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민주주의를 위해서 희생이 필요하면 감당하겠다. 드디어 직선제로 선출된 부산대학교 총장이 처음의 약속을 여러 번 번복하더니 최종적으로 총장직선제 포기를 선언하고 교육부 방침대로 일종의 총장간선제 수순 밟기에 들어갔다. (중략) 이제 방법은 충격요법밖에 없다. (중략) 그 희생이 필요하다면 감당하겠다. 근래 자기 관리를 제대로 못한 내 자신 부끄러운 존재이지만. 그래도 그 희생이 의미 있는 일이라 생각하고, 그 몫을 담당하겠다.
故 고현철 교수의 유서 중
8월 17일부산대 故 고현철 교수(국어국문학과)가 대학본부 4층에서 투신했다.고 교수는 유서에서 여러 국립대가 교육부의 방침에 따라 총장간선제를 실시하면서 대학의 민주주의가 무너지고 있다고 개탄했다. 부산대는 제20대 총장을 간선제로 선출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고 교수의 죽음 이후 부산대를 비롯한 여러 국립대학에서 총장직선제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쏟아져 나왔다.
9월 18일에는 여의도에서 7개 교수단체가 전국교수대회를 개최했다. 대회에서는 고 교수의 죽음을 추모하면서 ▲국립대학 선진화 방안 폐기 ▲국립대 총장선출 자율성 보장 ▲대학 평가제도 및 구조개혁법 폐지 등을 요구했다. 이어서 10월 2일에는 서울 종로구에서 전국국공립대학생 공동행동이 열렸다. 16개 대학의 학생과 교수 400여 명이 모여 정부에 ▲국립대 총장직선제 보장 ▲총장선출과 재정지원 연계 중단 ▲국립대 교육 공공성 강화 및 자율성 보장을 촉구했다.

국립대학 선진화 방안이 배경
1990년 이후 민주화의 열기를 타고 대부분의 국립대학이 총장직선제를 채택했고 이러한 흐름은 2000년대까지 유지된다. 하지만 교수 간 파벌 형성, 정치화로 인한 연구 소홀, 공약 남발로 인한 등록금 인상, 선거과열 및 과다한 선거비용 지출 등의 폐해가 생기면서 총장직선제에 대한 반대 여론이 형성됐다. 이러한 상황에서 2012년 1월 교육부(당시 교육과학기술부)가 ‘2단계 국립대학 선진화 방안(선진화안)’을 발표하자 여러 국립대학에서 총장직선제를 폐지하기 시작했다.
선진화안은 총장직선제 폐지를 주요 골자로 하며 ▲지역사회와의 공생발전 선도 ▲강력한 대학혁신 추진 ▲총장직선제 부작용 방지를 그 이유로 들고 있다. 또한 선진화안에는 자율적으로 직선제를 폐지하는 대학에 재정적 인센티브를 제공한다고 명시돼있다. 교육부는 선진화안 발표 이후 ‘대학교육 역량강화 사업’과 ‘구조개혁 중점추진 사업’에서 총장직선제 폐지 여부를 지원대학 선정 평가에 5% 반영했다.
총장직선제 폐지 여부가 재정지원에 영향을 미치자 총장직선제를 유지하고 있던 국립대학의 대부분은 2012년 7월과 8월에 직선제를 폐지하도록 학칙을 개정했다. 계속해서 교육부는 2013년에 총장직선제를 폐지하지 않는 대학에는 지원금 전액을 삭감 혹은 환수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2014년에는 ‘대학재정지원 사업’에서 총장직선제를 폐지한 대학에도 선호도 조사 및 설문조사처럼 직접선거의 요소가 남아있는 규정을 완전히 삭제하라고 권고하며 개정 여부를 재정지원과 연계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총장간선제를 요구하는 교육부의 의도
20년간 직선제로 총장을 선출했던 서울대도 지난해 간선제를 통해 제26대 총장을 선출했다. 이사회와 평의원회의 추천으로 구성된 30명 규모의 총장추천위원회가 총장후보를 선정해 이사회에 추천하는 방식이다. 총장추천위원회는 정책평가를 바탕으로 오세정 교수(물리∙천문학부)를 1순위, 성낙인 교수(법학전문대학원)와 강태진 교수(재료공학부)를 공동 2순위로 추천했다. 하지만 이사회는 총장추천위원회의 추천 순위를 뒤집고 2순위인 성낙인 교수를 최종후보로 지명했다. 이후 성낙인 교수는 교육부 장관의 제청과 대통령의 임명을 거쳐 총장에 취임했다.
당시 총장선출 과정에서 정부의 영향력이 작용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많았다. 기획재정부 제2차관과 교육부 차관 그리고 교육부 예하 조직인 대학구조개혁위원회 위원장이 이사로 재직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정부와 관련된 세 명의 이사는 이사회에 주로 불참 및 대리출석을 하다 총장선출을 전후한 때만 출석했다.
조흥식 서울대 교수협의회 회장(사회복지학과)은 간선제인 현재의 총장선출 방식을 바꿀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그 이유로 “교육부의 총장간선제 요구는 결국 대학을 교육부의 의도대로 통제하려는 시도”라며 “민주주의 사회에서 대학의 자율성과 공공성은 반드시 지켜져야 하는데 현 정부의 정책은 그렇지 않아 유감”이라고 밝혔다. 현재 서울대의 총장선출제는 정부 영향력에서 자유롭지 않고 결과적으로 자율성과 공공성에 제약을 받을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간선제로 선출해도 임명 거부하는 교육부
하지만 교육부의 요구대로 간선제를 실시해도 총장선출에 어려움을 겪는 대학이 있다. 2010년 대학 교육역량강화사업에서 1위로 선정돼 사업비 60여억 원을 수주한 경북대는 총장직선제를 유지했다는 이유로 이후 해당 사업에서 탈락했다. 결국 경북대는 총장직선제를 폐지하고 교육부에서 요구한 ‘임의추출식 총장임용추천위원회 선출방식’에 따라 총장후보를 선출했다. 하지만 경북대 총장은 아직까지 공석이다. 교육부가 거부 사유를 밝히지 않은 채 임용제청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교육부가 국립대 총장후보 임용제청을 거부한 사례는 총 14건이다. 이 가운데 8건이 박근혜 정부 하에서 일어났다. 이 가운데 거부사유를 밝히지 않은 경우는 4건인데 모두 현 정부 시기의 일이다. 경북대를 제외한 나머지 3곳은 공주대, 방송통신대, 한국체대다. 작년 3월에 공주대 총장후보 김현규 교수가, 같은 해 7월에 방송통신대 총장후보 류수노 교수가 교육부로부터 아무런 사유를 듣지 못한 채 임용제청을 거부당했다.
교육부가 요구한 대로 총장후보를 선정했는데도 왜 교육부는 임용제청을 거부하는 것일까? 경북대 황보영조 교수(사학과)는 한국체대의 사례에서 그 이유를 추측할 수 있다고 말한다. 한국체대는 2013년 3월에서 2015년 2월까지 4명의 총장후보가 사유를 듣지 못한 채 임용제청을 거부당했다. 그런데 한국체대에서 새로운 총장후보로 새누리당 김성조 전 의원을 추천하자 교육부는 지체 없이 이를 받아들였다. 황보 교수는 “친박계로 분류되는 김 전 의원은 한국체대나 스포츠와는 무관한 사람”이라고 지적하며 “교육부가 다른 대학의 총장후보 임용제청을 거부하고 있는 배경에 정치적 이유가 없으리라고 어떻게 확신할 수 있겠는가”라고 반문했다.

총장직선제, 다양한 구성원 의견 반영해야
총장직선제 논란은 교수의 문제만은 아니다. 총장선출제는 대학 민주주의와 직결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여러 대학에서 학생, 조교 등 다양한 학내 구성원이 교수들과 함께 투쟁하고 있다. 하지만 총장직선제가 실시되면 해결해야 할 문제가 생긴다. 바로 총장선출에 참여하는 구성원의 범위 문제다. 지금까지 대부분의 대학에서 교수와 직원만 투표할 수 있었기 때문에 총장직선제를 실시하더라도 총장직선제 투쟁과정에서 연대했던 구성원들이 전부 참여할 수 있게 될 지는 미지수다.
경북대의 경우 ‘경북대 총장임용을 촉구하는 범비상대책위원회’에 비정규직 교수들이 참여해 교수, 직원, 학생들과 연대했다. 황보 교수는 “비정규직 교수들은 총장임용추천위원회에 참여하지 못했지만 정규직 교수보다 더욱 적극적으로 문제해결 촉구에 나섰다”며 “개인적으로 총장직선제가 이뤄진다면 비정규직 교수의 참여도 긍정적으로 검토됐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드러냈다. 그러나 황보 교수는 “이는 소수의 의견이기 때문에 직선제를 실시하더라도 비정규직 교수와 학생의 참여가 이뤄질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다”며 어려움을 예상했다.
실제로 부산대에서는 이번 총장선출 과정에서 구성원들 간에 내홍을 겪었다. 부산대의 경우 총학생회와 비정규직 교수노조가 교수회와 함께 연대해 간선제로 선출할 예정이었던 제20대 총장을 직선제로 선출하는데 힘을 보탰다. 그러나 비정규직 교수는 제외된 채 교수 85%, 직원 11%, 조교 2%, 학생 2%의 비율로 총장을 선출하는 안이 확정됐다. 비정규직 교수노조는 자신들이 배제된 데 항의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총학생회는 2%라는 작은 비율에 불만을 표출했다.
부산대학교 교수회 부회장 박찬호 교수(법학전문대학원)는 “논의가 충분치 못했던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지난 9월 총장이 갑작스럽게 사퇴했는데 이로부터 90일 이내에 총장후보를 추천하지 않으면 교육부에서 임의로 총장을 추천해 임명할 수 있는 상황”이라고 해명했다. 또한 박 교수는 “학생들에게 투표권을 부여한 것은 부산대가 처음이며 조교에게까지 투표권을 확대”했다며 이번 총장선거의 의의를 강조했다.
반면 황석제 부산대학교 총학생회장은 “우리는 10%를 요구했지만 교수 측에서 11월 3일까지 총장선출 방식을 정하지 않으면 교육부에서 총장을 지정할 수 있다는 이유만으로 논의를 빠르게 진행시켰다”며 “토론회를 제안했으나 거절당했고 시위를 이어갔지만 결국 현재 안이 확정됐다”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총장직선제 논란, 핵심은 대학의 자율성 확보
경북대와 부산대의 사례를 참고했을 때, 총장직선제 자체가 진정한 대학 민주주의의 실현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실제로 여러 교수들도 총장직선제 자체가 항상 옳고 좋은 방식은 아니라고 이야기한다. 조흥식 교수는 “간선제라 하더라도 합리적인 인사들이 구성원의 의견을 민주적으로 수렴한다면 문제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박찬호 교수는 “중요한 것은 학내 거버넌스의 민주성과 독립성이 보장되는가의 여부”라며 “사실 직선제는 그 이후의 문제”라고 밝혔다. 황보영조 교수 또한 “직선제든, 간선제든 경북대 구성원이 합의한 규정대로 총장을 선출하면 된다”고 답했다. 세 교수 모두 직선제라는 형식보다는 대학 민주주의의 실질이 더 중요하다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세 교수 모두 현재의 상황에서는 총장직선제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조 교수는 “간선제가 이뤄지기 위해서는 이사회 및 교육부에 대한 신뢰가 바탕이 돼야 하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은 상태”라며 “현재 조건에서는 총장직선제가 대학의 자율성과 공공성을 실현할 수 있는 최선의 방식”이라고 강조했다. 박 교수 역시 “오늘날 대학 민주주의 차원에서 본다면 직선제가 대학 구성원의 견해를 가장 잘 반영하는 제도”라며 “왜 교육부가 의도적으로 총장직선제를 폐지시키려 하는가 생각해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황보 교수는 “예산을 빌미로 대학의 자율성을 침해하는 현 상황에서는 직선제가 최선”이라고 역설했다.
헌법 제31조 제4항에서는 “교육의 자주성·전문성·정치적 중립성 및 대학의 자율성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보장된다”’고 명시하고 있다. 교육공무원법 제24조 제3항에서는 해당 대학 교원의 합의된 방식과 절차에 따라 대학의 장을 선정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교육부는 직선제로 선출된 총장후보는 임명하지 않겠다는 방침이다. 더불어 거부사유를 밝히라는 법원의 판결에도 대법원의 판결에 따라 결정하겠다며 항고하고 있는 실정이다.
故 고 교수는 유서에서 “교육부의 방침대로 총장후보를 선출해도 교육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임용되지 않고 있다. 총장후보를 선출하는 데 교육부의 눈치만 보고 있는 실정이며 이는 심각한 민주주의 훼손”이라고 비판했다. 하지만 고 교수는 “더 큰 문제는 이런 상황에 대한 인식이 대학과 사회에 전반적으로 너무 무뎌져 있다는 사실”이라고 한탄했다. “교묘하게 억압된 민주주의 하에서 무뎌져 가는 대학 사회”에 고 교수는 스스로를 희생하며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졌다. 대학의 주인은 누구인가? 총장직선제 논란이 해결되기 위해선 이에 대한 답이 선행돼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