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의 ‘장사질’을 해부하다

대한민국 의료 상업화의 실태와 원인

  주부 김현아(47) 씨는 몇 해 전 황당한 경험을 했다. 무릎이 아파 동네에서 유명한 중소 정형외과를 찾았다가 단번에 수술을 권유받은 것이다. 병원을 찾은 당일 의사는 엑스레이를 찍어보더니 무릎 뼈가 자라났기 때문에 당장 수술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 씨가 뼈가 자라난 원인에 대해 묻자 “그건 나도 모른다. 일단 열어봐야 안다”며 수술 날짜를 잡을 것을 요구했다. 수술의 혹시 모를 부작용에 대한 설명은 없었다.

  김 씨는 수술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함에 규모가 좀 더 큰 종합병원을 찾았다. 그리고 그곳에서 정반대의 진단을 들었다. 뼈는 자라났지만 일상생활에 아무런 지장이 없기 때문에 수술을 할 필요가 전혀 없다는 것이다. 김 씨는 같은 증상에 대해 두 의사가 제시한 정반대의 진단에 당황스러웠다. 더불어 만약 첫 번째 의사의 말만을 믿고 수술을 진행했다면 겪었을지 모르는 부작용에 대한 생각에 머리가 아찔했다. 진단으로부터 3년이 지난 지금 김 씨는 아무런 지장 없이 생활을 이어나가고 있다. 수술도, 부작용도 없었다.

병원이 돈을 버는 나라

  병원의 영리 추구가 극에 달하고 있다. 주부 김 씨의 사례는 이익 추구를 위해 불필요한 수술을 강요하는 병원의 행태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갈수록 심해지는 과잉 진료와 해마다 속출하는 상업적 성격이 짙은 병원 광고는 아픈 이를 치료하는 기관인 병원과 영리 추구를 목적으로 하는 기업의 경계를 흐리게 한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병원의 과잉 진료 건수는 2007년부터 2010년까지 약 60% 증가했다. 대표적인 과잉 진료의 유형으로 여겨지는 CT·MRI 등 고가의 검사 건수 또한 CT 촬영 기준 2006년부터 2010년까지 4년 새 120% 증가했다.

  과다한 검진은 곧 실질적인 환자 수의 증가로 이어진다. 고려대학교 예방의학교실 교수팀이 최근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2011년 기준 한국의 갑상선암 진단 환자는 18년 동안 15배 늘어났다. 그러나 동일한 기간 동안 갑상선암으로 사망한 인구 수는 거의 줄어들지 않았다. 조기검진을 통해 발견된 환자 수가 급증한 반면 실질적인 검진의 효과가 반영되는 사망률에는 큰 변화가 포착되지 않은 것이다.

  2007년 이래로 전폭 허용된 의료광고 또한 급증하는 추세다. 보건복지부가 심의한 의료광고 건수는 최근 3년 간 3배 이상 증가했다. 반면 이들 중 허위·과장을 포함하는 불법 광고에 대한 조치는 미미한 수준이다. 의료광고를 규제하는 현행 ‘의료법’ 제 56조와 57조를 위반할 경우 1년 이하의 징역, 의료기관 폐쇄 등 처벌이 주어지지만, 지난해 실제 조치가 된 불법 의료광고 건수는 총 145건으로, 의협과 지방자치단체에 의해 적발된 건수의 10%에도 못 미쳤다.

사진3.jpeg
▲ 강남구의 한 지하철역은 통로 전체가 성형외과 광고로 도배돼 있다. ©한국일보

  ‘의료 상업화’ 또는 ‘의료 영리화’는 이 같은 과잉진료, 의료광고의 예에서 드러나듯 병원이 의료 행위를 통해 경제적 이익을 추구하는 등의 이유로 의료공공성이 크게 저해되는 현상을 뜻한다. 이는 국민건강보험제도나 공공병원을 민간으로 전환하려는 ‘의료 민영화’와는 구분되는 개념이다. 김윤 교수(의학과)는 “의료 상업화는 그 안에 굉장히 광범위한 문제를 포함하고 있다”며 의료 상업화가 드러나는 한 가지 유형으로 과잉진료가 있다고 설명한다.

  그렇다면 의료 상업화는 왜 문제가 되는 것일까. 이는 국민의 건강을 보장하는 것이 국가의 기본 의무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헌법 제 36조는 국민의 보건이 국가의 보호 아래에 있음을 명시하고 있다. 이처럼 누구나 아플 때 치료를 받는 것은 국가가 보장하는 기본적 권리에 해당한다. 또한 의료는 본래 공공성을 내포하는 개념이다. 김 교수는 “의료는 본원적으로 공공적이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그는 의료 분야에서 발생하는 ‘정보의 비대칭성’ 문제를 들며, “의료 분야는 환자 입장에서 내가 어떤 질의 서비스를 받고 있는지, 꼭 필요한 검사나 수술을 하는지 판단하기가 어렵다. 때문에 높은 윤리성을 가진 전문가에게 환자에 대한 많은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사회적으로 권한을 부여한 것”이라고 말했다.

  덧붙여 김 교수는 “이와 같은 배타적 권한은 의사가 다른 이해관계에 치우치지 않고 환자의 입장을 대변할 수 있다는 전제 하에서 부여된 것”이라며 이러한 이유로 의사의 진료 행위는 언제나 공공적이어야 한다고 설명했다.병원이나 의사가 의료 행위를 통해 경제적 이익을 추구하는 것은 의료 본연의 공공성에 심각하게 위배된다는 것이다. 실제로 한국의 ‘의료법’은 병원의 영리 추구를 금지하고 있다. ‘의료법시행령’ 제 20조에 따르면 의료법인이 의료업을 통해 영리를 추구하는 것은 불법으로 규정된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한국의 의료공공성 실현 정도에 대해 회의적인 견해를 보인다.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정형준 정책국장은 한국의 의료공공성 실현 정도가 매우 낮은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정 정책국장은 “한국의 의료 상업화 정도는 엄청나게 높다”며 “국민건강보험이 존재하는 것을 제외하면 이는 미국보다 더한 수준”이라고 밝혔다. 김윤 교수 또한 이에 동의한다. 그는 “의료 상업화 문제를 전반적으로 보여주는 통계가 없기 때문에 객관적으로 얼마나 심각한지 말할 수는 없지만, 피부로 느끼는 상업화 정도는 심각하다”고 진단했다. ‘돈이 없으면 병원에 못 간다’는 인식이 사회 전체에 만연하게 퍼져 있는 것이다.

의료 상업화의 주요 원인들

  이와 같은 의료 상업화 경향이 점차 거세지는 원인은 다양하다. 가장 큰 원인은 제도의 문제에서 찾을 수 있다. 의료 제도는 크게 NHS(National Health System)와 NHI(National Health Insurance)로 나뉜다. NHS는 국가가 조세를 기반으로 병원의 공급을 통제하는 제도로, NHS를 채택하는 대표적인 국가로는 영국이 있다. 반면 NHI는 공적 보험을 제공한다. NHI를 채택하는 국가로는 독일, 프랑스, 일본, 한국 등이 있다.

  문제는 한국의 NHI 제도가 의료 공공성을 충분히 실현하지 못하고 있다는 데에 있다. 의료 공급이 민간에 맡겨지는 NHI의 경우 공적 보험의 보장률이 의료 공공성의 결정적 변수로 작용한다. 보장률이란 총 병원비에서 건강보험이 지원하는 금액의 비율을 뜻한다. 그러나 한국 건강보험의 보장률은 63%에 그친다. 이때 건강보험에서 지원하지 않는 병원비는 고스란히 ‘본인부담금’으로 돌아온다. 즉, 진료를 받았을 때 환자가 보험의 지원 없이 직접 부담해야 하는 금액의 비율이 전체의 37%나 된다는 것이다. 때문에 한국에는 국민건강보험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돈이 없어 병원에 가지 못하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프랑스와 독일의 경우 NHI를 채택하고 있지만 본인부담금이 13%를 넘지 않는다.  

  게다가 공공의료기관은 턱없이 모자라는 수준이다. OECD(경제협력개발기구)의 보건통계에 따르면 한국 공공의료기관의 병상 수는 2011년 기준 전체 병상의 10.4%로, OECD 평균인 75.1%의 7분의 1 수준이다. 의료기관의 영리추구 경향이 짙은 미국의 경우에도 공공병상 비중은 2010년 기준 25.8%로 한국의 두 배 이상이었다. 더욱이 한국의 공공병상 비중은 점차 감소하고 있는 추세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자료에 따르면 한국 공공병상 점유율은 2005년 13.6%에서 2011년 10.4%로 떨어졌다. 의료기관 공급의 측면에서 공공성은 거의 찾아볼 수 없는 것이다.

  병원 공급의 절대적인 부분을 민간에서 담당하다보니 심각한 문제가 발생한다. 병원이 마음대로 의료 수요를 창출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정형준 정책국장은 보건경제학의 ‘공급자유발수요’를 언급하며 이 같은 상황을 설명한다. 그는 “의료는 공급자가 마음대로 수요를 유발할 수 있다. 수술 안 할 사람을 수술하게 하고, 병이 아닌 것을 병으로 할 수 있다”며 이러한 이유 때문에 의료 영역에서 공급자의 통제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의사들이 이윤 동기를 가지고 행동하는 것이 자연스럽다는 것이다. 그는 실제로 한국에서는 의사들이 진료량에 따라 인센티브를 부여받는 ‘의사 인센티브제’’가 90년대부터 도입돼 과잉진료의 동기가 자연스럽게 상승했다고 분석했다.

  이처럼 공공성이 결여된 의료 제도는 ‘실손보험’이 판치는 결과를 낳았다. 실손보험이란 질병 등으로 발생한 의료비 중 환자가 직접 내는 본인부담금을 보상해 주는 민간 의료보험이다. 국민건강보험이 전체 의료비 중 보상하는 비중이 턱없이 낮다보니, 건강보험에서 지원되지 않는 나머지 부분을 지원하는 민간 보험이 이중으로 등장한 것이다. 실손보험 가입자는 2014년 기준 약 2800만 명으로, 해마다 증가하는 추세다. 이러한 실손보험은 과잉진료와 그에 따른 의료 상업화를 부추기는 결과를 낳는다. 실손보험에 가입한 환자들의 경우 불필요한 입원을 하거나 값비싼 검사를 받으려는 경향이 두드러진다. 민간 보험에 가입한 환자의 입장에서는 최대한 많은 보험금을 타는 것이 이득이기 때문에, 그 과정에서 불필요한 진료와 값비싼 의료 서비스가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게다가 정부의 정책은 의료 상업화 경향을 더욱 부추긴다. 의료법상 의료기관은 영리 추구를 하지 못하게 돼있는데도 불구하고, 정부는 ‘경제성장’을 명분으로 계속되는 의료산업화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병원의 영리 추구를 가능하게 하는 영리 자회사 설립, 원격 의료 도입, 의료 수출 정책 등이 이에 해당한다. 김윤 교수는 이처럼 “정부가 의료산업화라는 이름 하에 의료업으로 돈을 벌려고 하는 경향이 의료 상업화를 부추긴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김 교수는 의료 상업화의 원인으로 의사들의 전문가 윤리의식 부재를 꼽았다. 그는 “서양에서는 의사의 윤리의식이 오랜 시간을 거치면서 형성돼왔다. 그러나 서양의학이 도입이후 비교적 짧은 역사를 가진 한국의 경우 전문가 윤리가 튼튼하게 형성돼있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윤리의식은 기술과 같이 외부에서 들어올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문화와 역사를 통해 내생적으로 형성돼야 하는데 이러한 과정이 한국에는 결핍돼있다는 것이다.

  이와 더불어 의료 문화의 문제도 의료 상업화의 원인으로 제기됐다. 연구공동체 ‘건강과대안’ 변혜진 연구원은 아파도 제대로 쉴 수 없게 하는 문화가 상업화를 격화시킨다고 설명한다. 변 연구원은 “외국에는 아파서 일을 못하면 원래 수입의 70% 가량을 정부에서 지원해 주는 ‘상병수당’이 있다. 아프면 항생제를 놓고 빨리 낫게 하는 게 아니라 가능한 쉬게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서 “한국에선 사람들이 아파도 마음 놓고 쉬지를 못한다. 기업에서는 아파서 쉰다고 하면 눈치를 주거나 해고의 위험을 직면한다”며 이처럼 아프더라도 충분히 쉬기보다는 최대한 많은 약을 먹고 빨리 나을 것을 강요하는 문화가 불필요하고 과다한 진료를 양산한다고 지적했다.

사진2.jpg
▲ 

수도권에 위치한 한 병원의 VIP병실. 주된 목적은 국제환자 유치를 통한 

의료관광사업의 활성화에 있다. ©세종병원

의료공공성 회복 위해 사회가 함께 노력해야

  이처럼 심각하게 저해된 한국의 의료공공성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제도의 개선이 요구된다. 보장률이 60%대에 머무는 국민건강보험제도의 실질적 지원을 강화하고 공공병원을 확립하는 것은 의료의 공적 영역을 강화함으로써 상업화 경향을 크게 줄일 수 있다.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아 실손보험의 직접적 대상이 되는 ‘비급여의료비’를 급여화하는 것도 대안으로 제시되고 있다.

  또한 민간 의료기관의 지나친 영리 추구 경향을 제한하려는 노력도 필요하다. 의료기관이 비영리기관답게 행동할 때 큰 보상을 해주는 것이 하나의 방법이다. 김윤 교수는 “영리적 성격의 병원에 대해서는 높은 세금을 부과하고 비영리적 성격의 병원에는 세제 혜택을 줌으로써 병원의 영리화 문제를 해소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상업적 성격의 부적절한 의료광고에 대한 규제도 제대로 이뤄져야 한다. 또한 의료를 수익 창출의 수단으로 여기는 정부의 의료산업화 정책에 대한 제동도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의료 문제가 사회에서 보다 활발히 논의돼야 한다. 정형준 정책국장은 “의료 시스템을 정치적 의제로 만드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며 사람들의 관심과 요구가 선행되지 않으면 어떤 개선도 일어나기 어렵다는 점을 지적했다. 변혜진 연구원 또한 “의료시장의 영리화에 반대하는 시민사회의 움직임이 절실하다”며 의료 문제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을 촉구했다.

  의사들의 윤리의식 또한 제고돼야 한다. 김 교수는 “의학대학의 교육과정에 윤리가 포함돼 있지만 교육의 양과 질이 충분하지 않은 상황”이라며 무엇보다 의사들 스스로 전문가 윤리의식을 높이려는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환자들도 인식을 바꿔나갈 필요가 있다. 변 연구원은 환자가 의사에게 질문하는 것이 금기시되는 한국의 상황을 지적하며 “묻는 환자가 많아져야 과잉 진료가 사라진다. 내가 받는 검사가 필요한 검사인지 주눅 들지 않고 물어 봐야 한다”고 말했다.

  의료는 누구나 누릴 수 있는 권리여야만 한다. 아픈 사람들을 치료하는 것은 국민들의 기본적 재생산을 가능케 하기 때문이다. 돈이 없으면 건강할 수 없는, 의료공공성이 지켜지지 않는 국가는 안정적인 존속을 기대할 수 없다. 의료가 돈벌이의 수단으로 전락하고 있는 오늘날 한국의 상황에 대한 보다 적극적인 관심과 노력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댓글 댓글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

Previous Post

인턴이기 이전에 사람이잖아

Next Post

기억과 약속의 길을 가다 - 1