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이 시끄럽다. 연예인의 여성혐오 발언부터 노래 가사의 여성비하 표현까지, 미디어는 쉴 새 없이 특정 발언 또는 표현의 ‘여성혐오성’을 재단하기 바쁘다. 포털 사이트의 여성 관련 기사 댓글란에서는 매일같이 치열한 성(性)대결이 벌어진다. ‘여성시대 사태’ 이후 이어진 ‘메르스 갤러리’의 등장은 온라인 공간을 더욱 뜨겁게 달구고 있다. 여성, 그리고 여성혐오가 온라인의 ‘핫이슈’로 떠오른 것이다. 여성혐오는 무엇이길래 이토록 많은 주목을 받고 있는 걸까.
‘여성혐오’는 단순히 여성을 혐오하는 것과는 다르다. 단행본 《여성혐오가 어쨌다구?》의 공동저자 윤보라(여성학협동과정 박사과정) 씨는 “우리가 ‘여성혐오’라고 부르는 것 안에는 다양한 층위의 적대적 에너지가 내재돼 있다”고 설명한다. 배은경 교수(사회학과) 역시 이에 동의한다. 배 교수는 “여성혐오의 학술용어인 ‘misogyny’는 여성에 대한 차별, 비하, 폭력, 성적 대상화 등을 꿰뚫는 기저의 감정 상태를 의미한다”고 설명한다. ‘혐오’라는 말로 뭉뚱그려졌지만 여성에 대한 다양한 공격의 에너지를 포괄하고 있다는 것이다.
온라인 전반에 확산된 여성혐오 ‘놀이’
지금 온라인 공간은 여성혐오로 신음하고 있다. 사회비평가 박권일 씨는 여성혐오가 “‘일간베스트 저장소(일베)’를 비롯해 ‘오늘의 유머’, ‘디시인사이드’ 등 대형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이미 확산돼 있는 상태”라고 진단했다. 온라인 커뮤니티뿐만이 아니다. 문화비평가 김헌식 씨는 “포털 사이트 기사의 댓글란에서도 여성혐오가 두드러진다”고 진단했다.
온라인 공간에서 여성혐오가 드러나는 방식은 다양하다. 윤보라 씨는 “여성에 대한 공격은 게시글, 댓글, 사진, 영상, 웹툰 등을 통해 무차별적으로 드러난다”고 설명했다. 신조어를 만들어 글 또는 댓글을 통해 비하하고 조롱하는 방식이 대표적이다. 그리고 이는 더욱 공격적인 양상을 보여가고 있다는 것이 전문가의 견해다. 김헌식 씨는 “주로 ‘악플’을 통해 나타나는 온라인 여성혐오는 최근 그 수위가 매우 높아졌다. 인신공격이 주로 이뤄지고 욕설 또한 원색적으로 변화했다”고 주장했다.
박권일 씨는 여성혐오가 “낡았으면서도 새로운 현상”이라고 표현한다. 여성혐오는 아주 오래 전부터 인류역사와 함께해 왔지만 최근의 여성혐오는 과거에는 없었던 양상을 보인다는 것이다. 박 씨는 “까마득한 옛날부터 여아 살해, 기성세대의 아줌마 혐오와 같은 여성혐오는 존재해 왔다. 그러나 지금 문제가 되는 여성혐오는 비교적 젊은 남성들의 젊은 여성을 향한 혐오라는 점, 그리고 주로 온라인에서 분출된다는 점에서 새롭다”고 말했다. 이러한 새로운 형태의 여성혐오가 등장한 건 오래되지 않은일이다. 박 씨는 인터넷이 활성화된 2000년대 초반에 처음으로 젊은 남성과 젊은 여성의 갈등이 ‘월장사태’ 와 같은 여성혐오의 형태로 나타났고, 그 후 2010년 일베의 등장으로 ‘김치녀’ 담론이 나타나면서 완전히 일반화된 형태로 드러나게 됐다고 설명했다.
*월장사태: 2001년 부산대학교 여성학 웹진 <월장>에 대학 내 군사 문화를 비판하는 “도마 위의 예비역”이라는 글이 실린 후 수많은 남성들의 언어폭력과 신상 공개 및 협박으로 사이트가 폐쇄됐던 사건.
이처럼 온라인 공간을 중심으로 확산된 오늘날의 여성혐오는 최근들어 유머와 결합됐다는 것이 한 가지 중요한 특징이다. 윤보라 씨는 여성혐오가 “향락적인 언어를 사용하는 하나의 놀이문화가 됐다”며 “이러한 유희적 언어는 그것을 구사하는 사람들의 죄책감을 덜어주는 효과를 가진다”고 설명했다. 덧붙여 그는 “온라인 문화에서 웃음은 중요한 코드다. 이런 상황에서 놀이문화가 된 여성혐오가 더 힘을 얻게 돼 급속도로 확산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공격의 대상이 넓어진 것도 주목할 만한 부분이다. 지난해 일베를 분석한 논문을 저술한 김학준(사회학과 석사·졸업) 씨는 “‘김치녀’는 의미의 확장성이 너무 넓다. 한국 여성 전체를 이야기할 수 있기 때문에 비난담론으로서 강력하다”고 설명한다. ‘김치녀’ 이전의 여성혐오가 ‘된장녀’와 같은 일부 여성의 유형만을 공격했다면, 지금은 비난의 대상이 한국 여성 전체로 확장된 것이다.

▲ 온라인 공간 속 여성혐오는 하나의 놀이문화가 되어 최근 몇 년 간 급속도로 확산됐다. ©워니
성난 젊은 예비역들의 박탈감과 피해의식이 ‘김치녀’를 만든다
온라인을 중심으로 확산되는 여성혐오의 구체적 내용은 대략 다음과 같다. ‘한국 여성들은 병역의 의무를 지지도 않으면서 각종 권리, 우대만 요구한다. 또 데이트 비용, 결혼 비용을 남성에게 전가하며 무책임하고 이기적으로 행동한다. 따라서 한국 여성은 차별과 비난을 받아 마땅한 존재다.’ 이와 같은 여성혐오가 생겨난 근본적 원인은 사회의 급격한 변화에 따른 극심한 불안과 혼란에 있다. 경제·문화 구조의 시대적 변화에 기인하는 남성들의 불안 및 박탈감, 그리고 성 역할의 극심한 변화가 개인에게 안겨준 혼란이 하나로 묶여 ‘여성혐오’라는 현상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박권일 씨는 이러한 여성혐오의 핵심에 젊은 예비역 남성들의 박탈감과 피해의식이 크게 작동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박 씨는 “여성혐오의 기저에는 ‘여성이 싫다’가 아니라 내가 피해자라는 태도가 깔려 있다”고 분석했다. 이와 같은 피해의식은 남성만을 대상으로 하는 징병제와 직결된다. 박 씨는 “가장 중요한 시기에 별다른 보상 없이 국방의 의무를 지고 왔는데 이에 대해 국가가 보상을 해주지 않는다는 박탈감이 작동한다. 과거 가부장적 사회는 남성들이 기득권을 누리고 있어 남성들이 여성에게 박탈감을 느끼는 경우가 지금보다 적었다”고 설명한다. 징병제로 인해 남성들이 느끼는 박탈감이 가부장제의 해체와 맞물려 극에 달한 것이다. 2001년 군 가산점 제도가 폐지되면서 이는 더욱 심화됐다.
신자유주의 체제하 경쟁의 격화와 불평등의 확산은 남성들의 피해의식을 부추기는 촉매로 작용한다. 박 씨는 이에 대해 “경쟁이 심해지면서 젊은 세대의 파이는 줄어드는데, 그것을 국가를 위해 희생한 내가 아닌 동기 여성들이 차지하는 것을 보거나 상상하고 박탈감을 느끼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이러한 정서에 ‘무임승차에 대한 분노’가 투영돼있다고 말한다. “여성들의 무임승차로 능력을 갖춘 내가 부당하게 피해를 본다는 인식이다.” 박 씨는 “여성의 무임승차는 사회적으로 증명된 경우가 없지만 남성들 사이에서 ‘김치녀’에 대한 환상이 공유ㆍ확대재생산되면서 이러한 인식이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박 씨는 오늘날 확산된 여성혐오가 ‘상상적 혐오’라고 설명한다. 그는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에 따르면 불평등이 극단적으로 악화될 때 사람들은 그에 분노해 혁명을 일으키는 것이 아니라 상상적인 해법을 찾는다. 그중 하나가 약자에 대한 증오와 혐오”라며 여성혐오도 이와 비슷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 젊은 예비역 남성들을 착취하는 것은 국가와 자본인데 그러한 구조적 모순에게 돌려야 할 분노를 쉽게 공격할 수 있는 여성들에게 돌린다는 것이다. 그에 따르면 ‘김치녀’는 상상 속의 착취자다. 박 씨는 “이와 같은 ‘착취하는 대상에 대한 오인식’이 독일, 일본, 그리고 한국에서 창궐하고 있는 극우주의의 보편적 특징”이라고 덧붙였다.
김학준 씨는 오늘날의 여성혐오가 체제의 모순과 젊은 세대의 불안을 드러낸다고 설명한다. 김 씨는 “혐오는 불신을 기반으로 하는 감정이고 이를 야기하는 것은 결국 체제의 불안과 공포다. 대한민국의 청년들은 불안감을 온몸에 갖고 산다. 지금의 체제가 지속불가능하다는 것을 이러한 감정들이 보여주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현재 청년 세대의 핵심적 감정이 ‘냉소’라고 짚어냈다. “냉소는 ‘알고 있음’에서 오는 감정이다. 노력해도 안 된다는 걸 알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냉소는 특히 연애, 결혼 등이 좌절된 생애계획에서 비롯된다. 혐오, 불신, 그리고 냉소는 청년세대가 마주한 불안한 체제의 일면이다.
성 역할의 극심한 변화와 이에 따른 혼란은 상황을 더욱 악화시킨다. 윤보라 씨는 현재 한국 사회에서 “여성성 또는 남성성에 대한 가치가 완전히 흐트러지고 있다”고 지적한다. 과거엔 이상적으로 여겨지는 성 역할과 이것을 잘 수행했을 때 주어지는 사회적 보상이 있었는데 지금은 이상적인 성 역할도, 그에 따라 주어지는 보상도 없어 개인을 혼란에 빠트린다는 것이다. 윤 씨는 “이쪽에서는 나에게 커리어우먼이 되라고 하는데, 저쪽에서는 여전히 출산과 양육을 훌륭히 해내야 한다고 말한다. 이처럼 말도 안 되는 역할이 여성뿐만 아니라 남성에게도 계속 주어지면서 혼란을 야기한다”고 설명했다.
더 큰 문제는 젊은 세대가 마주하는 이와 같은 혼란이 사회문제화돼야 함에도 불구하고 개개인의 문제로 여겨진다는 데 있다. 배은경 교수는 “근대적 젠더 관계가 깨진 상황에서 청년들이 자신이 어떻게 살아가고 인간관계를 맺을지에 대한 모델을 찾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이 개인의 문제로 치부되다보니 성대결의 양상으로 흘러간다”고 분석했다.
또한 오늘날의 여성혐오는 정보사회의 특성상, 단순히 주목을 받기 위해 자극적인 이야기를 하는 경향을 만나 더욱 격화됐다. 이와 더불어 미디어의 상업주의와 대부분의 온라인 공간에 존재하는 시스템은 온라인 여성혐오에 더욱 불을 붙였다. 김학준 씨는 “추천·비추천과 댓글의 순위 시스템은 사람들의 격화를 불러오는 핵심적인 기제이자 미디어의 중요한 장사 수단”이라고 지적했다.

▲ 사회비평가 박권일 씨는 오늘날 온라인에서 확산되는 여성혐오의 원인을 경쟁이 격화되는 사회 속 젊은 예비역 남성들의 박탈감과 피해의식으로 바라봤다. ©김대현 사진기자
‘루저’ 취급은 현상을 악화시킬 뿐… 충분한 사회적 논의와 제도 개선 필요해
불붙은 듯 퍼져 나가는 온라인 공간 속 여성혐오는 누군가에겐 분풀이의 기회를, 누군가에겐 처참한 상처를 안겨준다. 봇물처럼 쏟아지는 여성혐오에 이를 내면화하는 여성들 또한 생겨나고 있다. 박권일 씨는 “‘김치녀’에 대한 혐오가 일반화되니까 여성들 사이에는 자신이 ‘김치녀’로 몰려 마녀사냥을 당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있다. 그래서 스스로 개념녀를 자처하고 자기검열을 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여성 네티즌은 “고등학교 때 남자 아이들이 나를 ‘보슬아치’라고 욕했다는 말을 전해 들은 후 어떻게든 ‘보슬아치’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스스로를 옥죄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온라인 여성혐오가 이미 심각한 사회문제라고 말한다. 얼마 전 ‘PD수첩’이 서울 거주 미혼남성 5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2030미혼남성 의식조사’에 따르면 ‘김치녀’가 실제로 존재한다고 믿는 남성들은 48.4%에 이르렀다. 박권일 씨는 “여성혐오가 확산되다보니 그것이 사실인 것처럼 받아들여지게 된다. ‘김치녀’가 진지하게 세상을 바라보는 틀로 받아들여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와 더불어 여성혐오는 혐오발언의 사회적 하한선을 낮추는 효과도 가져온다. 박 씨는 극단적인 표현의 여성혐오가 온라인 공간에 난무하다보니 그보다 상대적으로 덜한 혐오표현이 점차 용인되게 된다고 설명했다.
온라인 여성혐오자에 대응하는 한 가지 방식으로 그들이 현실에서는 패배자일 것이라고 낙인찍는 것이 있다. 박 씨는 이러한 방식이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한다. 그는 “’위너’건 ‘루저’건 여성혐오는 받아들여질 수 없는 발언이다. 만약 루저 취급을 받은 당사자가 위너 인증을 하면 오히려 그들 발언에 힘을 실어주는 격이 된다”고 말했다. 여성혐오에 대한 무관심도 바람직한 해결방안이 아니다. 윤보라 씨는 “문제집단이 등장할 때마다 이들을 무시하면 현상이 해결될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상황의 단순 봉합은 어떤 해결도 낼 수 없다”고 말했다.
여성혐오에 대한 명확한 해결책은 없다. 그럼에도 전문가들은 이 문제에 대한 공론화와 사회적 논의를 통해 여성혐오를 완화시킬 수 있다는 데에 동의한다. 김헌식 씨는 “지금 온라인 여성혐오는 공개적 장소에서의 토론이 아닌 음지에서의 인신공격, 비방, 혐오가 주를 이루기 때문에 어떤 건설적 담론이나 대안도 나오지 못하는 상황”이라며 “이 문제에 대한 공론화를 통해 토론의 장이 열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올바른 교육도 여성혐오 현상을 어느 정도 해소할 수 있다. 김학준 씨는 현재 한국 사회에서 올바른 페미니즘 교육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이와 더불어 바람직한 민주적 가치에 대한 교육도 이뤄져야 한다. 박권일 씨는 “혐오담론의 기저에는 능력주의가 있다. 능력이 없으면 인간 이하 취급을 받아야 한다는 타락한 능력주의가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공유되고 민주주의의 근간을 침식하고 있다”고 말했다.
일부 도를 지나친 표현에 대해서는 법적 제재가 가해져야 한다. 박권일 씨는 “유럽의 경우 인종주의적 발언은 형사처벌의 대상이다. 현재 한국에는 차별발언을 처벌할 제도가 없다. 특정 집단이나 개인에게 지나친 모욕감을 줄 경우 법적 처벌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남성들에게 가장 큰 박탈감을 야기하는 징병제의 제도적 개선도 필요하다. 김헌식 씨는 “징병제로 인한 박탈감은 여성혐오에 크게 영향을 준다”며 징병제의 개선이 여성에 대한 비난과 혐오의 명분을 크게 불식시킬 수 있다고 주장했다. 군 문제에 대한 대안으로는 군 월급 인상 및 처우 개선, 모병제로의 전환 등이 제시되고 있다.
김학준 씨는 우리 사회에 ‘웃음’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놀이문화가 된 여성혐오가 확산될 수 있었던 이유는 그것을 보고 웃는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김 씨는 지금 한국 사회에는 비하하는 웃음이 넘쳐난다고 지적한다. 그는 “우리는 어떤 것을 보고 웃는지, 건강하게 웃는지 성찰해야 한다. 비하하는 웃음이 아니라 공감하는 웃음으로 넘어가야 한다”고 말했다.
내가 겪는 피해를 타인에 대한 공격을 통해 해소하는 것은 사회를 병들게 하는 분풀이에 지나지 않는다. 청년 세대가 겪는 불안과 좌절의 이면에는 구조적인 모순이 자리하고 있으며 이는 여성의 탓도, 남성의 탓도 아니다. 근본적 원인에 대한 고찰 없이 분노를 표출하는 것은 문제의 해결을 더욱 요원하게 할 뿐이다. 선택은 우리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