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자 정혜신·진은영 |출판사 창비 |연도 2015
당신이 서울대학교 학생으로서 하루하루 생활이 버겁다면 이 책을 읽어야 한다. 달리 말해, 당신은 무조건 이 책을 읽어야 한다. 왜냐하면 서울대 학생은 누구든 마음에 짐이 많아 정신적으로 힘겹기 때문이다.
당신이 여전히 세월호 참사에 대한 분노에 치를 떨고 있다면 이 책을 읽어야 한다. 분노만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없기 때문이다. 당신이 세월호 참사를 그만 잊자는 입장이라면 꼭 이 책을 손에 쥐기를 빈다. 왜 그 생각이 잘못되었는지 깨닫게 된다. 한국의 젊은이로서 오늘의 현실에 대해 막막한 마음이라면 당신은 이 책을 기어코 읽게 될 것이다. 속 시원한 해답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 아니다. 해답과 처방 대신 진지한 물음과 모색과 성찰을 당신 앞에 펼쳐 보이기 때문이다.
세월호 피해자들을 위한 치유공간 ‘이웃’을 안산에서 운영하는 정신과 전문의 정혜신 씨와 시인 진은영 씨의 대담은 특정한 재난만을 다루지 않는다. 이 책은 우리 자신의 삶에 깊숙이 파고든 모순과 고통을 직시함으로써 현실의 참모습을 보게 한다.
두 가지만 예를 들자. 정혜신 씨는 얼마 전 대법원에서 24년 만에 마침내 무죄판결을 받았지만 간암으로 시한부 삶을 살고 있는 소위 ‘유서대필사건’의 강기훈 씨를 오래 상담했다. 강 씨는 1991년 당시에 있었던 일들을 오랜 세월 후에도 마치 어제처럼 일분 단위로 생생하고 정확하게 기억했다고 한다. 이런 것이 쉽게 떨쳐버릴 수 없는‘ 트라우마’의 진상이다.
또 단원고 학생을 여럿 구한 어느 화물차 기사는 구조를 애원하는 눈빛의 아이들을 두고 살아나온 자신이 애들을 죽였다고 자책하다가 진도체육관으로 달려온 학부모들을 본 순간 겁이 나서 달아나고 말았다. 이 분의 고교 2학년 딸은 아빠가 단원고 학생들이 자기와 동갑이라서 목숨걸고 구했다고 생각하고, 그래서 아빠의 극한적인 정신적 고통은 자기 때문이라며 괴로워한다. 이런 것이 ‘트라우마’이다. 그래서 진 시인은“ 우리가 트라우마에 대해 잘 알아야만 하는 이유가 있다. 트라우마에 대한 무지는 우리의 제대로 들을 수 있는 능력을 방해하기 때문”이라고 쓴다.
두 대담자는 지적 태만, 자기기만, 값싼 연민을 손톱만큼이라도 허락하지 않는다. 그들은 사람살이의 진실, 사회적 트라우마에 대한 총체적 인식 위에서 고통스런 상처를 아물게 하고 새로운 삶을 이룰 가능성을 모색한다. 이 책에는 대학 강의실에서 접할 어려운 내용이라고는 없다. 갑작스런 사고로 아이를 잃은 부모와 친구를 잃은 학생, 평범한 우리 이웃의 이야기이다. 읽기 쉽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도 깊은 성찰을 담고 있으며, 우리 자신이 바뀌어야 함을 깨닫게 해준다. 우리는 반드시 이 책을 읽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