경향과 연관돼 보인다.     주민들이 의사를 직접 표출하는 주민운동은 이런 정치 구조에 균열을 가하는 시도라고 할 수 있다. 주민운동의 파급력이 다른 주민들에게 미치게 되면, 지역의 정치인들은 점차 주민의 요구에 민감해질 수밖에 없다. 주민운동에 나선 주민들은 지역의 정치 체제에 직접 참여하고, 정치인들을 감시하는 역할을 한다. 그들은 지역구의회에 직접 방문해서 의사 진행과정을 참관하기도 하고, 선거를 앞두고 후보자들에게 공개질의서를 보낸 후 선거운동을 펼치기도 한다.     영덕 취재 과정에서 주민투표를 추진하는 주민들에 대한 가장 큰 비난은 그들이 ‘외지인’이거나 ‘전문 시위꾼’이라는 말이었다. 심지어 어떤 주민은 그들이 하자는 대로 진행되면 영덕에 ‘민란’이 일어날 거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런 식의 인식은 자신이 당면한 문제를 통치자가 해결해주길 바라는 신민(臣民)의식과 다를 바 없다. 소리내지 않고 작동하는 기계가 없듯, 갈등과 소란 없이 돌아가는 정치 체제도 없다. 주민운동이야 말로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 원리가 후퇴하지 않고 발전하는 밑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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