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정변증법 강의>
저자 테오도르 W.아도르노
역자 이순예 출판사 세창출판사 연도 2012
많은 사람은 역사가 진보한다고 생각한다. 과연 이성은 발달하고, 또 이 개념과 뗄 수 없을 자유도 진전했는가? 아도르노는 동료 호르크하이머와 공동으로 저술한, 일찍이 현대 비판이론의 고전이 된 <계몽의 변증법>에서 이성, 진보, 자유의 연결고리에 내재한 자기 배반을 간파한 바 있다. 역사의 ‘변증법’을 읽은 것이다.
변증법이란 무엇인가? 현대 사회이론의 거장 루만은 변증법에 대해 연구하는 사람들은 많지만 진정 변증법적으로 사유하는 사람은 지금 거의 없다 말로 변증법에 대한 회의를 표명했다. 그러나 적어도 하나의 예외가 있다면 그것은 아도르노다. 그는 자신의 철학적 주저라고 할 <부정변증법>의 모두에 ‘수중에 있는 패를 탁자 위에 올려놓을’ 거라고 밝힌 바 있다. 그의 사고를 추동해온 변증법적 사고의 논리를 드러내겠다는 뜻이다.
한 때 마르크스가 근대 변증법적 사고를 대표하는 헤겔 철학에서 전도된 세계를 간파하고 물질론적 전환을 통해 변증법을 두 발로 세우고자 했으면서도, 헤겔 철학의 그림자 안에 있으면서도 헤겔을 ‘죽은 개’ 취급하던 당대의 비판자들에 대응해서는 오히려 헤겔의 제자임을 자임했듯이, 아도르노도 헤겔 변증법에서 긍정의 계기를 ‘위반’함으로써 변증법을 구원하고자 한다. ‘부정적’이란 부가어에 헤겔에 대한 아도르노의 이러한 이중적 관계가 반영되어 있지만, 그는 변증법에서 ‘부정’의 고유한 권능을 고수하고자 한다. 흔히 알려진 변증법의 삼박자 정, 반, 합에서 합은 불신된다.
예민한 심미적 감성과 사려 깊은 성찰이 결합된 아도르노의 저작이 독자에게는 마치 미궁과도 같다면, 청중 앞에서 구술된 강의 형식의 이 책은 아리아드네의 실이다. 이 강의록은 1966년에 출간된 <부정변증법>의 집필기에 진행되었던 <존재론과 변증법>, <역사와 자유에 대한 강의>, <형이상학 강의> 등 1960년부터 1966년 사이의 네 강의 중 마지막 것인데, 강의 녹음을 문서화한 것을 편집하여 2003년에 출간되었다. 아도르노라는 이름만 듣고 그의 저작과 대면했던 독자라면 그가 카프카에 관한 글에서 “각각의 문장은 ‘나를 해석하라’고 말하는 듯하지만 어느 문장도 해석을 허락하지” 않는다고 한 말을 그에게 되돌려주고 싶은 심기를 억제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이 책은 그런 악몽과도 같은 기억을 떨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같은 출판사에서 다수의 아도르노 강의록 가운데 <미학강의 I>, <사회학 강의> 등을 이미 번역· 출간했을 뿐만 아니라 다른 강의록들의 속간을 예고하고 있어서 매우 고무적이다. 이를 계기로 그 비중에 비해 국내 학계에 과소 수용된 ‘비정상 상태’를 교정하는 것은 물론, 그 특유의 난해함을 우회할 수 있어서, 이제 아도르노와의 만남이 어쩌면 좋은 추억이 될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