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중음악’ 하기

  ‘자립음악생산조합’ 이라는 이름을 들어본 적이 있다면, 당신은 최소한 홍대 등지로 공연도 다녀보고, 그 곳에서 공연하는 음악가들에 꾸준히 관심을 가져온 사람일 것이다. 그들은 ‘인디’라는 용어의 대안으로 ‘자립’이라는 단어를 쓰게 되었다고 소개한다. 한국에서는 유독 ‘인디 음악’ 이라는 단어가 근 10여년 간 본디 어원(Independant Music – DIY 방식의 제작과, 직접 유통 등 자본으로부터의 독립을 꾀하는 음악 생산 방식) 과는 거리가 있게 쓰여왔다. 약간의 비약을 보태면 티비에서 보지 못했던 좀 특이한 음악이다 싶으면 다 인디 음악이라는 단어로 뭉뚱그려진다고 볼 수 있을 정도다.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밴드 ‘혁오’ 역시‘ 홍대 인디 밴드’ 정도로 방송에 나갔지만, 보다 정확하게는 ‘언더그라운드'(주류 문화 ‘오버그라운드’ 의 반대 개념) 밴드였다고 표현하는 것이 맞겠다.

  ‘인디 음악’ 이라는 단어가 본디 의미와 맞지 않게 통용되어 아쉬운 부분이 있다면, 역시나 이 음악(정확히는 음원)들이 어떻게 제작되는지에 대한 관심이 ‘인디’라는 단어가 언급되는 것에 비해 적다는 부분이다. 창작한 음악이 있다면, 그것을 기록하여 음원의 형태로 만드는 것이 놀랄 만큼 쉬운 세상에 우리는 살고 있다. 즉, 스스로 생산해낼 수 있는‘ 인디’ 음악가가 되는 것은 사실 어렵지 않다. 컴퓨터 한 대, 심지어 스마트폰 만으로도 녹음이 가능하다. 유튜브 튜토리얼 만으로도 음악을 기록하는데 필요한 지식들을 얻을 수 있다. 특히나 비용 측면을 걱정하고 있다면 더욱 그렇다. 생각보다 많이 들지 않거나 거의 안 들 수도 있다. 때문에 회수해야 할 부담도 적다. 따라서 꼭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음악이어야 할 필요도 없다. 하고 싶은 음악을 가능한 방식으로 만들어 내는 것이면 된다. 일단 초저예산으로 음원을 만들고, 만족스럽지 않다면 높은 퀄리티를 위해 투자를 하면 되고, 아주 좋은 경우 레이블을 통해 투자를 받는 기회를 얻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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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년 가을, 학내 밴드들이 모여 자작곡을 담은 앨범을 

내고 기념공연을 했다. 

ⓒ서울대학교 문화자치위원회

  이렇게 직접 만든 음원은 창작자에게도 한국의 음악 씬에게도 여러 모로 의미가 있다. 첫째로, 음악가가 직접 생산함으로써 관련 지식이 생긴다. 적은 예산으로 최대한의 만족할 만한 결과물을 얻기 위해서라면 연구가 필요하다. 녹음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장비는 어떤 것이 쓰이는지부터 녹음 기법 등 내가 원하는 소리를 녹음하기 위해 필요한 만큼 연구하고 연구한 만큼 얻는다. 두번째로, 누군가에게 들려줄 수 있다. 친구들에게 들려줄 수도 있고, 다른 창작자들과 교류할 수도 있다. 꼭 음반으로 만들지 않더라도 내 음악을 소개할 수가 있다. 세 번째로 음원 생산 작업의 가치를 이해할 수 있다. 직접 녹음하고 편집하는 과정을 겪어보면 전문적인 엔지니어들이 왜 필요한지,좋은 소리를 얻기 위하여 그들이 얼마나 노력하고 우리는 왜 그들에게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지를 알 수 있다. 마지막으로, 전반적인 씬이 건강해진다. 많은 창작 활동은 토양 같은 것이다. 나는 이러한 독립적인 생산 활동을 통해 대중음악의 반대 개념으로 ‘소중음악’ 이 활성화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적게 들이고 원하는 대로 만든 다양한 음악들이 가진 저마다의 가치를 알아보는 몇몇 사람들과 공유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전체적인 저변이 넓어진다.

  적은 비용으로 음원을 제작한 그간의 경험을 몇 가지 사례로 들어보자면, 자취방에서 녹음을 하여 만든 음원으로 여러 친구들과 컴필레이션 앨범을 만들어 판매한 적이 있다. 다섯 명의 음악가들이 참여했는데, 하헌진의 트랙은 아이폰 음성녹음으로 녹음한 것이었다. 그 거친 질감을 좋아했다. 이랑의 트랙은 모든 악기를 맥북의 내장 마이크를 이용하여 녹음하고, 애플의 개러지밴드로 믹스한 음원이었다. 개러지밴드는 입문자가 녹음하기에 복잡하지 않고 좋은 툴이다. 간단한 마스터링을 하여 집에서 직접 음반을 구워서 공연하는 날만 팔았다. 제작 비용은 공씨디 값과 포장지 값이 전부였다. 한 장 만드는 데 600원 정도. 100장 정도 만들어 팔았으니, 음반 제작 비용은 6만원 든 셈이다. (그 이후 소음 문제로 녹음했던 자취방에서 쫓겨나긴 했지만) 내가 속한 밴드는 2011년 DIY로 데뷔 EP를 발매하였다. 합주실에서 모든 녹음을 했고, 믹싱과 마스터링은 모두 내 방에서 이루어졌다. 앨범 디자인은 유능한 디자이너 친구가 파격가로 해주었고, 디자인이 나오는 과정 역시도 멤버 모두가 참여하고 토론했다. 당시 TV의 루키를 뽑는 경연에서 당선된 상금으로 음반 500장을 찍었다. 다섯 곡 녹음하는데 합주실 대여비 15만원, 그리고 공장에서 500장의 CD와 재킷을 만드는데 74만원 정도가 들었다.

  첫 번째 EP를 듣고 레이블에서 연락이 왔다. 두 번째 싱글은 레이블에서 제작비를 지원했다. 스튜디오에서 녹음하고, 믹싱하였으며, 마스터링은 미국에서 했다. 직접 만들었을 때 아쉬웠던 기술적인 부분들에 대한 커버가 가능해진 것이다. 레이블뿐 아니라 본문의 첫머리에 언급한 ‘자립음악생산조합’ 역시 스스로 생산하는 음악에 대한 지원을 다방면으로 하고 있다. 조합비를 통한 금전적인 지원뿐 아니라, 각종 녹음 장비 대여 등 실질적인 도움을 주고 있다. 

  

  모든 사람들이 멋진 스튜디오에서 하이-파이 음원을 만들 필요는 없다. 시작은 언제나 가볍게 하는 것이다. DIY, 인디, 자립. 다 좋다. 그럼 이제, 부담없이 당신의 음악을 기록하고 나누어 볼 차례이다.

이재훈 (지구과학교육과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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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간 휴학과 복학을 반복하며 삶과 음악 사이를 고민하다 밴드를 결성하였고 졸업은 간신히 했다. 밴드는 6년째 활동 중이다. 낙성대에서 펍 겸 공연장을 운영하며 음악을 삶에 녹여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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