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학교의 노동시계는 거꾸로 돈다

학내노동의 현실을 보다

  지난 8월 5일 <동아일보>는 서울대의 ‘비정규직 운영 개선 계획’ 문건을 단독 보도하며 학내의 비정규직 고용실태를 고발했다. 해당 문건에는 비정규직의 무기계약직 전환을 원칙적으로 금지한다는 방침이 담겨있었다. 한편 지난 7월 14일에는 중앙노동위원회가 성낙인 총장을 상대로 제기된 차별시정 신청 일부를 인정했다. 2007년 차별시정제도가 생긴 뒤 서울대 내에서 시정신청이 발생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같은 달 27일에는 정규직 직원들의 노조인 서울대노조가 본부 측의 인력 감축 계획에 반대하며 ‘몸 자보’ 시위에 돌입했다. 시위는 현재(8월18일)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일련의 사건들이 동시다발적으로 터지면서 학내 노동문제가 세간의 화젯거리가 됐다. 이에 전반적인 학내 노동 관련 이슈를 간략히 정리했다. 

비정규직(기간제 직원): 무기계약직 전환이 되지 않은 상태에서 몇 개월, 또는 1년 단위로 계약을 체결, 연장하는 직원들 

무기계약직: 비정규직 중 극소수만이 2년 동안의 기간제 근무 이후 무기계약직으로 변경된다.

자체직원: 본부가 임용권을 위임한 각 단과대 및 기관에서 자체적으로 고용한 직원들. 비정규직과 무기계약직이 이에 속한다.

이해할 수 없는 무기계약직 전환 거부

 

  국제대학원에서 연구주임으로 재직하고 있던 A씨는 계약 기간이 2개월가량 남아있던 6월 29일, 재계약 계획이 없음을 밝히는 해고통지를 받았다. ‘학교 사정과 대외적인 여건상 재계약이 어렵다’라는 짤막한 문구로 이뤄진 단 3줄의 이메일을 통해서였다. 이후 A씨는 정확한 이유를 듣기 위해 ‘서울대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공대위)에 도움을 요청했고, 수차례의 거부 끝에 겨우 공대위 측 인사와 함께 국제대학원장과의 면담을 가질 수 있었다. 그러나 A씨가 들을 수 있던 것은 ‘본부 측의 강력한 방침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두루뭉술한 이야기뿐이었다. A씨의 업무 능력이 저조하다는 이야기는 덤으로 따라왔다.

 

  A씨는 “업무 능력이 저조하다는 것은 뻔한 명목상의 구실에 불과하다”며 억울함을 토로했다. A씨는 “애초에 연구비 관리 담당으로 채용되었으나 개발협력정책과정(DCCP)을 전담하고 국제학연구소의 행정을 관리하는 등 거의 3인분에 해당하는 과중한 업무를 처리해왔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A씨는 2014년도 국제대학원 업무 평가에서 기간제 직원 중 제일 높은 평가를 받기도 했다.

 

   

그러나 이것은 굉장히 흔한 이야기?

 

  자체직원으로 구성된 대학노조 서울대지부 김정훈 사무국장은 “A씨의 사례가 이제는 놀랍지도 않다”며 “학내 비정규직 문제가 최근 들어 이슈화됐을 뿐 이전부터 심각한 상태였다”고 말했다. 실제로 무기계약직 전환의 원칙적 금지 방침은 이미 2010년에 최종본 상태로 각 기관에 내려졌다. 2006년에는 정부가 학내 비정규직 근로자의 소속이 모호하다는 점과 종합적인 인사운영체계의 정비가 필요하다는 점을 지적하기도 했다. 법인화 이전의 국립대 시절부터 비정규직 문제는 고질적이었던 것이다.

 

  무기계약직 전환문제 뿐만이 아니다. 기본급여에서부터 각종 직원복지혜택에 이르기까지 비정규직은 정규직에 비해 현격한 차별대우를 받고 있다. 또한 각 기관마다 비정규직 직원에 대한 처우가 달라 노조조차 통일된 데이터를 확보하는 것이 어려운 상황이다. 이와 관련해 본부는 임용권을 각 기관에 위임했다는 이유로 문제 해결은 물론 비정규직 직원 수 파악 등 기본적인 노력조차 하고 있지 않다.

 

  본부는 각종 비정규직 문제에 대해 ‘예산부족으로 인해 해결이 어렵다’는 입장을 되풀이 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김 사무국장은 “정규직을 대상으로 26억 원의 보너스를 지급하고, 2억 원 이상을 들여 조직 활성화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며 “예산이 부족하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는 입장을 전했다. 또한 그는 “필요하다면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고통을 분담하는 방법도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두 개의 싸움, 그러나 의미는 다르다

 

  현재 서울대 직원사회와 본부 사이에는 두 가지 대립이 존재한다. 첫째로 정규직 직원들로 구성된 서울대노조와 본부 사이의 대립이다. 서울대노조는 정규직 신규인력채용 유예 및 감소 계획에 반발해 투쟁하고 있다. 둘째는 본부가 여전히 개선하지 않고 있는 각종 비정규직 문제에서 파생되는 대립이다. 투쟁의 중심에는 총학생회와 대학노조 등 다양한 단체가 참여한 ‘서울대 비정규직 문제해결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공대위)가 있다. 비정규직의 무기계약직 전환 보장과, 연봉차별 및 과중한 업무에 시달리는 자체직원들의 처우 개선이 핵심적인 요구사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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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대 노조가 캠퍼스 내에 설치한 현수막.  ⓒ김대현 사진기자 

 

  얼마 전, 공대위는 작은 승리를 거뒀다. 지난 7월 14일 서울대 미술관 비정규직 직원 박수정 씨가 서울대 총장을 상대로 제기한 차별시정 신청을 중앙노동위원회(중노위)가 일부 인정한 것이다. 그러나 그 싸움은 다시 지리멸렬하게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공대위의 한 관계자는 “본부가 중노위의 결정을 수용하면 그 내용이 학내 모든 비정규직 직원에게 적용되기 때문에 쉽게 물러서지 않을 것 같다”며 “결국 행정소송까지 가게 될 가능성이 높다”고 전했다.

 

  본부가 이토록 재정적 부담을 느끼고 행정 소송까지 불사할 입장을 취하고 있지만, 정작 비정규직 차별이 인정된 부분은 그리 크지 않다. 중노위에서 차별을 인정한 정액급식비, 명절휴가비, 맞춤형 복지포인트 등은 차별이 인정되지 않은 기본 급여 차이 및 성과 상여금 지급 등에 비하면 매우 약소한 수준이다.

 

  한편 일련의 투쟁들이 성과를 얻기 위해서는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의 협력이 중요하다는 지적도 있다. 그동안 정규직 직원으로 구성된 서울대노조는 비정규직 문제에 무관심하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지난 2014년에도 본부와 임금단체협약을 체결하면서 그 대상을 정규직으로 한정해 비정규직 노동자를 배제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지난 7월 27일 발표한 성명에서 “인력구조개편은 정규직을 늘리고 비정규직을 줄이는 방향으로 진행돼야한다”고 밝히며 비정규직에 연대의지를 내비친 것은 고무적이다. 그러나 기존의 앙금을 해소하고, 본부의 변화를 이끌어내 서울대의 전반적인 근로 조건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서울대노조가 보다 적극적으로 비정규직을 위한 목소리를 내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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