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5일 민간 연구소인 ‘희망제작소’가 주최한 ‘사다리포럼’에서 대학 청소 노동자 고용문제 해결을 위한 경희대학교의 새로운 계획이 발표됐다. 학교가 자회사를 세워 청소 노동자들을 고용하기로 한 것이다. 용역 업체에 소속된 청소 노동자들은 지금까지 이중의 고용 불안 속에 놓여있었다. 경희대의 새로운 시도가 왜곡된 외주용역 시장으로 진통을 겪고 있는 우리 사회에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경희 모델’이 나오기까지
‘사다리포럼’은 노동 문제에 대한 미시적이고 실천적인 대안을 찾아보려는 일종의 사회적 대화 기구를 표방하며 출범했다. 포럼에서 처음 주목한 사안은 대학 청소 노동자의 고용문제였다. ‘희망제작소’ 임주환 변호사는 “대학 청소 노동자 문제가 가장 ‘아팠기’ 때문에 제일 먼저 시작했다”고 말했다. 우리 사회의 대표적인 저숙련, 저임금 직종인 청소직은 주로 고령층으로 구성돼 있는데다가 대부분이 용역업체에 소속돼 있어 ‘막다른 일자리’의 전형으로도 여겨진다. ‘막다른 일자리’란 미래가 보이지 않는 일자리를 말한다.
포럼에서 다룰 주요 문제가 정해진 후 노동, 경제, 복지, 여성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모였다. 또 현장에 직접 적용할 수 있는 해결책을 만들어내기 위해 대학 행정 직원과 노동조합 관계자 등 당사자들도 참여했다. 5월에 열린 첫 번째 비공개 토론회에서는 다양한 고용구조 개선모델에 대한 논의가 나왔다. 제시된 개선안은 ▲직접고용 모델 ▲자회사 모델 ▲사회적 경제 모델 등 총 세 가지였다. 각 개선안은 모두 장단점을 가지고 있다.
우선 대학이 청소 노동자들을 직접고용하게 되면 노동자들은 가장 높은 수준의 고용 안정성을 누리게 된다. 또한 대학은 용역회사의 이익금, 부가가치세 등 용역비용을 더 이상 지불하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사용자 입장에서 노무관리와 장기적인 인건비 상승에 대한 부담이 발생한다. 노동자 입장에서도 기능직 정년이 60세 미만으로 정해져 있는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직접고용 모델을 쉽사리 받아들일 수 없다. 현재 청소 노동자 대부분이 정년 근처에 있는 고령층이기 때문이다.
두 번째 개선안인 자회사 모델은 학교법인의 출자로 설립된 자회사가 청소 노동자들을 고용하는 형태다. 이때 ‘자회사’는 엄밀히 말해서 정확한 명칭은 아니다. 비영리법인인 학교법인이 자회사를 설립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사립학교법은 ‘학교법인이 학교 교육에 지장이 없는 범위 안에서 그 수익을 학교의 경영에 충당하기 위해 수익사업을 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사립학교법상 수익사업체를 편의를 위해 자회사라고 부르는 것이다. 자회사 모델을 선택하게 될 경우 학교 측은 노무관리에 대한 부담을 덜 수 있고, 노동자 입장에서는 고용 안정과 처우 개선을 함께 기대할 수 있다. 하지만 완전한 직접고용은 아니기 때문에 부가가치세 등 간접비용이 발생한다.
마지막으로 사회적 경제 모델은 청소 노동자들이 직접 설립한 협동조합이나 노동 처우 개선 등을 목표로 하는 사회적 기업에 청소 용역을 맡기는 형태다. 사회적 경제 방식을 이용할 경우 민주적인 의사결정구조가 도입돼 노동자들의 근로조건이 많이 개선될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여전히 부가가치세와 이익금 등 간접고용에 따른 비용이 발생한다는 단점이 있다.
7월에 열린 두 번째 비공개 토론회에서는 앞서 제시된 세 가지 개선안에 대한 경희대, 서울시립대, 연세대 구성원들의 의견을 들었다. 그리고 세 번째 토론회에서는 청소 노동자의 고용 구조를 개선하려는 강한 의지가 확인된 경희대의 실무 관계자와 여러 전문가들이 함께 새로운 모델에 대한 구체적인 그림을 그렸다. 최종 선택된 개선안은 자회사 모델이었다. ‘희망제작소’와 경희대는 향후 관련 양해 각서를 체결하기로 하고 10월 5일 공개 ‘사다리포럼’에서 지금까지 논의한 내용을 발표했다.

사회 문제에 대한 경희대의 대답
새로 설립될 자회사는 대학의 사용자성을 확실히 하기 위해 학교법인이 지분의 100%를 소유할 예정이다. 구체적인 방식으로는 학교법인이 직접 출자하는 방식이나 여러 개인들이 십시일반으로 투자를 한 후 전체 주식을 학교법인에 기부하는 방식 등 여러 가지가 거론되고 있다.
직종은 일단은 청소직으로 하되 향후 회사의 운영 상황을 봐서 시설관리나 경비 등의 직종도 포함할 계획이다. ‘사다리포럼’을 진행한 임주환 변호사는 “아직은 밑그림을 그리는 단계라 구체적으로 말할 수는 없지만 경희대의 다른 캠퍼스나 부속 병원 등으로도 확산해나가면 좋겠다”고 기대했다.
또한 자회사 설립이 단순한 고용 승계를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존중 받는’ 일자리를 만들어내는 것을 목표로 하는 만큼 경희대는 청소 노동자들의 복지에 대해서도 많은 고민을 하고 있다. 임금이나 정년 등이 적어도 지금의 수준에서 후퇴하지 않도록 하면서 대부분이 고령인 청소 노동자들의 건강 문제에 특히 많은 신경을 쓸 계획이다.
경희대는 자회사를 ‘소셜 벤처’의 형태로 설립해 청소 노동자들의 고용구조를 개선하는 것 외에도 다른 여러 사회적 가치들을 함께 추구하고자 한다. 새로 설립될 자회사는 대학 캠퍼스 안에 남는 공간을 지역 사회와 공유할 수 있도록 하는 새로운 관리체계를 만들어갈 예정이다. 또한 회기동 일대에 문화예술평화의 거리를 조성하는 일종의 도시재생사업도 함께 추진한다. 이원재 ‘희망제작소’ 소장은 공개 포럼 발제에서 “‘소셜 벤처’는 사회 문제 해결을 목표로 경영되는 기업”이라며 “대학이 운영난에 시달리며 상업화와 공익성의 갈림길에서 고민하고 있는 지금, ‘소셜 벤처’는 대학의 사회적 책임과 관련된 일을 진행하기에 적절한 조직 형태”라고 설명했다. 자회사 설립 방안은 청소 노동자 고용 문제와 대학 내•외부의 공간 활용 문제 등 여러 사회적 고민에 대한 경희대의 대답인 셈이다.
고용 문제 해결 위해선 대학의 강한 의지 필요해
경희대의 사례 외에도 대학 청소 노동자의 고용구조를 개선한 다른 사례들이 많이 있다. 부산대학교와 서울시립대학교는 각각 2009년과 2011년에 청소 노동자들을 직접고용으로 전환했다. 특히 부산대는 용역업체 이윤, 부가가치세, 일반관리비 등 간접고용으로 인해 드는 비용을 줄이고자 청소 노동자들을 직접고용으로 전환하면서 큰 예산절감 효과를 봤다. 한국노동연구원 배규식 선임연구위원의 발표 자료에 따르면 부산대는 2008년 청소용역 예산 16억 원 중 3억2천만 원을 절약했다.
사회적 경제 모델을 통해 청소직 간접고용 문제를 해결한 사례도 있다. 성공회대학교는 2003년부터 사회적기업인 ‘(주)푸른환경코리아’에 청소용역을 위탁하고 있다. ‘(주)푸른환경코리아’는 청소 노동자 파견 등 각종 건물관리사업을 통해 사회의 소외 계층을 위한 일자리를 창출하는 것을 목표로 1994년 설립됐다. 현재 대부분의 용역업체가 청소 노동자를 기간제로 고용하고 있는 반면 ‘(주)푸른환경코리아’는 정규직으로 채용하고 있다.
대학은 아니지만 일반 공기업에서 자회사를 설립해 청소 노동자들을 고용한 사례도 있다. ‘서울메트로’는 ‘서울시 2차 비정규직 고용개선 대책’의 일환으로 자회사 ‘(주)서울메트로환경’을 설립했다. ‘(주)서울메트로환경’은 2013년부터 ‘서울메트로’에서 운행하는 지하철 역사의 청소와 방역•소독 업무를 맡고 있다. 조진원 ‘(주)서울메트로환경’ 대표는 “청소는 정성집약적 산업”이라며 “더 나은 근로조건에서 더 깨끗한 공간이 나올 수 있지 않겠느냐”고 말한다.
이와 같은 사례들의 공통점은 모두 학교법인이나 지방자치단체 등 사용자 측이 고용구조를 개선하려는 강한 의지를 가지고 있었다는 점이다. ‘사다리포럼’의 대상으로 경희대가 선정된 가장 큰 이유도 바로 대학이 적극적으로 나서서 새로운 대안을 모색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경희대는 3년 전 연구 용역을 통해 내부적으로 청소 노동자들의 고용구조를 개선하기 위한 방안을 고민해보기도 했다. 이때는 직접고용안과 협동조합 설립안이 주로 검토됐다. 임주환 변호사는 “이미 대안은 시장에 다 나와 있다”며 “중요한 것은 대학이 나서서 대화를 통해 답을 찾으려고 노력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젠 서울대가 나서야
이번에 경희대와 ‘희망제작소’가 발표한 개선안은 기간제나 무기계약직 등 대학의 다른 비정규직 문제에 대한 해결 방안은 제시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한계를 가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희대 사례는 구성원들이 스스로 교착상태를 깨고 대화를 통해 해법을 찾아냈다는 점에서 한국 사회에 큰 시사점을 준다. 임주환 변호사는 “가장 아프고 불편한 곳부터 조금씩 개선해보려는 시도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또한 그는 서울대가 문제 해결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필요성에 대해서도 목소리를 높였다. 한국 사회에서 서울대가 갖는 상징성 때문이다.
서울대에서 근무하는 용역 노동자들은 이미 새로운 개선안을 찾아볼 준비가 돼 있다. 김재일 서울일반노동조합(일반노조) 서울대기•전분회 위원장은 “자회사가 설립되면 직원들의 사기가 올라갈 뿐만 아니라 시설관리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도 진행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정우춘 일반노조 서울대시설분회장도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자회사 방안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한다”고 밝혔다. 학내 고용구조를 개선하려는 서울대 본부의 적극적인 의지가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